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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탐정 유강인 19_08_사건 조사와 외딴 집

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와 악의 분노

by woodolee

다락방 커피숍 근처에 대일 병원이 있었다. 대일 병원은 종합 병원으로 명망이 높았다.


대일 병원 5층 병실에 한 환자가 안정을 취했다. 바로 다락방 커피숍 주인이었다.


그녀는 다행히 위기를 넘겼다. 화재 현장에 도착한 119 구조대가 지혈을 서둘렀고 병원에 도착한 후에는 의료진이 봉합 수술을 잘 마쳤다.


그래서 위험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이제 안정만 잘 취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휴우~!”


길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창가 쪽 침대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곳에 한 여인이 누워있었다.


딱 보기에도 무척 힘이 없어 보였다. 얼굴에도 핏기가 없었다.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녀는 다락방 커피숍 주인이었다.


이는 충분히 그럴만했다. 소중한 일터인 커피숍이 잿더미로 변해버렸고 설상가상으로 칼에도 맞고 말았다. 화마와 칼부림이 연달아 그녀를 덮쳤다. 아무런 예고 없이.


“아이고!”


주인이 무척 억울한 듯 이를 앙다물었을 때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 셋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먼저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들어왔다. 뒤이어 남자 둘이 들어왔다. 둘은 서울청 광역범죄수사대 강력반 유강인과 차수호 형사였다.


건장한 남자는 경기도 북부 경찰서 소속 오형사였다.


차형사가 오형사한테 양해를 구했다.


“오형사님, 우리 유형사가 저분 생명의 은인입니다. 잠시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괜찮겠죠?”


“네, 괜찮습니다. 저분 생명의 은인이신데 … 당연히 말씀을 나누셔야죠.”


“감사합니다.”


차수호 형사가 감사를 표하고 유강인을 쳐다봤다.


유강인이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기도 경찰의 배려로 커피숍 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셋이 커피숍 주인을 향해 걸어갔다.


발소리가 들리자, 주인이 고개를 돌렸다. 침대 앞에 남자 셋이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주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셋의 얼굴을 살피다가 한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셋 중 가장 젊은 남자였다.


그녀가 아! 하며 탄성을 질렀다. 생명의 은인을 알아보고 급히 입을 열었다.


“아, 오셨네요. 정말 감사해요! 저를 구해주셔서 …. 선생님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거예요.”


유강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회복하셔서 참 다행입니다. 저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강력반 유강인 형사입니다. 형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거뿐입니다. 개의치 마세요.”


“아! 형사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주인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생명의 은인을 만나자, 그 고마움에 가슴이 벅찼다.


커피숍이 불타서 지붕이 무너졌을 때 주인은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을 기고 있었다. 기력이 다했을 때 검은 연기가 다가왔다. 죽음의 전령이었다. 저승사자가 그녀의 발목을 꽉 잡았다.


그렇게 저승사자한테 꼼짝없이 붙잡혔을 때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왔다. 한 사람이 검은 연기를 헤치고 홀연히 나타났다. 바로 앞에 서 있는 유강인이었다.


유강인이 주인의 상태를 살피다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데 괜찮으시죠?”


주인이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생명의 은인을 만나자, 기력을 되찾은 듯했다.


“네, 괜찮습니다. 이제 몸이 괜찮아졌어요. 좀 아프기는 하지만, 말하는 데는 지장이 없어요.”


유강인이 참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좋습니다. 다락방 커피숍에 불이 났는데 왜 그곳에 계셨죠?”


“저는 다락방 커피숍 주인입니다.”


“아, 그렇군요. 주인이셨군요. 그러면 불이 어떻게 났는지 잘 아시겠네요.”


“네, 아는 대로 다 말할게요. 조리대에서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탄 냄새가 났어요. 그래서 사방을 둘러봤는데 출입문 앞에서 불길이 일었어요.

불길을 확인하고 손님한테 소리쳤어요. 뒷문으로 도망치라고 했어요. 뒷문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는데 한 사람이 앞을 가로막았어요.”


“그 사람이 누구죠? 아는 사람인가요?”


“키 크고 잘생긴 남자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 손님 같아요. 맞아요! 불이 나기 전, 손님 하나가 화장실을 물어보고 나갔어요. 그 손님이 뒷문 앞에 서 있었어요. 옆에 다른 남자들도 있었어요.”


유강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의심스러운 정황이 드러났다.


“그렇군요.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됐죠?”


“손님인, 그 남자 손에 긴 칼이 있었어요. 저를 보더니 두 눈에서 광채가 났어요. 무시무시했어요. 이윽고 칼을 휘둘렀어요.

그래서 꼼짝없이 칼에 맞고 말았어요. 피가 마구 솟구쳤어요. 깜짝 놀라서 커피숍 안으로 다시 들어왔는데 불길이 걷잡을 수 없었어요. 검은 연기가 마구 치솟았어요.”


“다른 손님들은 어떻게 됐죠?”


“불이 났을 때 손님은 세 명이었어요. 할아버지와 젊은 커플이었어요. 할아버지가 먼저 왔고 젊은 커플이 뒤에 왔어요.

뒤늦게 온 젊은 커플이 할아버지에 자리에 앉았어요. 그래서 일행인 줄 알았어요.

커플 중 남자가 화장실로 간다고 했어요. 그런데 화장실이 아니라 뒷문에 있었어요.”


“그렇군요. 그러면 젊은 여자와 할아버지는 어떻게 됐죠?”


“둘도 뒷문으로 달려갔어요. 남자들이 둘을 막아서자, 할아버지가 품에서 칼을 꺼냈어요. 칼에서 광채가 번쩍였어요. 작은 칼이었어요.”


“할아버지가 남자들과 싸웠다는 말인가요?”


“네, 할아버지가 남자들과 싸웠어요. 그걸 똑똑히 봤어요. 할아버지가 정말 재빨랐어요. 작은 칼을 아주 잘 휘둘렀어요. 상대는 긴 칼이었어요.

그렇게 남자들을 제압하고 밖으로 나가자, 젊은 여자가 그 뒤를 따랐어요.”


주인의 증언을 듣고 차수호 형사와 오형사가 깜짝 놀랐다. 다락방 커피숍에서 화재뿐만 아니라 칼싸움도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1대 다수의 싸움이었다.


‘분명 보통 일이 아니군.’


유강인이 침을 꿀컥 삼켰다. 그가 상황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떡였다.


할아버지가 작은 칼을 잘 휘둘렀다는 게 의미심장했다. 상대는 여러 명이었고 긴 칼이었다. 그런데도 상대를 제압했다는 말은 할아버지가 전문가라는 말과 같았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할아버지 인상착의가 어땠죠?”


“키가 작고 왜소한 할아버지였어. 흰색 옷을 입고 있었어요. 무엇보다 눈썹이 새하얬어요. 그래서 기억에 선명하게 남았어요.”


“새하얀 눈썹이라고요?”


“네, 분명 눈썹이 눈처럼 새하얬어요.”


흰 눈썹 즉 백미(白眉)라는 말에 유강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가 심호흡했다. 범상치 않은 외모에 범상치 않은 실력을 갖춘 자가 등장했다.


유강인이 사건 담당 형사인 오형사를 찾았다.


“오형사님, 화재 현장에 추가 피해자가 있었나요?”


오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네, 두 명이 죽은 채 발견됐습니다. 모두 불에 타서 새까맣게 변했습니다. 둘 다 남자였습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한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오형사가 조사한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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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로변 다락방 커피숍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남자 두 명이 불타 죽고 여성 한 명이 응급 수술을 했다.

커피숍 손님이었던 할아버지와 커플은 그 행방이 묘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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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정리한 유강인이 입술에 침을 묻혔다. 수사 욕구가 끓어올랐다.


그는 이 사건을 맡아서 수사하고 싶었다. 딱 보기에도 뭔가가 있었다. 단순한 화재 사건이 아니었고 조폭들의 영역 다툼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기는 경기도 동인시였다. 서울청이 맡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차수호 형사가 문자를 확인하고 유강인에게 말했다.


“이제 돌아가자. 이선배님한테 문자가 왔어. 오늘 거한 회식이 있대. 오늘의 주인공인 유형사가 빠질 수 없다는데 ….

나는 오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겠대. 아이스크림을 먼저 먹었다고 아직도 나한테 삐졌나 봐.”


“…….”


유강인이 답을 하지 않았다.


“반장님이 기다리고 있다는데 ….”


“반장님이요?”


반장님이 기다린다는 말에 유강인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주인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그러자 주인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그건 무리였다. 이에 침대에 누운 채 감사함을 표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형사님.”


“별말씀을. 곧 회복하실 겁니다.”


유강인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걸음을 옮겼다. 오형사 유강인에게 꾸뻑 인사했다. 용감한 경찰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렇게 유강인이 서울로 돌아갔다.



***



어두운 밤이 되었다. 시간이 밤 10시를 향해 달려갔다. 세단 한 대가 숲속 길을 달렸다. 검은색 외제 차였다. 미끈한 광택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곳곳에 가로등이 있었다. 검은색 세단이 가로 등불을 맞으며 2차선 도로를 내달렸다. 보닛이 반짝거렸다.


잠시 후 세단이 옆으로 빠지는 길로 들어섰다. 그 길은 저택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저택은 외진 곳에 있는 비밀스러운 곳이었다.


5분 후 저 멀리에 저택이 보였다. 저택은 넓은 마당이 있는 3층 건물이었다. 딱 보기에 부유층 별장 같았다.


건물은 오래된 벽돌집이다. 검붉은 벽돌에서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세단이 저택 정문 앞에 멈췄다. 그러자 커다란 정문이 천천히 열렸다.


정문이 활짝 열리자, 세단이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널찍한 마당 한가운데에 한 사람이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 있었다. 중년 여인이었다.


중년 여인은 하얀색 옷을 입고 있었다. 하얀색 블라우스와 하얀색 긴 치마였다. 마치 소복과 같았다. 밤에 보는 하얀색 옷이라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세단이 벽돌집을 향해 움직였다. 세단이 다가오자, 중년 여인이 차를 향해 허리 굽혀 인사하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스승님.”


세단이 중년 여인을 스쳐 지나갔다. 벽돌집 현관문 앞에 딱 멈췄다.


차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내렸다. 바로 백미 노인과 윤이슬이었다.


차에서 내린 백미 노인은 참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반면 윤이슬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중년 여인이 현관문으로 걸어왔다. 그녀가 백미 노인에게 말했다.


“스승님, 저 아이가 … 황금새의 딸입니까?”


백미 노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그래, 황금새의 딸, 윤이슬이다. 앞으로 금학이라고 불러라. 황금새가 금학을 낳았어.”


“알겠습니다. 스승님.”


백미 노인이 현관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집에서 밝은 빛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


중년 여인이 벌벌 떨고 있는 윤이슬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 앞에서 입을 열었다.


“네가 정연지의 딸, 윤이슬이구나. 이제부터 너는 금학이다.”


윤이슬이 떨리는 눈망울로 중년 여인을 바라봤다. 중간 키에 후덕했다 통통한 몸매였다. 말총머리였다. 살진 얼굴에서 인자함이 풍겼다.


“우리 엄마를 아세요? 아주머니는 누구세요?”


윤이슬의 말에 중년 여인이 빙긋 웃고 답했다.


“난 네 엄마와 동문이다. 같이 스승님을 모셨다.”


“스승님이라면 ….”


“스승님은 집 안으로 들어가셨다. 흰 눈썹, 백미 노인이라고 불리시는 분이지. 너도 이제 스승님의 제자가 됐으니 앞으로 스승님을 공손히 모셔라. 네 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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