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설_탐정 유강인 19_10_검은 판사의 등장

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by woodolee

백미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십자매에게 말했다.


“십자매야, 네가 금학을 책임지고 가르쳐라. 금학은 이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최소 몇 년간은 여기에서 꼼짝없이 지내야 한다.”


그 말을 듣고 윤이슬이 화들짝 놀랐다.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는 말과 같았다.


살인마 살모사가 똬리를 틀고 그녀를 노린다는 말이었다.


백미 노인이 말을 이었다.


“황금새의 유산도 마찬가지다. 돈을 찾으려 하면 놈들이 움직일 거다. 그 돈도 포기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십자매가 공손한 목소리로 답했다.


백미 노인이 술병을 들고 걸음을 옮겼다. 2층 계단을 올라갔다. 그렇게 2층으로 사라졌다.


“이, 이게 대체!”


윤이슬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감당하기에 너무나도 벅찬 일들이 그녀를 짓눌렀다.


평범해 보였던 엄마가 불법 수술을 하는 유령 의사였고, 엄마를 죽인 살모사가 자기까지 죽이려 했다. 너무나도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십자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윤이슬에게 말했다.


“금학아, 오늘은 1층 작은 방에서 푹 자라. 내일 아침부터 교육을 시작하겠다.”


윤이슬이 급히 입을 열었다.


“교육이라고요?”


“응, 지하실로 내려가야 해.”


“지하실에서 뭘 하려고요?”


“지하실에 시신이 있어.”


시신이라는 말에 윤이슬의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듣기만 해도 무서운 말이었다. 그녀가 급히 말했다.


“시, 시신이라고요?”


“응, 교육용 시신이지. 내가 말했잖아. 우리는 유령 의사라고 … 면허증은 없지만, 성형 수술 전문가야. 이제부터 너는 붉은 원 교육생이야. 나는 네 선생님이고.”


“헉!”


윤이슬의 무릎이 꺾였다. 그녀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십자매가 윤이슬을 부축하며 말했다.


“놀랄 것 없다. 시신과 피 냄새는 곧 익숙해질 거야.

네 엄마는 최고였다. 나보다 두 수 위였지. 네가 엄마보다 타고난 재능이 좋다니 … 한번 보자꾸나. 너의 잠재력을 ….

내가 아는 황금새는 한 번도 허튼소리를 하지 않았어. 내 시범을 따라 하면 금방 배울 수 있어.”


십자매가 말을 마치고 미소를 지었다. 온화한 미소였지만,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윤이슬이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녀에게 엄마는 하늘이었다. 하늘이 무너진 후 검은 악령이 그녀를 덮쳤다.


그녀에게 비극이 시작됐다. 가혹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았다.


그 소용돌이에 빠진 윤이슬이 이를 악물었다. 엄마를 생각하며 견디기로 마음먹었다.


하염없이 울 수도 없었고 현실에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선택은 단 하나였다. 강해져야 했다.


윤이슬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녀가 힘을 내어 일어났다.


작은 방에 들어가 내일을 준비했다. 그녀가 할 일은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윤이슬에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자, 시간이 물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거침없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윤이슬은 자취를 감췄다. 마치 세상에서 사라진 거 같았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10년 뒤



검은 어둠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쌓이고 쌓였던 분노, 공포, 두려움이 한데 뭉쳐서 강한 에너지를 형성했다. 그건 사무친 원한이었다. 그 에너지가 세상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고 해일이 덮치는 거 같았다.


그건 한마디로 막을 수 없는 파국(破局)이었다.


이는 유강인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2025년 12월 5일, 밤 10시 20분


탐정 유강인은 미스터김 일당을 일망타진하고 호텔에서 만찬을 즐겼다.


“역시 랍스터가 참 맛있군.”


두툼한 집게 살을 먹으며 유강인이 만족감을 표했다. 옆에 황정수가 있었다. 그도 랍스터를 먹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탐정님, 랍스터 맛이 환상적이네요.”


“그래, 그래. 참 맛있다.”


“탐정님, 이제 안심 스테이크 먹으러 가죠. 고기가 아주 부드럽대요.”


“오! 안심 스테이크, 내가 참 좋아하지. 랍스터 빨리 먹고 가자.”


유강인이 랍스터를 재빨리 먹어치웠다. 황정수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깨끗한 접시를 들고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유강인이 맛있는 음식을 만끽하고 있을 때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바닷가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JS 그룹 부회장 송상하였다. 그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JS 그룹은 자동차 업계의 선두 주자로 명망이 높았다. 회장은 창업주의 아들 송해성이었다.


송회장은 아버지한테 그룹을 물려받고 잘 지켜냈지만, 최근 건강에 적신호가 떨어졌다.


고령인 회장이 병석에 눕자, 그 아들인 송상하 부회장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송부회장은 탁월한 판매 실력으로 명성이 높은 유능한 인물이었다.


그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장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다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결승점이 코앞에 있다고 해서 다 결승점을 통과하는 건 아니었다.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날 수가 있고 배탈이 날 수도 있었다.


송상하 부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그것도 급브레이크였다.


그는 이복동생 박재영 납치 살인 미수 혐의와 아버지 송해성 회장 살인 미수 혐의로 경찰서로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특히 아버지 살인 미수 혐의는 중죄였다.


송부회장은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다며, 결백함을 계속 주장했다. 아버지를 요양 병원에 잘 모시라고 지시했는데 중간에 착오가 있었다며 항변했다.


경찰은 그의 말에 일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병약한 아버지를 해치려고, 더럽고 형편없는 창고에 아버지를 방치한 거로 결론을 내렸다.


이는 검찰도 마찬가지였다.


송상하 부회장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곧 구속 영장이 청구될 예정이었다.


평생을 재벌 3세, 귀공자로 살아온 그에게 커다란 시련이 닥쳤다. 차가운 구치소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세상은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거대한 놀이터였다.


그렇게 세상을 활보했던 그가 구속돼 구치소에 들어간다면 새장 속에 갇힌 새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새장이 답답하다고 삐약삐약! 거려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초조함과 절망감이 송상하 부회장을 덮쳤다.


그는 바닷가에 서 있었다. 바다는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곳이었다. 넓디넓은 바다를 보면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포부를 키웠다.


“으으으!”


송상하 부회장이 두 눈을 크게 뜨고 겨울 바다를 바라봤다. 어두운 밤이라 수평선은 보이지 않았다. 칠흑 같은 파도만 보일 뿐이었다.


세상이 그의 마음처럼 깜깜했다.


“젠장!”


송부회장이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인상을 팍 쓰더니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건 돌멩이였다.


그는 돌멩이를 힘껏 내던지고 싶었다. 바다를 향해 있는 힘껏 내 던져 꽉 막힌 심정을 풀고 싶었다.


하지만 돌멩이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고운 모래사장이었다. 던질 만한 돌멩이가 없었다.


“돌멩이조차 없네!”


송상하 부회장이 무척 못마땅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가 걸음을 옮겼다. 길쭉한 모래사장이 굽이쳤다. 모퉁이를 돌았을 때 두 눈이 커졌다. 저쪽 구석 풀밭에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가 있었다.


“저기 있군.”


송부회장이 모래사장 뒤 풀밭으로 향했다. 손바닥에 딱 들어가는 돌멩이 하나를 쥐고 바닷가로 향했다.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목소리도 들렸다. 낮으면서도 굵은 목소리였다.


그 소리가 차디차기 그지없었다.


“당신이 … 이복동생과 아버지를 죽이려 한 자인가?”


“뭐라고?”


송부회장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뒤로 돌렸다.


뒤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검은색 롱코트에 커다란 후드를 눌러쓴 남자였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았다. 남자가 말을 이었다.


“당신이 JS 그룹 송상하 부회장이지?”


“그걸 어떻게?”


송상하 부회장이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처음 보는 사람이 자기를 알아봤다. 그가 급히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알다니 … 너는 대체 누구냐?”


낯선 이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나는 … 검은 판사다. 악을 징벌하는 악마지.”


“뭐라고?”


송부회장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낯선 이가 한 말이 심상치 않았다. 그의 폐부를 단숨에 찌르는 말이었다.


그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다.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복동생 박재영을 죽이려 했다. 게다가 이복동생을 애타게 찾는 아버지를 병원 창고에 방치해 죽이려 했다.


이는 모두 사실이었다.


“으으으~!”


송상하 부회장이 커다란 두려움을 느꼈다. 그가 계속 뒷걸음질 쳤다. 뒤에서 파도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잔잔한 소리였지만 그에게는 커다란 북소리 같았다.


마치 잘못을 질책하는 소리 같았다. 숨통을 조여오는 적군의 북소리였다.


둥둥! 그 소리가 점점 커졌다.


검은 판사가 걸음을 옮겼다. 걸음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블랙맨이었다. 검은색 롱코트와 검은색 후드로 얼굴과 몸을 가려서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마치 검은 수도사 같았다.


후드 속은 깊은 어둠에 잠겼다. 눈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을 가차 없이 빨아들이는 블랙홀 이었다.


“아, 안돼!”


송부회장이 걸음을 멈췄다. 발이 차가웠다. 바닷물이 발목까지 올라왔다.


“김비서.”


송상하 부회장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비서들을 찾았다. 비서는 보이지 있었다. 비서들은 우측 굽이진 곳 너머에 있었다.


“김비서!”


그가 입을 크게 벌렸다. 도움을 구하려고 소리쳤을 때


검은 바다에서 검은 물체가 쑥 올라왔다. 밀려오는 파도를 헤치고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살을 헤치며 바닷가로 달려왔다.


온몸이 검은 블랙맨이었다. 하지만 앞에 있는 블랙맨과는 달랐다.


그는 검은색 잠수복을 입은 블랙맨이었다.


잠수복 블랙맨이 송상하 부회장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왔다.


마치 타깃을 잡으려는 듯 커다란 손이 허공을 갈랐다. 송부회장의 두 눈을 가리고 입을 꽉 틀어막았다.


“헉!”


소스라치게 놀란 송상하 부회장이 발버둥 쳤다. 하지만 힘을 쓸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잠수복 블랙맨의 힘이 너무나도 강했다.


잠수복 블랙맨이 속삭였다.


‘송상하, 너는 도망칠 데가 없다. 나도 검은 판사다. 악을 징벌하는 악마다.’


“안돼!”


사로잡힌 남자가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블랙맨 둘이 한 남자를 에워 샀다. 둘이 웃기 시작했다. 소리 없는 웃음이지만,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바다는 잔잔했다. 파도 소리가 철썩철썩 리듬 있게 들렸다.


롱코트 검은 판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송상하, 너를 직결심판하겠다. 검은 법전 1조 2항에 따라서 악에는 용서가 없다. 가해자에게 고려할 인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너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선고한다.”


잠수복 검은 판사가 마치 지당하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고 입을 열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너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선고한다.

송상하, 너는 그동안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네놈에게 회사를 빼앗기고 아이디어를 강탈당한 수많은 사람이 있다.

네가 강탈한 아이디어는, 길에서 굴러다니는 하찮은 돌멩이가 아니다. 인생을 역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너의 쓰레기 짓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좌절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이디어 하나에도 그 사람의 염원과 인생이 담겨있다는 걸 명심해라!”


“그렇지. 백번 옳은 말이다.”


롱코드 검은 판사도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말했다.


“아울러! 너한테 매몰차게 버림받고 목숨까지 끊은 여자가 있다. 이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만행이다. 이제 그 만행을 결산할 시간이 다가왔다. 결산에는 단 1원의 착오가 없다.”


“하하하!”


“하하하!”


검은 판사 둘이 다시 웃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소리가 들렸다. 통쾌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파도 소리에 가려 널리 퍼지지는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판사가 등장했다. 그리고 활화산처럼 분노했다. 그들은 분노의 화신이었다. 오랜 기간 쌓이고 쌓인 원한을 그렇게 거침없이 쏟아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9화소설_탐정 유강인 19_09_붉은 원의 정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