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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olee Oct 16. 2024

12_피 묻은 영수증

탐정 유강인 18편 <검의 자서전과 악의 비밀>

증거물을 살피던 김형사가 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서둘러 투명 비닐을 들었다. 안에 증거물로 확보된 양말이 있었다. 검은 양말이었다. 그래서 흰 가루가 아주 잘 보였다.      


흰 가루는 애타게 찾는 물증이었다. 김형사가 기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백정현 형사에게 전화 걸었다.      


백형사는 오태환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     


“백형사님! 검은 양말에 흰 가루가 붙어 있습니다. 딱 보기에 소금 결정 같아요.”     


백정현 형사가 급히 답했다.     


“김형사, 분명해? 소금 결정이 맞는 거 같아?”     


“제가 보기에 소금 결정입니다. 먼지가 아닙니다.”     


“좋았어. 과학수사대가 도착하면, 그 양말부터 조사해야 한다고 말해.”     


“네, 알겠습니다. … 이게 욕실에 있던 비싼 소금이라면, 증거를 확실히 잡은 거죠?”     


“그렇지! 오태환이 욕실에 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야. 그 소금은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없는 소금이야. 그 소금으로 오태환을 확 잡을 수 있어.”     


“흐흐흐! 정말 다행이네요. 제가 오래간만에 한 건 하네요. … 아! 지금 박형사가 왔습니다.”     


집 근처 창고를 살폈던 박형사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그가 급히 걸음을 옮겼다.     

“응?”     


김형사가 박형사의 얼굴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다. 마치 못 볼 것을 본 듯한 얼굴이었다.     


김형사가 박형사에게 말했다.     


“박형사, 얼굴이 왜 그래? 창고에 뭐가 있었어?”     


박형사가 급히 침을 삼켰다. 그가 서둘러 말했다.     


“김형사, 창고 안에 들어갔는데 안에 검은색 비닐봉지가 있었어. 그래서 그 봉지를 열었는데 ….”     


“봉지 안에 뭐가 있었는데?”      


“안에 … 피가 잔뜩 묻은 옷과 걸레가 있었어!”     


“뭐, 뭐라고? 진짜야?”     


“응! 분명 핏자국이었어. 피비린내도 심하게 났어.”     


“이런!!”     


김형사가 무척 놀란 듯 큰 소리로 외쳤다.     


“응?”     


그 소리를 듣고 백정현 형사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후배들의 말이 심상치 않았다. 이에 급히 말했다.     


“무슨 일이야? 김형사. 지금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김형사가 서둘러 말했다.     


“선배님, 박형사가 지금 보고할 게 있습니다.”     


김형사가 말을 마치고 박형사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박형사가 핸드폰을 건네받고 급히 말했다.     


“선배님, 집 근처에 창고가 있어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 안에 커다란 검은 봉지가 있었습니다. 

검은 봉지가 수상해서 열어봤는데 상당한 양의 피를 발견했습니다. 피가 묻은 걸레와 옷가지였습니다.”     


“뭐, 뭐라고?”     


박형사의 보고에 백정현 형사가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말했다.     


“검은 봉지 안에 피가 많이 있었다는 거야?”     


“네, 흘린 피가 옷을 흥건히 적셨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피를 걸레로 닦은 거 같습니다. 걸레에 피뿐만 아니라 흙도 많았습니다.”     


“이거 분명 심상치 않군.”     


백정현 형사가 핸드폰을 꽉 쥐었다. 천일수 살인 사건과 별개로 다른 사건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어부 오태환은 천일수를 죽인 살인마가 분명했다. 그런 자라면 다른 범죄에 연루될 수 있었다. 가능성은 충분했다. 아니 차고 넘쳤다.     


백형사가 말했다.     


“알았어. 이건 보통 일이 아니야. 오태환 그자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야. 천일수씨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해코지한 게 분명해. 곧 도착하니 기다리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백정현 형사가 전화를 끊고 곧바로 유강인에게 전화 걸었다.     


삐리릭!     


유강인이 전화 받았다. 백형사한테 자초지종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정말입니까?”     


“후배 형사들이 그렇게 보고했습니다.”     


유강인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태환 그자가 다른 범죄에도 연루된 게 분명했다.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백형사님, 지금 반장님하고 창고로 갈 테니. 현장을 잘 지키고 계세요.”     


“네, 현장을 철통같이 지겠습니다.”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자제하고 옆에 있는 차수호 반장에게 말했다.      


“반장님, 오태환 집 근처 창고에서 피가 잔뜩 묻은 옷가지와 걸레가 나왔답니다.”     


유강인의 말에 차반장이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급히 말했다.     


“뭐,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네, 박형사가 집 근처 창고 안에서 검은 봉지를 발견했는데 봉지를 열어보니 피 묻은 옷가지와 걸레가 있었답니다.”     


“아이고! 일이 커져 버렸네. 처음에는 노인 살인 사건이었는데 그새 다른 일이 있었던 거야?”     


“정황상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럼, 어서 현장으로 가자고. 지체할 겨를이 없어.”     


“네, 서둘러야 합니다.”     


유강인과 차수호 반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들이 서둘러 차로 달렸다.          



**          



탐정단 밴과 차수호 반장이 탄 경찰차가 오태환 집에 도착했다.      


차 문이 활짝 열리고 유강인과 조수 둘, 차수호 반장이 차에서 내렸다.      


저 앞에 과학수사대 차량이 보였다.      


과학수사대는 5분 전 현장에 도착했다. 형사들한테 증거물을 인계받고 현장을 조사하고 있었다.      


집 현관문 앞에 서 있던 과학수사대 팀장 김민선이 유강인을 보고 달려왔다. 한 손에 커다란 검은 봉지가 있었다.     


검은 봉지를 본 유강인의 두 눈이 커졌다.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검은 봉지!”     


사건의 양상이 갑자기 확 달라졌다.      


85세 노인, 천일수 살인 사건이 해결되자, 피 묻은 옷가지와 걸레가 등장했다. 이는 다른 사람이 해를 입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김팀장이 유강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그가 급히 말했다.     


“이 봉지 안에 피가 잔뜩 묻은 옷과 걸레가 있습니다. 흘린 피가 상당합니다.”     


“그렇군요. 사람의 피 같나요?”     


“그건 조사해야 합니다. 바지와 셔츠에 피가 묻은 것으로 봐서 일단 사람 피 같습니다.”     


“사람 피라면 … 이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저 창고에서 처참한 일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네, 맞습니다.”     


유강인이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창고를 찾았다.      


오태환 집에서 30m 떨어진 곳에 창고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경찰 둘이 굳게 닫힌 철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어서 창고로 갑시다.”     


“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김민선 팀장이 앞장섰다.     


1분 후     


유강인과 백정현 형사, 차수호 반장, 김팀장이 창고 앞에 섰다.      


유강인이 오자, 문을 지키던 경찰들이 창고 문을 열었다. 철문이 끼익하며 열렸다. 소리가 꽤 음산했다.     


창고 안은 환했다. 천장에 매달린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형광등 3개였다.      


시간이 정오를 향해 달렸다. 비는 예전에 그쳤다. 하늘에 구름이 꼈지만, 그리 어두운 날은 아니었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유강인이 긴장된 표정으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20평 크기 창고였다. 농기구 여러 개만 보일 뿐 다른 것은 없었다.      


바닥은 흙 천지였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창고였다.      


고개를 돌려 창고를 살피던 유강인이 잠시 뭔가를 생각했다. 창고는 겉보기에 이상이 없어 보였다.      


순간,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창고를 비우기 전 청소한 거 같았다. 바닥에 빗자루질한 흔적이 있었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빗자루질했다면 바닥의 흙을 문이나 벽 쪽으로 밀었을 거 같았다.      


“좋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고 벽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매의 눈으로 벽과 바닥을 유심히 살폈다.     


“휴우~!”     


문 앞에 서서 말없이 유강인을 바라보던 차반장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사건이 갑자기 커지자, 긴장한 거 같았다.      


그건 백정현 형사도 마찬가지였다. 오태환이 천일수만 죽인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해코지한 게 분명했다.     


창고 안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점점 커지더니 팽배해졌다.     


1분 후     


“응?”     


창고 벽을 따라서 걷던 유강인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두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그건 흙에 파묻힌 종이 쪼가리였다. 종이 귀퉁이가 흙에서 삐죽 튀어나왔다. 하얀색 종이였다.     


“… 이건 뭐지?”     


유강인이 나지막하게 말하고 쪼그리고 앉았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종이를 유심히 살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탐정이 증거를 발견한 거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차수호 반장이 말했다.     


“유탐정, 왜 그래? 바닥에 뭐가 있는 거야?”     


유강인이 대답 대신 고개만 끄떡였다. 품에서 흰 장갑을 꺼냈다.      


흰 장갑을 끼더니 바닥에서 뭔가를 들어 올렸다. 그건 길쭉한 하얀 종이였다. 여러 번 접혀 있었다.      


“이, 이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종이를 살피던 유강인의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뭔가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접힌 종이를 조심스럽게 펼치기 시작했다.      


아주 기다란 종이였다.      


그건 다름 아닌 영수증이었다. 피가 묻은 듯 여기저기가 검붉었다.     


“저건 뭐지?”     


차수호 반장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유강인이 들고 있는 기다란 종이를 유심히 살폈다.     


유강인이 영수증 내용을 살폈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금손 분식에서 … 떡볶이, 순대, 튀김, 우유 빙수를 계산했군. 서울 강남구에 있는 분식집이야.”     


“뭐라고?”     


차반장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유강인에게 달려갔다. 그가 말했다.     


“손에 든 게 대체 뭐야? 지금 뭐라고 중얼거린 거야?”     


유강인이 잠시 뭔가를 생각했다. 그러다 이제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이고 입을 열었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아마도 피해자 옷에 있던 영수증 같습니다. 누군가가 피해자를 이곳에 가두고 모질게 구타한 거 같습니다. 

이후 현장을 정리하고 도망친 게 분명합니다.”     


“그런 거 같아?”     


“네, 정황상 그런 거 같습니다.”     


“자세히 설명해봐.”     


“이 일은 오태환 혼자 한 거 같지 않습니다. 뒤에 조직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조직에서 사람을 납치해서 이곳에 가두고 구타한 거 같습니다.

천일수씨 살인 사건도 조직에서 벌인 일입니다. 오태환의 단독 범행이 아닙니다.”     


“조, 조직이라고?”      


“네, 그렇게 봐야지 아귀가 딱딱 들어맞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계획이 뒤틀린 겁니다. 

천일수씨 죽음을 막내아들 짓이라고 뒤집어씌우려 했는데 그게 쉽지 않자, 서둘러 움직인 겁니다. 

서해안 경찰서에서 막내아들을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으로 조사하고, 제가 조사를 시작하자, 서둘러 움직인 겁니다. 천일수씨를 죽인 오태환이 소환 대상이 되자, 아차! 했겠죠. 

그래서 다급히 창고를 청소하고 피 묻은 옷과 걸레를 검은 봉지에 담아서 오태환에게 처리하라고 지시했는데 … 오태환이 미처 검은 봉지를 치우지 못한 겁니다.”     


“그 말은 여기에 폭력 조직이 있었다는 말이잖아? 오태환과 한 패거리인!”     


“제 추리상 그렇습니다.”     


“다른 놈들을 다 도망쳤는데 오태환은 왜 도망치지 않았을까요? 어젯밤에 도망칠 시간이 있었습니다.”     


백정현 형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강인에게 물었다.     


유강인이 씩 웃었다. 그가 말했다.     


“그건 오태환이 방심한 겁니다. 오늘 아침에 잡힐 줄을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단순한 참고인 조사였으니까요.

사실 그걸 노렸습니다. 적이 방심할 때 잡을 계획이었습니다”      


차수호 반장이 손뼉을 짝 쳤다. 그가 말했다.     


“그럼, 오늘 아침에 기습적으로 오태환을 체포한 게 신의 한 수였네. 안 그랬다면 집으로 돌아와 검은 봉지를 치우고 창고도 깨끗이 청소했을 거야.”      


“맞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늘이 도왔습니다. 오늘 비가 일찍 내렸다면 창문틀에 남았던 소금이 사라질 게 뻔했습니다. 

그러면 오태환을 범인으로 지목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집 수색도 창고 수색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 하늘이 도왔어. 천일수씨가 억울하게 죽고 그 죄를 아무런 잘못이 없는 막내아들이 뒤집어쓰게 됐는데 하늘이 도왔어. 참, 다행이야.”     


차수호 반장의 말에 유강인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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