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유강인이 씩 웃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사건 당일 부인이 밭일하러 나간다고 하자, 오태환씨는 부인과 함께 나가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저 창문을 몰래 열어놨습니다. 당시 집에 사람이 많아서 어수선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집에서 나간 다른 지인들은 다들 집으로 향했지만, 당신은 집에 가지 않고 밖에서 대기하며 기회를 노렸습니다.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처럼 은밀히 숨어있었습니다.
내 말이 틀렸나요? 오태환씨.”
“그, 그게 ….”
오태환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안절부절못했다. 눈동자가 9.0 지진이 난 듯 마구 흔들거렸다.
유강인이 태풍처럼 계속 몰아붙였다. 이제 시작인 거 같았다.
“때가 되자, 오태환 당신은 계획을 행동에 옮겼습니다. 미리 열어 놓은 작은 창문으로 향했습니다.
작은 창문은 CCTV 사각지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창문을 택한 겁니다.
당신은 지인과 함께 피해자 집을 자주 방문했기에 CCTV 사각 지역까지 훤히 꿰뚫고 있었던 겁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한 손으로 거실 구석을 가리켰다. 거실 구석에 CCTV 모니터가 있었다. 모니터를 잘 살피면 CCTV 사각 지역을 알 수 있었다.
오태환이 점점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유강인이 말했다.
“당신은 작은 체구에 날렵한 몸입니다. 그래서 작은 창문을 손쉽게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온 후 피해자를 찾았습니다. 당신은 피해자가 반신욕을 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욕실 문을 따고 욕조 안에서 졸고 있는 피해자를 확인한 후, 피해자 핸드폰으로 막내아들 천일수씨를 유인했습니다. 제 말이 틀렸나요?
피해자 핸드폰 잠금장치를 확인한 결과, 간단한 패턴이었습니다. 당신은 피해자와 아주 친한 사이였고 그 정도 패턴을 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태환이 핸드폰 잠금장치를 손쉽게 풀었다는 말에 피해자 가족과 지인들이 깜짝 놀랐다. 그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으으으!”
오태환이 오른손으로 가슴팍을 꽉 움켜쥐었다. 숨이 콱 막히는 모양이었다.
유강인이 다음 말을 하기 전 이를 악물었다. 무척 괘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막내아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범죄의 완성을 위해 막내아들이 꼭 필요했습니다. 아들이 모든 죄를 뒤집어써야 했기에 반드시 집에 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최대한 자극했습니다. 아들을 비하하고 욕하는 문자를 계속 보내고 거기다가 아버지 욕설까지 녹음해서 틀었던 겁니다.
아버지 욕설은 예전에 비밀리에 녹음했겠죠. 둘이 싸울 때 옆에서 녹음했을 겁니다. 거기에서 필요한 부분만 잘랐겠죠. 그렇죠? 오태환씨.”
그때 지인 중 최연장자가 아! 하며 탄성을 지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말했다.
“형님이 반신욕을 매일 한다고 했어요. 저녁 6시에 한다고 했어요. 형님이 반신욕 하는 걸 … 우리 모두 알고 있었어요.
반신욕 할 때 기면증 때문에 바로 잠이 든다고 했어요.”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실을 말해 준 노인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이제 천인공노할 죄상을 밝혀야 했다.
유강인이 죄악을 심판하는 염라대왕이 된 듯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오태환! 당신은 정말로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어!
아들이 욕실 밖에서 아버지에게 사정할 때 금수가 돼서 피해자를 죽였어. 아들이 밖에 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아버지를 죽였어!
아들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가 죽어가는데도 그걸 전혀 몰랐어. 오히려 자기 맘을 몰라주고 도와주지 않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어!
이는 피해자 사망시각과 사망 장소에 아들이 있었다는 누명을 씌우기 위해 저지른 일이야!
당신은 악마가 돼서 피해자를 죽여놓고 그 씻을 수 없는 죄를 아들에게 뒤집어씌웠어!
부자지간의 갈등을 이용해서 쏙 빠져나가려고 했어.
이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짓이야.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야!!
당신은 금수인가?”
“난, 난 아니야! 다른 사람이 한 거야. 형님이 6시에 반신욕하는 건 다 알고 있었어. 난 아니야! 결코!!”
오태환이 울부짖었다.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몸 곳곳에서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쏟아 나와 옷이 푹 젖었다.
유강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다시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창문은 작은 창문이야. 몸이 작은 사람만 통과할 수 있어. 밑은 2m 높이 바닥이야. 운동신경이 좋아야 다치지 않아.
당신은 탄탄한 몸에 머리가 작고 작은 키야. 충분히 저 창문을 통과할 수 있어. 다른 지인들은 몸집이 커서 저 작은 창문을 통과할 수 없어.
집에 들어온 막내아들은 6시 35분에 집에서 나갔어. 5분 뒤 6시 40분에 부인이 들어왔어. 도망칠 시간은 단 5분에 불과했어.
당신은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단 5분 만에 도망친 거야.”
“제, 젠장! … 아, 안돼! 안돼!!”
오태환이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앞에 형사가 지키고 있었지만, 밀치고 나가려 했다.
“어림도 없다!”
백정현 형사가 번개처럼 달려왔다. 오태환의 오른 손목을 인정사정없이 팍 꺾었다.
“아야!”
오태환이 비명을 질렀다.
“오태환씨, 서로 가셔야겠습니다. 협조해 주세요.”
백형사가 추상처럼 소리쳤다.
**
경찰차가 급하게 움직였다. 차 안에 백정현 형사가 타고 있었다. 오태환의 집으로 향했다.
오태환의 집에는 경찰들이 있었다. 형사 둘과 경찰 세 명이 집 안을 조심스럽게 뒤졌다.
어서 빨리 증거물을 확보해야 했다. 옷과 장갑, 모자, 핸드폰, 컴퓨터, 노트북, 녹음기 등을 조심스럽게 확보하라는 유강인의 지시가 떨어졌다.
집밖에는 경찰 셋이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혹 공범이 주변에 있을 수 있었다. 공범이 갑자기 나타나 증거물을 훼손할 염려가 있었다.
과학수사대는 20분 후 도착할 예정이었다. 최대한 빨리 오기로 했다.
집 안을 뒤지는 형사 둘은 백형사 후배인 박형사와 김형사였다.
오태환의 집은 작은 마당이 있는 1층 단독주택이었다. 벽돌집이었다. 시골에서 흔히 벌 수 있는 주택이었다.
집은 작은 언덕길 꼭대기에 있었다. 집 뒤는 평탄했다. 푸른색 지붕의 창고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다. 근처에 야트막한 산이 있어 바람이 찼다.
집 구조는 단순했다. 거실 겸 주방에 화장실 하나, 방 두 개가 있었다. 10평 공간이었다. 둘이 살기에는 좁았지만, 혼자 살기에는 넉넉했다.
“다행이다.”
“그러게 말이야.”
김형사와 박형사가 옷가지를 확보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오태환이 집을 청소하거나 빨래를 하지 않았다. 빨래통에 빨래가 수북했다.
집 바닥도 마찬가지였다. 머리카락이 먼지와 뒤엉켜서 여기저기서 굴러다녔다.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과학수사대가 옷과 바닥을 정밀 검사하면 문제의 소금을 찾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다 됐나?”
김형사가 몸을 일으키며 몸을 풀었다. 오랫동안 허리를 구부려서 그런지 허리가 아픈 모양이었다.
박형사도 마찬가지였다. 몸을 일으키고 기지개를 켰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가 생각이 난 듯 입을 열었다.
“김형사, 집 근처에 작은 창고가 있었어. 창고도 확인해야 할 거 같은데.”
“집에서 좀 떨어진 푸른색 지붕 창고를 말하는 거지?”
“응.”
“창고 주인이 오태환이 맞나?”
“맞겠지. 이 근처에 다른 집은 없어.”
“창고 주인이 다른 사람이면 무단 침입이야. 조심해야 해.”
“알았어. 일단 쓱 보고 올게. 닫혀 있으면 어쩔 수 없고.”
“그래, 그래. 난 백형사님께 보고할게.”
김형사가 말을 마치고 핸드폰을 들었다. 박형사는 집 밖으로 나갔다.
삐리릭!
차 안에서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백정현 형사가 핸드폰을 들었다. 김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밝은 목소리였다.
“선배님,”
“김형사, 어서 말해.”
“빨래통에서 옷가지를 확보했습니다. 다른 옷도 다 확보했습니다. 다행히 용의자가 세탁기를 돌리지 않았습니다.
방에 머리카락이 굴러다니는 걸 보니 바닥도 한동안 치우지 않은 거 같습니다.”
“아주 좋았어. 옷가지를 아주 조심스럽게 확보해야 해. 과학수사대가 올 때까지 집을 잘 지키고 있어. 집에 들어갈 때 … 비닐을 신발에 끼고 들어갔지?”
“당연하죠. 그건 기본입니다. 그 비닐도 과학수사대에 제출하겠습니다.”
“좋았어. 유탐정님이 반드시 물증을 확보해야 한다고 하셨어. 자네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노트북 한 대와 스마트폰도 확보했습니다.”
“박형사는 옆에 있어?”
“박형사는 집 근처에 있는 창고로 갔습니다.”
“창고라고?”
“네, 집 근처에 창고 하나가 있습니다. 집 수색이 끝난 후 창고에 뭐가 있나 확인하는 중입니다.”
“알았어, 수고해. 난 곧 도착할 거야.”
“네, 충성!”
김형사가 전화를 끊었을 때
밖으로 나간 박형사가 걸음을 재촉했다. 오태환의 집에서 30m 정도를 걸어가자, 푸른색 지붕의 창고가 보였다. 회색 시멘트 벽돌로 만든 평범한 창고였다.
창고는 작지 않았다. 20평 정도 크기였다.
박형사가 창고 철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한번 헛기침했다. 안에서 인기척이 없었다. 이에 문손잡이를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끼익! 소리가 크게 들렸다. 문이 서서히 열렸다. 마치 오랫동안 숨겨왔던 비밀의 문이 열리는 듯했다.
안에서 음산하고 차가운 공기가 쏟아져 나왔다.
박형사가 움찔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듯했다. 형사의 예리한 촉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문이 활짝 열리자, 어두컴컴했던 창고가 밝아졌다. 심상치 않았던 공기와 달리 안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농기구 몇 개가 보일 뿐이었다.
“아, 먼지!”
박형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강한 햇빛에 허연 먼지가 보였다. 흙바닥이라 그런지 문을 활짝 열자, 먼지가 많이 피어올랐다.
“안에 뭐가 있나?”
박형사가 무척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활짝 열린 문을 통해 햇볕이 들어왔지만, 창고가 넓어서 환하지 않았다.
잠시 문 앞에서 서성이던 박형사가 고개를 위로 들었다.
천장에 전등이 있었다.
박형사가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문 근처 벽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때 뭔가가 왼쪽 다리에 딱 걸렸다.
“응?”
박형사가 이게 뭐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렸다. 왼쪽 발 앞에 커다란 검은 봉지가 바닥에 놓여있었다.
“이건 또 뭐야? … 검은 봉지네.”
박형사가 말을 마치고 허리를 굽혔다. 검은 봉지를 자세히 살폈다. 그러다 궁금함을 참을 수 없는지 쪼그리고 앉아서 봉지 안을 자세히 살폈다.
마치 뭔가를 감춰야 하는 듯 봉지 손잡이가 꼭 묶여 있었다. 그래서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박형사가 검은 봉지를 코로 갖다 댔을 때, 바로 그때! 두 눈이 커다란 풍선처럼 확 부풀어 올랐다.
봉지 안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헉! 이, 이 냄새는 … 피 냄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