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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olee Oct 11. 2024

09_현장 검증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범인이 아들을 유인했다고요?”     


백정현 형사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유강인이 답했다.     


“네, 아들을 유인한 게 분명합니다. 아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면, 집에 아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범행 시각에 딱 맞춰서 ….”     


백형사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정말 무서운 음모네요. 아버지를 죽였다는 누명을 아들에게 뒤집어씌우다니 … 이건 정말 해서는 안 될 입니다. 그것도 치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천인공노할 짓입니다.”     


“맞습니다.”     


“유탐정님, 범인의 마음은 사람의 마음이 아닙니다.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말 그대로 인면수심입니다. 이익 혹은 원한 때문에 다른 사람을 벌레 취급했습니다.”     


유강인의 말에 황수지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더 쳐지는 거 같았다.     


그녀가 말했다.     


“탐정님, 집을 방문한 손님 중에 범인이 있다는 말이죠?”     


“그렇지.”      


“그자가 대체 누굴까요?”     


유강인이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자는 … 지금 집 안에 있어. 사건 당일, 피해자를 만난 지인들은 모두 소집했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참석했어.”     


“네에?”     


백정현 형사와 황수지, 황정수가 깜짝 놀랐다. 셋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집 안에는 피해자 가족과 지인들이 있었다. 지인 중에 범인이 있다는 말이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고. 그만 비 맞고.”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걸음을 서둘렀다.      


비가 더욱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우르르 쾅! 하며 천둥이 울렸다. 번쩍하며 번개가 내리쳤다.          



*          



유강인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1층 거실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형사 셋이 그들을 말없이 지켜봤다.     


“여섯 명이 맞는군.”     


피해자 지인들을 다 확인한 유강인이 백정현 형사를 불렀다. 그에게 귓속말했다.     


백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지인들 집 근처에 경찰을 대기하라고요. 잘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피해자 핸드폰에 비밀번호가 설정되어 있었나요?”     


“비밀번호가 아니라 패턴이었습니다.”     


“패턴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ㄱ자 모양이었습니다.”     


“알겠습니다.”     


백정현 형사가 자리를 뜨자, 유강인이 걸음을 옮겼다. 회전 계단으로 향했다.      


지인들을 조사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계단을 천천히 밟으며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서 현장 검증을 해야 했다. 차수호 반장과 형사 둘이 유강인을 기다렸다.     


2층에 올라간 유강인이 곧바로 욕실로 향했다.     


욕실 문 앞에 형사 하나가 서 있었다. 욕실 문은 열려 있었다. 욕실 불도 환하게 켜져 있었다.     


형사가 유강인을 보고 절도있게 거수경례했다. 유강인이 경례를 받고 말했다.     


“차반장님은 안에 계시죠?”     


“지금 욕조 안에 계십니다. 어서 들어가시죠, 유탐정님.”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답을 하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욕실 안에 차수호 반장과 형사 한 명이 있었다.      


목욕 가운을 입은 차반장이 욕조 안에 몸을 담갔다.      


욕조 안에는 물이 가득했다. 범행 현장과 같았다. 3/5정도 차 있었다. 거품 입욕제를 넣었는지 거품도 가득했다.     


차반장 옆에 젊은 형사가 서 있었다. 20대 후반 이형사였다.     


현장 검증이었다. 범인의 범행을 되풀이하는 과정이었다. 범행 동기나 증거, 정황 증거를 잡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유강인이 고개를 돌려 2층 욕실을 살폈다. 1층 욕실과 흡사했다. 면적이 같았고 구조도 같았다.     


“1층과 거의 똑같군.”     


그가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욕조 안에 있는 차수호 반장에게 말했다.     


“반장님, 물이 차나요?”     


차반장이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아니, 뜨거운 물이야. 오랫동안 몸을 담갔더니 몸이 노곤해졌어. 한숨 푹 잘 것만 같아.”     


유강인이 말했다.     


“마치 즐기시는 거 같네요.”     


차반장이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유탐정, 오늘 난생처음 거품 목욕을 해보는 거야. 아주 고가의 거품 입욕제라고 들었어. 형사 생활하면서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 형사도 할만한데.”     


“간혹가다 이런 일도 있어야죠. 항상 길거리에서 밤을 새우고 편의점 빵이나 삼각김밥을 먹으며 끼니를 때울 수는 없죠.”     


차수호 반장이 고개를 격하게 끄떡이며 답했다.     


“흐흐흐, 맞는 말이야.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어. 내가 이런 목욕도 다 하고 말이야. …… 아, 피해자가 나보다 10kg 더 무겁다고 해서, 배에 모래주머니를 달아서 무게를 딱 맞췄어.”     


“잘하셨습니다. 실험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맞는 말이야. 이 실험에서 무게가 중요하잖아.”     


“좋습니다. 그럼, 이제 실험을 시작합시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욕조 앞에 서 있는 이형사에게 말했다.     


“반장님 머리를 물속으로 푹 집어넣으세요. 반장님은 격렬하게 저항하시고요.”     


“OK!”     


차반장이 쾌활한 목소리로 답했다.     


반면 이형사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정색하고 머리를 흔들며 답했다.     


“유탐정님, 그건 무리입니다. 제가 어떻게 … 하늘 같은 반장님 머리채를 잡고 물속에 집어넣습니까?”     


차수호 반장이 괜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이. 이형사! 괜찮다니까. 이번 기회에 스트레스를 확 풀어. 그동안 나한테 서운하게 있을 거 아니야. 지금이 좋은 기회야.

절대 뭐라고 하지 않을 테니 … 어서 머리를 물속으로 푹 집어넣어. 감정을 제대로 실어서 푹 담가야 해.

그게 자네 임무야.”     


“그래도 …. 이건 할 수 없습니다. 반장님께서 항상 잘 해주시는데, 어떻게 감정을 싣습니까?”     


이형사가 머뭇거리자, 유강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형사님, 이 일은 반장님이 자청하신 일입니다. 최고급 거품 입욕제로 목욕하고 싶다고 자청하신 일입니다. 개의치 말고 제 지시를 따르세요. 어서요!”     


이형사가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차마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유강인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형사님, 아버지를 죽였다고 체포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천지호씨입니다. 그 사람이 누명을 쓴 거라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아주 간악한 자가 피해자를 무자비하게 죽인 다음,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그 아들마저 죽이려는 겁니다. 이는 아주 파렴치한 중대 범죄입니다.

형사라면 진상을 밝히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어서 제 지시를 따르세요. 이건 불법적이거나 불의한 일이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네요.”     


결국, 이형사가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하늘 같은 상관의 머리를 물속에 푹 담가야 했다. 평상시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휴우~!”     


이형사가 크게 숨을 내쉬고 침을 꿀컥 삼켰다. 차수호 반장의 정수리에 오른손바닥을 올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반장님. 죄송합니다.”     


“알았어. 어서 시작해. 감정을 팍 실어. 쌍욕을 막 해도 좋아. 못 들은 거로 할 테니.”     


“알겠습니다. 그럼!”     


이형사가 이를 악물었다. 이윽고 행동을 개시했다. 우악스러운 손길로 차반장의 머리를 물속에 푹 집어넣었다. 평상시에 감정 상한 일이 많았던 거 같았다.     


그러자 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물속에 푹 잠긴 차수호 반장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욕조에서 넘친 물이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바닥을 따라서 흐르더니 문 앞까지 흘러내렸다. 같이 흘러내린 거품도 문 앞에서 멈췄다.     


물과 거품의 흐름을 유심히 살피던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말했다.     


“이제 됐습니다.”     


이형사가 급히 손을 위로 들어 들었다. 그러자 물속에 푹 잠겼던 차반장이 물 위로 올라왔다.     


“아이고! 숨차.”     


차수호 반장이 급하게 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물속에서 숨을 참느라 혼났던 거 같았다.      


유강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넘친 만큼 물을 다시 채우세요. 물을 다 채우면 다시 실험하겠습니다. 이형사님은 반장님 머리를 물속에 다시 푹 집어넣으세요. 아까 참 잘하셨습니다.

반장님은 잠시 물속에 잠겨 있다가 약하게 저항하세요. 몸부림을 세게 치지 말고 움찔하는 정도입니다.”     


“OK!”     


“알겠습니다.”     


1차 실험이 끝나고 물이 다시 채워졌다. 2차 실험이 시작됐다.     


이형사가 다시 힘을 썼다. 차수호 반장의 정수리를 오른손으로 푹 밀어 넣었다. 차반장의 머리가 다시 물속에 푹 잠겼다.     


1차 실험은 피해자가 저항했다고 가정한 실험이었다. 2차 실험은 그렇지 않았다.     


물속에 잠긴 차수호 반장이 몸부림치지 않았다. 그러다 약하게 움찔했다.     


“음!”     


유강인이 다시 물과 거품의 흐름을 살폈다.     


차반장이 물속에 들어가자, 물이 다시 넘쳤다. 하지만 1차 때와 양상이 확연히 달랐다.      


물이 거의 넘치지 않았다. 물속에서 몸부림을 치지 않아서 물이 잔잔했다.     


욕조에서 넘친 물과 거품은 욕조 주변에만 머물렀다. 문까지 흘러가지 않았다.     


실험이 끝났다. 차수호 반장이 욕조에서 나왔다. 그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끝났다. 아주 개운한데. 당분간 목욕탕을 안 가도 되겠어.”     


유강인과 이형사가 욕실에서 나왔다. 거실에 서서 서로 말을 나눴다.     


“잘하셨습니다, 이형사님.”     


“감사합니다, 유탐정님.”     


“반장님한테 … 감정이 상했던 모양이네요.”     


“아, 아닙니다. 절대로! 저는 제대로 안 하면 혼날 거 같아서 열심히 한 거뿐입니다. 두 번에 끝날 걸 세 번 네 번 할 수 없었습니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차반장이 샤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5분 후     


차수호 반장이 옷을 갈아입고 욕실에서 나왔다.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범행 당시 욕조에서 흘러내린 물은 많지 않습니다. 이는 피해자가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최고급 제품으로 거품 목욕해서 그런지, 피부가 어느 때보다 뽀송뽀송해진 차반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무척 궁금한 표정이었다.     


“왜 저항을 하지 않았을까?”     


유강인이 답했다.     


“그건 … 의식이 없어서 그런 거겠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거 같습니다.”     


“잠이라고?”     


“네, 그렇습니다. 그걸 이용해서 피해자를 아주 손쉽게 죽였습니다.”     


“아! 그런 거구나. 그러면 범인은 … 피해자를 잘 아는 사람이야. 반신욕 할 때 잠든다는 걸 아는 사람이야!”     

“맞습니다. 범인은 피해자와 아주 가까운 사이입니다. 피해자와 정서상 가까운 자입니다.

막내아들 천지호는 혈연관계 가족일 뿐, 피해자와 심리적으로 아주 멀었습니다. 근처에 살지도 않았습니다. 둘은 서로를 미워했습니다.”     


“그렇네. 그럼, 막내아들은 범인이 아니군.”     


“맞습니다. 범인은 1층에 있습니다. 지금 내려가서 범인을 밝히겠습니다.”     


“뭐라고? 범인이 1층에 있다고? 가족과 지인 중에 범인이 있다는 말이야?”     


차수호 반장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가족은 아니고 피해자의 지인입니다. 친구죠. 친구가 피해자를 철저히 배신했습니다.”      


“아이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 그대로네.”     


“맞습니다.”     


유강인이 걸음을 옮겼다. 모든 진실을 명백히 밝히기 위해 회전 계단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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