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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olee Oct 09. 2024

07_자서전의 파장과 사건의 단서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유강인이 고개를 돌려 딸 천은실을 바라봤다. 40대 초반 여성이었다. 웨이브를 준 머리카락이 부드러웠고 아름다운 외모였다.     


어머니와 오빠는 평범한 인상이었지만, 딸은 그렇지 않았다. 뚜렷한 이목구비가 돋보였다.     


사슴처럼 큰 눈, 우뚝한 콧날, 도톰한 입술이 매력적이었다. 중간 키에 몸매도 날씬했다. 아버지 천일수와 인상이 비슷했다.     


그동안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천은실이 입을 열었다.     


“… 탐정님, 사실 막내는 대단한 화가예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서 사람들이 모를 뿐이에요.

그동안 부단한 노력을 해서 자기만의 화풍을 만들었어요. 기술도 일취월장했고요.

이제 세상에 나설 때가 됐다고 설득했어요. 막내가 제 말을 듣고 알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서울에서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터져서 깜짝 놀랐어요. 막내는 아버지를 죽일 사람이 아니에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해요.

유강인 탐정님! 막내는 범인이 아니에요. 진짜 범인은 따로 있어요. 그자를 잡아주세요. 제발!”     


천은실이 간곡한 목소리로 유강인에게 사정했다. 딱 들어도 그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달리 딸은 막내 천지호에게 강한 애정이 있었다. 그를 진정으로 이해했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다른 참고인들에게 말했다.     


“다른 분들도 따님과 생각이 같나요? 천지호씨가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나요?”     


“…….”     


부인 우미희, 첫째 아들 천동식, 이웃 주민 이동진이 입을 열지 못했다. 그들은 막내아들이 아버지를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정황상 그렇게 의심할 만했다.     


막내아들 천지호는 오랜 기간 아버지 천일수와 으르렁거렸다. 쌓인 화를 참지 못하면 일을 저지를 수도 있었다.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다.     


유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참고인들에게 말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실을 밝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탐정단과 수사팀이 천일수 집에서 나왔다. 이제 깜깜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바닷가였다. 저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차수호 반장이 유강인에게 말했다.     


“유탐정, 백마 호텔에 예약해 놨으니 어서 가. 가서 푹 자고 내일 보자고.”     


“감사합니다. 반장님.”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잠시 하늘을 보다가 고개를 내리고 백정현 형사에게 말했다.     


“내일 비 예보가 있나요?”     


“비요?”     


백형사가 서둘러 스마트폰으로 내일 날씨를 살폈다. 그가 말했다.     


“오후에 비 예보가 있습니다. 소나기가 올 거랍니다.”     


“소나기!”     


소나기라는 말에 유강인이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천일수의 저택을 살폈다. 칠흑처럼 어두컴컴해서 불 켜진 1층만 보일 뿐이었다. 바닷가의 어둠은 어느 곳보다 진했다. 마치 먹물같았다.     


“음!”     


유강인이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     


“지금은 너무 늦어서 … 수색을 할 수 없을 거 같군요.”     


“수색이요?”     


백정현 형사가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집 수색은 언제라도 할 수 있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가로젓고 답했다.     


“집 안이 아니라 집 바깥 수색을 말하는 겁니다.”     


“아! 집 밖이요. 그렇죠. 지금은 너무 어둡죠.”     


“맞습니다. 지금은 너무 어두워서 수색이 불가합니다. 증거를 찾는 게 아니라 증거를 훼손하기 쉽습니다. 밤새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라야겠네요.”     


“일기 예보상 오늘 밤과 내일 아침에는 비 예보가 없습니다.”     


“그러면 다행이죠.”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차를 향해 걸어갔다.     


목적지는 백마 관광호텔이었다. 예전에 묵었던 곳이었다. 그때 별점 만점을 줄 정도로 만족했었다. 특히 호텔 식당 식사가 좋았다. 서해안의 신선한 해산물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유강인이 생각했다.     


‘그래, 내일 날이 밝으면 어둠에 가렸던 진상이 드러날 거야. 집 밖 수색과 범죄 재현이 중요해! 거기에서 반드시 단서를 잡아야 해, 기필코!’     


차 문이 덜컹하며 열렸다. 탐정단이 하나둘씩 차에 올라탔다.      


부르릉! 소리가 들렸다. 탐정단 밴이 서산시 백마 호텔을 향해 내달렸다.     


한편 그 시각 서울 종로구 미라클 북스 사옥에서는 세 명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백두성 자서전 대필 작가들이었다.     


백두성의 자서전 ‘찬란한 빛과 수렁 같은 어둠, 진실의 기록’은 총 세 권이었다.     


대필 작가가 한 권씩 맡아서 집필 중이었다.     


1권을 맡은 작가는 남태호였다. 2권을 맡은 작가는 최윤희였다. 마지막 3권을 맡은 작가는 지인태였다. 최윤희는 새로 투입된 여성 작가였다.     


남태호는 165cm 키에 살찐 체형이었다.      


최윤희는 160cm 키에 마른 몸매였다. 얼굴에 살이 하나도 없었다. 머리는 단발이었다. 가느스름한 얼굴형에 진하게 화장을 해서 이목구비가 선명했다.     


지인태는 175cm키에 건장한 체격이었다. 운동을 많이 했는지 근육질이었다. 얼굴은 각이 져서 네모났다.     


1권은 백두성의 출생부터 시작해 청년기까지 이야기였다. 영화배우로 이름을 날리며 끝났다.     


2권은 백두성이 본격적인 영화배우 커리어를 쌓는 시기였다. 많은 작품을 찍고 여러 여배우와 염문설을 뿌렸다.     


3권은 백두성이 영화배우를 은퇴하고 사업가로 성공하는 이야기였다. 처음 시작하는 사업이라 서툰 점이 많아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일어서는 이야기였다. 4전 5기 역전 드라마였다.     

그들은 각자 심층 인터뷰를 끝냈다. 용산구 백두성의 방에 들어가 녹음기를 틀고 90살 노인의 인생 이야기를 경청했다.     


한마디로 파란만장한 인생이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다!’ 라는 다큐멘터리 제목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1권 작가 남태호는 다른 작가보다 여유로웠다. 벌써 집필이 다 끝나가는 듯했다.     


1권은 백두성이 20년 전에 발간했던 자서전과 대동소이였다. 그래서 새로운 내용만 추가하는 선에서 그쳤다.     

반면 2권과 3권은 많은 내용이 추가되었다. 그래서 작업량이 1권보다 훨씬 많았다.     


2권 작가 최윤희와 3권 작가 지인태가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2층 테라스로 향했다.     


미라클 북스 사옥은 4층 건물이었다. 2층부터 4층까지 테라스가 있었다. 테라스는 직원들이 음료를 마시며 쉬는 공간이었다.     


최윤희가 차가운 밤공기를 맞으며 지인태에게 말했다.     


“너무나도 놀라운 내용이 추가됐네요. 지작가님도 마찬가진가요?”     


지인태 작가가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아주 시끄러울 거 같네요.”     


“남작가님은 예전 자서전과 별 차이가 없죠?”     


“맞습니다. 1권은 어린 시절 에피소드와 첫사랑 에피소드가 추가된 정도입니다. 남작가님이 싱글벙글하셨습니다. 작업할 게 많지 않다고 수고비를 거저 먹는 거 같다고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제가 맡은 2권에는 놀라운 얘기가 있어요. 이 사실을 대중이 알면 …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거 같지 않아요.”     


“최작가님, 그 일들은 모두 공소시효가 지난 일이죠?”     


“그렇죠. 워낙 옛날 일이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모두 공소시효가 지난 일이라 … 우리는 … 별 탈이 없겠죠?”     


“우리는 백선생님 말씀에 살을 보태서 글을 쓸 뿐입니다. 우리한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걸리는 게 하나 있습니다. 이번 자서전에 우리 이름이 공개됩니다.”     


“돈을 많이 벌려면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백두성 선생님의 뜻입니다. 

백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대필 작가도 이름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 작품의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하셨습니다.”     


“돈이라! 역시 돈이 좋군요. 이번 일만 끝나면 대필 작가를 그만둘 생각입니다. 이 일로 거액을 벌 수 있어요. 벌써 수고비로 그동안 상상도 할 수 없는 돈을 받았습니다. 차후에 받을 인세도 대단하고요.

책 세 권이 모두 출간되면 한국을 떠나 오랫동안 세계 여행을 할 생각입니다.

세상이 시끄러울 때는 피하는 게 상책이죠.”     


“아, 그러시군요. 저는 아이들이 유학을 가서 학비를 대야 합니다. 그래서 대필 작가를 계속하려고요.”     


“유학 자금이 그렇게 많이 드나요?”     


“그렇지는 않지만, 저는 글을 쓰면서 돈 버는 게 좋습니다. 천직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윤희가 말을 마치고 미소를 지었다.     


지인태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지만. 이번 작업만 끝나면 쉬고 싶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했다.          



다음날

2025년 11월 14일 오전 8시 20분     


구름이 낀 우중충한 날이었다. 언제라도 비가 올 거 같은 흐린 날이었다.     


백마 궁전 호텔 주차장에서 탐정단 밴이 나왔다. 천일수 집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침이라 도로가 막히지 않았다. 30분 만에 천일수 집에 도착했다.     


다시 도착한 사건 현장이었다. 탐정단이 차에서 내려서 저택 정문으로 향했다.     


먹구름이 점점 모이기 시작했다. 구름이 낮았다. 잔뜩 모인 먹구름이 뱀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일기 예보 상 비는 오후에 내릴 예정이지만, 지금 보이는 하늘은 그렇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많은 양의 비가 내릴 거 같았다.     


정문 앞에 백정현 형사와 김민선 팀장이 서 있었다.     


유강인이 큰 걸음으로 김팀장을 향해 걸어갔다.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가 말했다.     


“집 안 조사는 다 끝났나요?”     


“네, 이제 다 끝났습니다. 집이 워낙 커서 조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집 안으로 침입한 흔적은 여전히 없나요?”     


“네, 전혀 없었습니다. 모든 문과 창문의 잠금장치를 일일이 확인했습니다. 다 멀쩡했습니다. 욕실 잠금장치만 훼손된 상태입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돌려 백정현 형사에게 말했다.     


“가족 말고 현관문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이 있나요?”     


백형사가 고개를 흔들고 답했다.     


“가족 모두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비밀번호를 알려 준 적이 없답니다.”     


“천지호는 뭐라고 합니까?”     


“천지호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한테 비밀번호를 알려준 적이 없답니다.”     


“혹 비밀번호가 0000처럼 쉬웠나요?”     


“아닙니다. 비밀번호는 4872였습니다. 0000처럼 쉬운 번호가 아니었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집 CCTV를 다 살펴봤나요?”     


“네, CCTV를 여러 번 살폈습니다. CCTV는 정문과 뒷문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CCTV에 따르면 사건 당시 집에 들어온 사람은 천지호와 어머니 우미희 둘뿐입니다.”     


“CCTV를 조작한 흔적이 있나요?”     


“그런 건 없었습니다.”     


“CCTV 사각지대가 있나요?”     


“사각지대는 집 옆입니다. 집 옆에는 작은 창문만 있었습니다. 창문은 잘 잠겨있었습니다.”     


“사건 당일 집을 방문했던 피해자 친구들은 다 소집했나요?”     


“네, 모두 모여있습니다. 1층 거실에 있습니다.”     


“혹 빠진 사람이 있나요?”     


“CCTV 영상과 부인한테 확인한 결과, 빠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좋습니다.”     


유강인이 잘 됐다는 표정을 짓고 손뼉을 짝 쳤다.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정문 안으로 들어갔다.      


비구름이 몰려오자, 습도가 점점 높아졌다.     


탐정단과 수사팀이 넓은 정원을 빠른 걸음으로 가로질렀다. 앞에 계단과 현관문이 보였다.      


유강인이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가 중얼거렸다.     


“좋다, 오늘 단서를 꼭 잡는다. 그래서 범인을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 모든 준비는 끝났어. 이제 쇼 타임이야. 바로 내 시간이지.”     


황수지가 유강인의 말을 듣고 환하게 웃었다. 유강인이 전광석화같은 속도로 사건을 풀기 시작했다. 그녀가 역시 그러면 그렇지 하면 고개를 끄떡였다.     


유강인의 눈빛이 번쩍였다. 한밤중 사냥의 명수인 부엉이의 눈처럼 진실을 꿰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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