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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olee Oct 08. 2024

06_출생의 비밀과 가족간 불화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분명 뭔가가 있었다. 우발적인 살인 사건이 아니었다.      


우발적인 살인 사건이라면 상황이 자연스러워야 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피해자는 함정에 빠진 거 같았다.     


교활한 범인이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피해자를 죽인 게 분명해 보였다. 그가 말했다.     


“다음으로 피해자 가족을 조사하겠습니다.”     


“네, 2층에 피해자 가족이 있습니다. 지금 부르겠습니다.”     


“그들은 누구죠?”     


“피해자 부인과 아들과 딸, 옆집 사람입니다.”     


“부를 필요 없습니다. 제가 2층으로 올라가겠습니다. 1층은 살해 현장입니다. 1층에서 조사하면 참고인들이 긴장할 거 같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서 조사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          



탐정단과 수사팀이 2층으로 올라갔다. 빙빙 돌아가는 회전 계단을 따라서 위로 올라가자, 2층이 보였다. 2층도 1층처럼 아주 넓은 곳이었다.      


2층은 영화관과 같았다.      


1층이 고급스럽고 차분한 분위기였다면 2층은 가슴이 설레는 곳이었다.     


각종 영화 포스터가 벽에 걸려 있었고 영화 상영을 위한 초대형 TV가 시선을 압도했다.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하는 음향 시설은 곳곳에 있었다. 특히 대형 스피커 두 대가 웅장한 자태를 뽐냈다. 벽 곳곳에는 작은 스피커가 있었다. 서라운드 효과를 위한 스피커였다.     


한마디로 집에 콕 박혀서 영화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피해자는 영화감독이었다. 그한테 걸맞은 장소였다.      


초대형 TV 앞에 아주 편한 소파가 있었다. 두 다리를 쭉 펴고 잘 수 있는 소파였다.      


그 소파에 피해자 가족과 옆집 주민이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유강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앞에 보이는 참고인들을 자세히 살폈다. 모두 넷이었다.      


70대 여성과 40대 남녀, 60대 남성이었다. 소파에 차례대로 앉았다.     


먼저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피해자의 부인 같았다. 그 옆에 앉은 40대 남녀는 피해자의 자식 같았다.      

마지막 60대 남성은 옆집 주민 같았다.     


유강인이 등장하자, 참고인들이 침을 꿀컥 삼켰다. 사건의 진상을 밝힐 탐정이 등장하자, 긴장한 거 같았다. 그들 모두 유강인의 얼굴을 아는 듯했다.     


백정현 형사가 참고인들에게 말했다.     


“이분은 서해안 경찰서 자문 위원인 유강인 탐정님입니다. 사건 조사를 위해 서울에서 이곳까지 오셨습니다. 조사에 잘 협조해주세요.”     


참고인들이 고개를 끄떡였다. 유강인이 자리에 앉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탐정 유강인입니다. 먼저 유가족분께 유감을 표합니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백형사님, 참고인들을 소개해주세요.”     


백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참고인들을 소개했다. 먼저 70대 여성을 가리키고 말했다.     


“이분은 피해자 부인인 우미희씨입니다. 옆에 계신 둘은 피해자의 자녀입니다. 천동식씨와 천은실씨입니다. 

마지막 분은 이웃 주민인 이동진씨입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우미희에게 말했다.     


“사건 당시 피해자는 집에 혼자 있었습니다. … 부인은 어디에 계셨죠?”     


우미희가 서둘러 답했다.     


“인근 밭에서 농사짓고 있었어요. 오후 4시에 밭일하러 나갔어요.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가꾸는 밭이에요. 그 사람들이 증인입니다.

밭일이 끝난 후에는 지인과 같이 커피를 마셨어요.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좀 하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남편이 보이지 않았어요. 

욕실 불이 켜져 있고 문이 열려 있어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 남편이 욕조 물속에 잠겨 있었어요. 

물속에서 남편을 급히 꺼냈는데 숨을 쉬지 않았어요. 그래서 급히 경찰과 119에 신고했어요.”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증언에 막힘이 없었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부인께서는 한동안 집을 비우셨는데 혹 그사이에 집을 방문한 사람이 있나요? 아는 게 있으면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사건 당일 오후 1시쯤에 남편 친구들이 찾아왔어요.”     


“피해자 친구분들이 찾아왔다고요?”     


“네, 그 사람들이 남편하고 얘기를 나눴어요. 저는 과일을 대접했고요. 

밭일하러 나갈 시간이 돼서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갔는데 남편 친구들도 같이 나가겠다고 했어요. 오랫동안 집에 있어서 죄송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들과 같이 집에서 나갔어요. 남편이 잘 다녀오라고 배웅했어요.”     


“집에는 피해자분만 있었다는 말이군요.”     


“네, 맞아요.”     


“남편이 죽은 후 경찰한테 들었어요. 막내아들이 집에 찾아왔다고 … 깜짝 놀라서 CCTV 확인했는데 지호가 맞았습니다.”     


우미희가 용의자인 막내아들을 말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 옆에 앉은 남매를 살폈다. 그들도 어머니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용의자인 천지호는 동생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막내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자, 유가족이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유강인이 이웃 주민인 이동진을 쳐다봤다.      


이동진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뭔가를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그는 옆집 주민이었다. 두 집 사이는 거리는 10m에 불과했다.      


유강인이 이동진에게 말했다.     


“이동진씨는 사건 당시 어디에 계셨죠? 집 안에 있었나요?”     


“아니요. 저는 시내에 있었습니다. 시내 철물점에 가서 락카를 사고 대형마트에도 갔습니다.”     


이동진의 답에 유강인이 백정현 형사를 쳐다봤다. 백형사가 답했다.     


“CCTV 확인 결과, 이동진씨는 사건 당시 시내에 있었습니다. 밤 9시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알리바이가 확실합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두 자녀에게 물었다.     


“두 분은 사건 당시 어디에 계셨죠?”     


큰아들 천동식이 급히 답했다.     


“저는 당구장에 있었습니다. 시내 당구장입니다. 당구장 주인과 친구들이 증인입니다. 어제 쉬는 날이라 오후 2시부터 밤 11시까지 당구를 치며 놀았습니다.”     


막내딸 천은실이 뒤이어 답했다.     


“저는 서울집에 있었습니다. 저녁 6시에 대형마트에 갔다가 1시간 반 뒤에 귀가했습니다. 마트 CCTV에 제 모습이 찍혔을 겁니다.”     


“그렇군요.”     


참고인들은 모두 알리바이가 확실해 보였다.      


유강인이 다음 질문하려는 듯 한 번 헛기침했다. 그러다 차마 말하기가 힘든 듯 잠시 뜸을 들였다.     


입에 담기 힘든 말이었지만, 진실을 밝히려면 머뭇거릴 수 없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막내아들인 천지호씨가 아버지인 피해자 천일수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데 … 그게 사실입니까?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무척 민감한 질문이었다. 참고인들이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말하기 힘든 게 역력했다.     


“휴우~!”     


참고인 모두 크게 숨을 쉬었다. 마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듯 ….     


가족들이 주저하자, 그들의 눈치를 보던 이웃 주민 이동진이 먼저 움직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유탐정님, 제가 본의 아니게 둘이 싸우는 걸 자주 엿들었습니다. 옆집에 사는 바람에 그렇게 됐습니다.”     


“그렇군요. 계속 말씀하세요.”     


이동진이 미안한 표정으로 가족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유탐정님, 둘 사이가 …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오랜 원수 같았습니다. 

둘이 대화를 하면 형님께서 몹시 화를 내면서 막내아들을 질책했습니다. 쓸모없는 놈이라고 한심해하며 혀를 찼습니다. 막내아들은 억울하다며 항변했고요. 

그런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다른 사람이 있을 때보다 집 안에 단둘이 있을 때 아주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마당에서 잔디 깎다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뭔가를 때려 부수는 거 같았습니다. 쾅쾅 소리도 들렸습니다.”     


유강인이 어머니인 우미희를 쳐다봤다. 우미희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남편하고 지호 사이는 물과 기름과 같았습니다. 지호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오랫동안 백수로 지내자, 갈등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남편은 지호를 쓸모없는 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지호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래서 대판 싸우고 서로 미워했습니다.”     


가족 간의 불화였다. 가슴 아픈 일이었다.     


유강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부자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그가 잠시 2층 거실을 살폈다. 모든 게 고급 제품이었다, 한마디로 명품이었다.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반면 부자 사이는 어려움의 극치였다.      


피해자 천일수는 무척 부유했지만, 아들이 놀기 시작하자,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 같았다.      


유강인이 착잡한 심정으로 질문을 이었다.     


“부인께서 둘 사이에서 중재했나요?”     


유강인의 말에 우미희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막내아들은 제가 낳은 아들이 아닙니다. 다른 여자가 낳은 자식입니다. 스무살 때까지 다른 성으로 살았습니다.”     


우미희 말에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그가 말했다.     


“아! 그래요? 그럼 친모는 살아있나요?”     


“친모는 죽었습니다. 미국에서 ….”     


“천지호씨와 사이가 서먹했나요?”     


“네,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는 일은 … 별로 없었습니다.”     


“천지호씨 친모가 누군지 말해줄 수 있나요?”     


“배우입니다. 유명한 배우는 아니고 남편 영화에 여러 번 출연한 여자입니다. 아이를 낳고 영화계에서 은퇴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 가족만 아는 비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 사실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늘 유탐정님께 처음으로 비밀을 말하는 겁니다. 남편이 죽어서 비밀을 지킬 필요가 더는 없어졌습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피해자 천일수는 유명한 영화감독이었다. 본업인 영화를 찍다가 여배우와 불륜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래서 낳은 자식이 바로 막내아들 천지호였다. 원치 않았던 자식이라면 충분히 미워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길 원치 않았다. 치부라고 생각한 거 같았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왜 아버지 천일수가 아들 천지호를 미워했는지 알 거 같았다. 천지호는 천일수의 거울이었고 떼고 싶지만 뗄 수 없는 혹과 같았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비밀을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천지호의 이복 형과 이복 누나를 쳐다봤다. 그가 말했다.     


“두 분은 동생인 천지호씨와 관계가 어땠나요? 사이가 좋았나요? 아니면 그렇지 않았나요?”     


첫째 아들 천동식이 잠깐 미적거리다가 답했다.     


“막내하고는 별로 친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막내를 싫어하는 건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태어나 6.25를 겪은 분입니다. 그때 모진 고생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노는 걸 아주 싫어하셨습니다. 

그런데 막내가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림을 그린다며 계속 놀기만 해서 이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셨습니다. 

막내한테 집 관리인 노릇이나 하라고 하셨는데 막내가 자존심이 상했는지 강하게 반발했고 그때부터 둘이 격하게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막내 천지호씨가 집에서 그림만 그렸다는 말인가요?”     


“네, 그림만 줄곧 그렸습니다. 갑자기 화가가 됐습니다. 하지만 그림을 한 점도 팔지 못하는 아마추어 화가에 불과했습니다. 집에 틀어박혀서 종일 그림만 그렸습니다. 

사람들과 교류를 해야 화가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는데 그런 걸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림이 계속 부족하다며 혼자서 그림만 계속 그렸습니다.”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했죠?”     


“아버지가 돈을 대줬다가 둘이 대판 싸운 뒤 지원을 끊었습니다. 이후 저하고 여동생이 생활비를 보탰습니다. 사실 저는 별로 도운 게 없고 여동생이 전적으로 막내를 보살폈습니다.”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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