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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olee Oct 04. 2024

04_유강인 수사를 시작하다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다음날 

2025년 11월 13일 아침 6시 10분



삐리릭!


느닷없는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뭐야?”


한 남자가 눈을 비비고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에서 덜 깼는지 눈빛이 흐릿했다. 


그는 박재영이었다. JS 그룹 관계자와 만나서 친자 검사를 받은 사람이었다. 유전자 검사 결과, 친자로 확인되면 재벌인 송씨 가문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옆에는 부인이 있었다. 부인은 어서 전화 받으라는 듯, 한 손을 휘저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무척 피곤한 목소리였다.


“어서 전화 받아요. 당신 전화벨 소리예요.”


“알았어.”


박재영이 정신 차리고 핸드폰을 찾았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발신자는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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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 그룹 김돈국 비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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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서님!”


박재영이 핸드폰을 들고 방 바깥으로 서둘러 나갔다. 회장의 최측근인 김비서와 통화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나가겠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김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침착한 목소리였고 중후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차를 준비했으니 대동역으로 나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박재영이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들고 잠시 생각했다.


‘김비서님 목소리가 밝지 않아. 역시 아닌 건가? 내가 친자라면 아주 깍듯이 대했을 거 같은데 ….’


박재영이 실망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다 아직은 이르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김비서가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게 뭔지 들어야 했다.


10분 후


박재영이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집에서 나왔다. 현관문 앞에 부인 민주희가 서 있었다. 남편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감을 잡은 듯 애써 밝게 웃으며 격려했다.


“잘 다녀와요, 여보. 항상 믿고 있어요. 힘을 내요! 아자! 아자!”


박재영이 씩 웃었다. 귀여운 부인의 모습을 보고 힘을 얻을 거 같았다. 


사실, JS 그룹 회장의 친자가 아니라도 실망할 건 없었다. 돈을 쓴 것도 아니고 그냥 검사만 받았을 뿐이었다. 최고급 와인도 먹고 리무진도 타보고 높은 직급의 사람들한테 깍듯한 대우도 받았다.


“그럼, 다녀올게.”


박재영이 쾌활한 목소리로 말하고 길을 나섰다. 아파트 공동 출입구에서 나와서 길을 재촉했다. 대동역까지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오후 3시 10분


맑은 날이었다. 이제 가을이 끝나가고 있었다. 밤에는 제법 추웠고 아침은 쌀쌀했다. 


도심의 거리에는 낙엽이 가득했다. 쓸쓸한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날이었다.


사무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유강인이 탐정단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 뒤를 조수 둘이 따랐다. 탐정단이 급한 걸음으로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탐정단이 밴에 올라타더니 5분 후 출발했다. 


차가 서해안 고속도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바닷가 저택이었다. 살인 사건 현장이었다.



**



차창으로 바깥 풍경을 감상하던 황정수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차반장님을 다시 뵈러 가네요.”


“그렇지.”


“백형사님이 사건을 맡은 거예요?”


“응. 백형사님이 수사를 맡았어. 강력반 에이스니 항상 바쁘겠지. 거의 다 왔군. 이제 연락해야겠어.”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핸드폰을 들었다.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차수호 반장에게 전화 걸었다. 


신호음이 가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차반장이었다.


“유탐정!”


“네, 반장님. 30분 후면 도착할 거 같습니다.”


“그래, 어서 와. 유탐정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어. 그동안 커피를 세 캔이나 마셨어.”


“커피 세 캔은 지나친 거 같네요.”


“그렇긴 하지. 커피를 좀 줄여야 하는데 그게 뜻대로 안 돼. 긴장을 푸는 데 커피만 한 게 없거든.”


“적당히 마시면 괜찮을 거 같습니다. 그건 그렇고 ….”


유강인이 한번 헛기침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차반장님, 살해 용의자가 피해자 아들이라고 하셨죠?”


“응, 맞아.”


“혹, 그사이에 새로운 사실이나 증거가 나왔나요?”


“아니, 새로운 건 전혀 없어.”


“과학수사대가 조사를 마쳤나요?” 


“현장 1차 조사만 마쳤어.”


“1차라면 욕실을 말하는 건가요?”


“욕실뿐만 아니라 집 안도 조사했어. 조사 결과, 초동 수사 때와 별 차이가 없어.” 


“그렇군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왼손으로 턱을 만지며 사건 현장을 머릿속에 그렸다.


사건 현장은 욕실이었다. 욕조에 피해자가 있었고 물이 가득 차 있었다. 피해자는 익사해 죽었다. 

용의자는 아들이었다. 목욕하는 아버지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피해자 이름은 천일수였고 아들의 이름은 천지호였다.


천지호는 아버지 살해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긴급 체포됐지만, 담당 수사관인 백정현 형사의 강력한 요청으로 피의자 신분은 아니었다. 참고인 신분으로 계속 조사 중이었다. 


유강인이 질문을 이었다.


“누군가가 집 안으로 침입한 흔적은 있나요?”


“그게, 현재로서는 그런 건 없어. 문이나 창문의 잠금장치는 이상이 없었어. 욕실 문만 강제로 연 상황이야.”


“욕실 문만 강제로 땄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알겠습니다. 저택에 도착해 사건 현장을 살핀 후, 자세한 얘기를 나누도록 하죠.”


“그래, 그래. 어서 와. 백형사랑 같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네, 알겠습니다. 전화 끊겠습니다.”


유강인이 전화를 끊자, 황정수가 말했다.


“누가 침입한 흔적이 없다면 … 정황상 아들이 범인이 맞네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그래, 그렇긴 하지. … 하지만 속단은 금물이야. 언제든지 새로운 증거나 새로운 정황이 나올 수 있어. 항상 그걸 염두해야 해. 그걸 놓치지 말고 잘 분석해야 해.”


“네, 알겠습니당! 확실한 증거와 정황이 가리키는 곳에 범인이 있다는 말이잖아요. 항상 명심하고 있어요, 흐흐흐!”


“그렇지. 그게 포인트야.”


유강인을 말을 마치고 잠시 눈을 감았다. 현장 조사에 앞서 사건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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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수 살인 사건은 2025년 11월 11일에 발생했다. 피해자 사망 시간은 저녁 6시 30분에서 저녁 7시 사이였다. 범행 장소는 서해안 바닷가에 있는 천일수의 자택이었다. 아주 고가의 호화 주택이었다. 


피해자 천일수는 과거 유명한 영화감독이었다. 1960년대 초에 감독으로 데뷔해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명성을 날렸던 명감독이었다. 


대표작은 ‘사랑을 위해 세 번 죽다’와 ‘별과 함께 하늘 끝에서’였다. ‘사랑을 위해 세 번 죽다’는 1970년대 중반 최고 히트작이었고 ‘별과 함께 하늘 끝에서’는 권위를 자랑하는 해외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은 수작이었다. 


천감독은 흥행성과 작품성을 고루 갖춘 감독으로 명망이 높았다. 1990년 초반에 은퇴한 후로는 바닷가 별장에서 조용히 살았다. 그는 1940년생으로 올해 8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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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천천히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탐정단 밴이 천일수 집 앞에 도착했다. 탐정단이 휘황찬란한 집을 보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울러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정말 대단하다!”


넓은 바닷가가 훤히 보이는 절경에 자리 잡은 고급 주택이었다. 


“천일수 감독은 돈이 꽤 많은 모양이군요.”


“맞아요. 정말 꿈같은 집이네요. 영화감독이라 그런지 꿈 같은 집에서 살았네요.”


조수 둘이 화려한 집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유강인도 이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떡였다.


저 멀리서 물소리가 들렸다.


밀물이 시작되면서 갯벌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아주 거셌다.


덜컹 차 문이 열리고 탐정단이 차에서 내렸다. 


“어머머머!”


차에서 내린 황수지가 어쩔 줄 몰라 했다. 강한 바닷바람에 긴 머리카락이 마구 휘날렸다. 정신없이 날리는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꼭 부여잡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이고, 모자를 갖고 올걸. 깜박했네.”


유강인이 황수지를 쳐다봤다. 깃발처럼 휘날리는 황수지의 긴 머리를 잠시 감상했다. 마치 물결치는 거 같았다. 그러다 고개를 돌렸다. 


저 앞에 아주 호화로운 주택이 그 모습을 뽐냈다.


맨 앞에 하얀 울타리가 있었다. 성인 허리 높이였다. 울타리 안에 커다란 정원과 꿈 같은 집이 있었다.


정원은 작은 축구장 크기로 정원수와 잔디가 참 보기 좋았다. 정원사가 매일 관리하는 듯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정원 뒤로는 3층 건물이 그 위용을 뽐냈다. 


집은 중세 성 모양이었다. 꿈의 공장인 디즈니랜드에서나 볼 법한 모양이었다.


옆으로 길쭉한 건물 위로 지붕 세 개로 하늘 높이 솟구쳤다. 모두 원뿔 모양이었다.


지붕은 지중해 바다처럼 푸른색이었다. 벽은 아주 새하얬다. 푸른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루며 시원한 느낌을 더했다. 


“음, 정말 멋있군. 훌륭해.”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잠시 고급 주택을 감상하다가 걸음을 옮겼다. 


울타리 정문 앞에 경찰차 두 대가 있었다. 차 옆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차수호 반장과 백정현 형사였다. 유강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두 사람이었다.


“유탐정!”


차반장이 유강인을 향해 두 손을 마구 흔들며 소리쳤다. 백형사는 허리를 90도로 굽혀서 공손히 인사했다.


유강인이 활짝 웃었다. 어서 누구보다도 신뢰하는 동료를 만나야 했다.


30초 후 탐정단과 수사팀이 만났다.


“여기 따뜻한 커피가 있습니다, 유탐정님.”


백정현 형사가 유강인에게 커피 캔 하나를 건넸다. 유강인이 빙긋 웃고 커피를 받았다. 따개를 따고 쭉 들이켰다. 


따뜻한 모카커피였다. 그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고마워, 백형사.”


“자, 안으로 들어가자고.”


차수호 반장의 말에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바로 앞에 살인 사건 현장이 있었다. 이제부터는 긴장해야 했다. 작은 단서라도 잡아야 했다. 그래야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탐정단과 수사팀이 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문으로 향했다.


다섯 개 계단 위에 커다란 현관문이 있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집 안에 사람들이 많았다. 과학수사대 대원 열 명이 분주히 움직였다. 1차 조사를 끝내고 2차 정밀 조사를 진행 중이었다. 집이 워낙 커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유강인이 집안으로 들어오자, 과학수사대 팀장이 재빨리 그 앞으로 달려왔다. 팀장이 절도있게 경례를 붙이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유강인 탐정님. 저는 과학수사대 팀장 김민선입니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유강인입니다.”


“유탐정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강인이 통성명을 마치고 사방을 쭉 둘러봤다. 넓은 거실이었다. 벽걸이 대형 TV와 명품 소파, 테이블, 장식장, 샹들리에가 등이 보였다.

벽은 고급 소재 나무였다. 현관문 왼쪽에 통창문이 있었다. 햇볕이 잘 들어오는 곳이었다. 아늑한 분위기가 일품이었다.


유강인이 통창문을 가리키고 말했다.


“저기로 가서 얘기합시다. 조사한 내용을 자세하게 말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탐정단과 수사팀, 김팀장이 통창문으로 향했다. 통창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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