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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olee Oct 03. 2024

03_재벌 혼외자, 박재영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밤 9시가 넘어갔다. 도심의 밤은 여전히 휘황찬란했다. 어둠을 밝히는 거대한 조명이 빛을 발하며 은은한 달빛과 별빛을 압도했다.


대로 1차선을 따라서 부드럽게 달리던 차 한 대가 속도를 줄였다. 인도 옆에 멈췄다.


차가 멈추자, 뒷좌석 문이 열리고 중년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차는 최고급 외제 차, 리무진이었다. 검은 광택이 번쩍이는 게, 마치 돌고래 같았다.


차에서 내린 남자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긴장한 표정이었다.


뒤이어 조수석 차 문이 열렸다. 한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단정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녀가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남자에게 말했다.


“박선생님, 모든 검사와 자료 조사가 끝났습니다. 조만간에 연락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중년 남자가 황급히 답했다. 얼굴에 놀라움과 함께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젊은 여자가 다시 차에 탔다. 차에 시동이 걸렸다. 리무진이 1차선 도로를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서울의 번화가 강남구 사거리다. 혼자 남은 남자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휴우~!”


긴 숨소리였다. 


남자가 몸을 미세하게 떨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침을 꿀컥 삼키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때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중년 여성의 목소리였다.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두 눈에 사랑하는 부인이 보였다. 


“주희야!”


남자는 며칠 전 부인한테 비밀을 말한 박재영이었다. 그가 부인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부부가 서로 만났다. 손을 꼭 잡더니 같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이 좋은 커플이었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들렸다. 


둘이 거리를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남편이 한 손으로 1층 식당을 가리켰다. 


한눈에 봐도 강남 최고급 식당이었다. 중저가 옷을 입은 박재영 민주희 부부가 감당할 수 있는 식당이 아니었다. 한 끼에 50만 원을 써야 할 거 같았다.


“주희야, 들어가자.”


“아이고! 여보 여기는 너무 비싼 데에요.”


“괜찮아. 이제 곧 무능했던 남편이 대단한 사람이 되는 거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도 ….”


민주희가 식당 앞에서 망설였다. 최고급 소고기에 와인을 곁들일 수 있는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다. 둘이서 배부르게 먹으면 100만 원 이상이 나올 게 뻔했다.


“왜 망설여, 어서 들어가자고. 미리 축하할 겸.”


“아직은 아니잖아요. 축하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요.”


“그럴까? 우리 마님이 정 그러시다면 … 축하는 뒤로 미뤄야겠네. 그나저나 배가 고파서 뭐라도 먹어야 할 거 같아.”


“아! 그러면 저기에 제가 아는 집이 있어요. 맛집이에요. 친구들하고 자주 갔어요.”


“거기가 어딘데?”


“떡볶이집이요. 금손 분식이에요. 강남에서 알아주는 분식집이에요.”


“고작 떡볶이집이라고?”


“아이, 여보. 강남은 떡볶이집도 값이 비싸요. 왜 강남이겠어요.”


“그런가? 그래도 떡볶이는 좀 그런데 ….”


“그럼, 자기가 좋아하는 집으로 가요. 삼겹살 먹을까요?”


“아니야. 오늘은 주희를 위하는 날이야. 주희가 좋아하는 떡볶이 먹으러 가자. 강남 떡볶이 맛이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고. 혹 금가루를 뿌렸나? 그래서 비싸게 받는 건가?”


“그건 아니에요. 금가루는 아니고 그냥 재료가 좋아요. 해산물도 많고 고기도 있어요. 그럼, 어서 가요. 여기에서 멀지 않아요.”


“알았어, 어서 가자고.”


부부가 의기투합하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둘이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마치 솜사탕 같았다.



*



박재영이 떡볶이와 순대, 튀김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강남이라서 다른 곳보다 값이 비싼 편이었지만, 맛이 참 좋았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었다. 떡볶이 국물까지 남김없이 다 먹고 물잔을 들었다.


“맵지 않아요?”


민주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남편 박재영은 매운 걸 잘 먹지 못했다.


박재영이 물 한 컵을 다 들이켜고 답했다. 


“괜찮아. 맵지 않아. 이 정도는 괜찮아. 그래서 1단계를 시켰잖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맵기는 매웠던 모양이다.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하지만 맛있는 매운맛이라 만족한 거 같았다.


“우유 빙수 먹을래요? 매운 게 싹 다 가실 거에요.”


“아주 좋아.”


“여기요. 우유 빙수 주세요.”


민주희가 우유 빙수를 주문했다. 빙수가 나오자, 박재영이 함박웃음을 웃었다. 우유 지방은 매운맛을 진화하는 소방수였다.


남편이 숟가락을 들자, 부인이 미소를 짓고 빙수가 담긴 그릇을 남편 쪽으로 밀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 유전자 검사도 한 거예요?”


박재영이 빙수를 한 입 먹고 답했다.


“응, 했지. 제일 먼저 한 게 유전자 검사였어.”


“다른 것도 했죠?”


“응, 보육원 서류를 살폈어. 당시 근무했던 원장님이 살아계셔서 비서님이 만났다고 했어. 산부인과 기록도 확인했고 ….”


남편의 말에 민주희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떡볶이가 매워서 맺히는 땀이 아니었다. 심장이 떨려서 긴장했다는 뜻이었다. 


뒤이어 가녀린 두 손도 떨렸다. 그녀가 두 손을 꼭 쥐더니 말을 이었다.


“당신이 정말 … JS 그룹 혈육일까요?” 


부인의 말에 박재영이 정색했다. 입에 넣었던 숟가락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더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회장님 젊은 시절 사진과 영상을 봤어. 나랑 참 많이 닮았어. … 부자 사이라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어. 얼굴이 바로 증명했어. 우리가 부자 사이라는 걸!” 


“혈육이 아니더라도 외모가 비슷할 수 있어요.”


부인의 말에 박재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니야! 정황상 난 회장님 아들이야. 난 … 재벌 3세라고! 아버지가 부인 몰래 낳은 자식이야. 숨겨진 아들이라고!!”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자, 식당 손님들이 부부를 쳐다봤다. 직원들은 인상을 썼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이에 민주희가 다급하게 손님과 직원에게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니에요. 죄송해요. OTT 드라마 얘기하는 거예요.”


박재영이 민망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흥분해서 큰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손님들이 싱겁다는 표정을 짓고 식사를 이었다. 직원들이 다시 분주히 움직이자, 민주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혼외자식이라는 … 말이잖아요.”


부인의 말에 박재영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어때서라는 표정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폈다. 혹 자기를 주시하는 사람이 있나 살폈다. 그런 사람은 없었다. 이에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주희야, 혼외자식이라고 다 같은 줄 알아? 난 대기업 회장의 혼외자식이야.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 이해가 안 돼?”


“물론, 이해가 되긴 하죠. 친아들이라면 유산 상속을 받을 수 있잖아요. 그 금액이 엄청나겠죠.”


“그래! 맞아. 드디어 내가 출세하는 거야. 고아로 힘들게 살아왔는데 이제야 빛을 보는 거야. 

부모 없다고 온갖 괄시를 받으며 살아왔어. 당신이 날 무시하지 않아서 결혼한 거야.”


남편의 말에 민주희가 물컵을 들었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컵을 든 손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수전증에 걸린 듯했다. 


며칠 전부터 긴장과 불안감이 그녀를 덮쳤다. 20년간 동고동락한 남편이 재벌의 혼외자식일 수 있었다. 


일주일 전, 늦은 밤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남편이 깜짝 놀란 듯 크게 소리를 질렀다.


JS 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온 전화였다. 회장이 직접 움직여 잃어버린 아들을 찾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린 애 장난 같았지만, 돌아가는 정황상, 사랑하는 남편이 대기업 회장의 혼외자식일 수 있었다. 그 가능성이 점점 커졌다. 가장 중요한 유전자 검사 결과만 남았다.


민주희가 남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남편이 얼굴이 사뭇 달라 보였다. 고아 박재영이 아니라 재벌의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자, 뭔가 귀티가 나는 거 같았다. 


몸에서 찬란한 빛이 감도는 거 같았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말에 뼈가 있었다.


“친자로 나오면 … 절 버릴 거에요?”


“뭐, 뭐라고?”


박재영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활짝 웃었다.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주희, 우리 마님. 주희는 나를 처음으로 인정해 준 사람이야. 내가 우리 주희를 버리면 천벌을 받아.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내가 부자가 되면 주희도 같이 부자가 되는 거야. 우리는 일심동체야. 같이 살고 같이 죽을 거야.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 내가 그동안 믿음을 주지 못했네. 이런 소리나 듣고. 반성해야겠어.”


남편의 말에 민주희가 안도한 듯 빙긋 웃었다. 그러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 친자가 아니더라도 실망하지 말아요. 계속 이렇게 살면 돼요. 사는 게 좀 부족하기는 해도 빈곤하지는 않잖아요.”


“응! 그것도 각오하고 있어. 만약 아니라면 그냥 해프닝이잖아. 해프닝이라도 나쁘지 않아. 덕분에 최고급 리무진을 타봤잖아. 내가 무슨 재주로 리무진을 타보겠어. 잘해야 죽을 때나 타보겠지. 

리무진이 정말 대단하더라고. 차에서 와인도 한잔했어. 향기가 정말 끝내줬어. 역시 최고급 와인은 다르긴 다르더라고. 와인바에서 싼 것만 사 먹었는데 오늘 제대로 호강했지.

그래서 이번 일은 손해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내가 JS 그룹 회장 친자라면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가는 거고, 만약 아니라면 그냥 이대로 열심히 살면 돼.”


“맞아요! 그렇게 생각해요. 그래야 마음이 편해요.”


“역시 우리 마님은 현명해. 그래서 내가 주희를 좋아하는 거야.”

부부가 크게 웃기 시작했다. 같이 우유 빙수를 먹기 시작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빙수였다. 빙수가 그릇에서 점점 사라져갔다.



**



JS 그룹은 유명한 대기업으로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1953년 자전거 제조 회사로 출발해 굴지의 자동차 제조 회사가 되었다. 이후 사업을 다각화해서 건설, 유통업 등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회장은 창업자의 아들 송해성이었다. 그는 70대 후반으로 이제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다. 큰아들이자 부회장 송상하가 승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강남 한복판에 JS 그룹 본사 건물이 있었다. 30층 최첨단 빌딩이었다. 맨 위층에 회장실이 있었다.


회장실은 불이 꺼진 듯 어두웠다. 그러다 불빛이 보였다. 약한 불빛이었다. 책상 스탠드가 내뿜는 빛줄기였다. 


스탠드 불빛을 받으며 한 노인이 초조한 표정으로 회전의자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번쩍거리는 명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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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 그룹 회장 송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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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정체는 회장 송해성이었다. 무척 수척한 얼굴이었다.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딱 보기에도 몸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는 백발이었다. 2대 8로 가르마를 탔다. 작은 키에 살찐 몸이었다. 불 피부가 탄력을 잃고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이 흡사 두꺼비 같았다. 젊은 시절 미남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젊은 여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파일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회장님, 김비서님이 팩스를 보냈습니다. 여기 팩스가 있습니다.”


“알았어. 두고 가.”


“네.”


비서가 말을 마치고 책상 위에 파일 하나를 놓고 밖으로 나갔다.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송해성 회장이 파일을 내려다봤다. 검은색 파일이었다. 


“휴우~!”


그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한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파일 안에 서류가 있었다. 


서류는 유전자 검사 결과지였다. 송회장의 오른팔인 김비서가 팩스로 보낸 매우 중요한 서류였다.


송해성 회장의 두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두 눈이 마지막 문구에 꽂혔다. 마지막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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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검사 결과, 송해성씨와 박재영씨 사이에 부자 관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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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럴 수가!!”


송해성 회장이 깜짝 놀랐다. 그가 매우 놀란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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