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수사 책임자인 차수호 반장이 입을 열었다.
“먼저 백형사가 사건 브리핑을 해.”
“네, 알겠습니다. 반장님.”
사건 담당 형사인 백정현 형사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천일수 살인 사건은 2025년 11월 11일 저녁 6시 30분에서 7시 사이에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는 욕실에서 목욕 중이었습니다.”
유강인이 질문을 던졌다.
“집 안에 피해자 혼자 있었나요? 다른 사람은 없었나요?”
“참고인과 집 CCTV를 확인한 결과, 집 안에 피해자 혼자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집으로 들어온 범인은 욕실 문을 강제로 땄습니다. 잠금장치에 그 흔적이 있었습니다.
이후 욕조 안에서 목욕 중인 피해자를 죽였습니다.”
“살해 방법을 자세히 말해주세요.”
“피해자의 머리를 강제로 물속으로 집어넣었습니다. 한 손으로 어깨를 잡고 다른 손으로 정수리를 꽉 눌렀다는 보고입니다.
고령인 피해자는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백형사의 말에 유강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떤 저항도 하지 못했다는 게 이상했다. 그가 말했다.
“아들이 용의자라고 했죠?”
“네, 그렇습니다. 저녁 6시 25분, 아들 천지호가 피해자 집을 방문했습니다. 피해자 사망 추정 시간대에 집에 있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집을 방문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아들한테 무슨 용무가 있었나요?”
“저녁 6시, 피해자가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문자를 확인한 결과, 전시회 같은 건 어림도 없다며 막말을 했습니다. 둘이 서로 문자를 보내며 싸웠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가겠다며 문자를 남겼고 통화 기록도 있습니다. 집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와 통화했습니다.”
“아들은 현재 어디에 살고 있죠?”
“아들은 피해자 집 근처인 장인시에 살고 있습니다. 시내 CCTV를 확인한 결과, 차를 타고 15분 만에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차를 주차한 후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도어락 번호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CCTV에 찍혔나요?”
“네, CCTV에 찍혔습니다. 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간 시간은 저녁 6시 25분입니다. 10분 뒤인 6시 35분에 현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집 밖으로 나가는 아들의 모습이 어땠나요? 놀라서 뛰어나갔나요? 아니면 침착하게 행동했나요?”
“고개를 푹 숙이고 느리게 걸었습니다. 겉보기에 낙담한 거 같았습니다. 두 주먹을 꽉 쥐고 있었습니다.”
“아들의 옷에 물이 묻었나요? 소매나 바짓단에서 물이 묻은 걸 확인했나요?”
“현관문 근처에 있는 CCTV 분석 결과, 옷은 젖지 않았습니다. CCTV 정밀 분석을 국과수에 의뢰했습니다.”
차수호 반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유탐정, 아들 옷이 멀쩡해도 범인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 10분 동안 집에 있었잖아.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무슨 수를 낼 수 있어.”
“무슨 수라고요?”
“응, 옷을 다 벗고 알몸으로 욕실에 들어가면, 옷이 젖을 리가 없잖아.”
“그렇긴 하죠.”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 상황에서는 옷이 젖었는지 아닌지 그 여부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백정현 형사가 말을 이었다.
“저녁 6시 40분, 동네 마실 나갔던 부인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5분 후 119에 신고했습니다. 남편이 욕조에서 죽은 거 같다고 … 매우 위독하다고 알렸습니다.”
브리핑이 끝났다.
유강인이 생각에 잠겼다.
살해 시간대에 집에 들어온 사람은 아들과 어머니밖에 없었다. 어머니보다는 아들이 유력한 용의자였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백형사님, 아들을 언제 체포했죠?”
“피해자 부인과 자녀, 이웃의 증언, CCTV를 확인한 후, 다음 날인 11월 12일 오전 11시에 천지호 자택을 방문해 체포했습니다. 체포 시 천지호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며 거세게 저항했습니다.”
“거세게 저항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형사들을 밀치고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짓을 하지 말라며 억울해했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말했다.
“체포는 … 지나치게 성급한 조치 같군요. 신원이 확실한 사람이니 참고인 조사를 먼저 하고 이에 불응하면, 피의자로 전환하고 체포해도 늦지 않았습니다.”
차수호 반장이 변명하듯이 급히 말했다.
“유탐정, 그게 … 이웃 주민이 한결같이 부자 사이가 험악하다고 해서 용의자로 단정한 거야. 체포는 내가 결정했어. 아들이 도주할까 봐 급하게 움직였어. … 내가 생각이 좀 짧았어.”
“이웃들이 한결같이 그렇게 말했다고요?”
“응, 그래.”
“가족들도 마찬가지인가요?”
차반장이 대답 대신 백정현 형사를 쳐다봤다. 백형사가 말했다.
“네, 맞습니다. 가족들 전부 한결같이 입을 모았습니다. 아버지가 막내아들을 몹시 싫어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뿔이 난 아버지가 아들을 호되게 질책하면 아들도 지지 않고 맞섰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입에서 입에 차마 담을 수 없는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답니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었다. 나쁜 경우 남보다 훨씬 못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자기 뜻을 따르지 않는 아들에게 실망하기 마련이었고 아들은 아버지의 무능력함과 무관심에 경멸의 시선을 보내기 마련이었다.
거기에다 가치관마저 다를 경우, 갈등의 정도는 나이를 들수록 더 심해지기 마련이었다.
유강인도 돌아가신 아버지와 서먹서먹한 사이였다. 항상 거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혈육을 해코지하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로 멀리하는 게 그나마 괜찮은 방법이었다.
“휴우~!”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안타까움을 뱉어내고 말했다.
“피해자가 영화감독이라고 하셨죠?”
백정현 형사가 답했다.
“네, 맞습니다. 피해자는 전 영화감독 천일수씨입니다. 나이는 85세입니다.”
“고령인데 건강 상태는 어떤가요?”
“가족과 이웃에 따르면 요즘 들어 기력이 많이 쇠한 거 같다고 합니다.”
“기력이 많이 쇠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며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력이 쇠한 노인이라면 강한 힘에 저항할 수 없었다.
아들은 현재 참고인 신분이지만, 유력한 용의자였다. 아들의 힘이라면 쇠약한 노인인 아버지를 충분히 죽일 수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강인이 이번에는 과학수사대 김민선 팀장에게 말했다.
“사건 현장인 욕실로 갑시다. 가서 사건 현장을 브리핑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김팀장이 답을 하고 욕실로 향했다. 그 뒤를 유강인이 따랐다.
살인 사건 현장 조사는 언제나 긴장되기 마련이었다. 시신이 있을 때는 그 참혹함에 오금이 저렸고 없을 때는 단서를 잡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한 생명이 허무하게 사라진 욕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유강인이 두 눈을 부엉이처럼 크게 떴다. 검은자가 두 배로 커졌다.
호화로운 주택답게 욕실도 꽤 넓었다. 벽을 장식한 하얀 대리석이 기품을 더했다.
좌측 구석에 욕조가 있었다. 크기는 성인 남자가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았다. 반신욕하기에 최적이었다.
욕조 안에 물이 반 정도 차 있었다.
김팀장이 욕조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망 당시 피해자는 거품 목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사진이 있습니다.”
김팀장이 말을 마치고 유강인에게 태블릿PC를 건넸다. 유강인이 태블릿PC를 건네받고 사진을 살폈다. 욕조에 거품이 잔뜩 있었다.
거품을 확인한 유강인이 말했다.
“피해자가 거품 목욕을 한 게 확실하군요.”
“네, 맞습니다. 거품 목욕을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욕실 수납장을 찾았다. 오른쪽에 거울이 있었고 거울 왼쪽에 수납장이 있었다.
그가 수납장을 가리키고 말했다.
“수납장 안에 거품 목욕제가 있었나요?”
김팀장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안에 거품 입욕제가 있었습니다. 천연소금 제품입니다. 조사 결과 아주 고가의 제품이었습니다. 한국에 출시된 적이 없는 제품입니다. 아마 외국에서 구매했거나 선물 받은 거 같습니다.”
“고가의 제품인데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희귀한 제품이란 말이죠? 소금이 들어있는 ….”
“네, 맞습니다.”
유강인이 왼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사건 현장을 찍은 사진을 다시 살폈다. 욕조, 바닥, 벽 등을 찍은 사진이었다. 욕실 전체를 찍은 사진을 유심히 보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침묵이 흘렀다.
진실을 밝히는 탐정이 침묵을 지키자, 다른 사람도 모두 입을 다물었다.
3분 후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욕조로 걸어가 벽을 살폈다. 아주 깨끗한 벽이었다.
그가 김민선 팀장에게 말했다.
“사진을 보니 벽에 거품이 없었습니다. 처음 시신을 발견했을 때도 그랬나요?”
“벽은 깨끗한 편이었습니다. 욕조 근처 벽에만 거품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몇 군데 되지 않습니다.
바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출동한 경찰이 찍은 사진 그대로입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고개를 내려 욕조를 살폈다. 바로 피해자가 죽은 곳이었다. 태블릿PC 사진 중에서 욕조를 찍은 사진을 살폈다.
욕조 안에 시신이 있었다. 피해자는 딱 봐도 거구였다. 몸이 큰 사람이었다.
현재 욕조 안에 있는 물은 욕조의 반 정도에 불과했다. 사진 속에 물은 욕조의 3/5 정도를 차지했다. 피해자가 욕조 안에 들어가자 물이 위로 올라왔다.
욕조를 살핀 유강인이 욕실 바닥을 찍은 사진을 살폈다. 욕조 근처 바닥에만 거품이 조금 있었다. 많은 양이 아니었다. 출입문 쪽에는 거품이 아예 없었다.
“음!”
유강인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가 뭔가를 깨달은 듯 급히 말했다.
“이건 좀 이상합니다. 피해자가 기력이 쇠한 고령이지만, 범인이 자기를 죽이려고 물속에 담그는데 전혀 저항하지 않은 거 같습니다.
피해자가 살려고 발버둥 쳤다면 물이 욕조 밖으로 많이 튀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벽과 바닥에 거품이 많아야 합니다.
김팀장님, 벽과 바닥에 거품 성분이 별로 없는 게 확실합니까?”
“네, 확실합니다. 물이 벽과 바닥으로 많이 튀지 않았습니다.”
김팀장의 말에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 가능성은 하나입니다.”
“그 가능성이 뭐죠?”
백정현 형사가 무척 궁금한 표정으로 유강인에게 물었다.
유강인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피해자는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걸 밝혀야 합니다. 하나의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아! 그러네요.”
“듣고 보니 그러네!”
차수호 반장과 백정현 형사, 김민선 팀장이 이제야 이상함을 깨달은 듯 손뼉을 짝 쳤다.
단서를 잡은 유강인이 입술에 침을 묻혔다. 범인의 범행 행각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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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 문을 강제로 따고 범인이 욕실 안으로 들어왔다.
피해자는 욕조 안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갑자기 등장한 범인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
범인이 범행 행각을 시작했다. 피해자를 죽이려 머리를 물속에 푹 집어넣었다.
피해자는 숨이 막히는 상황에서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피해자는 익사했고 일을 마친 범인은 유유히 집에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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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무척 자연스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