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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olee Oct 10. 2024

08_하얀 가루와 누명을 벗다!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음!”     


고개를 들어서 현관문을 잠시 바라보던 유강인이 갑자기 움찔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했다. 바람이 점점 거세지는 거 같았다.     


“이, 이런 비가!”     


비가 곧 올 거 같았다. 유강인이 급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건물 벽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이때 저 멀리서 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르!     


하늘에서 울리는 우렁찬 북소리!     


천둥소리였다. 비가 곧 온다는 신호와 같았다.     


오늘 많은 비가 예보되어 있었다.     


유강인 옆에 있던 황정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탐정님, 좀 있으면 비가 오겠어요. 사건 현장이 실내라 참 다행이네요.


어서 집 안으로 들어가죠, 자칫하면 비를 맞겠어요.”     


황정수의 말에 유강인이 고개를 좌우를 돌렸다.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에 황정수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은 여전히 건물 벽을 유심히 살폈다.     


황정수가 참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탐정님, 뭐 하세요? 어서 들어가야죠. 차반장님이 욕실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오늘 현장 검증한다고 하셨잖아요.”     


유강인이 대답 대신 걸음을 옮겼다. 앞에 있는 현관문이 아니라 건물 벽을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기준으로 오른쪽이었다.     


“엥? 지금 어디 가세요?”     


“탐정님!”     


황정수와 황수지가 유강인을 불렀다. 황정수가 급히 말했다.     


“탐정님,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게 … 아니었어요?”     


“응!”     


유강인이 짧게 대답하고 벽을 따라서 천천히 걸었다.     


열 보 이상을 걷자, 커다란 통창문이 보였다. 통창문 안으로 집에 모인 사람들이 보였다. 열 명이 넘어 보였다.     

잠시 통창문을 살피던 유강인이 계속 벽을 따라서 걸었다.     


황정수가 백정현 형사와 김민선 팀장에게 말했다.     


“탐정님이 집 주변을 살핀다고 하셨어요?”     


백형사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탐정님이 어제 집 주변을 수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 그때 너무 어두워서 할 수 없었습니다.”     


“아! 그러면 지금 집 주변을 수색하는 거군요.”     


“그런 거 같습니다.”     


조수 둘이 백형사와 말을 나누는 사이, 유강인은 별말 없이 벽을 따라서 걷기만 했다.     


“음~!”     


유강인이 왼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통창문이 끝나자, 하얀 벽이 보였다. 벽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심하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10초 후 건물 모퉁이를 돌았다.     


우르르르 … 쾅!     


천둥소리가 이번에는 크게 들렸다. 더 지체할 수 없다고 재촉하는 거 같았다.     


하늘을 가득 채운 먹구름이 어느 때보다 꿈틀거렸다. 거대한 수분 보따리를 이제 막 풀 것만 같았다.     


“이런!”     


유강인이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이곳은 외진 곳이었다. CCTV 사각 지역이었다.     

CCTV는 건물 정면 현관문과 뒷면 후문만 비췄다.     


그가 중얼거렸다.     


“여기가 바로 사각 지역이군.”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기 예보와 달리 비구름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오후가 아니라 오전에 비가 내릴 거 같았다.     


기상예보는 예보일 뿐이었다.     


세상사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었다.     


탐정이라면 최악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해야 했다.     


“응!”     


유강인이 뭔가를 발견하고 두 눈을 크게 떴다. 고개를 들어 위에 있는 물체를 바라봤다. 그건 창문이었다.     


옆벽을 따라서 창문 여러 개가 있었다. 창문은 모두 꼭 닫혀 있었다. 모두 커다란 미닫이 창문이었다. 성인 남성이 쉽게 들락거릴 정도로 컸다.     


“유탐정님! 어디 계세요?”     


백정현 형사가 우산을 들고 모퉁이를 돌았다. 저 앞에 있는 유강인을 보고 급히 말했다.     


“유탐정님, 지금 비가 올 거 같습니다. 우산을 써야 합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돌려 백정현 형사에게 말했다.     


“백형사님, 창문이 닫히면 밖에서 열 수 없다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창문이 닫히면 자동으로 잠금장치가 작동합니다. 이 집 창문이 다 그렇습니다. 안에서는 열 수 있지만, 밖에서는 열 수 없습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벽을 따라서 계속 걸었다. 건물 옆벽이 끝나갔다. 다음 모퉁이를 돌면 뒷벽이었다.     


뒷벽에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작은 창문이 있었다.     


바닥에서 2m 높이에 있는 60cm×30cm 창문이었다. 반만 열 수 있는 미닫이 창문이었다. 창문이 열리면 30cm×30cm 면적이었다.     


“응!”     


유강인의 두 눈이 잘 튀긴 호떡처럼 커졌다. 그가 서둘러 창문으로 달려갔다.     


그때 후두둑!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자, 황수지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좀 있으면 많은 비가 내릴 거 같았다.     


지금 유강인이 집 주변을 수색 중이었다. 하늘이 유강인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하필 지금 이때 비가 와, 탐정님이 수색 중인데 ….”     


얼굴에 작은 빗방울을 맞은 유강인이 서둘러 고개를 들어 작은 창문을 살폈다. 그중에서 창문틀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다 ……,     


“어!”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유강인의 눈빛이 샛별처럼 빛났다.     


툭툭!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커다란 빗방울 하나가 유강인의 이마에 톡! 떨어졌다.     


유강인이 급히 외쳤다.     


“어서 저 창문 위를 가려야 합니다. 시간이 없어요! 빨리 사다리와 우산을 가져와요! 비에 맞으면 증거가 사라져요!!”     


“네에?”     


백정현 형사가 깜짝 놀랐다.     


큰 소리가 들리자, 조수 둘과 김민선 팀장도 달려왔다. 백형사가 유강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머뭇거렸다.     

반면 황정수는 상황을 이해했다. 유강인이 한 손을 들어 작은 창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 알겠습니다.”     


황정수가 급히 외치고 집 안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했다.     


“도와주세요! 탐정님이 찾으세요!!”          



*          



과학수사대 대원들이 사다리와 우산을 갖고 왔다. 형사 하나가 우산을 들고 위로 올라가 창문 위를 우산으로 가렸다.     


후두둑! 소리가 들리며 빗발이 점점 거세졌다. 곧 폭우가 쏟아질 거 같았다.     


겨울을 알리는 싸늘한 가을비였다.     


“이제 올라가겠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사다리 계단을 올랐다.     


탁! 탁! 사다리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다리 맨 위에 형사 하나가 커다란 우산을 들고 창문을 가렸다. 팔을 계속 들고 있어서 힘이 드는지 인상을 팍 쓰고 낑낑거렸다.     


“형사님, 조금만 참으세요.”     


“네, 이 정도는 … 별거 아닙니다. 아이고!”     


형사가 이를 악물고 답했다.     


유강인이 창문틀 아래를 자세히 살폈다.     


10초 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 바로 이거야! 나이스!!”     


유강인이 증거를 발견한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내렸다.     


밑에 형사 여러 명이 있었다. 백정현 형사가 급히 말했다.     


“유탐정님, 뭔가를 찾으셨나요? 거기에 뭐가 있나요?”     


유강인이 큰 소리도 답했다.     


“창문틀 아래에 뭔가가 붙어있습니다. 하얀 게 반짝였습니다. 이걸 채취해서 조사해야 합니다.”     


“하얀 거라고요?”     


“하얀 가루가 붙어있습니다.”     


“네에? 하얀 가루라고요?”     


하얀 가루라는 말에 백정현 형사와 김민선 팀장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유강인이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그가 손을 털고 말했다.     


“이제 범인의 범행 수법을 알겠습니다. 저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간 겁니다.”     


백형사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범인이 저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고요?”     


“네, 맞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온 범인은 피해자를 찾았습니다. 당시 피해자는 욕실 안에 있었습니다. 

범인은 목표는 절도가 아니라 살인이었습니다. 이에 욕실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가 피해자를 인면수심의 마음으로 죽였습니다.”     


“범인이 피해자를 죽인 후, 어디로 도망쳤죠? 들어왔던 창문으로 다시 나간 건가요?”     


“맞습니다. 들어왔던 창문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나갈 때 창문을 꼭 닫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창문이 닫혀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하얀 가루는 뭐죠?”     


유강인이 씩 웃고 답했다.     


“범인이 창문을 닫을 때, 옷에 묻었던 거품 소금이 창문틀에 묻은 겁니다.”     


“거, 거품 소금이라고요?”     


백정현 형사 깜짝 놀랐다. 거품 소금은 살해 장소인 욕조 안에 녹아있었다.     


“저도 확인하겠습니다.”     


백형사가 말을 마치고 서둘러 사다리 계단을 올랐다. 창문틀 아래를 살피더니 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가 말했다.     


“정말 가루가 있네요. 미세하지만 있기는 있어요.”     


사다리를 꼭 잡고 있던 김민선 팀장이 아주 잘 됐다는 듯 손뼉을 짝 쳤다. 그가 서둘러 말했다.     


“참 잘됐네요. 서둘러 가루를 채취하겠습니다. 거품 소금은 일반 소금이 아닙니다. 현미경 조사 및 성분을 검사하면 어느 제품인지 알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사용한 거품 소금은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아주 희귀한 제품입니다.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김팀장의 말에 유강인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하얀 가루는 욕실 수납장 거품 소금이 분명합니다.”     


상황이 다급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증거를 발견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과학수사대 대원들이 급히 움직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소금은 비에 맞으면 녹기 마련이었다. 비가 더 내리기 전에 어서 서둘러야 했다.     


유강인이 홀가분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건물을 한 바퀴 다 돌았다. 저 앞에 계단과 현관문이 보였다.     


백정현 형사와 조수 둘이 유강인을 따랐다. 황정수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탐정님! 작은 창문으로 몰래 들어온 범인이 피해자를 죽였다는 말이잖아요. 그러면 아들은 범인이 아닌 게 맞죠? 아들은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어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그렇지. 아들은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왔다가 다시 현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갔어. CCTV가 이를 증명해.”     


“역시 아들이 범인이 아니었네요! 그동안 억울하게 아버지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거잖아요.”     


“응, 맞아! 아주 간악한 자가 죄 없는 아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거야. 부자 사이가 매우 나쁘다는 걸 알고 이런 짓을 꾸민 거야. 

그런데 놈의 범행에 허점이 있었어. 바로 거품 소금이야. 그 증거가 창문틀에 그대로 남아있었어.”     


“참, 다행이네요.”     


황정수가 환하게 웃었다. 아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면 그건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가족 대부분과 마을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아들을 의심했다.     


하지만 가족 대부분과 마을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다고 막내 아들을 의심했다. 경험 많은 차수호 반장도 마찬가지였다.      


막내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누나와 천지호의 억울한 눈빛을 헤아린 백정현 형사만 예외였다.          



세상은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고정관념이 범인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격이었다.           



범인은 사람들의 그런 마음을 이용했다. 일종의 심리전이었다. 아주 교활하고 사악한 자였다.     


셋이 현관문 앞에 다다랐을 때,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폭우가 시작했다.     


장대비를 뚫고 백정현 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탐정님! 사건 당일 부인이 집 밖으로 나갈 때 창문은 다 닫았다고 진술했습니다. 남편이 추위를 잘 타서 일일이 다 확인했답니다.

집 안에 홀로 남은 피해자가 창문을 열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피해자가 창문을 열지 않았다면 범인이 어떻게 창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죠?

여기 창문은 닫히면 밖에서 열 수 없는 구조입니다. 닫힌 창문을 열려면 창문을 훼손해야 합니다.

그런데 창문을 훼손한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장대비 속에서 유강인의 눈이 번쩍였다. 그가 입을 열었다. 나지막한 소리였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노아의 기적처럼 장대비를 쫙 갈랐다.     


“범인은 바로 … 손님입니다. 집을 방문했다가 여주인 몰래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집 밖으로 나간 겁니다. 여주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게 행동했겠죠.

이후 밖에서 기회를 노렸습니다. 때가 되자, 열린 창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살인죄를 대신 덮어쓸 아들을 유인한 후 피해자를 죽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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