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유강인 탐정님이 왔다고요?”
“그 사람은 유명한 탐정인데 … 여기까지 왔다고요? 왜요?”
“여기 서해안 경찰서랑 친하다네요. 저도 어제 알았습니다.”
“아! 그렇군요.”
1층 거실에 십여 명이 모여있었다. 피해자 가족과 사건 당일 집을 방문한 지인들, 그들을 주시하는 경찰이었다.
피해자 가족은 심통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고 지인들은 작은 목소리로 말을 나눴다.
“저 사람이 유강인이죠?”
“맞아요. TV에서 본 그대로네요.”
“옆에 있는 사람들은 조수 같네요.”
1층으로 내려온 유강인이 모여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백정현 형사가 말했다.
“유탐정님, 한 명도 빠짐없이 탐정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가족과 지인들을 향해 걸어갔다.
뚜벅뚜벅 발소리가 들렸다.
진실을 향한 힘찬 전진이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유강인이 소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매의 눈으로 지인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눈빛이 어느 때보다도 매섭게 빛났다.
섬광처럼 번쩍이는 눈빛을 본 지인들이 깜짝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얼굴에 점점 두려움이 서리기 시작했다.
유강인의 눈빛은 예사 눈빛이 아니었다. 거짓말을 송두리째 불태울 거 같았다.
유강인이 생각했다.
‘지인들 나이가 40대에서 80대 정도군. 나이대가 다양해.’
사건 당일, 피해자 집을 방문한 지인은 총 여섯 명이었다. 모두 인근 바닷가에 살았다.
여섯은 행적은 다음과 같았다.
사건 당일 피해자 집을 방문했다. 피해자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오렌지와 바나나를 나눠 먹었다. 같이 담소를 나누다 부인이 밭일하러 나가자, 모두 집에서 나갔다.
그들은 과거 유명 감독이었던 피해자를 스타로 모시는 팬클럽이었다.
여섯의 체격은 다 달랐다. 키 큰 사람, 키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 마른 사람 등 다양했다.
여섯의 신체 조건을 유심히 살피던 유강인이 부인을 찾았다. 우미희에게 말했다.
“부인께 질문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유탐정님.”
우미희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답했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부군의 몸 상태는 어땠나요? … 몸에 이상이 있었나요?”
“이, 이상이요?”
예상치 못한 질문인 듯 두 우미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마치 호두과자 같았다.
“예를 들면 …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거나, 의식이 불분명한 적이 있었나요?”
“의식이 불분명하다고요?”
우미희가 잠시 생각하다가 아! 하며 답했다.
“갑자기 남편한테 기면증이 생겼어요. 두 달 전부터 그랬어요.”
“기면증이요?”
“네, 가만히 앉아 있으면 급속도로 잠에 빠져들었어요. 하도 이상해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기면증이라고 했어요.”
“기면증이 분명합니까?”
“네! 기면증이라고 했어요.”
기면증이라는 말에 유강인이 쓱 미소를 지었다. 그의 예상대로였다.
기면증은 밤에 충분히 잠을 잤지만, 이와 상관없이 낮에 갑자기 졸음에 빠지는 증세였다.
유강인이 질문을 이었다.
“자녀분들도 피해자가 기면증에 걸린 걸 알고 계셨나요?”
남매가 고개를 흔들었다. 둘 다 모르는 눈치였다. 큰아들 천동일이 말했다.
“저는 처음 듣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낮에 조시는 걸 본 적은 있지만, 그게 기면증인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시내에 살고 있어서 집 사정에 어두웠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만 아버지 집을 방문했습니다.”
딸 천은실도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서울에 살고 있어서 자주 내려오지 못했어요.”
“그렇군요,”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돌려 지인들을 바라봤다. 그가 말했다.
“지인분들은 … 피해자가 기면증에 걸린 걸 알고 계셨나요?”
“네,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알았어요.”
지인들이 동의하며 너도나도 고개를 끄떡였다. 그중에서 최연장자가 답했다. 80대 노인이었다.
“유탐정님, 형수님 말대로 두 달 전부터 형님이 좀 이상했습니다.
가만히 앉아계시면, 바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깊은 잠이었습니다.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형님을 업고 집에 간 적도 있어요.”
유강인이 생각했다.
‘기면증 증세는 부인뿐만 아니라 여기 모인 여섯도 다 알고 있었군.’
그가 생각을 마치고 우미희에게 물었다.
“피해자는 살해 당시 반신욕 중이었습니다. 반신욕을 즐기셨나요?”
우미희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네, 젊은 시절부터 반신욕을 좋아했어요.”
“기면증 증세가 있으면 반신욕 하다가 잠이 들 거 같은데 … 그런 적이 있었나요?”
“네, 그런 적이 많았어요. 반신욕만 하면 잠이 들었어요.”
“그러면 감기에 걸릴 거 같은데 … 말리지 않았나요?”
“네, 말렸죠. 그랬더니 남편이 말했어요. 제가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에 딱 맞춰서 반신욕을 하겠다고 했어요.”
“밭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 일정했나요?”
“네, 일정했습니다. 저는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편입니다.”
“그렇군요.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돌렸다. 지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피해자가 막내아들과 사이가 나쁘다는 걸 다들 알고 계셨나요?”
지인들이 모두 고개를 끄떡였다. 최연장자가 다시 답했다.
“모두 잘 알고 있었습니다. 형님이 틈날 때마다 막내아들을 욕했습니다. 못난 놈이라고 … 홧김에 자기 아들이 아니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일하지 않는다고 경멸했어요. 그런 놈은 필요 없다고 했어요. 재산을 물려주기 싫다고 했어요.”
“맞아요. 호적에서 파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막내아들이 형님을 죽인 거 같아요. 아버지가 자식을 극도로 미워하는데 아들이 그걸 모를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결국, 그렇게 된 거죠. 안타깝게도.”
“맞아, 그런 거 같네.”
“그런데 형님이 좀 심하긴 했어. 막내아들이 돈을 못 버는 거지, 나쁜 사람은 아니잖아.”
“마흔을 훌쩍 넘었는데도 자기 앞가림을 못 하니까 그런 거잖아요. 나 같아도 뭐라고 합니다.”
“그래도 심하긴 했어요. 아들한테 지나치게 모질게 대했어요. 막내아들이 깊은 원한을 품을 만했어요.”
지인 여섯이 막내아들 천지호를 놓고 갑론을박했다.
그 사이, 유강인은 한 명에게 집중했다. 눈빛에서 확신이 보였다.
그가 백정현 형사를 불렀다. 백형사에게 귓속말했다.
“저기 키 작고 머리 작은 남자는 누구죠?”
“저분은 오태환씨입니다. 53세입니다. 어부입니다.”
백형사가 귓속말로 답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어부 오태환은 아담한 남자였다. 165cm 키에 머리가 작았다. 키와 달리 몸은 꽤 탄탄해 보였다. 근력이 상당할 거 같았다. 중년의 나이지만, 누구보다 민첩해 보였다. 네모난 턱에 햇볕에 그을린 검은 얼굴이었다.
오태환이 입술에 침을 묻히고 옆 사람에게 말했다.
“막내아들이 아버지한테 원한을 품은 게 분명해요 …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어요. 언제든지 큰일을 저지를 거 같았어요. 눈에 독기가 있었어요. 분명해요!”
오태환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막내아들이 아버지를 때리려고 한 손을 든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말렸어요. 아버지한테 손찌검하면 안 된다고 타일렀어요. 그랬더니 저를 무섭게 째려봤어요.
속에 엄청난 화가 사무친 게 분명해요.”
오태환이 계속해서 막내아들 천지호를 범인으로 몰아갔다.
유강인이 눈에서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막내아들은 범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를 모함하고 있었다.
10초 후 유강인이 두 눈을 감았다.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건을 정리했다. 피해자 가족과 지인들의 증언을 떠올리고 추리를 정리했다.
1분 동안 사건을 깔끔하게 정리한 후 두 눈을 떴다. 눈에 초점이 딱 맞았다.
포커스!
유강인이 씩 웃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무척 단호한 목소리였다.
“오태환씨!”
“네에?”
이름 석 자가 갑자기 불리자, 오태환이 깜짝 놀랐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강인이 매서운 눈빛으로 오태환을 바라봤다. 그러자 오태환이 움찔했다. 날카로운 바늘로 손톱 밑을 콕 찌른 거 같았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어색한 침묵이 거실을 지배했다.
유강인과 오태환 사이에 심상치 않은 공기가 가득했다.
“음!”
유강인이 한번 헛기침하고 고개를 돌렸다. 현관문과 창문을 살폈다.
현관문 앞에는 형사 한 명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모든 창문은 닫혀 있었다.
밖에는 경찰 다섯이 우비를 입고 돌아다녔다.
내리던 비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유강인의 눈빛이 거침없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거짓말하는 자를 정화의 불길로 확 태울 거 같았다.
유강인이 오태환에게 말했다. 낮으면서도 무거운 목소리였다.
“오태환씨!”
“네, 말씀하세요. 유강인 탐정님.”
“당신이 … 피해자 천일수씨를 죽였나요?”
유강인이 기습적으로 오태환의 정곡을 찔렀다.
“네에? 뭐, 뭐라고요?”
오태환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크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검은자가 흰자를 다 잡아먹었다.
유강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오태환씨 집 근처에 경찰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집을 조사하고 싶습니다. 협조 부탁합니다.”
“조. 조사라고요? 갑자기 뭐를 조사한다는 거죠?”
“옷가지를 확보하고 집 내부와 외부 조사입니다.”
“옷과 집을 조사한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옷이라는 말에 오태환이 두 눈을 오른쪽으로 치켜떴다.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뭔가를 깨달은 듯 오태환의 눈망울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턱을 캐스터네츠처럼 딱딱 떨었다.
오태환이 턱을 심하게 떨자, 피해자 가족과 지인 다섯이 깜짝 놀랐다. 그들이 말했다.
“왜 그러세요?”
“동생,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유탐정님, 태환 동생이 범인이라는 말이에요?”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태환 형님이 범인이라고!”
유강인이 침묵을 지키며 서 있었다.
그는 어제 서해안 바닷가에 도착했다. 그것도 늦은 오후였다. 수사를 시작하고, 만 하루도 지나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범인을 지목했다.
너무나도 빠른 범인 지목이었다.
그 사람은 피해자의 친한 동생이자, 친구인 오태환이었다.
의심이 가득 찬 눈초리가 화살처럼 오태환에게 떨어졌다.
“으으으~!”
오태환이 침을 꿀컥 삼켰다. 그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죄가 없어요. 집을 마음대로 수색하세요. 형님이 돌아가실 때 저는 집에 있었어요.”
“그걸 증명할 사람이 있나요?”
“저는 혼자 살아서 증명할 사람은 …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조사 결과, 소금이 나와도 괜찮나요?”
“소, 소금이라고요?”
소금이라는 말에 오태환이 ‘이게 대체 뭔 소리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이 오른손을 들었다. 검지를 날카로운 창처럼 천장을 찌르며 말했다.
“피해자는 죽기 전 거품 목욕했습니다. 조사 결과, 소금으로 거품을 내는 입욕제를 사용했습니다.
입욕제는 아주 고급 제품이었습니다. 시중에서 파는 제품이 아니었습니다. 그 소금이 욕조에 녹아있었습니다.”
“헉!”
오태환이 허가 찔린 듯 미동도 못 했다.
천장을 찔렀던 유강인의 검지가 이번에는 오태환의 심장을 향했다. 유강인이 우렁차게 말했다.
“범인은 피해자의 친한 지인입니다. 그래서 피해자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반신욕을 하면 깊은 잠에 빠진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걸 이용해 피해자를 손쉽게 죽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헉!”
“세상에!!”
피해자 가족과 지인 다섯이 깜짝 놀랐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범인은 밭일을 나간 부인이 집에 돌아오기 전, 집 안으로 몰래 들어와 욕조로 향했습니다. 깊은 잠에 빠진 피해자를 확인하고 인면수심의 마음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욕조에 푹 담갔습니다.
그때 물이 넘치면서 옷이 젖었을 겁니다. 젖은 옷에 그 소금이 남아있을 겁니다!”
“아이고!”
오태환이 순간 휘청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유강인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멀리 있는 작은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태환씨, 저 창문이 잘 보이죠. 사건 당일, 여기 다섯 분과 함께 피해자 집에 방문했을 때 저 창문을 몰래 열어놨죠? 어서 대답하세요!”
“…….”
오태환이 답을 하지 못했다. 갑자기 심장이 멈춘 듯 꼼짝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