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dolee Oct 17. 2024

13_실종자 박재영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백형사님, 여기 영수증이 있습니다.”


유강인이 백정현 형사에게 영수증을 건넸다.


“알겠습니다.”


백형사가 흰 장갑을 끼고 영수증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백형사가 영수증을 훑어보다가 말했다.


“여기에서 … 매 맞은 사람이 흘린 영수증이겠죠?”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네,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피가 묻은 거로 봐서 피해자의 영수증 같습니다.


여기에서 피해자를 무자비하게 때렸던 게 분명합니다.”


“놈들이 창고를 깨끗이 치웠는데 … 이 영수증을 왜 치우지 못했을까요? 깜빡하고 놓친 걸까요?”


“맞습니다. 여기를 치우다가 놓친 거 같습니다. 급하게 서둘러서 실수한 거 같습니다.

피해자가 흘린 영수증이라면 이건 중요한 단서입니다. 신용카드로 계산했습니다. 누가 계산했는지 어서 알아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백형사가 말을 마치고 창고 밖으로 나갔다.


백형사가 창고 밖으로 나가자, 차수호 반장이 급히 말했다.


“유탐정, 오태환이 천일수씨 살인 사건뿐만 아니라 다른 범죄에도 가담했다는 말이잖아. 오태환의 정체가 대체 뭐지?”


유강인이 잠시 생각했다. 그가 답했다.


“반장님, 제가 볼 때 오태환은 하수인입니다. 누군가한테 지시를 받고 일을 저지른 겁니다.”


“배후가 있다는 말이야?”


“맞습니다. 배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는 팀이 있습니다.”


“뭐? 팀이라고?”


“네, 여러 명이 팀을 이뤄서 천일수씨를 죽이고 이 창고에서 무자비한 폭행도 가한 거 같습니다.”


“잠깐, 오태환이 천일수씨를 죽일 때 동료가 있었다는 말이야?”


“네, 망을 보던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귀가하는 부인이 저 멀리에 보이자, 오태환보고 빨리 나오라고 지시했겠죠. 연락을 받은 오태환은 서둘러 집에서 빠져나왔고요.”


“아, 그럴 수 있겠네.”


“그때, 오태환이 무척 서두르다가 증거인 소금을 창문틀에 남긴 겁니다.”


“그렇군. 그렇게 된 거군. 아주 그럴듯한 추리야. … 사건이 점점 커지고 있어. 조직이 뒤에 있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야. … 놈들의 정체가 뭘까?”


“그건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먼저 오태환을 철저히 조사해야 합니다. 아울러 영수증 주인도 찾아야 합니다.”


“알았어. 오태환이야 체포했으니 조사하는 건 문제없고 영수증 주인만 빨리 찾으면 되겠군. 신용카드로 계산했으니 그 사람을 찾는 건, 식은 죽 먹기야.”


“다행이네요. 이제 나가죠. 과학수사대에서 집뿐만 아니라 창고까지 정밀하게 조사해야 합니다.”


“알았어. 오늘 여러 가지로 수확이 많네. 할 일이 참 많아졌어. 오랜만에 바쁘니까 좋군.”


“역시 반장님은 천상 수사관입니다. 일이 많다고 좋아하시네요. … 다른 사람 같으면 책임지기 싫고 귀찮아서 싫어할 텐데 ….”


“다 강인이한테 배운 거야. 강인이가 형사 시절 열성적으로 범인을 쫓아다녔잖아. 내가 파트너였으니 나도 그렇게 된 거지. 근묵자흑(近墨者黑)의 반대지.”


“근묵자흑의 반대가 뭐죠?”


유강인의 질문에 차수호 반장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실실 웃으며 답했다.


“그건 … 모르겠어. 나중에 알아볼게. 어서 나가자고. 내가 괜히 유식한 척했네.” 


“모를 수도 있죠, 반장님.”


유강인과 차수호 반장이 말을 마치고 창고 문으로 향했다.


밖은 분주했다. 과학수사대 대원들이 오태환 집 일대를 철저히 수색하고 있었다.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집을 겹겹이 둘러쌌다. 엄중함을 더 했다. 


경찰이 곳곳에 보이자, 동네 주민이 오태환 집으로 몰려왔다. 그들이 무척 걱정 어린 표정으로 사태를 지켜봤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저 집은 혼자 사는 오씨네잖아.”


“오씨가 큰일을 저질렀대요.”


“큰일이라고? 무슨 짓을 저질렀는데? 그 사람은 조용한 사람인데 일을 저질렀다고 이거 참 이상하네.”


웅성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유강인이 그 소리를 유심히 들었다. 오태환이 평상시 조용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렇군. 오태환은 평상시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었군.”


좋은 정보를 얻었다는 듯 유강인이 씩 웃었다. 


“탐정님!”


유강인을 부르는 황정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탐정단 밴 앞에 조수 둘이 서 있었다. 조수 둘이 손을 흔들었다. 


유강인이 조수 둘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차 앞에 다다르자, 황수지에게 말했다.


“어서 서해안 경찰서로 가자고. 오태환을 조사해야 해.”


“네, 알겠습니다. 어서 차에 타세요.”


황수지가 낭랑한 목소리로 답했다.


“탐정님, 창고에서 큰일이 있었던 거에요?”


황정수의 말에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차에 시동이 걸렸다. 곧장 서해안 경찰서로 향했다. 


차수호 반장은 현장을 지휘해야 했다. 조사가 끝나면 합류하기로 했다.     



**     



강력반 조사실에 오태환이 홀로 앉아 있었다. 쫙 벌린 손바닥으로 머리를 감싸고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흐릿한 불빛 속에서 두 손이 떨렸다. 


자기 잘못을 반성하는지 아니면 운이 없었다고 낙담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괴로워하는 건 분명했다.


그때 조사실 문이 조용히 열렸다. 유강인이 조사실 안으로 들어왔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리자, 오태환이 두 손을 내리고 고개를 들었다. 앞에 유강인이 태산처럼 서 있었다. 마치 새파란 얼굴의 저승사자 같았다. 그것도 성이 잔뜩 난!


유강인이 오태환을 똑바로 바라봤다. 오태환은 한 아버지를 죽이고 그 아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다. 아직 혐의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농후했다.


유강인이 끓어오르는 분을 꾹 참았다. 팔팔 끓어오르는 물에 찬물을 한 바가지 붓는 거 같았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면 언제나 냉정한 이성이 필요했다. 그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태환씨, 탐정 유강인입니다. 이제부터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협조해 주세요.”


그때 오태환의 흰자가 번뜩였다. 섬뜩한 살기였다. 당장 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유강인을 죽이고 싶은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경찰에 잡힌 피의자였다. 


오태환이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그리고 입을 꽉 다물었다. 협조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제스쳐였다.


“음~!” 


유강인의 눈빛이 번쩍였다. 오태환의 의사를 알아챘다. 바로 묵비권 행사였다. 유강인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묵비권을 행사하는 겁니까?”


“…….”


오태환이 답을 하지 않았다.


유강인이 그 뻔뻔함에 혀를 내둘렀다. 한편으로는 참 대단하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두 남자가 테이블 앞에 두고 대치했다. 한쪽을 입을 열어야 했고 다른 쪽은 입을 꾹 다물어야 했다.


유강인이 냉정한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오태환씨, 묵비권을 행사하는 겁니까?”


“…….”


오태환이 여전히 답하지 않았다.


유강인이 포기하지 않고 질문을 이었다.


“피해자 천일수씨와 친한 사이라 들었습니다. 피해자를 죽일만한 이유가 있었나요?”


“…….”


“오태환씨!”


“…….”


오태환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유강인 앞에서 절대 입을 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한 거 같았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묵비권을 행사하는 피의자 앞에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변호사가 필요하면 변호사를 부르세요.”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유강인의 뒷모습을 무섭게 노려보던 오태환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거 같았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궁리하는 거 같았다. 그러다 고개를 번쩍 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소금만 없으면 돼! … 집에 소금만 없으면 되는 거야!!”


그렇게 오태환은 … 요행을 바랐다.


조사실에서 나온 유강인이 백정현 형사를 찾았다. 백형사는 영수증 주인을 찾고 있었다. 그가 서류를 들고 유강인에게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보고 유강인이 급히 말했다.


“백형사님, 영수증 주인을 찾았나요?”


“네, 찾았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죠?”


“서울에 사는 사람입니다.”


“서울이라고요? 여기 사람이 아니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 사람 이름이 뭐죠?”


“박재영이라는 사람입니다.”


“박재영! … 그 사람한테 연락했나요?”


“핸드폰으로 연락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인한테 연락했습니다.”


“부인이 전화를 받았나요?”


“네, 전화를 받았습니다. 부인이 말하길 어제 11월 13일 아침 일찍, 남편이 전화를 받고 밖에 나갔는데 그때부터 연락이 끊어졌답니다.”


“정확하게 몇 시쯤에 집에서 나갔죠?”


“아침 6시 25분쯤에 집에서 나갔답니다. 6시 10쯤에 전화를 받고 급한 일이 생겼다면 남편이 무척 서둘렀답니다. 

남편이 나간 다음, 불안해서 30분 뒤에 전화 걸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답니다. 지금까지 연락 두절 상태입니다.”


“… 그러면 아침 6시 25분에서 30분 뒤인 55분 사이에 납치된 거군요.” 


“납치요?”


“그렇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이 박재영씨를 납치해서 오태환의 창고로 간 겁니다. 창고가 놈들의 아지트인 게 분명합니다. 이후 장소를 옮긴 거고요.”


“아, 그런 거 군요.”


“백형사님, 오태환 집 근처 CCTV를 분석하고 있나요?”


“현재 분석 중입니다. 동네 입구에 CCTV가 있습니다. 들어오고 나가는 차량이 다 찍혔습니다.”


“무엇보다 어제 들어온 차량을 조사해야 합니다. 이른 아침 서울에서 박재영씨를 납치해서 서해안 바닷가 오태환 창고까지 갔으니 … 오전 9시 이후에 들어온 차를 조사하면 될 거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놈들이 창고를 비운 건 아마도 어제, 저녁일 겁니다. 오태환이 소환 대상자에 오르자, 바로 움직였을 겁니다.”


“다행히 시간대가 많이 좁혀졌네요.”


“어서 움직여주세요. 현재 납치된 사람의 상태를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위험할 수 있습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백정현 형사가 서둘러 답하고 급히 움직였다.


일이 다급하게 돌아갔다. 서울에서 납치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 죽었을 수도 있었고 모진 고문을 당했지만, 다행히 살아있을 수도 있었다.


유력한 피해자로 피 묻은 영수증의 주인인 박재영이 떠올랐다. 그는 현재 실종상태였다.


“유탐정, 이제 왔어.”


차수호 반장이 강력반 출입문 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유강인이 차반장에게 말했다.


“반장님, 오태환이 묵비권 행사 중입니다.”


“뭐라고? 묵비권을 행사한다고?”


차수호 반장이 괘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곧바로 조사실로 향했다. 오태환의 입을 열어야 했다.


15분 후


조사실에 들어갔던 차반장이 별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왔다. 그도 묵비권을 행사하는 오태환의 입을 열 수 없었다. 묵비권은 정당한 방어력이었다. 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참 독한 놈이네. 아주 뻔뻔한 놈이야. 얼굴에 1m 철판을 깔았어. 입은 지퍼로 닫았고.”


차수호 반장이 투덜거렸다. 


유강인은 창가 앞에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자판기 커피였다. 달콤하면서도 약간 느끼한 맛이었다. 서울청 자판기 커피보다 별로인 듯 반쯤 마시고 커피잔을 내려놨다.


차반장이 유강인에게 걸어와 말했다.


“유탐정, 오태환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어. 상대해 보니 참 독한 자야. 그러니 천일수씨를 죽이고 그 아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웠겠지. 그자의 입을 열 방법이 없을까?”


유강인이 그건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반장님, 현재 그자의 입을 열 방법은 없습니다. 집에서 소금이 나오면 바로 검찰로 송치하세요.

현재 무엇보다 급한 일은 납치된 사람을 찾는 겁니다. 실종자를 찾는데 모든 수사력을 총동원해야 합니다. CCTV 조사가 최우선입니다. CCTV에서 단서를 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옳은 말이야. 양을 잡아먹은 늑대는 잡았으니 그건 됐고, 실종된 토끼를 어서 찾아야지. 

CCTV가 마을 입구에 있어서 이동하는 차량을 다 찍었어. 정말 다행이야.”


“맞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돌아가는 정황상, 일을 꾸민 자들이 그리 치밀한 거 같지는 않습니다. 

제가 등장하자, 허둥대는 게 눈에 보입니다. 그 바람에 바닥에 떨어진 영수증도 챙기지 않았습니다. 분명 허점이 많습니다. 그 허점을 이용해 놈들을 잡겠습니다.”


“그래, 그래, 참 잘됐네. 어설픈 놈들이라면 다행이지. 우리 유탐정이라면, 그런 놈들은 아주 쉽게 잡을 테니.”


“과찬의 말씀입니다. 제힘만으로 사건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 서해안 경찰서 형사님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 우리 형사들이 발바닥에 탁구공만한 물집이 나도록 뛰어다닐 테니.”


유강인이 씩 웃었다. 그렇게 자신감을 보였다. 놈들을 잡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 이 모든 일을 사주한 자를 찾는 겁니다. 그자가 진짜 범인입니다.”


“그래, 맞는 말이야. 그자를 찾아야 해. 이 일을 사주한 자를! 분명 돈이나 권력이 꽤 있는 자겠지.”

차수호 반장이 지당한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이전 13화 12_피 묻은 영수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