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dolee Oct 18. 2024

14_검은 모자 남자와 용의 차량 추적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었다.


서늘한 밤기운에 사람들이 너도나도 옷깃을 동여맸다. 전국에 가을비가 내렸다. 비가 온 후 온도가 급강하했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TV에서 강추위를 예고했다. 올해는 겨울이 빨리 찾아올 거라고 앞다투어 방송했다.


느닷없는 강추위가 몰려오자, 거리가 한산했다. 그 거리를 한 남자가 거닐었다. 중간 키에 근육질 몸이었다. 한기를 느낀 듯 몸을 움츠리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가 중얼거렸다.


“… 으으으, 춥기는 춥구나. 이제는 옷을 한 겹 더 입어야겠는걸.”


남자는 백두성 자서전 3권 작가 지인태였다. 미라클 북스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지인태는 손이 빠르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별명이 퀵(quick)이었다. 전성기 때는 300페이지 분량 자서전을 단 며칠 만에 완성했다. 


그때 부인이 둘째 아이를 낳아서 돈이 급했다. 그래서 손이 어느 때보다 날아다녔다. 


지금은 나이를 먹어서 다소 느려졌지만, 여전히 대단한 솜씨를 자랑했다. 업계에서 그만큼 손이 빠른 사람은 없었다. 양질이 글을 누구보다도 빨리 썼다. 


지인태가 길을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몸을 녹여주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으스스한데 커피나 먹고 갈까?’


지인태가 몸을 떨었다. 오늘 날씨를 예상하지 못한 듯 얇은 셔츠에 얇은 잠바만 입었다. 칼바람이 불어오자, 찬바람이 살갗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녔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저 앞에 편의점이 있었다. 유명한 편의점인 ‘월드 인아웃 24시’ 편의점이었다.


지인태가 편의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에 매달린 종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진열대로 급히 걸어가더니 따뜻한 캔 커피 하나를 골랐다. 


커피값을 계산하고 편의점 안 테이블로 향했다. 의자에 편히 앉고 커피를 쭉 들이켰다. 


따뜻한 커피가 위장으로 들어가자, 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 이제 살 거 같다.”


그렇게 지인태가 편의점 안에서 몸을 녹이고 있을 때, 다시 종소리가 들렸다. 


덩치가 큰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색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였다. 옷도 온통 검은색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곰돌이 젤리를 계산하더니 지인태 옆자리에 털썩하며 앉았다.


“응?”


거구의 남자가 옆에 앉자, 지인태가 불편한 듯 남자를 바라봤다. 


“흐흐흐! 안녕하세요.”


검은색 모자를 쓴 남자가 지인태를 보고 씩 웃었다. 코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했다. 그가 지인태에게 말했다.


“아저씨, 젤리 하나 드시래요.”


“네에?”


갑작스러운 말에 지인태가 당황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거 참 맛있는데 … 한번 드셔보세요. 유명한 곰돌이 젤리에요. 빨간색 맛이 최고예요.”


“괜찮습니다. 저는 단 거 싫어합니다.”


“아, 그렇군요. 이거 죄송하네요. 실례를 범했네요. 흐흐흐!”


검은색 모자를 쓴 남자가 약간 무안한 표정을 지었다. 곰돌이 젤리 다섯 개를 입에 넣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바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지인태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보는 남자가 갑자기 곰돌이 젤리를 먹으라고 권했다. 부담스러운 요구였다.


“별사람도 다 있군.”


지인태가 고개를 흔들었다.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편의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집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7분만 더 걸으면 집에 갈 수 있었다. 그의 집은 이 근처에 있는 고급 아파트였다.


아파트 단지를 따라서 울창한 가로수길이 있었다. 가로수길 곳곳에 가로등이 있었다. 가로등이 인도를 은은하게 밝혔다. 오래된 가로등이라 밝지 않았지만, 걷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날이 컴컴해서 그런지 인도에 사람이 없었다. 인도 옆 4차선 도로에 차들만 간간이 다닐 뿐이었다.


그렇게 지인태가 홀로 걷고 있을 때,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뭔가가 이상한 듯 고개를 좌우로 돌리더니 중얼거렸다.


“이거 느낌이 좀 이상한데, 누가 쫓아오는 거 같은데 …. 발소리도 들린 거 같아.”


잠시 서 있던 지인태가 긴장감을 느낀 듯 침을 꿀컥 삼켰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응?”


뭔가가 가로수 쪽 휙 움직이더니 몸을 숨겼다. 어두운 밤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움직인 게 분명했다. 길고양이는 아니었다. 길고양이가 저렇게 클 리 없었다.


“아니, 저게 뭐야?”


지인태가 깜짝 놀랐다. 그의 예감이 딱 들어맞았다. 언제나 그렇듯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그가 놀란 가슴을 달래고 잠시 서 있었다. 누군가가 다급하게 숨은 커다란 가로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1분 후


가로수 뒤에서 뭔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 모습이 드러났다. 사람이 맞았다. 바지춤을 추스르더니 태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저 사람은?”


지인태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커다란 가로수에서 나온 사람은 검은색 모자를 쓴 남자였다. 편의점에서 곰돌이 젤리를 다짜고짜 권했던 사람이었다. 


그 남자가 지인태를 향해서 성큼 걸어왔다. 덩치가 무척 커서 한눈에 보기에도 위압적이었다. 


지금은 어두운 밤이었다. 그 위세가 한층 대단했다. 


지인태도 운동을 많이 해서 체격이 좋았지만, 검은색 모자를 쓴 남자랑 비할 바가 아니었다.


“흐흐흐!”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렸다. 검은색 모자를 쓴 남자가 지인태 코앞까지 걸어왔다. 그가 아주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지인태에게 말을 거는 거 같았다.


“참 시원하네요, 일을 봐서 ….”


흘러가는 말소리가 함께 두 남자가 교차했다. 한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뭐, 뭐야?”


지인태가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 모자를 쓴 남자를 찾았다. 그 남자는 저 멀리 보이는 깊은 어둠을 향해 걸어갔다.


“저 사람이 … 노상 방뇨를 했다는 뜻인가? 가로수 뒤에서?”


지인태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척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참, 어이가 없군. 이상한 사람이야. 몰상식하기도 하고.”


지인태가 고개를 흔들었다. 검은색 모자를 쓴 남자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깊은 어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칼바람이 거리에 가득했다.


지인태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까 일은 해프닝이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렸다. 5분 후 아파트 정문 앞에 도착했다. 피곤한 듯 어깨를 풀었다. 글 작가는 타이핑을 주로 하는 직업이라 어깨가 아프기 마련이었다.


뚜벅뚜벅 발소리가 들렸다.


지인태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한 사람이 아파트 정문 앞으로 걸어왔다.


바로 검은색 모자를 쓴 남자였다. 


한 손에 곰돌이 젤리 봉지를 들고 있었다. 봉지를 입에 털어 넣더니 미소를 지었다. 입안에 젤리가 가득했다.

젤리를 맛있게 우걱우걱 씹으며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 걸었다.


신호가 가자,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지인태가 집에 들어갔나?”


“네,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알았다. 계속 감시해.”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검은색 모자를 쓴 남자가 전화를 끊더니 품에서 곰돌이 젤리 봉지 하나를 더 꺼냈다. 봉지를 북 뜯더니 젤리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가 중얼거렸다.


“지인태, 곰돌이 젤리가 제일 맛있는데 그걸 모르는군. 그중에서도 빨간색 맛이 예술이야. 참 어리석네, 손만 빠르면 뭐해? 이렇게 맛있는 걸 먹지도 못하는데. 흐흐흐!”


검은색 모자를 쓴 남자가 비열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한편 탐정단 밴과 수사팀 차량은 서울로 향했다. 


마을 입구 CCTV 분석 중 의심 가는 차량을 발견했다. 검은색 밴이었다. 조사 결과, 지역 주민의 차가 아니었다.


유강인이 검은색 밴에 주목했다. 수사팀과 회의 끝에 결정을 내렸다. 이 차량을 추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삐리릭!


핸드폰 벨 소리가 크게 울렸다. 유강인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발신자는 CCTV 통제 센터였다. 통제 센터에서 검은색 밴을 계속 추적 중이었다.


전화를 건 통제센터장이 말했다.


“유탐정님, 검은색 밴이 어젯밤 남한산성 쪽으로 향했습니다. 산 아래 꽃가재 마을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꽃가재 마을이라고요?”


“네, 산 아래 한적한 곳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마을 진입로 차가 들어갔습니다.”


“마을 밖으로 나가는 길이 있나요?”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들어왔던 곳으로 다시 나가야 합니다.”


“차가 마을 밖으로 나갔나요?”


“아직 나가지 않았습니다.”


“알겠습니다. 그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핸들을 잡은 황수지에게 말했다.


“수지, 남한산성 아래에 꽃가재 마을이 있어. 검은색 밴이 꽃가재 마을로 들어갔어. 거기로 가자고.”


“알겠습니다.”


탐정단 밴이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차가 속도를 높였을 때,


삐리릭!


다시 벨소리가 크게 들렸다. 유강인이 급히 전화 받았다. CCTV 통제 센터의 전화였다.


“네, 유강인입니다.”


“유탐정님, 검은색 차량이 마을에서 나갔습니다.”


“아! 그래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죠?”


“서울 방향입니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서울청 강력범죄수사대 이호식 팀장님한테 지원요청을 하세요. 꽃가재 마을은 서울청에 맡기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는 계속 검은색 밴을 따라가겠습니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죠?”


“342번 국도를 탔습니다. 송파구 탄천 방향입니다.”


“알겠습니다. 그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탐정단 밴과 수사팀 차량이 계속 검은색 밴을 뒤쫓았다. 


용의 차량이 탄천을 따라서 이동하다가 수서역 쪽으로 이동했다. 


“용의 차량이 강남구에 접어들었습니다. 코엑스 방향입니다.”


“그렇군요.”


“용의 차량이 강남 사거리를 달리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검은색 밴이 송파구 탄천 도로를 달리다가 강남구로 접어들었다. 강남 사거리로 들어가더니 번화가로 내달렸다.


번화가는 네온사인으로 휘황찬란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젊은 남녀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술집과 클럽으로 향했다. 젊음의 열기가 어느 때보다 후끈 달아올랐다. 날이 꽤 추웠지만, 젊음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     



운전하던 황수지가 말했다.


“탐정님, 여기는 대표적인 강남 유흥가입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돌려 차창으로 밖을 살폈다. 거리에 사람과 차가 붐볐다. 


술집 간판이 어느 때보다 빛을 발했다. 어서 빨리 안으로 들어오라고, 와서 술을 즐기라고 권하는 거 같았다. 편의점도 마찬가지였다. 숙취 해소제를 찾는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저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유명한 클럽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었다. 


날이 쌀쌀했지만, 짧은 옷을 입은 여자들이 자주 보였다. 자극적인 화장품 냄새와 매혹적인 향수 냄새가 거리에 진동했다.


휘황찬란하게 붐비는 거리를 유심히 살피던 유강인이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검은색 밴이 유흥가를 달리고 있었다. 이곳은 조폭이나 불법적인 단체가 숨어있을 수 있었다.


삐리릭!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유강인이 급히 전화 받았다.


“유탐정님, 검은색 밴이 술집 주차장 들어갔습니다. 차에서 남성 세 명이 내렸습니다. 모두 건장한 체격입니다. 검은색 정장을 입었습니다.”


“어느 술집이죠? 술집 이름을 말해주세요.”


“포레스트 듀입니다. 주소는 XXX길 25입니다.”


“알겠습니다. 그곳으로 바로 가겠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황수지에게 급히 말했다.


“포레스트 듀 술집으로 가야 해. 주소는 XXX길 25야!”


“알겠습니다.”


황수지가 지름길을 살폈다. 차가 곧장 ‘포레스트 듀’ 술집으로 향했다.

이전 14화 13_실종자 박재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