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포레스트 듀’ 술집 주차장에 차 두 대가 천천히 들어왔다. 탐정단 밴과 백정현 형사 차였다.
앞에 보이는 술집은 옆으로 길쭉한 2층 건물이었다. 그 규모가 상당했다. 층마다 손님 100여 명을 받을 수 있었다.
술집 앞 주차장도 꽤 넓었다. 차 40대 차가 주차할 수 있었다. 한창 장사할 때라 주차장에 차가 많았다. 빈자리가 많지 않았다.
차 문이 덜컹 열리고 탐정단과 서해안 경찰서 형사 두 명이 내렸다. 백정현 형사와 이형사였다.
유강인이 백형사를 불렀다.
“백형사님, 서울청 형사들은 언제 도착하죠?”
“연락했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
“누가 오기로 했죠?”
“정찬우 형사님이 오실 겁니다.”
“좋습니다. 먼저 검은색 밴을 찾읍시다.”
“네, 알겠습니다. 이형사! 어서 움직여. 검은색 밴을 찾아.”
“알겠습니다.”
이형사가 대답하고 급히 움직였다.
이형사는 천일수 살인 사건 현장검증에 참여했던 형사였다. 하늘 같은 차수호 반장의 머리를 물속에 푹 담갔던 젊은 형사였다.
20대 후반 나이에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었다. 길쭉한 얼굴에 코가 길었다.
탐정단과 수사팀이 검은색 밴을 찾기 시작했다.
1분 후, 이형사가 크게 외쳤다.
“차가 여기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백형사가 서둘러 입술에 오른손 검지를 갖다 댔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용히 말해.”
“아, 그렇군요. 제가 실수했습니다.”
유강인이 서둘러 이형사를 향해 걸어갔다. 이형사 옆에 검은색 밴이 있었다. 차 번호를 확인한 결과, 용의 차량이 맞았다.
“맞는군요.”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차 안을 살폈다. 차 안에 특별한 건 없었다. 평범한 밴이었다.
그가 트렁크 쪽으로 걸어갔다. 트렁크를 잠시 노려보다가 인기척이 있는지 귀를 갖다 댔다. 특별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백정현 형사가 말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세 명이 술집에 들어갔습니다. 그자들을 조사해야 합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습니다. 놈들은 폭력 조직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죠?”
“지원팀이 도착하면 움직입시다. 그때까지 문을 지킵시다.”
“알겠습니다. 좀 기다리죠. 저희가 문 앞을 지키겠습니다. 탐정님은 차로 돌아가서 쉬세요.”
“감사합니다.”
유강인이 탐정단 밴으로 돌아갔다. 차 앞에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종잡을 수 없었다. 허탕을 칠 수도 있었고 박재영을 납치한 자들을 잡을 수도 있었다.
모든 건 술집에 들어가야 알 수 있었다.
*
서울청 지원팀이 도착했다. 지원팀 책임자인 정찬우 형사가 유강인을 찾았다.
“유강인 탐정님!”
“정형사!”
유강인이 정형사에게 걸어갔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형사, 술집을 포위해야 해.”
“알겠습니다. 철저히 봉쇄하겠습니다.”
“어서 움직여.”
“네!”
유강인의 지시에 따라 서울청 형사들이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15명이었다. 이호식 팀장이 급히 엄선한 정예 요원이었다.
형사들이 술집 주변을 빙 둘러쌌다. 술집이 커서 형사들이 바짝 붙어있을 수 없었다. 그 간격이 꽤 넓었다.
용의자가 그 허점을 노릴 수 있었다. 이에 형사들이 바짝 긴장했다. 도망치는 자가 있으면 언제라도 그곳으로 달려가야 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유강인이 백정현 형사에게 말했다.
“백형사님, 이형사님, 저랑 같이 술집으로 들어갑시다.”
“저는요?”
황정수가 유강인에게 물었다. 유강인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조수님들을 여기에서 기다려. 우리 셋이 안으로 들어갈 테니.”
“아닙니다. 저도 들어가겠습니다. 바늘이 가는데 실이 따라가야죠. 제가 보필하겠습니다. 저 말고 누가 탐정님을 보필하겠습니까? 선임 조수 황정수를 믿어주세요!”
황정수가 정색하고 답했다.
이에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말했다.
“그래, 정수도 같이 들어가자.”
유강인이 황정수 옆에 있는 황수지를 보고 말을 이었다.
“수지는 안돼. 정형사 옆에 꼭 붙어있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어. 큰 소란이 생길 수도 있어.”
황수지가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뭔가를 꺼냈다. 소형 위치추적기였다. 그녀가 말했다.
“탐정님, 선임 조수님, 위치추적기를 달고 들어가세요. 제가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게요.”
“그래, 알았어.”
유강인과 황정수가 위치추적기를 받았다. 위치추적기를 품에 달고 걸음을 옮겼다.
바로 앞에 술집이 있었다. 벽은 투명한 유리창이었다. 그래서 안이 훤히 보였다. 손님들이 많아 북적였다.
맥주잔을 들고 술을 들이붓는 사람들 천지였다. 나머지는 노가리를 안주 삼아 질겅질겅 씹었다. 딱 봐도 노가리 안주가 인기인 거 같았다.
고소한 냄새가 물씬 풍겼다. 노가리를 구운 냄새였다. 군침이 도는 냄새였다. 사람들이 붐비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노가리 냄새를 맡고 황정수가 환하게 웃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노가리 굽는 냄새가 참 예술인데. 언제 한번 와 봐야겠는걸, 흐흐흐!”
유강인이 고개를 들었다. 술집 문 위에 있는 간판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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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듀 Forest Dew 맥주와 맛좋은 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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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듀라면 … 숲속 이슬이라는 뜻이군. 맥주가 숲속 이슬인가? 맥주가 이슬이라고?”
유강인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자, 나머지 셋도 술집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긴장된 순간이었다.
지금 정체불명의 용의자를 쫓아 서해안 바닷가에서 서울 강남 유흥가까지 쫓아왔다. 그 노고가 헛되지 않아야 했다.
“그럼, 문을 열겠습니다.”
백정현 형사가 말을 마치고 술집 문을 활짝 열었다.
문이 열리자, 술집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술 냄새, 안주 냄새가 진동했다. 한바탕 술잔치가 벌어졌다. 대학 축제가 끝나자, 뒤풀이하는 거 같았다.
“하하하!”
“김대리가 이번에 내는 거야.”
“선생님, 술을 잘 드시네요. 자 안주 드세요.”
“여기 맥주 피쳐 추가요!”
“노가리 열 개요!”
“이러다 노가리 동 나가겠어. 그만 먹어.”
“아니야! 오늘 이 집 노가리를 끝장내겠어.”
손님들이 너도나도 질세라 떠들어댔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즐기는 거 같았다. 야구장에서 목청이 터져라! 응원하는 거 같았다.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오자, 종업원들이 노가리 접시와 맥주잔을 들고 분주히 움직였다.
흡사 난리 통 같았다. 강남의 노가리를 다 먹어치우고 술을 다 마실 기세였다.
“음.”
유강인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 셋을 찾았다.
백정현 형사, 이형사, 황정수도 마찬가지였다. 셋이 눈을 크게 뜨고 용의자를 찾았다.
“손님, 여기로 오세요. 여기에 자리가 있습니다. 네 명이시죠?”
여종업원이 무척 친절한 목소리로 유강인에게 말했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절 따라오세요.”
유강인이 종업원을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주변을 매의 눈으로 살폈다.
빈 테이블은 딱 두 개였다. 손님 90명이 1층에 있었다.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서 유강인과 황정수, 형사들이 자리에 앉았다.
“여기 메뉴판이 있습니다. 메뉴를 결정하시면 벨을 눌러주세요.”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답을 하고 메뉴판을 살폈다. 메뉴판을 보면서 술집을 계속 살폈다. 한동안 살폈지만, 검은색 정장을 입은 세 명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
유강인이 의심의 눈초리를 화장실로 보냈다. 화장실은 그가 앉은 자리에서 10m 거리였다.
“이자들이 화장실에 들어갔나?”
유강인의 말에 황정수가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탐정님, 그럴 수 있어요. 맥주를 많이 마시면 화장실에 자주 들락거려요. 저도 그런걸요.”
“맞습니다.”
이형사도 동의했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짓고 화장실 입구를 면밀하게 살필 때,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처음에 나온 사람은 20대 여성이었다.
유강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뒤이어 캐쥬얼 차림의 30대 남성이 나왔다.
유강인이 이건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검은색 정장의 남자가 나왔다. 40대로 보였다.
순간, 유강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30초 후,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30대로 보였다.
“저 둘!”
유강인이 화장실에서 나온 둘을 주시했다. 모두 검은색 정장을 입었다.
남자 둘이 창가 자리로 향했다.
근처 테이블에 한 남자가 있었다. 그자도 검은색 정장을 입었다. 30대로 보였다
둘이 그 자리에 앉자, 검은색 정장을 입은 세 명이 완성됐다. 40대 남자 한 명에 30대 남자 둘이었다.
유강인이 그 셋을 자세히 살폈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드디어 세 명이군, 그것도 검은색 정장을 입은 ….”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이를 악물었다.
그 셋은 CCTV 통제센터에서 말한 용의자들 같았다.
백정현 형사도 남자 셋을 확인하고 유강인에게 말했다.
“저들일까요? 유탐정님.”
유강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들이 유력합니다. 일단 확인해야 합니다. 차 트렁크도 열어야 하고요.”
“알겠습니다. 움직이겠습니다. 이형사, 일어나자고.”
“네, 선배님.”
백형사와 이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이 긴장한 듯 한 번 헛기침했다.
이제 형사들이 움직여야 했다. 둘이 남자 셋을 향해 걸어갔다. 신분을 밝히고 협조를 구해야 했다.
여기는 소란스러운 술집이었다. 모든 일을 조용히 처리하는 게 가장 좋았다.
창가 자리에 앉은 남자 셋이 맥주를 들이켰다. 문제의 인물들이었다. 그중에서 한 명이 말했다.
“야, 너는 운전해야 하는데, 지금 술을 마셔?”
“팀장님, 운전은 김대리한테 맡기면 됩니다.”
“김대리가 오기로 했어.”
“네, 그렇습니다.”
“그래, 잘됐네. 너도 진탕 마셔. 그동안 운전하느라 수고했으니 많이 마셔.”
“흐흐흐, 팀장님 감사합니다.”
“저 … 팀장님, 서울에서 유강인이 왔는데 별일은 없겠죠?”
셋 중 팀장이라는 자가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40대 남자로 최연장자였다.
“야! 그자가 뭘 할 수 있는데 … 모든 건 깔끔히 처리했잖아. 막내아들이 정황상 범인인 거는 확실하잖아. 결국, 재판까지 갈 거야. 재판 가서 그 결과가 증거불충분으로 나오면 풀려나오는 거고 … 그건 우리가 알바아니야.”
“흐흐흐, 그렇겠죠.”
남자 셋이 껄껄 웃었다. 그렇게 시원한 맥주와 고소한 노가리를 신이 나게 즐기고 있을 때 ….
술집의 소음을 꿰뚫고 발소리가 들렸다. 심상치 않은 발소리였다.
“응?”
“뭐야 이거?”
남자 셋이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했는지 고개를 돌렸다. 앞에 남자 둘이 서 있었다. 바로 백정현 형사와 이형사였다.
셋의 대화를 엿들은 듯 백형사가 씩 웃었다. 그가 당당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서해안 경찰서 강력반 백정현 형사입니다.
천일수씨 살인 사건과 박재영씨 실종 사건으로 조사할 게 있습니다. 협조 부탁합니다.”
“네에? 지, 지금 뭐라고 했죠?”
“형사라고 한 거 같은데요.”
“서해안 경찰서라고 했어요.”
남자 셋이 깜짝 놀랐다. 셋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떨기 시작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듯했다. 팀장이 서둘러 말했다.
“대체 무슨 소리 하는지 … 통 못 알아듣겠습니다.”
무척 뻔뻔한 말이었다.
백정현 형사가 더욱 큰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겠습니다. 저희는 서해안 경찰서 강력반 형사들입니다. 여러분한테 협조를 구하는 겁니다.”
“혀, 협조라고요? 서해안이라고 하셨죠? 우리는 서울 사람들입니다. 서해안 쪽은 가본 적도 없어요!”
팀장의 항변에 백형사가 여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CCTV를 확인한 결과, 여러분은 어제 아침 서해안 남동 마을에 도착했다가 저녁에 떠나셨습니다.
이후 남한산성 아래 꽃가재 마을에서 머무셨고 ….”
“헉!”
“이런!!”
백형사의 말에 남자 셋이 깜짝 놀랐다. 그들의 동선을 경찰에서 꿰뚫고 있었다. 셋이 서로 쳐다봤다. 눈빛을 재빨리 교환했다. 눈빛으로 뭔가를 전달한 듯했다.
10초 후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말했다.
“형사님들이 뭔가를 단단히 오해하신 거 같은데 ….”
팀장이 말을 흐렸다. 눈알을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백정현 형사가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긴장감이 점점 고조됐을 때 …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술집 문이 활짝 열렸다. 남자 셋이 술집 안으로 들어왔다. 건장한 체격이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었다.
팀장이 술집 안으로 들어온 남자 셋을 보고 두 눈이 커졌다.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술집에 들어온 남자 셋이 창가 자리를 살폈다. 그러다 뭔가를 눈치를 챈 듯 움찔했다.
그 모습을 본 유강인이 아차! 했다.
“아! 패거리가 또 있구나!”
상황을 재빨리 파악한 유강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황급히 백형사를 향해 달려갔을 때
바로 그때! 큰 소리가 술집에서 울려 퍼졌다.
“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