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유강인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들불처럼 확 타오르는 분노를 꿀컥 삼켰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 천일수 살인 사건처럼 무도한 일이 또 벌어지고 말았어. 이 일을 저지른 놈들은 분명 사람의 생명을 벌레처럼 하찮게 여기는 게 분명해.
아버지를 죽이고 아들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우더니 이번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을 무참하게 때렸어. 죽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야.
이놈들의 정체가 뭐가 댔든 용서할 수 없어. 한마디로 벌레보다도 못한 놈들이야.’
유강인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목소리에 단호함이 넘쳤다.
“좋다! 이 무도하고 잔인한 놈들을 반드시 잡겠다. 그래서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맞습니다!”
“지당한 말입니다!”
형사들이 유강인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유강인이 백정현 형사에게 말했다.
“구급차는 오고 있나요?”
“네, 곧 올 겁니다. 아, 저기 보이네요.”
구급차 사이렌이 번쩍였다. 검은색 밴을 향해 신속하게 달려왔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이분 지문 검사를 하세요. 박재영씨가 맞으면 부인께 즉각 연락하세요. 부인이 남편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어서 서두르세요.”
“네, 알겠습니다.”
백형사가 답을 하고 핸드폰을 들었다. 곧 도착할 과학수사대에 연락했다. 지문 검사가 필요하다고 알렸다.
**
삐리릭!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헉!”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중년 여자가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들었다.
그녀는 민주희였다. 실종된 박재영의 부인이었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침을 꿀컥 삼키더니 통화 버튼을 눌렀다.
민주희가 말했다.
“누, 누구시죠?”
“서해안 경찰서 강력반 백정현 형사입니다.”
“아! 서해안 경찰서 형사님이군요. 우리 남편을 찾았나요?”
“다행히 부군을 찾았습니다.”
“아!”
민주희가 기쁨을 참지 못하고 탄성을 질렀다.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철철 흘러내렸다. 참 다행이라는 눈물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실종된 후 숨이 탁 막혔다. 누가 뒤에서 목을 꽉 조르는 거 같았다. 숨 막히는 고통에서 해방되자, 이제야 살 거 같았다.
“그런데 ….”
백형사가 말을 잇지 못했다.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민주희가 급히 말했다.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혹 남편한테 무슨 일이 있나요?”
백정현 형사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위독하십니다.”
“네에?”
민주희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간신히 찾은 남편이 위독한 상태였다. 어서 빨리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50분 후 병실 문이 급히 열렸다. 민주희가 서둘러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5인 병실이었다.
박재영은 발견 당시 위급한 상황이었다. 이에 병원에 도착한 후 응급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에 안정을 취하는 중이었다.
현재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그래서 중환자실이 아니라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박재영은 아직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의식이 없었다.
“여, 여보!”
민주희가 저 앞에 보이는 남편을 발견하고 오열했다. 남편의 모습이 너무나도 초췌했다.
얼굴에 피멍이 잔뜩 있었다. 누가 봐도 모진 고초를 당했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민재영 옆에는 유강인과 정찬우 형사, 백정현 형사가 서 있었다. 그들이 고개를 돌려 한 여인을 바라봤다.
커다란 충격을 받고 비틀거리며 오열하는 한 여인이었다. 박재영의 부인 민주희가 분명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민주희가 남편을 향해 달려왔다. 박재영의 오른손을 양손으로 꼭 잡더니 뜨거운 눈물을 철철 흘렸다.
백정현 형사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박재영씨는 위험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현재 회복 중입니다.”
“아! 정말 다행이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민주희가 연신 고개를 수그리며 감사했다. 남편이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는 소식에 안도하면서도 그 비참한 모습을 가슴을 내리쳤다.
이번에는 정찬우 형사가 입을 열었다.
“저는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 정찬우 형사입니다. 박재영씨 부인되시죠?”
“맞습니다. 제가 아내예요.”
민주희가 한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
정형사가 말을 이었다.“현재 박재영씨는 생명에 지장이 없습니다. 병원에 실려 올 때 위급했지만, 응급 수술이 성공했습니다.
현재 마취 중이라 의식이 없지만, 늦은 밤이나 내일 아침이면 정신을 차릴 거 같습니다.”
“정말 천만다행이네요.”
“성함이 민주희씨죠?”
“네, 제 이름이 민주희예요.”
“사건 수사를 담당하시는 유강인 탐정님이 여기 계십니다. 유탐정님이 민주희씨와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요청하셨습니다. 협조 부탁합니다.”
“유, 유강인 탐정님이라고요? 그분이 여기에 오셨다고요?”
유강인이 왔다는 말에 민주희가 깜짝 놀랐다. 그녀가 급히 유강인을 찾았다. 형사들 사이에 유강인이 서 있었다. TV에서 본 모습이었다.
“아! 유강인 탐정님!”
민주희가 유강인을 향해 간절히 외쳤다. 그녀는 유강인의 명석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을 이렇게 만든 놈들을 제발 잡아달라고 간청하는 거 같았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박재영 실종 사건을 조사해야 했다.
*
병원 휴게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유강인과 형사 둘이 안으로 들어왔다. 뒤이어 민주희도 들어왔다. 넷이 구석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휴게실은 한적했다. 사람이 별로 없었다. 늦은 밤이라 어느 때보다도 한산했다.
모두 자리에 앉자,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저는 탐정 유강인입니다. 부군 사건을 맡고 있습니다. 민주희씨께 질문하겠습니다.
어제 아침 남편이 집에서 나간 후부터 연락이 끊어졌다고 말씀하셨는데 맞나요?”
민주희가 격하게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네, 맞아요! 어제 아침, 남편이 그 사람을 만나러 나간 다음부터 연락이 딱 끊어졌어요.”
그 사람이라는 말에 유강인의 눈빛이 반짝였다. 중요한 단서였다. 그가 급히 말했다.
“그 사람이 누구죠?”
“김비서였어요.”
“성함을 말해 주시죠.”
“성함은 몰라요. 남편이 그 사람을 김비서라고 불렀어요.”
“남편분한테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 그게 ….”
민주희가 선뜻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했다.
그 모습을 보고 유강인이 깨달았다.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간파했다. 그 일 때문에 납치 사건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그가 말했다.
“민주희씨, 있는 사실 그대로 말씀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부군한테 해코지한 자들을 잡을 수 있습니다. 혹 사실대로 말하기 힘든 일인가요?”
민주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서둘러 답했다.
“그건 아니에요. 저와 남편은 떳떳해요.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한 적이 없어요.”
“그럼, 사실대로 말해 주세요. 부군은 납치된 후 모진 구타를 당했습니다. 그런 짓을 한 자들을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유강인의 말에 민주희가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사실대로 말해야 했다. 이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가 전할 말은 요 며칠 사이에 벌어진 기가 막힌 일이었다. 아침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사연이었다.
“유탐정님, 제 말은 다 사실입니다. 믿어주세요.”
“알겠습니다. 어떤 말을 하시더라도 경청하겠습니다.”
“사실, 남편한테 큰일이 있었어요.”
“그 일이 뭐죠?”
“JS 그룹을 아시죠?”
“JS 그룹이라고요? 남편이 JS 그룹하고 관련이 있나요?”
“네, 맞아요. JS 그룹 회장님이 … 남편을 찾았어요.”
JS 그룹이라는 말에 유강인이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현재까지 수사 결과, JS 그룹 경호팀이 박재영을 납치한 게 드러났다. 체포한 여섯의 신원을 확인한 결과, JS 그룹 경호팀이 맞았다.
민주희가 말을 이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얘기지만, 회장님한테 혼외자식이 있었대요. 그 사람을 50년 만에 찾았는데 … 그 사람이 우리 남편이었어요.”
유강인과 형사 둘이 깜짝 놀랐다. 느닷없이 재벌의 숨겨진 혼외자식이 등장했다.
혼외자식은 봉변을 당한 박재영이었다. 이건 아침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일이었다.
유강인이 서둘러 질문했다.
“JS 그룹 회장의 혼외자식이 박재영씨라는 말인가요?”
“네, 그렇게 들었어요. 회장의 측근인 김비서라는 사람이 남편한테 연락했어요. 그래서 남편이 여러 조사를 받고 유전자 검사까지 받았어요.”
“유전자 검사까지 받았다고요?”
“네, 그래요.”
“그래서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요?”
“그건 모르겠어요. 남편이 실종된 날, 김비서 전화를 받고 서둘러 나갔어요. 그때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어요.
그래서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남편의 기죽은 모습을 볼 수 없었어요.
현관문 앞에서 배웅할 때 혼외자식이 아니더라도 실망하지 말라고 응원했어요.”
“박재영씨가 부인께 조사 결과를 말하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네, 맞아요. 남편은 그냥 초조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어요.”
“박재영씨가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면, 회장의 친자일 수도 있다는 말인데 … 남편한테 부모가 없었나요?”
“네, 남편은 고아였어요. 그래서 부모가 아예 없었어요. 양부모도 없어요.”
“아! 그렇군요.”
유강인이 침을 꿀컥 삼켰다. 대기업 회장이 직접 아들을 찾아서 유전자 검사까지 할 정도라면 박재영은 친자일 확률이 꽤 높았다.
JS 그룹은 알아주는 대기업이었다. 혼외자식은 정식 결혼을 통해 낳은 자식이 아니지만, 친자로 인정받으면 받을 유산이 상당했다. 아울러 경영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 납치 사건이 아니었다. 회사의 미래와 관련된 커다란 일이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정찬우 형사가 핸드폰으로 JS 그룹 회장 송해성을 검색했다. 그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현재 JS 그룹 송해성 회장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답니다. 장남인 송상하 부회장이 그 자리를 물려받을 거라는 뉴스가 있습니다.”
“회장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급히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건가?”
“그렇겠죠. 정황상.”
유강인이 급히 생각했다.
‘JS 그룹 송해성 회장이 50년 전 잃어버린 아들을 찾았고 그래서 찾은 사람이 박재영이었어. 박재영은 회장의 측근인 김비서를 만나서 여러 조사를 받았고 유전자 검사까지 했어.
박재영이 납치된 날은 가장 중요한 조사인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온 날 같아.
부인이 말하길, 남편이 집에서 나갈 때 실망한 표정이었어. 아마도 유전자 검사 결과가 불일치여서 그랬을 거야.
박재영은 김비서를 만나러 간 후 납치돼서 실종됐어. 서울에서 서해안 바닷가 마을로 끌려가 모진 매를 맞고 정신을 잃었어.’
유강인이 고개를 돌리며 생각을 이었다.
‘박재영을 납치한 자들을 천일수를 죽인 놈들이야. 놈들은 박재영까지 납치해서 끔찍한 일을 저질렀어.
박재영은 조금만 늦었더라면 죽을 뻔했어. 쇼크 때문에 위독했어. 다행히 목숨을 건졌어.
그런데 사건 전개가 이상해. 유전자 검사 결과가 불일치인데 납치하다니 … 이게 좀 이상해.
검사 결과가 일치여서 이를 감추려고 납치해야 말이 되고 자연스러워.
현재 회장은 건강이 좋지 않아. 후계자인 큰아들이 그 자리를 승계하려고 준비 중이야.
그룹 내에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아.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 같아. 이건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본 장면이야. 돌아가는 정황상!’
생각을 마친 유강인이 민주희에게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진상을 밝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네, 반드시 진상을 밝혀주세요. 우리 남편은 법 없이도 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저렇게 만들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민주희가 간곡한 목소리로 요청했다.
조사가 끝나자, 민주희가 자리를 떴다. 유강인이 백정현 형사에게 말했다.
“JS 그룹에서 뭐라고 합니까?”
“회장실 비서 실장인 김돈국씨가 병원으로 올 예정입니다. 좀 있으면 도착할 겁니다.”
“김돈국 비서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그 사람이 김비서인가?”
“성이 같으니 그런 거 같습니다. 만나보면 알겠죠.”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왼손을 턱을 매만졌다. 분명 보통 일이 아니었다. 김돈국 비서를 만나서 자초지종을 명확하게 들어야 했다.
5분 후
휴게실 문이 열렸다.
60대 신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였다. 중간 키에 당당한 체격이었다. 2대 8 가르마에 코와 눈이 큰 얼굴이었다.
유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60대 신사가 입을 열었다.
“유강인 탐정님, 저는 JS 그룹 회장실 비서 실장, 김돈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