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휴게실의 정적을 깨는 발소리가 유강인의 귓가에 울렸다.
기다리던 김돈국 비서가 등장했다. 그는 사건과 관련된 중요 인물이었다. 납치된 박재영이 마지막으로 만난 인물이었다.
“휴우~!”
유강인이 긴장감을 느낀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김비서가 유강인 앞에 섰다.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돈국 비서님, 유강인입니다.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유강인 탐정님.”
“제 옆에 있는 두 분은 서울청 정찬우 형사와 서해안 경찰서 백정현 형사입니다.”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형사님들.”
김돈국 비서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음료를 갖고 오겠습니다.”
백정현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료수 네 캔을 뽑았다. 달콤한 실론티였다. 넷이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유강인이 말했다.
“김비서님, 경찰한테 전후 사정은 … 들으셨죠?”
“네, 다 들었습니다.”
김돈국 비서가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박재영씨 부인인 민주희씨 말에 따르면, 어제 아침 박재영씨한테 전화했다는데 사실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아침 일찍 전화했습니다.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와서 당사자인 박재영씨에게 연락했습니다.”
“전화상으로 결과를 말했나요?”
“아닙니다. 그런 중요한 결과는 직접 만나서 전하는 게 예의지요. 밖에서 만나자고 제의했습니다.”
“어디에서 만나셨죠?”
“대동역입니다. 박재영씨 집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차에서 박재영씨를 기다렸습니다.”
“박재영씨를 만났나요?”
“네, 만났습니다. 차에서 얘기를 나눴습니다.”
유강인이 침을 꿀컥 삼켰다. 이제 중요한 말을 해야 했다. 바로 유전자 검사 결과였다. 실론티를 단번에 다 마시고 입을 열었다.
“김비서님, 박재영씨 유전자 검사 결과가 … 어떻게 나왔죠?”
김돈국 비서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 역시 실론티를 쭉 마셨다.
유강인을 비롯한 셋이 김비서의 입에 집중했다. 잠시 후 고대하던 입술이 열렸다.
“그게 … 불일치였습니다.”
“불일치라고요?”
“네, 불일치였습니다. 애석하게도 …. 박재영씨한테 실망스러운 결과였습니다.”
“아, 그렇군요.”
순간, 유강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미간이 확 좁아졌다. 입도 꾹 다물었다. 예상한 대로 이상한 상황이 전개됐다. 무척 자연스럽지 못한 상황이었다.
유전자 검사 결과 불일치는 박재영과 회장 간에 친자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박재영은 회장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납치돼서 모진 고초를 당하고 죽을 뻔했다.
박재영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사기를 친 거라면, 이 사실을 안 회장이 분노해서 납치를 지시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박재영 부인 민주희 말에 따르면 박재영을 찾은 사람은 회장이었다. 아버지가 50년간 잃어버린 아들을 찾고 있었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질문을 이었다.
“검사 결과를 통보받은 … 박재영씨 반응이 어땠나요? 무척 실망했나요?”
김돈국 비서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답했다.
“그리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예상했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이후에 어떻게 됐죠? 박재영씨와 바로 헤어졌나요?”
“박재영씨에게 위로금을 전달했습니다.”
“돈을 줬다는 말인가요?”
“네, 그렇죠. 박재영씨를 번거롭게 해서 미안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연락해서 여러 조사를 받게 했으니 이에 상응한 보답을 해야 했습니다.
시간을 뺏어서 정말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얼마를 주셨나요?”
“현금 백만 원을 봉투에 담아서 전달했습니다. 5만 원권이었습니다.”
“적은 금액이 아니군요.”
“그 정도는 지불해야죠. 며칠간 고생했으니 …. 헛된 꿈을 품게 한 것도 있고요.”
“위로금은 회장님이 지시한 일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제가 책정한 금액입니다.”
“회장님도 검사 결과를 보고 받았을 텐데 … 반응이 어땠나요?”
“무척 놀라셨습니다. 실망한 빛이 역력하셨습니다. 이후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렇군요, 회장님도 기대하셨군요.”
“네, 회장님이 잃어버린 아들을 애타게 찾고 계셨습니다.”
“언제부터 찾고 계셨죠? 예전에도 찾으셨나요?”
“제가 알기로는 … 이번이 처음입니다. 한 달 전, 급히 저를 부르셨습니다. 잃어버린 아들이 있다며 신상 정보를 주셨습니다.”
“회장님이 신상 정보를 직접 주셨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보육원 관련 자료였습니다. 박재영이라는 이름의 남자아이였습니다. 조사 결과, 박재영이라는 이름은 보육원 원장이 지은 이름이었습니다. 성도 원장의 성을 따랐고요.”
“박재영씨를 금방 찾았나요?”
“네, 관련 자료가 확실해서 박재영씨를 수월하게 찾았습니다. 박재영씨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협조를 구했습니다. 박재영씨도 흔쾌히 조사에 응했습니다.
박재영씨도 아버지를 찾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군요.”
“여러 조사를 마친 결과, 회장님이 찾는 아들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유전자 검사 결과를 기다렸는데 … 결과가 불일치여서 저도 애석할 따름입니다.”
유강인이 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회장님이 보육원 관료 자료를 어디에서 얻으셨죠?”
“그건 모르겠습니다. 저는 잃어버린 아들을 신속하게 찾으라는 지시만 받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 회장님을 직접 만나야겠군요.”
김돈국 비서가 그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말했다.
“유강인 탐정님, 현재 회장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유강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그렇죠? 간단한 조사만 하면 됩니다”
김비서가 갑자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현재 회사가 비상 상황입니다. 외부에 이 사실을 함구하고 있습니다.”
“네에? 비상 상황이라고요? 대체 무슨 일이죠?”
김돈국 비서가 잠시 생각했다. 더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거 같았다. 그러다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비밀을 지켜주세요.”
“알겠습니다.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김비서님이 말한 사실을 함구하겠습니다. 약속합니다.”
김돈국 비서가 곧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회장님이 위독하십니다.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네에? 회장님이 위독하시다고요?”
“네,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상태가 어떤가요?”
“아드님이신 부회장님 말씀으로는 … 가망이 없답니다. 현재 혼수상태라고 들었습니다. 현재 가족 외 면회 금지입니다.”
“네? 혼수상태라고요?”
놀라운 말이었다. 잃어버린 아들을 찾던 JS 그룹 회장 송해성이 갑자기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 현재 이 사실은 외부에 비밀이었다.
형사 둘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그들도 뭔가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유강인도 마찬가지였다.
회장실 비서 실장인 김돈국 비서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 그가 하는 말은 모두 공식적인 발표와 같았다.
김비서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박재영씨는 어떤가요? 여기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박재영씨는 ….”
유강인이 말을 하다가 끝을 흐렸다. 그러다 서둘러 말을 이었다.
“매우 위독한 상태입니다. 의료진에 따르면 가망이 없답니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숨을 거둘 거 같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 그렇군요.”
“박재영씨 부인이 장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이고, 정말 애석한 일이네요. 저를 만난 후 그렇게 된 거잖아요. 참 안타깝습니다.”
유강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가 말했다.
“박재영씨와 얘기를 나눈 후 곧바로 떠나셨나요?”
“네, 박재영씨가 차에서 내린 후 바로 회사로 향했습니다.”
“박재영씨한테 일행이 있었나요?”
“일행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차에는 박재영씨만 탔습니다.”
“박재영씨 근처에 수상한 사람들이 있었나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이제 질문 하나를 더 해야 했다. 이 질문은 JS 그룹한테 난처할 게 뻔했다. 그가 말했다.
“박재영씨 납치 사건을 조사할 결과, 납치에 JS 그룹 경호팀이 관련됐습니다. 이 사실도 통보받으셨죠?”
유강인의 말에 김돈국 비서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가 가느다란 신음을 내뱉었다.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김비서가 송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조사 결과, 몇몇 경호원들이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습니다. 비서실에서 정보가 샜습니다. 회장님이 친자를 찾는다는 사실이 밖으로 새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안 경호팀 몇몇이 돈을 노리고 일을 꾸민 거로 드러났습니다.”
유강인이 참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유전자 검사 결과가 불일치인데 납치를 하다니요? 이건 말이 안 됩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을 꾸민 놈들이 정보를 잘못 안 거 같습니다. 불일치를 일치로 잘 못 알고 박재영씨를 납치한 거 같습니다.
나중에 불일치라는 걸 알고 죽이려고 한 거고요.”
“네에? 그걸 저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일치와 불일치를 구분하지 못하다니요?”
“저도 믿을 수 없는 말이지만, 현재까지 조사 결과입니다.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항상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불일치를 일치라고 착각한 거 같습니다.”
“황당하군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유강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돈국 비서가 궤변을 늘어놓는 거 같았다.
김비서는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 집에 가고 싶은 눈치였다.
이에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비서님.”
“그럼, 저는 돌아가도 됩니까?”
“네, 시간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유강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김돈국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유강인과 형사들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김비서가 나가자, 정찬우 형사가 유강인에게 급히 말했다.
“아니, 선배님. 박재영씨는 이제 회복 중인데 왜 위독하다고 말씀하셨죠? 그건 거짓말이잖아요?”
백정현 형사도 거들었다.
“맞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죠? 김비서라는 사람을 의심하는 건가요?”
유강인이 두 형사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가 씩 웃고 말했다.
“김비서는 … 조직의 일원이거나 아니면 정보통일 겁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겁니다.”
“조, 조직의 일원이요?”
정형사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응, 천일수 살인 사건과 박재영 납치 사건은 조직이 벌인 짓이야. 바로 JS 그룹 경호팀이지.
그들은 말이 경호원이지, 정상적인 경호 업무를 하는 자들이 아니야.
주인을 위해 궂은일을 하는 사냥개들이지. 그 일이 어떤 일이든지 전혀 상관하지 않는 ….”
“주인이라고요?”
“응, 주인이 있는 거 같아. 이 일의 배후에 ….”
“김비서 말에 따르면, 경호팀 중 몇몇이 돈을 노리고 이 일을 꾸몄다고 했습니다.
회장 친자를 납치해서 돈을 요구하려다가 실패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게 사실이 아닌 건가요?”
“배부른 사냥개는 시키는 일만 하지, 다른 일은 하지 않아. 그들은 배고픈 사냥개들이 아니었어. 행색을 보니 기름기가 좔좔 흐르더군.
김비서의 말은 회사의 공식 입장일 뿐이야. 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돼.”
“그렇군요. 그러면 주인이 누굴까요?”
유강인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하얀 천장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정황상, JS 그룹 송상하 부회장이지.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이니 …,”
“네? 회장 아들인 부회장이 주인이라고요? 그 사람이 이 모든 일을 꾸몄다고요?”
유강인이 고개를 내렸다.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직 확실한 건 없어. 일단 박재영씨가 깨어나야 해. 피해자 진술을 들으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겠지.
돌아가는 정황상 회장 아들인 부회장이 모든 일을 지시한 거 같아.”
정찬우 형사가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선배님의 말을 들으니 유전자 검사 결과가 일치인데 이를 조작한 거 같네요. 그러면 부회장이 박재영씨를 납치한 게 이해가 갑니다.
느닷없이 형제가 등장하면 후계 구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유전자 검사 결과가 심히 의심스러워.”
“그런데 천일수씨 살인 사건하고 부회장이 무슨 관계죠? 그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부회장이 왜 천일수씨를 죽여야 했죠?”
유강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그건 현재로서는 알 수 없어. 단지 가능성일 뿐이지. 부회장과 천일수씨 사이에 무슨 원한이 있을 수 있어.”
“둘 사이에 원한이 있다고요? 둘은 나이 차이가 아버지와 아들뻘인데, 어떤 원한이 있었을까요?”
“나이로 볼 때 아들 부회장보다는 아버지인 회장이 중요한 거 같아. 죽은 천일수씨와 회장은 비슷한 연배야. 둘 사이에 뭐가 있을 수 있어. 일단 둘 사이 통화 기록을 살펴봐. 무슨 단서가 나올지도 몰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좋았어. 우리는 집에 가자고. 시간이 늦었어.”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삐리릭!
그때 백정현 형사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가 급히 전화 받았다. 병원 관계자 전화였다.
백형사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지금 박재영씨가 깨어났다고요?”
박재영이 깨어났다는 말에 유강인이 걸음을 딱 멈췄다. 그리고 참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참 다행이군.”
유강인이 미소를 지었다.
베일에 가렸던 사건의 진상이 점점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건의 키인 박재영이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