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dolee Oct 25. 2024

19_죽다 살아난 박재영의 진술

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유강인이 급히 서둘렀다. 박재영이 드디어 마취에서 깨어났다. 그를 조사해야 했다.


먼저 절차가 있었다. 담당 의사를 만나야 했다. 면회가 과연 가능한지 살펴야 했다.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5층에 담당 의사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5층에 귀빈실이 있었다.


“어서 갑시다.”


유강인이 5층 복도를 재빨리 걸었다. 저 앞에 귀빈실이 보였다.


“바로 저기군.”


유강인이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호흡을 가다듬고 문손잡이를 꽉 잡았다. 뒤에 백정현 형사와 정찬우 형사가 서 있었다.


발소리가 들렸는지, 안에서 여성 목소리가 들렸다.


“저 … 유강인 탐정님이세요?”


유강인이 급히 답했다.


“네, 맞습니다. 유강인입니다.”


“들어오세요.”


유강인이 문을 열고 귀빈실 안으로 들어갔다.


귀빈실은 꽤 넓은 방이었다. 고급 소파와 테이블, 와인 냉장고, 벽걸이 대형 TV가 있었다.


안에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있었다. 담당 의사는 여자였다. 남자는 수간호사였다.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여의사의 말에 유강인과 형사 둘이 앞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여의사와 수간호사가 서로 말을 나눴다.


잠시 시간이 지났다.


유강인이 긴장한 듯 양 입술이 바짝 말라 갔다. 테이블에 오렌지 주스가 있었다. 선명한 주황색이었다. 보기에 먹음직스러웠다.


‘오렌지 주스 좋지!’


유강인이 잔을 들고 주스를 쭉 마셨다. 달콤하면서도 무척이나 시큼했다. 100퍼센트 오렌지 주스였다.


시큼한 맛에 정신이 번쩍 드는 거 같았다.


“가능할 거 같습니다.”


“좋습니다.”


여의사와 수간호사가 의견 일치를 봤다. 둘이 유강인을 쳐다봤다.


유강인이 오렌지 주스를 다 마시고 잔을 내려놨다.


여의사가 친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유탐정님, 조사가 가능합니다. 단 20분 내외입니다. 시간을 반드시 지켜주세요. 환자한테 안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의사의 말에 유강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연신 허리를 구부리며 감사를 표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시간을 준수해서 조사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박재영 조사가 일사천리로 결정됐다.


이제 3층 1인실로 내려가야 했다. 박재영은 1인실에 있었다. 은밀한 조사를 위한 조치였다.


면회는 유강인 한 명만 허용됐다. 두 형사는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


유강인이 1인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이었다. 넓지 않은 병실이었다. 1인 침대와 테이블, 의자, 냉장고 등이 보였다.


허연 김을 내뿜는 가습기 연기가 앞을 가렸다. 가습기 연기 너머로 한 남자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초췌하고 힘이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바로 모진 고초를 당한 박재영이었다. 박재영이 두 눈을 천천히 떴다. 표정에 억울함이 가득했다.


유강인이 침대 근처로 갔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재영씨!”


박재영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강인을 보고 힘들게 입을 열었다.


“마, 맞습니다. 제가 박재영입니다.”


박재영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유강인이 두 손을 들어서 막았다. 그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움직이지 마세요. 박재영씨는 현재 중상입니다. 편하게 누워 계세요.”


“감사합니다.”


박재영이 말을 마치고 “휴~!” 하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힘들게 침을 삼키고 두 주먹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주먹을 제대로 쥘 수가 없었다. 아직 그는 회복 중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다.


유강인이 침대 앞으로 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재영씨, 저는 사건을 담당하는 탐정 유강인입니다. 부인한테 자초지종을 들었습니다. 

11월 13일 이른 아침, JS 그룹 비서실장 김돈국 비서님을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맞습니다. 김비서님을 만났습니다. 그날!”


“김비서님 말에 따르면 유전자 검사 결과가 불일치라는데 … 맞습니까?”


“맞습니다. 김비서님이 유전자 검사 결과지를 건넸습니다. 잠시 결과지를 살폈습니다. … 회장님과 저는 친자 관계가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혹 실망하셨나요?”


“솔직히 말해서 실망했습니다. 50퍼센트 정도는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혼외자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닐 수도 있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니 … 가슴이 아팠던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아버지를 찾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든지 상관없었습니다. 저는 평생 아버지, 어머니 없이 살아왔습니다.”


박재영이 말을 마치고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줄줄 흘렸다. 고아로 평생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며 가슴 아파했다.


자식이 잃어버린 부모를 찾는 거 당연했다. 죽기 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과 같았다.


유강인이 착잡한 심정을 뒤로하고 질문을 이었다.


“이후 어떻게 하셨죠?”


“김비서님이 위로금을 건네셨습니다. 봉투를 확인하니 100만 원 현금이었습니다. 돈을 확인하고 바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100만 원이면 큰돈이었습니다.

아버지 일은 그냥 해프닝이라고 생각하고 그 돈으로 가족 여행이나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달랬습니다.”


“그렇군요. … 위로금을 받고 차에서 내렸나요?”


“네, 차에서 내렸습니다. 김비서님한테 감사하다고 인사도 드렸습니다.

아내한테 이 소식을 전하려고 조용한 곳을 찾았습니다. 

한적한 건물 앞에서 핸드폰을 들었는데 그때 갑자기 괴한들이 나타나 막무가내로 저를 끌고 갔습니다. 

놈들이 입을 손수건으로 틀어막았습니다. 손수건에 마취제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잠에서 깼을 때 어디에 계셨죠?”


“눈을 떴을 때 … 흙바닥 위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두 손과 두 발 모두 꽁꽁 묶여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입에는 테이프가 붙어있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일어서다가 넘어지기를 계속 반복했습니다. 흙먼지가 계속 일었습니다. 그러다 여기저기를 다치고 말았습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박재영이 몸부림치다가 바지 주머니에 있던 영수증이 바닥으로 떨어진 거 같았다.


“납치한 자들이 언제 나타났죠?”


“시간이 흐른 후, 문이 열렸습니다. 불도 켜졌고요. 그때 창고에 갇혔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몇 명이 창고 안으로 들어왔죠?”


“네 명이었습니다. 모두 건장한 자들이었습니다. 모두 검은색 정장을 입었습니다. 겉보기에 폭력배 같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한 명이 더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정장을 입지 않았습니다. 키가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키가 작다고요?”


유강인이 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천일수 살인범, 오태환의 사진을 찾아서 박재영에게 보여줬다.


박재영이 사진을 보고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말했다.


“이 사람이 맞는 거 같습니다.”


유강인이 참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피해자 증언을 확보했다. 오태환이 박재영 납치에도 관련됐다는 사실을 명확히 확인했다.


박재영이 이를 악물었다. 눈에서 분노가 치솟기 시작했다. 창고에서 처참하게 당했던 기억이 떠오른 거 같았다.


“놈들이 저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제발 때리지 말라고 살려달라고 애원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모질게 구타했습니다. 주먹으로 때리고 각목으로도 때렸습니다.”


“그렇군요. 아주 질이 나쁜 놈들이었군요.”


“자식이 있다고 아내가 있다고 말했는데도 폭력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가 반쯤 죽었을 때 놈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자가 뭐라고 했죠?”


“껄껄 웃더니 괘씸죄라고 했습니다. VIP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으니 죽어도 싸다고 말했습니다.”


“VIP라고요? 그 사람이 누군지 말했나요?”


“누구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 VIP라?”


유강인이 곰곰이 생각했다. 박재영한테 폭력을 가한 자들을 분명 JS 그룹 경호팀이었다.


JS 그룹에서 VIP라면 두 명이었다. 바로 송해성 회장과 아들 송상하 부회장이었다.


괘씸죄라면 VIP 두 명 중에서 한 명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뜻이었다.


송회장은 혼외자식을 간절히 찾고 있었다. 박재영을 직접 지목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박재영한테 해를 가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결국, VIP는 송상하 부회장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부회장이 바로 … VIP!’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후계자인 부회장이 이 모든 일을 꾸민 거 같았다.


박재영이 이를 박박 갈기 시작했다. 그가 치를 떨며 말을 이었다.


“키 작은 남자가 저를 조롱했습니다. 헛꿈 꾸지 말라고 … 네 깐 놈이 게 무슨 재벌 혼외자식이라며 … 깔깔거렸습니다. 

그러자 다른 자들도 모두 저를 비웃었습니다. 거지 주제에 왕자가 되려고 했다며 생양아치 XX라고 욕했습니다.”


“그들이 심하게 조롱한 게 분명합니까?”


“네, 맞습니다. 그 말들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놈들을 모두 잡아서 요절을 내고 싶습니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황이 자연스럽지 않아. 박재영은 유전자 검사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였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했어.

그런데도 납치를 해서 폭력을 가했다? 그리고 막말을 지껄이고 조롱까지 했다?

뭔가가 정말로 이상해. 이후 회장이 몸져누웠어. 이를 회사에서 비밀로 하고 있고 ….’


유강인이 눈을 감았다. 박재영의 증언과 납치와 구타를 자행한 JS 그룹 경호팀, 김돈국 비서의 말들을 곱씹었다.


탐정이 말이 없자, 박재영이 말을 이었다.


“이후 놈들이 강제로 약을 먹였습니다. 어딘가로 데려가 생매장한다고 저를 겁줬습니다. 그래서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부모 없이 자라서 가족은 아내와 자식밖에 없습니다. 처자식을 못 보고 죽는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억울했습니다.

저는 회장님이 혼외자식을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조사에 응한 거뿐입니다. 유전자 검사를 받은 게 죽을죄입니까? 이게 정녕 죽을죄입니까?”


박재영이 말을 마치고 흐느꼈다. 너무나도 억울한 심정을 유강인에게 토로했다.


유강인의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현재 수사 중인 두 사건에 공통점이 있었다. 박재영과 천지호 모두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건 억울한 일이었다. 

둘 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억울한 일을 당하고 말았다. 그가 생각했다.


‘두 사건이 아주 비슷해. 천지호, 박재영 모두 갑자기 날벼락을 맞고 말았어.

이 모든 일을 꾸민 자는 후안무치한 자야. 억울한 자를 만들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거 같아.’


그때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의사 목소리였다.


“유강인 탐정님, 시간이 됐습니다. 어서 나오세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사건을 신속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답은 하나였다. 그것도 명확했다. 


늙고 병약한 왕과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는 왕자 그리고 베일에 가려던 왕의 다른 아들이 만드는 삼각 구도였다. 



사극에서 봤던 왕자의 난이었다.



결론을 내린 유강인이 입을 열었다. 박재영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황상, 박재영씨는 송해성 회장님의 친자가 맞는 거 같습니다. 유전자 검사를 다시 해야 합니다.”


“네에? 뭐라고요?”


박재영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유강인이 나지막하지만, 더욱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확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 모든 일의 진위를 밝히겠습니다. 박재영씨와 가족은 경찰에서 철저히 보호할 겁니다. 이제 안심하세요.”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씩 웃었다. 얼굴에서 자신감이 엿보였다.

이전 19화 18_후계자 송상하 부회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