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우당탕!
큰 소리가 들리고 남자 셋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검은색 밴을 타고 온 용의자들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잡아!”
백정현 형사가 크게 외쳤다. 이형사가 뒤를 쫓았다.
용의자 셋이 출입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문 앞에 서 있던 남자들이 길을 비켜줬다.
그들이 서둘러 눈빛을 교환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눈빛을 교환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모두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었다. 마치 유니폼 같았다.
이형사가 번개처럼 달려가 출입문 앞에 섰을 때,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용의자들과 눈빛을 교환한 자들이 움직였다.
“이거 왜 이러세요?”
이형사가 크게 외쳤다.
남자 셋이 이형사 앞을 딱 가로막았다. 마치 축구의 수문장 같았다.
“비켜요!”
“당신이 길을 막았잖아요! 젊은 사람이 적반하장이네.”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막은 게 아니라, 당신이 막은 거야! 당신이나 비켜!”
“급한 일입니다. 어서 비키세요!”
이형사가 남자 셋과 옥신각신했다.
“젠장!”
이 모습을 본 백정현 형사 품에서 신분증을 꺼냈다. 출입문으로 달려가 신분증을 보이며 크게 소리쳤다.
“경찰입니다. 비키세요! 현재 용의자를 추적 중입니다!”
“경찰이세요? 그럼, 진작 말해야죠.”
“그러게 말이야. 우리가 당신이 경찰인 줄 어떻게 알겠어요?”
남자 셋이 이제야 길을 비켜줬다.
“어서 서둘러!”
“네!”
백형사와 이형사가 문을 열고 술집 밖으로 나갔다.
유강인과 황정수도 출입문으로 달려갔다. 길을 막았던 남자 셋이 씩 웃으며 말했다.
“술이나 먹자, 노가리 안주에.”
“맞습니다. 흐흐흐!”
그들이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빈자리를 찾았다.
유강인이 셋을 보며 생각했다.
‘너희 셋은 다음에 보자.’
유강인과 황정수가 술집 밖으로 나갔다.
술집 밖은 추격전이 한창이었다.
형사 둘이 용의자를 쫓아서 달렸고 용의자 셋은 검은색 밴을 향해 달렸다.
“막아!”
“잡아!”
큰소리가 주차장에 울렸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눈빛이 반짝였다.
주차장 근처 담벼락에 숨어있던 정찬우 형사가 튀어나왔다. 그가 크게 외쳤다.
“저들을 잡아!”
그러자 어둠 속에서 형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검은색 밴을 향해 몰려들었다.
“젠장!”
“이게 뭐야?”
용의자들이 깜짝 놀랐다. 몰려오는 형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막을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너는 차를 타고 도망가! 우리가 놈들을 막을 테니!!”
용의자 중 하나가 크게 외쳤다. 팀장이라고 불리던 자였다.
“알겠습니다.”
한 명이 차에 올라탔다. 나머지 둘이 형사들을 온몸으로 막았다.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용의자들은 보통이 아니었다. 무술 고수인 듯 차 보닛 위로 뛰어오르더니 형사들을 공격하며 날아다녔다.
부웅!
차 소리가 들렸다. 검은색 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쾅! 쾅! 소리도 들렸다. 급한 나머지 옆에 주차한 차와 부딪히고 말았다.
범퍼가 찌그러지고 사이드미러가 부러졌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술집에서 나와 상황을 주시하던 유강인이 핸드폰을 들었다. 급하게 전화 걸고 크게 외쳤다.
“차를 막으세요!”
“알겠습니다.”
주차장뿐만 아니라 차도에서도 추격전이 벌어졌다.
도주하는 검은색 밴을 경찰차 두 대가 뒤따라갔다. 경광등이 쉴 새 없이 번쩍이고 사이렌이 다급하게 울렸다.
남은 용의자 둘은 형사들과 혈투를 벌였다.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주차장을 마구 뛰어다녔다. 발을 내지르고 주먹을 내던지며 형사들을 위협했다.
“이것들이!”
이 모습을 정찬우 형사가 분을 참을 수 없었다. 용의자들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갔다.
속 시원한 업어치기 한판을 차례대로 선보이며 둘을 제압했다. 둘 다 멱살이 꽉 잡혀서 공중을 날았다. 주차장 바닥에 쾅! 하며 떨어지며 그 발악이 끝났다.
“아이고”
“나 죽네!”
남자 둘이 고통을 참지 못하고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현재 도주한 차량은 계속 추적 중이고 용의자 둘은 잡혔다.
유강인이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황정수와 백정현 형사, 이형사가 따랐다.
황정수가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탐정님, 둘은 잡았으니 도망친 놈도 잡을 수 있겠죠?”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곳곳에 경찰차가 있어. 놈이 도망칠 데는 없어.”
유강인이 백정현 형사를 보며 말을 이었다.
“출입문에서 길을 막았던 자들도 체포해야 합니다. 고의로 공무집행을 방해했습니다. 용의자들과 한패일 겁니다.”
“네에? 그들도 한 패라고요?”
“그런 거 같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서 그들을 체포하세요. 도망치기 전에.”
“알겠습니다.”
백형사와 이형사가 서둘러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길을 막았던 남자 셋을 찾았다.
남자 셋이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백정현 형사가 이를 악물었다. 무서운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셋 앞에서 백형사 걸음을 멈추었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들은 고의로 공무집행을 방해했습니다. 조사받아야 합니다. 협조 부탁합니다.”
“네에?”
남자 셋이 깜짝 놀랐다. 그들이 서로 쳐다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한편 검은색 밴은 속도를 높였다. 4차선 도로에서 폭풍 질주했다. 차도에 차들이 많았다. 곡예 운전하며 차들을 추월했다. 아슬아슬한 운전이었다.
여기저기서 클랙슨이 울렸다. 그리고 고함도 들렸다. 욕지거리도 같이 들렸다.
“야 XXX야!”
“죽고 싶어!!”
그때 끼익! 하며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도 들렸다.
검은색 밴이 갑자기 차선을 바꾸자, 하얀색 세단이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트럭이 하얀색 세단을 쾅! 추돌하고 말았다.
교통사고 발생하자, 차도가 혼란에 빠졌다.
사고를 일으킨 검은색 밴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속 달렸다. 사고가 나든 말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검은색 밴의 무법 질주였다. 어서 막아야 했다.
검은색 밴이 사거리 근처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경찰 사이렌 소리가 크게 들렸다.
경찰차 두 대가 어두운 골목에서 나오더니 차도를 가로막았다. 차를 옆으로 주차해서 검은색 밴의 앞을 딱 가로막았다.
앞이 막히자, 검은색 밴이 서둘러 멈췄다.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차가 멈추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경찰차에서 경찰들이 서둘러 내렸다.
경찰들이 조심스럽게 검은색 밴을 향해 다가갔을 때,
운전석 문이 덜컹 열리더니 용의자가 뛰어나왔다. 어두운 골목을 향해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경찰들이 남자를 따라서 뛰었다.
“잡아라!”
“편의점 골목으로 달려 간다!”
“2조는 골목을 막아!!”
*
상황이 정리됐다.
유강인이 술집과 주차장, 차도를 살폈다. 레커차들이 도착해서 찌그러지고 고장 난 차들을 끌고 갔다.
차도에는 사고의 잔해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후미등이 깨져서 그 조각이 여기저기에 흩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러게 말이야?”
“차 한 대가 막무가내로 끼어들었대.”
“아! 그렇구나.”
“그런데 경찰이 왜 이리 많아?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거 같은데?”
“경찰들이 남자들을 잡아가고 있어.”
사고 현장 근처에 사람들이 많았다. 행인들과 술집에서 나온 손님들이었다.
술집과 차도에서 난동을 부렸던 여섯이 모두 체포됐다. 모두 경찰차에 실렸다. 하나같이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도망치던 용의자는 골목 안에서 경찰과 격투 끝에 잡혔다.
“유탐정님, 모두 잡았습니다.”
상황을 보고 받은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은 술집 주차장에 있었다. 옆에 조수 둘도 있었다. 조수 둘이 무척 놀란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떴다.
황수지가 말했다.
“잡은 사람이 셋이 아니라 더 많다고요?”
황정수가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응, 체포한 자들이 자그마치 여섯이야. 보통 일이 아니야. 무슨 거대 폭력 조직을 잡은 거 같아.”
유강인이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황정수의 말이 맞았다. 일이 예상보다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영화감독 천일수 살인 사건을 해결하자, 박재영 납치 사건이 드러났다. 용의자 셋이 탄 검은색 밴을 추적한 끝에 총 여섯을 잡았다.
천일수를 죽이고 그 아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오태환은 퍼즐의 한 조각에 불과했다. 이 모든 일을 꾸민 자를 잡아야 했다.
유강인이 사건을 정리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유강인을 향해 달려왔다. 정찬우 형사였다. 그가 급히 말했다.
“선배님, 이제 차로 가시죠. 차 트렁크를 열 겁니다.”
“좋아, 어서 가자고.”
유강인이 정형사와 함께 검은색 밴을 향해 걸어갔다.
검은색 밴은 술집 주차장 한쪽 구석에 있었다. 범퍼와 앞문이 성하지 않았다. 여러 번의 접촉 사고로 찌그러졌다.
정찬우 형사가 말을 이었다. 예상외라는 목소리였다.
“선배님, 용의자들의 신원을 확인한 결과, JS 그룹 경호팀으로 밝혀졌습니다.”
“뭐라고? JS 그룹이라고?”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정형사가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명함을 유강인에게 건넸다.
유강인이 명함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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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 그룹 경호 2팀
팀장 우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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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인이 명함을 확인하고 말했다.
“JS 그룹이라면 자동차 제조사잖아?”
“맞습니다. JS 모터로 유명하죠.”
정찬우 형사의 말에 이형사와 백정현 형사도 깜짝 놀랐다. 그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세간에 잘 알려진 자동차 제조 회사가 범죄와 관련됐다. 검은색 밴도 JS 모터의 차였다.
백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놈들이 조직 폭력배가 아니라 대기업이라니 … 이건 너무 뜻밖입니다.”
“맞습니다. JS 그룹이라니 …. 제 차도 JS 그룹 차입니다.”
상황이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유강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굴지의 대기업이 범죄에 관련됐다. 그것도 살인 사건과 실종 사건이었다.
“어서 가자고.”
유강인이 걸음을 재촉했다. 일단 검은색 밴 트렁크를 열어야 했다. 혹 트렁크 안에 실종된 박재영이 있을 수도 있다. 트렁크를 어서 열어야 했다.
30초 후 유강인과 형사들이 검은색 밴 앞에 섰다. 대기하던 경찰이 트렁크를 열었다.
끼익! 하며 트렁크가 위로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유강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어떤 것을 보든 흔들리지 말고 단서를 찾아야 했다.
“윽!”
유강인이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트렁크가 열리자,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안에 시체가 있을 수도 있었다.
긴장된 순간이었다.
유강인과 형사들이 몸을 떨었다.
트렁크가 활짝 열렸다.
“헉!”
유강인의 두 눈이 피자 한 판처럼 커졌다.
트렁크 안에 사람이 있었다. 검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중년 남자였다.
유강인이 급히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몹시 두들겨 맞은 듯 피멍이 여기저기에 들었다. 살도 여기저기 터졌다.
보기에 처참할 정도였다. 오태환의 창고에서 모진 구타를 당한 박재영 같았다. 피 묻은 영수증의 주인 같았다.
“세상에!”
“너무 처참하네요. 왜 이렇게까지 때렸을까요?”
“죽은 거 같나요?”
“죽은 거 같지는 않습니다. 현재 의식을 잃은 거 같습니다.”
“앰블런스가 근처에 있죠? 어서 부릅시다.”
형사들이 처참한 몰골의 남자를 보고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게 분노가 들끓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