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마석이 요시코한테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요시코, 전화선!”
요시코가 고개를 끄떡이고 품에서 작은 칼을 꺼냈다. 급하게 움직이더니 응접실에서 집 밖으로 나가는 전화선을 찾았다.
그녀는 이 집에서 일하는 만큼 전화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곧 전화선을 찾았고 칼을 들어 선을 싹둑 잘라버렸다.
“다 잘랐어요.”
요시코의 말에 명호가 움직였다.
현관문을 빗장으로 단단히 걸어 잠그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소총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창문을 통해 밖에 있는 헌병들을 주시했다.
에리카는 집 안에 있는 하인들을 불러모았다. 그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안심시켰다.
마석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하인들을 바라보며 총을 겨누었다.
에리카가 말했다.
“여러분한테는 어떤 해도 없습니다. 제가 약속합니다. 여기 부엌에서 조용히 계시면 잠시 후 모든 일이 끝날 겁니다.”
에리카의 말에 하인들이 너도나도 수군거렸다.
“아가씨 말인즉, 우리는 쥐 죽은 듯 여기에 가만히 있으라는 건가요?”
“저 사람들하고 아가씨가 한패인 거잖아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죠?”
그 소리를 듣고 마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척이나 날카로운 눈매였다. 그 눈매를 보고 하인들이 서둘러 입을 닫았다. 마석의 몸에서 섬뜩한 살기가 뿜어 나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녀 수장인 아야코가 이건 아니라는 표정으로 앞으로 나왔다. 그녀가 에리카에게 따져 물었다.
“에리카 아가씨,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저들은 누구죠? 왜 경호원들을 때려눕혔죠?”
“…….”
에리카가 답을 하지 않았다.
“아가씨!”
아야코가 무척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에리카를 불렀다.
에리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아야코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부엌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침묵을 지켜야 했다.
신우는 2층 계단으로 향했다. 계획대로 1층을 완전히 장악했다. 경호원들을 해치우고 전화선을 끊고 하인들을 모두 부엌에 모았다.
그가 한발 한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저 위에 다나카가 있는 집무실이 보였다.
“이, 이거 왜 이래?”
다나카가 수화기를 들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완전 먹통이잖아!”
다나카가 전화기 버튼을 계속 눌렀다. 딸각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서류를 정리하던 야마모토가 다나카에게 말했다.
“총사령관님, 정무 총감께서 전화를 끊으셨나요?”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전화 자체가 먹통이 됐어. 이런 일은 없었는데 … 젠장! 나가서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야마모토가 답을 하고 즉각 움직였다. 방문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때 그의 눈에 뭔가가 보였다.
“앗!”
열린 문틈으로 놀라운 광경이 보였다. 야마모토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 사나이가 계단을 밝으며 천천히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1층 바닥에는 경호원들이 피를 흘리며 널브러져 있었다.
카야마 선생과 남자 간호사는 총을 들고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야마모토가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숨쉬기도 힘들었다.
그중에서도 천천히 계단을 올라오는 사나이가 심상치 않았다. 그자의 몸에서 내뿜는 강렬한 카리스마에 숨이 꽉 막혔다. 이에 문을 급하게 닫고 권총을 꺼냈다.
야마모토가 고개를 돌리고 다나카를 찾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상관에게 말했다. 작은 목소리였다.
“큰일 났습니다! 사령관님.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뭐라고?”
다나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빨리 1층 서재로 피하셔야 합니다!”
“지금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다나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마모토의 떨리는 목소리와 눈동자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암살자입니다!”
야마모토가 급하게 말하고 한쪽 벽을 가리켰다. 그곳에 1층 서재로 내려갈 수 있는 비밀통로가 있었다.
“아, 암살자!!”
야마모토의 말을 듣고 다나카가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 같으면 놀란 나머지 어쩔 줄 몰라서 몸을 벌벌 떨었겠지만,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별의별 일을 다 겪은 백전노장이었다.
다나카가 이를 악물었다. 곧 정신을 차리고 벽으로 뛰어갔다. 그러다 뭔가가 떠오른 듯 책상으로 돌아와 큰 서랍을 활짝 열었다.
서랍에 권총이 있었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발터P38 권총이 있었다. 독일에서 구한 비싼 총이었다.
다나카가 발터P38 권총을 한 손에 쥐고 벽으로 다시 달려갔다. 벽에 붙어있는 액자를 던져버리자, 문손잡이가 보였다. 문손잡이를 잡고 비밀 문을 열어젖히자, 어두컴컴한 통로가 보였다.
긴박한 상황이 2층에서 전개됐다.
피맺힌 복수하려는 자와 이를 어떻게든 막고 도망치려는 자의 싸움이었다.
2층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다.
신우가 2층 복도를 따라 걷다가 다나카 집무실 문 앞에 섰다.
운명의 문이었다. 안에 원수들이 있었다. 22년간 기다려 온 순간이었다.
“휴우~!”
신우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긴장감을 털어내고 숨을 멈췄다. 그리고 문손잡이를 꽉 잡았다.
그때 야마모토는 문에 바짝 붙어있었다. 문손잡이를 잡는 소리가 들리자, “이때다!” 하며 문을 힘껏 확 밀어젖혔다. 기습이었다.
“헉!”
문이 갑자기 열리자, 신우가 깜짝 놀란 나머지 몸이 굳어버렸다.
“이놈!”
야마모토가 재빠르게 권총을 뽑아서 신우의 이마에 총을 겨누었다. 한 발짝 한 발짝 발을 떼면서 신우를 압박했다.
둘 사이 거리는 몇 걸음 되지 않았다.
신우는 뒤로 물러서며 권총을 든 자를 살폈다. 이마에서 실룩거리는 큰 흉터를 보고 그가 야마모토임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넌 누구냐?”
야마모토가 공이를 뒤로 잡아당기며 신우를 압박했다.
“네가 … 야마모토 지로냐?”
신우가 무서운 표정으로 일갈했다. 목소리에 –100도 냉기가 넘쳐흘렀다. 저승사자 얼굴처럼 섬뜩했다. 복수심이 펄펄 끓어올랐다.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뭐, 뭐라고? 이놈이 어떻게 내 이름을?”
야마모토는 깜짝 놀랐다. 괴한이 자기를 알아보자, 움찔했다. 자기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다.
그때! 신우가 번개처럼 야마모토의 권총을 잡고 고개를 돌렸다.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간발의 차이로 신우가 총알을 피했다. 허공을 칼날처럼 가른 총알이 천장을 관통했다.
이제 신우의 차례였다.
“야~아!”
커다란 고함이 들렸다.
신우가 큰 소리로 기합을 넣고 오른손을 쭉 내뻗었다. 마치 호랑이가 거대한 앞발을 날리는 거 같았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괴력을 발휘했다.
야마모토의 머리를 꽉 잡더니 벽에 쾅! 찧어 버렸다. 인정사정없었다.
“악!”
비명이 들렸다. 야마모토가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 코와 입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곧 눈이 맥없이 풀리며 정신이 나가버렸다. 들고 있던 권총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야마모토! 네놈이 22년 전 간도 구산 마을에서 쏴 죽인 사람은 내 아버지 이덕수다. 그 이름을 기억해라! 이덕수 이름 석 자를!”
신우가 말을 마치고 야마모토의 멱살을 잡고 그를 질질 끌고 갔다. 집무실 문을 활짝 열고 안을 살폈다.
안에 아무도 없었다. 벽에 문이 있었고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비밀통로를 확인한 신우가 아차! 했다.
“이런!”
신우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쭉 흘러내렸다. 다나카가 도망친 걸 알아채고 다급함을 느꼈다. 빨리 다나카를 잡아야 했다.
신우가 야마모토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전했다.
“야마모토! … 잘 가라! 그곳이 바로 네가 진정 있을 곳이다!!”
정신이 나가버린 야마모토에게 마지막을 말을 전한 신우가 단전에 힘을 모았다. 그리고 저 앞에 보이는 창문을 바라봤다. 마치 과녁처럼 창문을 바라봤다.
순간! 야마모토를 잡은 팔이 쏜살같이 움직였다. 신우가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야마모토를 있는 힘껏 창문을 향해 던져 버렸다. 마치 투창 던지기를 하는 거 같았다.
그는 원수를 징벌해야 했다. 아버지가 당한 것보다 더한 고통을 주기 위해 혼신을 힘을 다했다.
야마모토가 미사일처럼 창문을 향해 날아갔다.
와장창!
창문이 산산조각이 났다. 야마모토가 창문을 깨고 공중을 날았다. 수십 미터를 빠르게 날아가더니 관저 마당에 있는 수백 년 묵은 거목에 쾅! 하고 부딪혔다.
커다란 나무가 흔들리자, 나뭇가지가 툭 떨어지고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뒤이어 나무 기둥을 따라서 야마모토가 쭉 미끄러져 내려왔다. 10여 미터 아래에 있는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렇게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절명했다.
극악무도한 다나카와 함께 전장을 누비며 상관에게 충성을 다했던 22년 전 관동군 1소대장 야마모토 지로가 생을 마감했다. 그에 걸맞은 비참한 최후였다.
“뭐야?”
“이 소리는 뭐지?”
관저 마당을 감시하던 헌병들이 갑자기 들리는 총소리와 큰 소리에 깜짝 놀랐다.
뒤이어 더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2층 창문이 와장창 깨지더니 한 사람이 하늘을 날아서 저 멀리에 있는 거목에 부딪혔다.
“큰일이다!”
“비상이다!”
헌병들이 관저 현관문을 향해 달려갔다. 문을 열기 위해 애를 썼지만, 명호가 빗장을 단단히 걸어놔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왔군. 나도 한몫해야지.”
창문으로 밖의 상황을 살피던 명호가 두 손을 비볐다. 주머니에서 폭발물을 꺼내더니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창문을 활짝 열고 헌병들한테 폭발물을 던져 버렸다.
쾅!
폭발물이 터지며 굉음이 났다.
“으악!”
“악!”
현관문 앞에 있던 헌병들이 피를 흘리며 모두 쓰러졌다. 그만큼 폭발물의 위력이 대단했다.
“비상이다!!”
“침입자다!!”
관저에 초비상이 걸렸다. 헌병들이 여기저기서 몰려오기 시작했다. 위병소에 있던 위병들도 굉음을 듣고 관저로 달려갔다.
“요시코, 저놈들을 다 끝내버리자.”
“맞아요!”
명호의 말에 요시코가 고개를 끄떡였다.
헌병들이 현관문으로 모이자, 명호와 요시코는 갖고 온 폭발물에 모두 불을 붙이고 던져 버렸다.
쾅! 쾅!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불꽃과 먼지가 크게 일었다. 폭발물이 한꺼번에 다 터지자, 관저가 흔들리는 거 같았다.
잠시 후 먼지가 걷혔다. 헌병과 위병 십여 명이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앵! 앵! 앵!
비상 상황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 사이렌은 지원 부대를 요청하는 것과 같았다.
관저 근처에 총사령관 경호 부대가 있었다. 사이렌 울리면 경호 부대가 중무장하고 관저에 도착할 게 뻔했다.
시간이 없었다. 그들이 오기 전에 빨리 일을 끝내야 했다. 속전속결이 최선이었다.
신우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지만, 어머니의 원수도 갚아야 했다. 이에 비밀통로를 급히 내려갔다. 어둠 속에서 계단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렇게 서두르고 있을 때 신우가 가슴을 움켜잡았다.
“윽!”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밀려왔다. 결국, 발을 헛디디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쿵쾅거리는 소리 끝에 신우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가슴에서 검은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곧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아, 안돼!”
신우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때 뭔가가 떠올랐다. 마석이 준 약이 있었다. 그 약을 먹어야 했다. 이에 서둘러 품에서 약을 꺼냈다.
가슴이 터지고 찢어지는 고통을 참으며 약병을 입에 붙이고 약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약물을 다 들이붓자, 차츰 고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신우가 왼쪽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마구 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점점 조여오는 돌덩이에 맞서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10초가 지난 후 신우가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몸이 괜찮아졌다. 그렇게 겨우 몸을 일으키고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통로 끝에 문이 있었다. 문 뒤에 다나카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좋다!”
신우의 두 눈에 불이 들어왔다. 그가 문을 박차고 쏜살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의 원수를 갚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