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신우가 다나카를 끝장내기 위해 그 앞에 섰다. 검은 그림자가 새파랗게 질린 다나카의 얼굴을 덮쳤다.
“으으으~! 제기랄!!”
신우의 몸에서 새파란 빛이 점점 잦아들었다. 신우가 냉정함을 찾기 시작했다.
신우가 왼손으로 다나카의 멱살을 꽉 잡았다.
“놔라! 어서 놔라!!”
다나카가 분을 참을 수 없는 듯 신우의 손아귀에서 몸부림쳤을 때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좁은 보폭이었다
서재로 하인 한 명이 들어왔다. 하녀 수장 나나코였다.
“헉!”
나나코가 사태를 파악하고 저 앞에 쓰러져있는 에리카에게 달려갔다.
“아가씨! 정신 차리세요.”
신우가 잠시 두 여자를 내려다봤다. 에리카를 도와주는 나나코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앞에 원수가 있었다. 이제 끝장을 내야 했다. 이에 이를 악물고 오른 주먹을 꽉 쥐었다.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온 힘을 끌어모았다.
바로 그때!
탕!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다.
“헉!”
신우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뒤로 돌렸다. 등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튄 피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등에 총을 맞고 말았다.
탕! 탕!
두 발의 총성이 더 울렸다. 복부를 꽤 뚫는 연이은 총상이었다.
“억!”
신우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나나코가 피스톨 권총을 들고 서 있었다. 신우와 다섯 보 거리였다. 총에서 연기가 계속 피어올랐다.
“감히, 총사령관님을 해치려 하다니!”
나나코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너, 너는 … 도대체 누구냐?”
신우가 살이 타들어 가고 뼈가 부서지는 고통을 참으며 외쳤다.
“난 이 집의 하녀가 아니다. 다나카 중장님을 최측근에서 경호하는 군인이다. 헌병대 사령부 정보부 소속 하야시 나나코 상사다. 이제 저승길로 가라!”
탕!
한 발의 총성이 더 울렸다. 총알이 신우의 가슴을 관통했다.
“악!”
신우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했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힘없이 쓰러졌다.
신우가 바닥으로 쓰러질 때 쟁그랑 소리가 들렸다. 목에 걸려있던 비녀가 땅에 떨어졌다. 비녀는 그의 분신과 같았다.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었다.
“총사령관님!”
나나코가 급히 다나카에게 달려갔다.
문 앞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마석이 어이가 없는지 고개를 흔들었다.
평범한 하녀로 보였던 나나코가 사실은 일본군 상사였다. 그것도 헌병대 정보부 소속이었다.
그는 부엌에 있던 나나코가 서재로 다가오자,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일본군 상사일 줄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마석이 출입문에서 몸을 피했다. 들고 있는 소총의 노리쇠를 뒤로 당겼다. 신우가 다나카를 해치우지 못하면 자기라도 다나카를 해치워야 했다.
“나나코 상사!”
다나카가 겨우 숨을 돌렸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신우와 에리카를 보고 치를 떨었다.
“저기 권총이!”
나나코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발터P38 권총을 발견했다. 총을 집어서 상관에게 건넸다. 신우를 가리키며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총사령관님! 저자의 숨통을 끊어 놓으십시오!”
그때 신우의 몸에서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다나카가 화들짝 놀랐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차하면 암살자가 다시 일어나 덤빌 거 같았다.
“저놈을 반드시 죽여야 해! 저 푸른빛을 막아야 해!”
다나카가 나나코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일어났다. 그리고 신우를 한발 한발 걸어갔다. 신우의 정수리에 총구를 들이대고 공이를 뒤로 당겼다.
키익!
공이가 뒤로 넘어가는 소리가 조용한 서재에 들렸다.
작은 소리였지만, 그 소리에 한 사람이 정신 차렸다. 바로 에리카였다.
그녀의 눈에 다나카의 총부리가 들어왔다.
“헉!”
에리카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신우를 구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도 움직여야 했다.
저 앞에 신우의 비녀가 떨어져 있었다. 끝이 여전히 뾰족했고 날카로웠다.
덜컹!
창문이 세게 젖혀지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돌풍이 불어왔다. 찬바람이 서재에 가득했다.
“뭐야?”
다나카와 나나코가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문 두 짝이 왔다 갔다 하며 흔들거렸다.
“그냥 바람이구나.”
다나카가 안도했다.
그는 다른 암살자가 온 줄 알고 간이 콩알만 해졌다. 신우의 괴력과 믿기 힘든 회복력을 목격한 후, 두려움이 그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평생 그는 두려움을 모르고 살았다. 그러다 오늘 두려움이 뭔지 제대로 알게 되었다.
비녀가 강한 바람을 타고 에리카 앞에 쨍! 하며 떨어졌다. 한 손에 꼭 쥘 수 있는 비녀였다.
“신우씨!”
에리카가 오른손으로 비녀를 꼭 쥐었다. 그리고 남아있는 모든 힘을 짜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젠, 끝이다!”
다나카가 방아쇠를 힘껏 당겼다. 신우가 회복하기 전에 반드시 죽여야 했다.
찰칵! 찰칵!
총알이 더는 나가지 않았다. 발터P38 권총은 빈총이었다. 탄창에 가득 찼던 총알 8개는 이미 허공으로 날아간 지 오래였다.
“젠장!”
다나카가 권총을 든 손을 부르르 떨었다.
바로 그때! 큰 소리가 들렸다.
“다나카!!”
에리카가 사력을 다해 비녀를 쳐들고 다나카에게 달려들었다.
“헉?”
다나카가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몸을 돌렸을 때
퍽!
두꺼운 판때기를 꿰뚫는 소리가 들렸다.
에리카가 다나카의 등판을 찔렀다. 두 손으로 비녀를 꼭 잡고 있는 힘을 다해 찔러 넣었다.
비녀가 그녀의 쓰라린 고통과 분노를 아는지 원수의 몸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으악!”
다나카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그 자리에서 맥없이 쓰러졌다. 커다란 고목이 단번에 쓰러지는 거 같았다.
그는 폐부를 찌르는 비수에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이것이!”
나나코가 크게 외치고 에리카에게 달려들었다.
짝!
뺨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나코가 에리카에 달려들어 그녀의 뺨을 세게 때렸다.
“악!”
에리카가 뺨을 부여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 배신자가 끝까지!”
나나코가 치를 떨었다. 에리카의 정수리에 피스톨을 겨누고 방아쇠에 검지를 걸었다.
“아, 안돼!”
신우가 몸을 일으켰다. 치유의 푸른빛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나나코의 검지가 움직이려고 할 때!
신우가 몸을 솟구쳤다. 나나코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는 아직 총상에서 회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신이 가물가물했지만, 남아있는 힘을 다 자아냈다.
퍽!
“아야!”
나나코가 신우의 주먹을 얻어맞고 10여 미터를 날아갔다. 피스톨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으으!”
신우가 다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회복 중에 힘을 쓰자 엄청난 고통이 그를 덮쳤다.
“이것들이!”
나나코가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나카를 찾았다.
다나카가 비수를 등에 맞고 무릎을 꿇었다.
그는 신우의 주먹을 얻어맞고 큰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비수까지 등에 맞자, 더는 싸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
나나코가 출입문을 향해 달려갔다. 어서 지원병을 불러야 했다. 서재에서 빠져나가서 현관문으로 향했다.
“흐흐흐!”
마석이 실실 웃었다. 그가 고개를 끄떡이고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신우와 에리카를 보면서 조용히 손뼉을 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대단한 한 쌍이군! 환상적인 커플이야. … 그럼, 나는 이만.”
마석이 말을 마치고 들고 있던 총을 바닥에 던졌다. 나나코를 따라서 자리를 피했다.
관저 밖에 중무장한 병사들이 보였다. 경호 중대에서 달려온 50명이었다. 병사들이 관저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나나코가 병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녀가 급히 말했다.
“지금 총사령관님 위험합니다. 빨리 구해야 합니다. 암살자들한테 잡혔습니다.”
“알겠습니다. 빨리 쿠시로 상사님께 보고해.”
병사 하나가 쿠시로 상사한테 상황을 보고했다. 쿠시로가 급히 말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라! 시간이 없다.”
이에 병사들이 철문을 활짝 열고 관저 마당으로 쏟아졌다.
그때 에리카는 신우를 꼭 부둥켜안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흐느끼며 말했다.
“제발! 정신 차려요. 저 악마를 해치워요. 이건 당신이 반드시 해야 할 사명이에요.”
신우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푸른 빛이 계속 그를 감쌌다.
“아! 맞아.”
서글피 울던 에리카는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마석이 준 약병을 꺼내서 신우의 입에 흘려 넣었다.
잠시 후 약 기운 감돌기 시작하자, 신우가 눈을 떴다. 푸른빛이 더욱 강렬하게 몸을 감쌌다. 약이 회복력을 가속화 한 거 같았다.
“휴우~!”
신우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에리카의 손을 잡으며 간곡하게 말했다.
“날 일으켜 줘요! 이젠 끝을 내야 합니다.”
에리카가 한 손으로 신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떡였다.
신우가 에리카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푸른빛이 둘을 부드럽게 감쌌다.
점점 신우의 낯빛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나코가 쏜 총을 네 번이나 맞았지만, 이를 이겨내기 시작했다.
신우가 힘든 걸음을 옮기며 에리카와 함께 다나카에게 다가갔다.
바닥에 나나코가 떨어뜨린 피스톨이 있었다. 신우가 바닥에 떨어진 피스톨을 주워들었다.
“너, 넌 도대체 누구냐? 귀신이냐? 왜 죽지 않는 거야! 푸른빛의 … 귀신이냐?”
다나카가 사력을 다해 몸을 일으키며 신우를 향해 일갈했다. 이렇게 죽는 게 너무나도 억울한 듯 눈을 있는 힘껏 부라렸다.
“나는 간도에서 온 사나이 … 이신우다!”
신우가 답했다.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떨렸다. 커다란 한을 담은 듯 크게 떨렸다.
신우가 말을 마치고 창문 밖을 내다봤다. 먼 하늘을 쳐다봤다.
22여 년 전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아버지, 어머니, 덕대, 기철, 명호, 누렁이와 즐거웠던 일들이 하나둘씩 스쳐 지나갔다.
그들을 모두 해친 자가 앞에 있었다.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신우가 권총을 힘들게 들어 올렸다. 아직 부상에서 완쾌되지 않았다. 권총을 드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이에 에리카가 한 손을 들었다. 권총을 잡은 신우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렇게 둘이 손을 꼭 잡고 다나카의 심장을 겨냥했다.
“간도라고? 그러면, 독립군이구나! … 하하하!”
다나카가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떡이며 크게 웃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적군에게 죽다니! … 군인으로서 헛되게 살진 않았군. 에리카, 너도 사실을 알았구나. … 정말 미안하다. 그때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다나카가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군인답게 죽는다는 생각에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 에리카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신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일갈했다.
“나는 군인이 아니다! 네 손에 억울하게 죽어간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
신우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고개를 돌려 에리카를 쳐다봤다. 에리카가 고개를 숙이며 눈을 감았다. 꼭 잡은 신우의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
뜨거운 체온이 신우에게 결단을 촉구했다.
“뭐, 뭐라고? 이놈이!”
군인이 아니라는 말에 다나카가 발끈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서 몸을 일으켰다.
순간! 에리카가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악마!”
탕!
신우의 검지가 방아쇠를 당겼다. 에리카의 온몸이 떨렸다.
한 발의 총성이 서재에 크게 퍼졌다.
열린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신우와 에리카의 크나큰 분노를 실은 총알이 다나카의 심장을 관통했다.
다나카는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그 죄의 무게를 못 견디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렇게 다나카가 최후를 맞이했다.
수십 년간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며 출세를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서슴지 않았던 그였지만, 오로지 복수를 위해 그 오랜 세월 칼을 갈았던 신우와 에리카한테 그 명이 다하고 말았다.
다나카는 자기의 허무한 죽음이 억울했는지 눈을 감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아직도 못다 한 꿈이 남아있었다.
그는 총독부 총독이 된 후 본토의 수상인 내각총리대신이 되어 세상을 마음껏 호령하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루지 못하자, 생기를 잃은 눈빛이 허공만 바라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