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유강인이 최간호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최간호사는 정간호사보다 베테랑으로 보였다. 나이가 많고 경험도 풍부해 보였다.
“주미희씨가 의료사고 당일 병원에 왔나요?”
“네에?”
최간호사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녀가 급히 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기억이 나지 않아요. 벌써 1년이나 지난 일이에요.”
유강인이 정색하고 말했다.
“최간호사님, 이 사안은 조사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미희씨 회사 기록과 통신 및 문자, 카드 기록 등을 조회하면 알 수 있습니다.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거짓을 말하면 의심을 살 수 있습니다.”
“의, 의심이요?”
“네, 그렇습니다.”
최간호사가 그 말을 듣고 몸을 떨었다. 앞에 있는 유강인의 눈썰미가 너무나도 매서웠다. 거짓말을 했다가는 뼈도 못 추릴 거 같았다.
그녀가 잠시 고민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사실, 그날 주미희씨가 회사를 방문하기는 했습니다. 영업 사원이니 회사를 방문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유강인이 그러면 그렇지! 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그렇군요. 주미희씨가 1년 전 의료사고가 벌어진 날, 병원을 방문했군요.
주미희씨가 병원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기억이 나시나요?”
“저는 … 잘 모르겠어요. 저는 영업 사원 담당이 아닙니다. 원무과나 의사 선생님들한테 물어보세요.”
“그렇군요.”
유강인이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최간호사가 성실히 답했다.
그녀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주미희가 병원에 온 건 맞지만, 다른 건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유강인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테이블 위에 있는 노트를 들고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필기를 마치고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이상으로 조사를 마칩니다. 밖에 계신 정간호사님한테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씀하세요. 최간호사님은 가셔도 좋습니다.”
“저는 다 끝난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휴우~!”
최간호사가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휴게실 출입문으로 걸어갔다.
1분 후 밖에서 대기하던 정간호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정간호사가 자리에 앉아, 유강인이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얼굴이 붉었고 입술이 떨렸다. 긴장감이 감도는 얼굴이었다. 최간호사가 옆에 없자, 뭔가를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다 입술이 철문처럼 닫혔다. 고심 끝에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유강인이 꾹 닫힌 입술을 보면서 그 입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오른손 검지로 아래를 가리켰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에 노트가 있었다. 정간호사에게 노트를 보라고 손짓했다.
“네에?”
정간호사가 이게 뭔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테이블 위에 있는 노트를 내려다봤다. 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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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간호사님, 저는 진실을 밝히는 탐정입니다.
현재 주미희씨가 사망했습니다. 원한을 품은 자에게 죽은 거 같습니다.
저는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그래야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현재 사무친 원한의 칼날이 그 누구를 향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시가 급합니다.
주미희씨가 혹 1년 전 수술에 참여하지 않았나요? 주미희씨가 실은 유령 의사이지 않았나요?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비밀을 보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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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다 읽고 정간호사가 깜짝 놀랐다. 그녀가 무척 놀란 눈빛으로 유강인을 쳐다봤다.
유강인이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이 사람은 진실을 말할 거 같아. 병원 안이라서 말하기 힘들 뿐이야.’
유강인이 생각을 마치고 말했다.
“여기 노트에 적힌 대로 주미희씨가 그 일을 했습니까? 했다면 고개를 세 번 끄떡이세요.”
정간호사가 그 말을 듣고 침을 꿀컥 삼켰다. 잠시 고심하는 거 같았다. 그러다 결심을 한 듯 눈빛이 빛났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봤다. 휴게실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이윽고
고개를 끄떡이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렇게 세 번 고개를 끄떡였다.
긍정의 뜻이었다.
유강인이 미소를 지었다. 병원은 진실을 감추려 했지만, 한 명이 용기 있게 진실을 말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정간호사가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진실의 힘이 그녀에게 힘을 주었다.
유강인이 꼭 쥔 주먹을 내려다보며 질문을 이었다.
“최간호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의료사고 당일 주미희씨가 병원에 왔다고 진술했습니다. 당시 일이 기억나나요?”
정간호사가 즉시 답했다.
“기억이 납니다. 그때 일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날 건장한 남자가 허무하게 수술실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날 일들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그렇군요. 주미희씨가 언제 병원에 왔죠?”
“오후 1시 정도에 왔습니다.”
“와서 누구를 만났죠?”
“원무과에 들른 걸 기억합니다.”
“다른 기억은 없나요?”
“그때 두 분이 왔습니다.”
둘이라는 말에 유강인의 두 눈이 확 커졌다. 그가 급히 말했다.
“주미희씨한테 일행이 있었다는 말인가요?”
“네, 다른 여성분하고 같이 병원에 왔습니다.”
“그분은 아는 사람인가요?”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이 친했나요?”
“네, 친한 거 같았어요.”
정간호사가 기억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병원에 도착한 주미희씨가 품에서 담배 케이스를 꺼냈어요. 새로 산 담뱃갑을 열더니 담배를 케이스에 담았어요.
하필 담배가 똑 떨어져서 여기에서 샀다고 했어요.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가 담배 좀 작작 피우라고 말했어요. 그게 인상에 남았어요.”
담배라는 말에 유강인이 서둘러 말했다.
“담배라고요? 그것도 여기에서 산 담배라고 말했다고요?”
“네, 새 담뱃갑이었어요. 분명 새 담뱃갑을 뜯었어요. 뜯는 소리도 들었어요.
제가 그때 4층 출입문 근처에 있었어요. 그래서 둘이 들어오는 걸 똑똑히 봤어요.”
“아, 그렇군요.”
유강인이 오른손바닥으로 오른 무릎을 탁! 쳤다. 중요한 정보를 얻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 왼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조사를 통해 주미희한테 일행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령 의사의 일행이라면 그 사람도 의심스러웠다.
5분 후
유강인이 모든 질문을 마쳤다. 그가 활짝 웃으며 정간호사에 말했다.
“적극 협조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용기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유탐정님, 진상이, … 진상이 제대로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돌아가신 분이 젊은 사람이라 너무나도 안타까웠고 그 사실에 분노하는 형님의 억울한 눈빛이 잊혀지지 않아요. 형제가 무척 각별한 사이인 거 같았어요.”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간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유강인에게 넙죽 절했다. 그리고 휴게실 밖으로 나갔다.
유강인이 급히 정찬우 형사에게 말했다.
“정형사, 주미희씨와 같이 온 사람을 조사해야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쉽지 않은 일이네요. 벌써 1년이나 지났으니 …. CCTV가 남아있을 리 없어요.”
“그렇기는 하군.”
“그럼, 어떡하죠?”
유강인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뭔가를 깨달은 듯 급히 말했다.
“주미희씨가 병원에 들어올 때 새 담뱃갑을 꺼냈다고 했어. 그러면 근처에서 담배를 샀을 수 있어. 그럴 가능성이 커.
같이 온 일행도 그 가게에 갔을 수 있어. 그 여자도 가게에 들어간 김에 뭔가를 샀을 수 있어.”
“담배요? 담배라면 … 마트나 편의점이겠네요.”
“그렇지. 주미희씨가 1년 전 이곳 근처에서 담배를 샀는지 살펴봐.
그 앞이나 그다음으로 결제한 사람이 일행일 수 있어. 운이 좋으면 뭔가가 나올 거야.”
“알겠습니다. 우선배님께 연락하겠습니다. 주미희씨 카드 기록을 살피라고 전하겠습니다.”
“그래, 좋았어.”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은 사이다를 말끔히 다 마시고 출입문으로 향했다.
다행히 소득이 있었다.
피해자 주미희는 유령 의사였고 의료사고 당일 일행이 있었다. 일행은 한 명이었고 여자였다.
유강인이 병원 건물에서 나왔다. 그리고 사방을 쭉 둘러봤다.
여기는 강남대로였다. 아주 번화한 곳이었다. 많은 행인과 차들이 지나다녔다.
길 건너편에 편의점이 있었다. 유강인이 그 편의점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주미희가 그곳에서 담배를 샀을 거 같았다.
그의 머릿속에 주미희 일행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 여자가 편의점에 들어갔다. 진열대를 보며 쇼핑을 시작했다.
“이 단서를 꽉 잡는다!”
유강인이 각오를 다졌다.
다음 날
2025년 10월 11일 오후 2시
유강인이 조수 둘과 함께 길을 걸었다. 여기는 서울 변두리인 내수동이다. 조금만 걸어가면 성남이었다.
이곳은 번화한 곳이 아니었다. 옛날 빌라들이 밀집한 주택가였다.
저 멀리에 오래전에 지은 아파트 단지도 보였다. 재건축을 서둘러야 할 정도로 낡았다.
길을 걷던 황정수가 동네를 쭉 둘러보고 말했다.
“아주 조용한 동네네요. 특별한 게 없어요. 새로 지은 집도 없고. 여기도 재건축하려고 하나 봐요. 집들이 하나같이 다 낡았어요.”
황수지가 고개를 끄떡이며 동의했다.
“맞아요. 아주 조용한 동네에요. 동네 안에 가게조차 없어서 사람이 더 없는 거 같아요.”
“그렇군.”
유강인도 조수들의 말에 동의했다. 낡았지만, 아늑하고 조용한 동네였다. 상가 주택이 없어서 편의점과 같은 가게들도 없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근처에 학교가 없는 거 같았다. 그래서 젊은 부부들이 살지 않는 거 같았다.
간혹 유모차를 끄는 할머니들이 보였다. 유모차 안에는 아이가 아니라 애완견이 있었다. 시추였다. 시추가 특유의 순진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삐리릭!”
유강인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정찬우 형사였다. 유강인이 전화 받았다.
“정형사.”
“선배님, 동네 주요 길목에 경찰을 배치했습니다.”
“그래, 모두 사복 차림이지?”
“네, 그렇습니다.”
“좋았어.”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는 오늘 아침 우동식 형사한테 보고를 받았다. 보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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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단이 서울청 강력범죄수사대에 출근했다.
유강인과 조수 둘이 회의실에 들어가 자리에 잡았다. 한 손에 모두 종이컵이 있었다. 자판기 커피였다. 그렇게 셋이 모닝커피를 즐기고 있을 때
우동식 형사가 출입문을 열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대장, 주미희씨 카드 기록을 조회했어.”
“그래서 어떻게 됐죠?”
유강인이 종이컵을 내려놓고 말했다.
“1년 전 한종호씨 의료사고 때 병원 근처 편의점에서 담배를 샀어. 수술 시작 2시간 전이야.”
“아, 그래요? 주미희씨 바로 다음이나 바로 앞에서 물건을 산 사람이 있나요?”
“있어. 주미희씨 계산이 끝나고 20초 뒤 계산한 사람이야. 그 사람을 조사했는데 … 정금학이라는 사람이야.
신원을 조회한 결과, 그 사람도 의료기기 영업 사원이야.”
“영업 사원이라고요? … 둘이 같은 회사인가요?”
“그건 아니야. 서로 다른 회사야.”
“그러면 주미희씨가 다른 회사 사람과 함께 편의점에 들른 후 같이 세컨드 라이프 병원에 갔다는 말이네요.”
“그렇지.”
“선배님, 정금학씨가 사는 곳을 당장 알아내야 합니다.”
“정금학씨는 왜?”
“주미희씨는 겉으로는 영업 사원이지만, 실은 유령 의사 같습니다. 1년 전 의료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이 분명합니다.”
“뭐? …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
“두 번째 피해자인 최인식 교수처럼 주미희씨도 수술 중에 환자를 죽였고 그래서 놈들한테 살해당한 겁니다.”
“우와! 이야기가 그렇게 돌아가는 거야?”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주미희씨와 같이 병원에 온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정금학씨입니다.
정금학씨 역시 의료기기 영업 사원입니다. 그렇다면 주미희씨처럼 유령 의사일 확률이 높습니다.”
“정금학도 유령 의사라고?”
“네, 수술에 둘이 참여했다면 타깃은 둘입니다. 첫 번째 타깃인 주미희씨가 죽었으니 다음 타깃이 위험합니다. 어서 정금학씨를 찾아서 보호해야 합니다.”
“아이고, 그렇군. 일을 빨리 처리할게. 사안이 다급하군. 잘못하면 정금학씨도 죽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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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인이 걸음을 재촉했다. 지금 한시가 급했다. 추가 피해를 막아야 했다.
경찰이 서둘러 내수동 CCTV를 확인한 결과, 오늘 아침 정금학의 모습이 잡혔다. 정금학은 동네 밖 마트를 들렀다가 집으로 향했다.
현재 서울청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사복 경찰들을 내수동에 배치했다. 사복 경찰들은 행동이 수상한 사람들 위주로 경계의 눈초리를 멈추지 않았다.
조용하고 아늑한 동네에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 긴장감은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전혀 몰랐다.
탐정과 경찰 그리고 자경단이 타깃을 사이에 두고 팽팽히 맞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