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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_탐정 유강인 19_38_유강인, 정금학을 만나다

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by woodolee

탐정단이 한 집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80년대에 지은 다세대 주택이었다.


핸드폰으로 약도를 보던 황정수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탐정님, 이 집이에요. 이 집에 정금학씨가 살고 있어요.”


“그렇군.”


유강인이 정금학의 집을 살피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아주 오래된 2층 벽돌집이었다. 40년 세월을 반영하듯, 붉은 벽돌이 희뿌옇게 변했다.


벽돌집 주변으로 작은 마당과 성인 허리 높이 벽돌담이 있었다. 마당에는 회색빛 시멘트가 깔려 있었다.


오래된 집이었지만, 관리를 잘한 듯, 집 상태는 괜찮았다. 무너진 곳은 없었다.


탐정단이 현관문 앞 입구로 향했다. 벽돌담에 철문 같은 건 없었다. 문은 철거한 지 오래된 거 같았다. 입구 두 개만 있을 뿐이었다.


첫 번째 입구는 1층 현관문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통로였다. 두 번째 입구는 벽돌담 왼쪽 끝에 있는 반지하 통로였다.


유강인이 현관문 앞 입구에 섰다.


집은 아주 조용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실과 안방에 커다란 창문이 있었지만, 어두컴컴해서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모든 불이 꺼져 있었다.


“음!”


유강인이 입구 앞에서 현관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더는 기다릴 수 없는 듯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 걸었다.


신호가 두 번 가자 가녀린 목소리가 들렸다.


“저, 유강인 탐정님이세요?”


“네, 그렇습니다. 지금 집 앞에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어서 집 안으로 들어오세요. 현관문은 열어놨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강인이 상냥한 목소리로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입구를 지나 마당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조수 둘이 따랐다.


유강인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은 정금학은 자경단의 네 번째 타깃 같았다.


현재 정금학한테 특별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었다. 방심은 언제나 금물이었다.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현관문 앞에 계단 5개가 있었다. 계단을 다 오른 유강인이 현관문을 열었다.


끼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자, 어두운 거실이 보였다. 현관문이 점점 열리며 바깥의 빛이 들어오자, 베일에 가려던 집 내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됐지만, 깔끔하고 정갈한 실내였다. 나무 벽과 나무 천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문이 열리자, 곧 발소리가 들렸다. 보폭이 적은 게 여성이 내는 발소리였다.


“음!”


유강인이 발소리를 듣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어두운 거실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상큼한 향수 냄새가 현관문 쪽으로 풍겼다. 젊은 여성이 사용하는 향수였다. 황수지가 애용하는 향수와 비슷했다.


한 여인이 유강인 앞에 섰다. 세 번째 피해자인 주미희와 동행했던, 의료기기 영업 사원 정금학이었다.


정금학의 모습을 보고 유강인과 조수 둘이 감탄했다.


어둠 속에서 한 마리 학이 수줍게 서 있는 거 같았다. 도도하면서도 청아한 아름다움이 빛났다.


정금학은 30대 초반 여성이었다. 키가 크고 말랐다. 가느스름한 얼굴과 새까만 긴 머리가 학의 머리를 닮았다.


얼굴은 조화로웠다. 긴 눈꼬리에 이등변 삼각형처럼 코가 높았고 입술은 작고 도톰했다.


“우와!”


황정수가 정금학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냈다. 도도한 자태의 여성이 그 우아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사람이 정금학이구나!’


황수지도 감탄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정금학은 남다른 자태를 가진 미인이었다. 이목구비가 아주 선명해서 인상적인 미인이라기보다 남다른 분위기가 넘쳐 흘렀다.


그건 순수함과 슬픔이었다. 그윽한 눈매가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정금학을 잠시 바라보던 유강인이 거실을 쭉 둘러봤다.


텅 비어있는 거실이었다. 흔하디흔한 가구가 하나도 없었다. 장식장, 소파, 테이블이 보이지 않았다. TV조차도 없었다. 한 마디로 여백의 미가 가득한 실내였다.


탐정이 집 안을 살피자, 집주인 정금학이 유강인을 유심히 바라봤다.


유강인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마치 강렬한 조명 같았다.


정금학이 유강인을 바라보다가 침을 꿀컥 삼켰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는 침묵을 깨야 했다. 유강인이 입을 열려고 마음먹었을 때


정금학이 먼저 그 침묵을 깼다.


“저, 유강인 탐정님이시죠?”


외모와 어울리는 가냘프고 고운 목소리였다.


유강인이 답했다.


“네, 제가 탐정 유강인입니다. 우진 의료기기 영업 사원 … 정금학씨가 맞나요?”


“맞습니다. 제가 정금학이 맞습니다. 잠시 기다리세요. 방에서 방석을 갖고 올게요.”


정금학이 말을 마치고 안방으로 향했다. 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정금학이 방석 네 개를 들고 거실로 돌아왔다. 방석을 바닥에 깔더니 주방으로 향했다. 거실 우측에 작은 방이 있었고 왼쪽에 주방이 있었다.


탐정단이 방석을 깔고 자리에 앉았다. 정금학이 쟁반에 유리잔과 오렌지 주스 통을 담았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렌지 주스는 딱 봐도 먹음직스러웠다.


콸콸! 오렌지 주스가 잔에 담기는 소리가 들렸다.


유강인이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음, … 정금학은 보통 사람이 아닌 거 같아. 알게 모르게 몸에서 카리스마가 풍겨. 대단한 뭔가가 있는 거 같아. 영업 사원이라기보다 의사가 훨씬 어울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유강인이 생각을 마치고 녹색 수술복을 입은 정금학을 떠올렸다.


정금학이 수술 모자를 쓰더니 손을 깨끗이 씻었다. 그리고 두 손에 수술 장갑을 꼈다. 그 모습이 잘 어울렸다.


정금학이 탐정단한테 오렌지 주스가 듬뿍 담긴 잔을 권했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먼저 오렌지 주스를 드세요.”


“감사합니다. 정금학씨.”


“잘 먹겠습니다. 정금학씨.”


탐정단이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마시자, 정금학이 말을 이었다.


“오전에 경찰한테 연락받았습니다. 저를 찾아온 이유가 … 미희 언니 때문인가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그렇습니다.”


정금학이 말을 이었다.


“유강인 탐정님, 미희 언니하고는 그냥 아는 사이입니다. 회사가 다르지만, 일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성격이 맞아서 좀 친했던 사이였어요.”


“그렇군요.”


“그런데 미희 언니한테 혹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경찰 연락받고 언니한테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요.”


유강인이 오렌지 주스 잔을 바닥에 내려놨다. 그리고 고 주미희를 떠올렸다. 이내 무거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주미희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유강인이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놀라지 마세요, 정금학씨. 주미희씨는 12월 9일 사망했습니다. 괴한한테 죽었습니다. 오늘이 12월 11일이니 죽은 지 만 이틀이 지났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정금학이 깜짝 놀랐다. 그녀가 서둘러 말했다.


“네에? 미, 미희 언니가 누구한테 죽었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어, 어떻게 그런 일이?”


정금학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크게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수사 결과, 주미희씨는 … 연쇄살인범의 세 번째 피해자입니다. 연쇄살인범은 사무친 원한을 품고 원수를 죽이고 있습니다.”


연쇄 살인과 원한이라는 말에 정금학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녀가 서둘러 말했다.


“주희 언니가 원한을 사서 죽었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원한이라면 ….”


정금학이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화들짝 놀랐다. 뭔가를 아는 거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유강인이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까지 온 게 헛걸음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정금학은 주미희의 죽음과 분명 관련이 있었다.


유강인이 말했다.


“1년 전 서울 세컨드 라이프 성형외과에서 한종호씨가 수술 중 의료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수사 결과, 영업 사원 주미희씨가 그 수술에 참여한 거 같습니다. 수술 중 무슨 문제를 일으킨 거 같습니다.”


유강인의 말에 정금학이 서둘러 한 손을 들었다. 더욱 크게 벌어진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이는 정곡이 찔린 모습이었다. 유강인이 날카로운 질문을 이었다.


“정금학씨, 이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정금학이 재빨리 두 손을 흔들며 이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녀가 말했다.


“수, 수술이라고요? 우리는 영업 사원이에요. 수술은 의사가 하는 거지, 영업 사원이 수술하지 않아요. 우리는 단지 … 의료기기를 납품할 뿐이에요.”


정금학이 두 눈을 크게 뜨고 유강인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이 알게 모르게 파르르 떨렸다. 감추었던 비밀이 드러나자, 당황한 거 같았다.


유강인이 그 모습을 보고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면허가 없는 사람의 수술은 불법이었다. 그 솜씨가 아무리 대단해도 불법은 불법이었다.


유강인이 다시 잔을 들었다. 오렌지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금학이 안절부절못했다. 그녀는 오전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서울청 우동식 형사의 전화였다. 그녀가 그때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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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정금학씨입니까?”


“네, 정금학입니다.”


“안내 문자를 보낸 서울청 우동식 형사입니다.”


“네, 확인해보니 서울청 형사님이 맞더군요. 왜 저한테 전화하셨죠?”


“협조를 구하려고 연락했습니다. DNC 의료기기 영업 사원 주미희씨를 아시죠?”


“네, 아는 언니예요. 언니한테 무슨 일이 있다고요?”


“주미희씨가 사건에 휘말렸습니다. 그래서 유강인 탐정님이 조사 중입니다. 사건 확인 차 지인인 정금학씨 집을 방문하고자 하는데 괜찮나요?”


“우리 집으로 온다고요? 그것도 유강인 탐정님이!”


“네, 그렇습니다. 유강인 탐정님이 누구인지는 아시죠?”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유명하신 분이잖아요.”


“유강인 탐정님이 조사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언제쯤 시간이 되나요? 오늘 중에 가능할까요?”


“오늘이요?”


“네, 돌아가는 사정이 매우 다급합니다.”


“오늘 비번이긴 한데, … 그러면 오후에 집에 오시면 될 거 같아요.”


“잘됐네요. 2시 10분쯤에 방문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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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학은 경찰의 협조 요청을 받고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경찰이 정중하게 협조를 요청하는데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친한 지인인 주미희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래서 주미희한테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전화했지만, 받은 이가 없었다.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


약속대로 탐정 유강인이 조수 둘과 함께 집에 방문했다.


그녀는 유강인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는데 난데없이 주미희가 죽었다는 말을 꺼냈다. 그리고 주미희가 영업 사원인데도 수술했다는 말까지 했다.


정금학이 어쩔 줄 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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