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눈동자 <회색 인간 외줄 타기>
임주리가 오빠를 슬픈 눈으로 쳐다봤다. 자기를 왜 이렇게 만들었냐며 우는 거 같았다.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눈에서 그 커다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임무혁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주리야?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임주리의 눈빛이 더욱 슬퍼졌다.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입술이 마구 흔들거렸다.
슬픔을 참던 임주리가 힘들게 말했다.
“지금 … 발뺌하는 거야?”
“발뺌이라니 … 내가 대체 뭘 했다는 거야?”
“오빠가 나한테 연락했어.”
“내가 뭐라고 했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어.”
“네, 네가 그랬다고? … 지금 내 기억이 온전하지 않아. 언제 그런 말을 했는데?”
“대폭발 사고 두 시간 전이야.”
“그럼, 한 달 전에 그런 말을 했다는 거야?”
“응!”
“미안하다. 기억이 없어.”
“지금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거짓말이라니? 나는 네 오빠야. 하나밖에 없는 혈육이야. 우리 둘은 누구보다 각별한 사이야.”
“난 오빠를 언제나 믿었어. 오빠 말이라면 뭐든지 따랐어. 그래서 주형사님과 사귄 거야.
오빠가 주형사님을 주시했잖아. 그래서 도움이 되려고 주형사님께 잘해주고 접근한 거야.”
임무혁이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말했다.
“네가 그때 분명히 말했어. 주형사님이 멋있어서 좋다고 했잖아? 그래서 둘이 만나는 줄 알았는데 … 그럼, 그게 아니었던 거야? 좋아하지도 않는데 사귄 거야?
나 때문에 주형사님과 사귄 거야? 그런 거야?”
임주리가 울컥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그랬지. 좋아하지 않았어. 나이가 한참 많은 오빠였으니 … 나도 내 이상향이 있었어. 나이 많은 오빠가 아니라 젊은 오빠를 만나고 싶었어.
… 그러다 주형사님이 좋아졌어. 지금은 주형사님을 사랑해. 누구보다도 사랑해.”
“그, 그렇구나. 그러면 다행이네.”
“다행이라고? 내가 주형사님을 사랑해서 이 꼴이 됐는데?”
“주형사님 때문이라고?”
“주형사님이 지금 의식불명 상태잖아.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
새언니가 그랬어.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고 … 1년이 될 수도 있고 10년이 될 수도 있다고 했어. 아니 더 될 수도 있다고 했어.”
임무혁이 그 말을 듣고 병상에 누워있는 주철기 형사를 떠올렸다. 주형사는 동생의 애인이었다. 그래서 천금처럼 무거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임주리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주형사님은 대폭발 현장에 오빠랑 같이 있었어. 오빠도 주형사님처럼 의식을 잃었지만, 며칠 만에 깨어났어. 그런데 주형사님은 아직도 저 모양이야.
이를 어떻게 책임질 거야. 다 오빠 때문이야. 오빠가 주형사님을 창고로 데려간 거지? 그런 거지? 그래서 주형사님이 저렇게 된 거지!”
임무혁이 답을 하지 못했다. 잃어버린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지만, 아직 대폭발 사고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고 누구랑 같이 갔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흑!”
임주리가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그녀가 흐느끼며 말했다.
“병원비! 엄청난 병원비가 든다고 새언니가 말했어. 입원 기간이 길수록 병원비가 천문학적으로 들어간다고 이를 누가 감당하냐고 말했어.
깨어나려면 아주 비싼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 돈을 낼 사람이 없다고 안타까워했어.”
“그렇구나. 그래서 ….”
임무혁이 고개를 끄떡였다. 동생이 마약을 밀반입한 이유를 알 거 같았다. 그건 바로 돈 때문이었다. 애인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위험한 짓을 한 거였다.
“오빠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나에게 이럴 수는 없어! 왜 나를 이 꼴로 만든 거야? 문제없다고 했잖아!”
임주리가 큰 목소리로 오빠에게 따졌다. 임무혁은 동생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말했다.
“난, 의식이 돌아온 후 너를 찾았어. 그런데 너하고 연락이 되지 않았어. 그래서 걱정하고 있었어.
어머니도 마찬가지야. 어머니도 현재 연락이 되지 않아.”
“오빠가 엄마한테도 연락했겠지. 나처럼 쥐죽은 듯 가만히 있으라고, 아니 피신하라고 했겠지. 그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거야?”
“응, 기억이 나지 않아. 내가 뭐라고 했는데?”
“아주 중요한 거라 했어. 그래서 위험할 수 있다고 했어. 다시 연락할 때까지 절대 움직이지 말하고 했어. 미국에서 안전하게 있으라고 했어.
그러다 다시 연락했어. 일주일 전이었어.”
“네가 일주일 전에 연락했다고?”
임주리의 말에 임무혁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급히 말했다.
“난 의식이 돌아온 후 너랑 통화한 적이 없어. 문자를 보내도 네가 답장하지 않았어. 그런데 일주일 전에 내 연락을 받았다고?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말이야?”
“오빠가 분명히 연락했어.”
“내가 했다고?”
임무혁이 다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생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의식이 돌아온 후 동생과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동생은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임주리가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렇게 분노와 슬픔을 꾹 삼키고 눈을 다시 떴다. 그녀가 말했다.
“나를 언제 꺼내줄 거야? 내가 구속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
임무혁이 서둘러 답했다.
“좋은 변호사를 빨리 구할게. 그러면 구속은 피할 수 있어. 실수라면 선처받을 수 있어.”
“실수?”
임주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남매가 말을 나눴다. 그들은 허심탄회하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없었다.
이곳은 경찰서 조사실이었다. 이곳 형사가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답답하지만, 돌려가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둘이 잘 알고 있었다. 남매 중 오빠는 형사였고 동생은 형사의 애인이었다.
잠시 후
조사실 문이 열렸다. 임무혁이 조사실에서 나왔다.
“휴우~!”
그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걱정 어린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
택시 한 대가 고급 주택단지로 접어들었다. 이곳은 단독 주택 단지였다. 인천 시내에 떨어진 공기 좋은 곳이었다. 그곳에 임무혁의 집이 있었다.
택시 안에 임무혁이 있었다. 그가 차창 밖을 내다봤다. 늦은 밤이었다. 시간이 자정을 넘었다. 어두컴컴한 어둠의 장막이 사방에 깔렸다.
택시가 한 고급 주택 앞에 멈췄다. 임무혁이 카드로 차비를 계산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가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택시 기사가 차를 후진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이제 한 시네.”
임무혁이 손목시계를 내려다보고 중얼거렸다. 피곤한지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 많은 일이 있었다.
먼저 동생을 만나러 공항에 갔다고 비행기가 연착해서 허탕 쳤다. 이후 제3 창고에서 잠복하다가 마약 거래 현장을 덮쳤다.
마약상 네 명을 몽땅 잡을 수 있었지만, 그때 갑자기 두통이 찾아와 한 명을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그자는 아는 자였다. 임무혁의 친구, 이민우였다.
이민우는 임무혁과 오랜 인연이 있었다. 임무혁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초등학교 6학년인 이민우를 처음 만났다.
둘은 이후 의형제가 되었다. 이민우가 임무혁을 친형처럼 따르며 좋아했다.
임무혁은 누구보다 강한 형이었고 이민우는 그런 임무혁을 믿고 따랐다.
이민우를 만난 후,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동생이 마약 밀반입 혐의로 공항에서 체포되어 인천 서부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다.
동생을 면회했을 때 그녀가 중요한 말을 했다.
임무혁이 폭발 사고 2시간 전,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으라고 연락했고 이후 다시 연락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연락은 일주일 전이었다. 이는 마약 밀수와 관련된 거 같았다. 거액의 마약을 운반해서 주철기 형사의 병원비를 마련하라고 주문한 게 분명했다.
임무혁이 생각했다.
‘나는 대폭발 사고 후 주리랑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어.
그렇다면 누군가가 나인 척하며 주리랑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말인데, 그렇게 마약을 주문했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만약 가능하다면 …… 헉!’
임무혁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눈동자도 마찬가지였다.
새하얀 눈동자였다.
동생에게 오빠인 척하며 연락이 가능한 자는 두 명이었다. 바로 그의 최측근이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어머니와 아내였다.
‘… 그럴 사람은 어머니하고 미진이 밖에 없어. 둘 중 누군가가 주리에게 마약을 운반하라고 주문했다는 말인데,
어머니는 현재 연락 두절이고 그렇다면 미진이가? 아내가 그런 짓을 했다고?
아, 맞아. 미진이가 주리에게 주형사 병원비를 들먹거렸어. 주리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그렇게 미진이가 주리를 불안하게 만들었어. 그렇다면!’
임무혁이 몸을 떨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아내에 대한 기억은 생생했다.
아내는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남자들이 그 미모에 반했다. 그리고 뛰어난 사업가였다.
인천 시내에서 알아주는 꽃가게를 운영했다. 그것도 한두 곳이 아니었다. 가게 세 곳을 좋은 목에 운영했다. 그래서 나름 풍족하게 살고 있었다.
지금 사는 곳도 아내 명의 집이었다.
“서, 설마!”
임무혁이 뛰기 시작했다. 앞에 단독 주택이 있었다. 5년 전에 지은 하얀색 집이었다.
2층 주택에 마당이 있었다. 마당에는 차 한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었다. 담벼락은 없었다.
그가 그렇게 정신없이 집 마당을 향해 달려갔을 때
갑자기 강한 불빛이 옆에서 나타났다. 커다란 올가미처럼 그를 감쌌다.
마치 빛으로 임무혁을 체포하려는 거 같았다.
그건 자동차 헤드라이트였다. 차 두 대가 어둠 속에서 나타나 임무혁을 둘러쌌다. 강렬한 헤드라이트가 그의 걸음을 묶었다.
“뭐야? 이게 ….”
임무혁이 깜짝 놀랐다. 강한 빛에 두 눈을 찡그렸을 때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심상치 않은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에 무게감이 있었다. 건장한 남자들이 내는 소리가 분명했다.
“누구지?”
임무혁이 정신 차리고 두 눈을 크게 떴다. 강렬한 헤드라이트 때문에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 그들의 정체를 드러냈다.
모두 네 명이었다. 짧은 머리에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였다. 모두 힘깨나 쓸 거 같았다.
40대 초반 한 명에 30대 중반 세 명이었다.
40대 남자가 임무혁을 보고 고개를 끄떡였다. 마치 타깃을 포착했다는 뜻 같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걸걸한 목소리였다.
“임무혁씨죠?”
임무혁이 대답 대신 앞에 있는 네 남자의 인상을 살폈다. 순간! 그가 움찔했다. 직감적으로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얼핏 보면 조폭 깍두기가 같았지만, 깍두기가 아니었다. 깍두기를 잡는 경찰이 분명했다.
40대 남자가 말을 이었다. 목소리에 차가움이 넘쳤다.
“인천 남부 경찰서 마약반 형사 임무혁 형사가 맞죠?”
임무혁이 답을 하지 못했다. 답을 해야 했지만, 목이 콱 막힌 거 같았다. 그래서 말을 할 수 없었다.
“…….”
임무혁이 침묵을 지키자, 넷이 서로를 쳐다봤다. 그중에서 한 명이 말했다.
“얼굴과 인상착의가 임무혁 형사가 맞습니다. 선배님, 어서 체포하시죠.”
“그래, 알았다.”
체포라는 말에 임무혁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마약반 형사였다. 형사는 범인을 체포하는 사람이지 체포당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40대 남자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그가 품에서 수갑을 꺼냈다. 은빛 수갑이 어둠 속에서 반짝거렸다.
수갑에서 위압감이 느껴졌다. 수갑도 다른 사람을 제압하는 무기였다.
그가 말했다.
“우리는 인천 서부 경찰서 마약반 형사입니다.
임무혁씨, 당신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변명의 기회가 있고 체포구속적부심을 법원에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뭐, 뭐라고요?”
임무혁이 감당할 수 없는 놀라움에 그 입을 크게 벌렸다.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들렸다.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마약반 형사들이 임무혁을 마약 혐의로 체포하려고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