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형사 구나정 1편 <죽음의 게임, 술래>
밤 12시 45분
한 사람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등에 작은 가방을 메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구나정 형사였다. 도둑 둘을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단지 안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길쭉한 아파트 동을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양옆에 아파트 동이 있었다. 아파트 동 사이에 2차선 도로가 있었다.
아파트 동 1층에는 출입구 두 개가 양 끝에 있었고 출입구 옆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다.
정원 안에는 큰 나무들이 가지를 쭉 뻗으며 그 위세를 뽐냈다. 이제 관리에 손을 뗀 탓인지 잡초가 무성했다.
“이것들이,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구형사가 걸음을 멈추고 중얼거렸다. 큰 아파트 단지에서 사람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어두운 밤이었다. 곳곳에 장대 등이 있어 길을 밝히고 있지만, 거리의 가로등 불보다도 약한 불빛이었다.
“으이고~!”
도둑 둘을 쫓던 구나정 형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핸드폰이 있으면 신고해서 지원을 요청할 수 있었는데 그만 핸드폰을 참가자 33번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녀의 눈에 낮에 있었던 선배의 참극을 떠올랐다. 그때, 임창규 형사가 지원을 기다리자는 자기 말을 무시했다. 그래서 흉악범이 휘두르는 칼에 찔리고 말았다.
지금 구형사 처지도 비슷했다. 이곳에 있으면 지원을 요청할 수 없었다. 잡아야 하는 도둑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 둘을 다 잡는다는 게 말이 쉽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생각에 잠겼다.
‘핸드폰이 없으니, 지원을 요청하려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데 … 대체 어디에 문이 있는 거지? … 여기는 불법 서바이벌 게임장이라 출구로 가면 놈들이 지키고 있을 거 같은데,
놈들이 나를 가만두지 않을 거 같은데 … 경찰이라고 밝혀도 순순히 놔줄 거 같지 않아. 이 정도 규모로 불법을 저지를 정도면 간이 배 밖에 나온 놈들이야.
어떡하지? …… 아! 배낭 안에 로프와 갈고리가 있잖아. 펜스를 넘어서 나갈 수 있어. 그래! 역시 출구보다는 펜스를 타고 넘어가는 게 편하겠다. 들어왔던 것처럼.’
생각을 마친 구나정 형사가 방향을 돌렸다. 펜스로 돌아가려고 아파트 동 사잇길을 찾아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구형사가 흙길을 지나서 펜스 앞에 다다랐다.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로프와 갈고리를 꺼냈다.
이제 갈고리를 걸칠 적당한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녀가 펜스 위를 보며 두리번거릴 때 눈에 뭔가가 보였다. 펜스 위에 있는 물체였다. 이에 자세히 살폈다.
그건 감시 카메라였다.
“어? 카, 카메라? 카메라가 펜스 위에 달려있네. … 감시 카메라인가?”
감시 카메라를 보고 구나정 형사가 움찔했다. 감시 카메라가 있다는 건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거나 녹화한다는 말이었다. 그녀가 윗니로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 생각했다.
‘… 아이, 상관없다. 나는 도둑을 잡으려 이곳에 들어온 거다. 공무 수행 중인 경찰이야.’
구형사가 감시 카메라를 애써 무시하고 펜스 위로 시선을 돌렸다. 왼손으로 로프 묶음을 꼭 잡고 오른손으로 갈고리가 달린 로프 한쪽을 잡았다. 로프를 빙빙 돌리려고 할 때!
“철컥!”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렸다. 귀에 익숙한 소리였다. 아파트 동 사잇길에서 게임 참가자들이 총을 쏠 때 들었던 소리였다.
‘응? … 누, 누가 근처에 있는 건가?’
구나정 형사가 서둘러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바로 그때 빨간 불빛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총구에 달린 LED 조명이었다. 총의 화염을 모방한 장치였다. 이윽고!
타타타타!
총소리가 들렸다. 붉은 불이 구나정 형사를 향해 물밀 듯이 쏟아졌다.
“어?”
예광 BB탄이었다. 이곳에 목표가 있다는 신호였다. 구형사 앞에 있는 흙들이 마구 사방으로 튀었다. BB탄이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
“아야!”
구나정 형사가 고통을 느끼고 소리를 질렀다. 왼쪽 다리에 따끔함이 느껴졌다. 바로 BB탄 세례였다.
“쏘, 쏘지 말아요! 전 게임 참가자가 아니에요!”
구형사가 힘껏 외쳤다. 곧 BB탄 세례가 그쳤다. 잠시 정적이 돌았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갑자기 다른 소리가 크게 들렸다.
펑! 펑!
페인트 탄이었다. 가스총에서 페인트 탄이 날아왔다. 큰 구슬 같은 페인트 탄이 구나정 형사의 몸을 향해 날아갔다.
순간! 팍! 하면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구형사가 차가움을 느꼈다.
“어? … 이, 이게 뭐지?”
구나정 형사가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노란색 형광 물질이 옷에 잔뜩 묻어 있었다. 재킷과 바지에 묻은 형광 물질이 아주 선명했다.
구형사가 형광 물질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야밤에 형광 물질이 빛을 발했다. 어둠 속에서도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이윽고 무서운 소리가 들렸다.
철컥! 철컥!
예광BB탄, 페인트탄 다음에는 막강한 위력의 고무탄이었다.
이것이 바로 최초 술래 6인의 목표 제압 작전이었다. 고무탄은 소금탄보다 사거리가 배나 길었고 그 위력도 훨씬 셌다.
튼튼한 보호장비를 착용해도 고통에 힘겨워 쓰러질 수밖에 없는데 구나정 형사는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었다.
이 상태에서 고무탄 집중포화를 맞는다면 실신할 수도 있었다. 아니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탕! 탕!
커다란 총소리가 들렸다. 고무탄이 구나정 형사를 향해 마구 날아갔다.
구형사 근처에 있는 펜스에서 쾅! 쾅! 소리가 크게 났다. 고무탄이 펜스에 맞고 튕겨 나갔다. 그 소리가 엄청나게 컸다. 밤이라 그런지 소리가 더욱 컸다.
“헉!”
구나정 형사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총소리만 들어도 이건 맞으면 안 된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달리기 시작했다. 구형사가 로프를 쪽 쥐고 정신없이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고무탄이 마구 쏟아졌다.
마치 사냥감을 쫓는 사냥꾼처럼 최초 술래 세 명과 2차 술래 네 명이 구형사를 쫓았다. 추격전이 벌어졌다.
“탄창!”
“여기 있습니다.”
“저자가 침입자, 여자다! 저 여자를 잡아!!”
“잡으면 큰 상금이 있다.”
“와!”
큰 함성이 들렸다. 한두 군데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단지에 흩어졌던 최초 술래와 2차 술래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통제 센터에서 술래들에게 급히 무전을 날렸다.
“여자가 405동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술래들은 그쪽으로 가세요. 1호 차는 북문으로 가서 여자를 쫓아요.
경비는 북문 출입문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그 여자를 무조건 잡아서 감독관에게 데려가세요.”
무전이 떨어지자 지프 한 대에 시동이 걸렸다. 그리고 뒤로 후진하더니 급하게 차를 돌렸다. 이윽고 북문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했다.
커다란 차 소리, 함성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구나정 형사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이 자신을 잡으려 뛰어오고 있었다.
사람 소리에 이어 차 소리까지 들린 상태였다. 마치 포위망에 걸린 생쥐 같았다. 그녀는 어떤 보호장비도 없었고 총도 없었다. 오직 손에 밧줄만이 있을 뿐이었다.
“헉! 헉!”
거친 숨소리를 뱉으며 구형사가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이곳은 405동 옆에 있는 401동 아파트 뒤편이었다. 아파트 끝으로 가서 상황을 살폈다.
401동 앞으로 단지를 가로지르는 길쭉한 도로가 있었고 북문 출입문이 보였다.
하지만 북문 출입문에는 건장한 체격의 경비 다섯이 지키고 있었다. 모두 가스총과 기다란 봉을 들고 서 있었다. 모두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이, 이런!”
구나정 형사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 급히 주변을 살폈다. 이때 무슨 발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그 소리가 점점 커지는 거 같았다.
이곳에는 조명이 없어 꽤 어두웠다. 가까운 조명은 401동 아파트 앞 도로에 있었다.
그래서 어둠을 틈타 누군가가 갑자기 뛰어나올 것만 같았다. 가슴이 점점 조여왔다. 공포심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침착해야 한다!’
구형사가 마음을 다잡았다. 침을 꿀컥 삼키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게 난관을 뚫을 계획을 세웠다.
‘이건 평범한 게임이 아니야. 사람을 잔인하게 사냥하는 게임이야. 잡히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몰라. 무엇보다 사용하는 총이 예사롭지 않아. 명백히 불법 게임이야. 놈들을 일망타진해야 해!’
구나정 형사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다 아차! 했다.
‘… 아! 맞아. 몸에 묻은 형광 물질을 처리해야 해. 이걸 보고 놈들이 쫓아올 거야. 그런데 어떡하지? 이걸 어떻게 지우지?’
잠시 생각하던 구형사가 바닥을 내려다봤다.
‘그래! 흙을 바르자.’
생각을 마친 구나정 형사가 두 손바닥에 흙을 잔뜩 묻히고 형광 물질이 묻은 옷에 쓱쓱 발랐다.
그녀는 형광 물질이 잔뜩 묻은 재킷을 벗을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깊은 밤이라 날이 몹시 추웠다. 재킷을 벗으면 추위를 견디기 힘들 거 같았다.
그렇게 구형사가 많은 흙으로 형광 물질을 가렸다.
“아! 머리카락에 형광 물질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형광 물질 튀어 있었다. 머리카락에도 흙을 묻힐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머드팩도 아니고 … 머리카락까지 흙투성이네! 손톱도 다 깨지고 ….’
구나정 형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심한 분노심에 눈이 빨갛게 충혈됐다.
이때 뒤에서 무슨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에 뒤를 급히 살폈다. 발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가까이에서 들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어떡하지? 저 문으로 나갈 수가 없어. 자그마치 다섯 명이나 문을 지키고 있어.
역시 펜스를 넘는 수밖에 없어. 그런데 감시 카메라가 있었잖아. 놈들이 감시 카메라로 사방을 살피는 건가? 그러면 도망칠 데가 없잖아.’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던 구형사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떡였다.
‘기회를 봐서 펜스를 재빨리 넘으면 돼. 그래! 신속하게 움직이면 승산이 있어.’
결정을 내린 구나정 형사가 몸을 일으켰다. 이제 넘어갈 펜스를 찾아야 했다.
그녀가 몸을 일으켰을 때! 그녀 뒤편에서 빨간 불이 보였다. LED 불빛이었다.
타타타타!
“헉!”
다시 총소리가 들렸다. 예광 BB탄이었다. 예광탄이 흙바닥을 마구 때렸다. 붉은 불이 다시 쏟아졌다. 빨간 LED 등이 밝게 빛났다. 다음 차례는 페인트 탄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빨리 도망쳐야 했다.
‘어, 어떻게 내가 여기에 있는 걸 알았지? 형광 물질을 다 지웠는데?’
구형사가 서둘러 몸을 살폈다. 그러다 아차! 했다. 오른쪽 신발 바닥에 형광 물질 묻어 있었다. 오른발 뒤꿈치를 들고 쪼그리고 앉은 바람에 정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저기다! 페인트 탄을 쏴!”
펑! 펑!
“젠장!”
구나정 형사가 마치 용수철처럼 뛰어나갔다. 아주 신속하게 단지를 관통하는 도로로 나갔다.
그러자 북문에 대기하고 있던 1호 차에서 헤드라이트가 켜졌다. 차 소리가 크게 들렸다. 강한 불빛이 구나정 형사의 얼굴을 매섭게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