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바람 소리가 크게 들렸다.
강한 바람이 열린 창문 안으로 들어왔다.
하얀색 후드가 흔들거렸다. 그 후드 안에 시커먼 얼굴이 있었다. 짙은 어둠에 가려 그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유강인이 계속 걸음을 옮겼다. 앞에 황수지가 있었다. 하얀 후두를 뒤집어쓴 청천의 교주가 황수지를 계속 위협했다. 하얀 목에 날카로운 칼을 계속 들이댔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칼날의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황수지의 목숨이 위험했다.
유강인이 조심스럽게 바닥을 살폈다. 1층처럼 함정이 있을 수 있었다. 갑자기 바닥이 꺼져 추락할 수 있었다.
1층 바닥에는 지하처럼 매트리스가 없었다. 잘못 떨어지면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 있었다.
하얀 후드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유강인, 지금 뭐 하는 거야? 더 오지 그래? 나를 잡으러 와. 어서 오라고. 이번이 좋은 기회야.”
유강인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앞발로 바닥을 두드렸다.
청천의 교주가 계속 도발했다.
“유강인! 어서 와! 나를 잡아보라고. 빨리 오지 않으면 이 여자는 죽는다. 목을 확 그어버린다.”
“오지 마세요! 탐정님! 오지 마세요! 분명 함정이 있어요!”
황수지가 애타는 목소리로 외쳤다.
쾅! 쾅!
문 부수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출동 경찰들이 최선을 다했다. 계단 입구를 막아선 나무문을 계속해서 부셨다.
“서둘러! 어서!!”
원창수 형사가 급히 외쳤다.
“알겠습니다!”
출동 경찰들이 망치로 문을 계속 때렸다. 문에 금이 가고 부서지기 시작했다.
“비켜!”
원형사 크게 외치고 너클을 낀 두 주먹을 위로 쳐올렸다. 힘을 한 것 모으더니 강력한 원투 펀치를 문을 향해 날렸다.
쿵! 쿵!
“어서 오라고. 유강인. 이번에는 매트리스가 없다. 첫 번째 함정은 맛보기용이야. 이번이 진짜지. 흐흐흐!”
청천의 교주가 계속 비아냥거렸다.
유강인이 계속 걸음을 옮겼다. 이제 둘 사이 거리가 4m에 불과했다.
“유강인 탐정님, 어서 냉큼 달려와. 지금 뭐 하고 거야? 이거 실망인데. 이렇게 간이 작아서 어디에 쓰겠어?
아래로 추락할 거 같아서 그래? 그건 네 운명이야. 운명을 시험해봐! 어서 오라고. 와서 날 잡아봐. 이 여자를 구해야지. 어서!”
“이놈.”
유강인이 분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둘 사이 거리는 4m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 함정이 있을 수 있었다.
“타, 탐정님!”
황수지가 한 손을 들고 손짓했다. 유강인에게 더는 가까이 오지 말라고 간절한 뜻을 전했다.
“안돼!”
그 간절한 손짓을 보고 유강인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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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돼요. 무시무시한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어요. 이 말을 명심해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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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인이 생각했다.
‘그래! 정신을 바짝 차리자. 그래야 수지를 살릴 수 있어. 그리고 나도 살 수 있어. 앞에 분명 함정이 있을 거야. 그 함정을 뚫어야 해.’
청천의 교주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겁쟁이! … 겁쟁이 탐정, 유강인! 지금부터 분명 말하겠다. 지금 당장 내 앞으로 달려오지 않으면 이 여자의 목을 확 그어버리겠다.
그러면 그 누구라도 이 여자를 살릴 수 없다. 넘치는 피를 막을 수 없다. 너한테는 단 두 가지 선택만 남았다.
이 여자를 살리려면 당장 달려오든지 아니면 비겁하게 이 여자가 죽는 걸 바라보든지 알아서 해라.
지금부터 열을 세겠다. 카운트가 끝나면 비극이 시작된다.”
“뭐, 뭐라고?”
열을 센다는 말에 유강인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나, 둘, 셋, 넷.”
청천의 교주가 속사포처럼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안돼!”
유강인이 크게 외쳤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날카로운 칼이 꿈틀거렸다. 목을 단칼을 베려는 듯, 칼을 든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홉!”
유강인이 순간! 점프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함정은 자유문이야. 발이 닿으면 문 두 개가 동시에 열릴 거야! 4m를 제자리에서 뛰어넘어야 해!’
“열!!”
열이 울려 퍼졌다.
유강인이 날아올랐다. 청천의 교주를 잡으려고 한 손을 쭉 뻗었다.
청천의 교주가 뒤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손에 든 스위치를 꾹 눌렀다.
텅!
바닥이 순식간에 꺼졌다.
“아!”
유강인이 4m를 넘지 못했다. 그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발아래 바닥이 없었다.
“크하하하!”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야아~!”
유강인 추락하면서 두 팔을 쭉 뻗었다. 저 앞에 보이는 턱을 잡으려 했다.
탁!
오른손이 턱을 간신히 잡았다. 유강인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몸이 마구 흔들거렸다. 아래는 1층 바닥이었다. 4m 아래였다.
“뭐야?”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황정수가 고개를 쳐들었다. 유강인이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가 크게 외쳤다.
“탐정님!”
그때!
쾅!
원창수 형사가 문을 다 부수고 계단을 뛰어올랐다. 성난 야수처럼 2층으로 올라갔다.
“으으으~!”
유강인이 이를 악물었다. 왼손도 쭉 뻗어 턱을 잡았다. 양손으로 턱을 잡은 후, 턱걸이하듯 힘을 줬다. 그렇게 간신히 바닥 위로 상반신을 끌어올렸다.
“하하하! 잘한다. 그래야 유강인이지. 아래로 떨어져 다치면 내 마음이 아프잖아.”
청천의 교주가 말을 마치고 칼을 바닥에 내던졌다.
쟁그랑!
칼 떨어지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이제 가라. 넌 필요 없다. 잘 놀았다.”
청천의 교주가 황수지를 풀어줬다. 황수지가 유강인을 향해 달려갔다.
“탐정님!”
유강인이 온몸에 힘을 줬다. 있는 힘을 다해 위로 올라갔다.
황수지가 유강인의 옷깃을 꼭 잡았다. 젖먹던 힘을 다해 유강인을 끌어올렸다.
그렇게 유강인이 간신히 위로 올라왔다.
“유탐정님!”
2층에 올라온 원창수 형사가 크게 외쳤다. 저 앞에 유강인과 황수지가 있었다. 둘 다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하하하! 보기 좋은 커플이군.”
청천의 교주가 다시 크게 웃었다.
“이놈!”
교주의 사악한 목소리를 듣고 원창수 형사가 달리기 시작했다.
쿵쿵! 발소리가 크게 들렸다.
유강인이 가쁜 숨을 내쉬며 청천의 교주에게 외쳤다.
“네놈이 바로 … 병아리 2지! 그렇지?”
“하하하!”
청천의 교주가 호탕한 웃음으로 그 답을 대신했다. 창문으로 걸어가 머리를 내밀더니 밖을 살폈다.
밖에는 출동한 경찰들이 있었다. 그들이 가건물을 에워쌌다.
원창수 형사가 유강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유강인과 황수지의 상태를 서둘러 살피고 청천의 교주에게 외쳤다.
“이놈! 너는 끝났다. 도망칠 데는 어디에도 없다. 밖에 경찰이 쫙 깔렸어. 어서 순순히 항복해라. 쳐 맞기 싫으면 어서 무릎을 꿇어. 내 주먹에 맞으면 많이 아파!”
“멍청한 놈!”
청천의 교주가 원형사를 비웃었다. 그러자 원형사가 발끈했다.
“이놈이 감히 뭐라고 했어? 나보고 멍청하다고!”
“흐흐흐! 그걸 이제 알았나? 덩치만 큰 굼벵이 자식!”
“이놈이!”
원창수 형사가 분을 참지 못하고 한 손을 품에 넣었다. 권총을 꺼내려 했다.
그때 청천의 교주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작은 스위치였다.
“스, 스위치?”
유강인이 스위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청천의 교주가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 같았다.
“흐흐흐!”
청천의 교주가 비웃음을 흘리더니 스위치를 꾹 눌렀다.
펑! 펑! 펑!
느닷없는 폭음이 연달아 들렸다.
“뭐, 뭐야? 이건?”
원창수 형사가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유강인과 황수지도 마찬가지였다.
창문 밖에서도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이게 뭐야?”
뒤이어 하얀 게 보이기 시작했다. 창문 위로 하얀 연기가 마구 올라왔다. 자욱한 연기가 창문을 가렸다.
“연기?”
유강인이 연기를 보고 깨달았다. 청천의 교주가 연막탄을 터트렸다는 것을!
“그럼, 유강인 다음에 보자. 나는 얻을 건 다 얻었다. 나머지는 네가 처리해라!”
청천의 교주가 말을 마치고 창문틀로 재빠르게 올라갔다. 로프를 꽉 잡더니 아래로 점프했다.
휘리릭!
로프가 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유강인이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달려갔다.
“같이 가요!”
원창수 형사가 권총을 들고 그 뒤를 따라갔다.
유강인이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상황을 살폈다.
아래는 연기가 자욱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자욱한 물안개가 내려앉은 거 같았다.
창문 아래로 로프 하나가 흔들거렸다. 청천의 교주가 로프를 잡고 바닥으로 내려간 게 분명했다.
이윽고 강렬한 타격음과 비명이 연달아 들렸다.
“악!”
“윽!”
쿵! 하며 뭔가가 쓰러지는 소리도 들렸다.
뒤이어 큰 소리가 들렸다.
“잡아라! 저기로 도망친다!”
“어서 움직여!!”
“젠장!”
유강인이 분을 참지 못하고 오른 주먹으로 창문틀을 쾅! 내리쳤다.
청천의 교주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강인이 급습할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거 같았다.
예상대로 병아리 2가 짜놓은 판이었다. 뒤따라가기도 급급한 상황이었다. 놈이 미꾸라지처럼 도망칠 게 뻔했다.
“탐정님.”
황수지가 유강인의 소매를 꼭 잡았다. 그녀가 말했다.
“탐정님, 괜찮으시죠?”
유강인이 고개를 돌렸다. 황수지의 상처를 살폈다. 목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유강인이 급히 손수건을 꺼냈다. 손수건을 황수지에게 건네고 말했다.
“이 손수건으로 상처를 꼭 눌러. 빨리 지혈해야 해. 피를 많이 흘렸어.”
“네, 탐정님.”
황수지가 손수건을 건네받고 상처를 꾹 눌렀다.
“와! 보통 놈이 아니네요. 정말 주도면밀하고 재빠른 놈입니다. 잡기 힘들겠어요.”
원창수 형사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유탐정님, 놈의 얼굴을 보셨어요? 후드에 얼굴이 가려서 보지 못했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후드가 얼굴을 완전히 가렸습니다.”
유강인이 윗니로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답했다.
“저도 못 봤어요.”
황수지가 말했다.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놈에게 잡혀 일을 그르친 거 같아 동료를 볼 면목이 없었다.
“아이고, 또 함정이!”
원창수 형사가 1층처럼 활짝 열린 바닥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가 말했다.
“이런 함정을 만들다니 … 참 대단한 놈들이네요.”
“어서 내려갑시다.”
유강인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는 청천의 교주, 병아리 2를 눈앞에서 놓쳐서 약이 바짝 올랐다.
“네, 어서 가시죠. 1층은 다 정리됐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유강인과 황수지가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원창수 형사가 따랐다.
1층 상황은 원창수 형사의 말대로 깔끔히 정리됐다.
신도 스무 명이 한데 모여 바닥에 앉아 있었다. 모두 놀란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신도와 달리 수갑을 찬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노파였다. 신도들에게 주사를 놓으려 한 자였다.
경찰은 주사기와 약물을 압수하고 노파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불법 의료 행위가 명백했다.
유강인과 황수지, 원창수 형사가 1층으로 내려갔다.
유강인이 수갑을 찬 노파를 보고 미간을 모았다.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노파는 청천의 주요 일원이 분명했다.
“유탐정님.”
김기동 형사가 한쪽 다리를 절면서 유강인에게 걸어왔다.
유강인이 그 모습을 보고 급히 말했다.
“김형사님, 다리를 다치셨군요. 어서 병원에 가야 합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거 같지는 않습니다. 뼈에는 이상이 없어요. 좀 삔 거 같아요. 파스를 붙이고 하루나 이틀 쉬면 괜찮아 질 겁니다.”
“다행이군요.”
“유탐정님, 저 노파가 무척 수상합니다. 그래서 일단 체포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청천의 교주가 탈출했는데 잡았다는 소식이 있나요?”
“지금 추적 중입니다. 아직 잡았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유강인의 침울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힘을 냈다.
청천의 교주를 잡지는 못했지만, 청천에 포섭된 신도들을 구했고 청천의 주요 일원까지 잡았다. 다시 수사의 고삐를 바짝 조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