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유강인이 하진석 형사에게 말했다.
“하형사님, 궁녀 오진주가 김덕길의 후손이 맞는지 확인하세요.
맞는다면 오진주가 바로 복수의 화신입니다. 그리고 병아리 2의 미끼입니다.”
하형사가 급히 말했다.
“유탐정님, 미끼라고요? 오진주가요?”
“그렇습니다. 오진주가 김덕길의 후손이라면 저를 유인하는 미끼가 확실합니다.
병아리 2는 29년 전 명덕산에 있었던 아이들에게 각각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박동철은 전령 역할이고 친구 둘은 인질입니다. 저는 병아리 2를 쫓는 역할입니다. 오진주는 저를 유인하는 미끼입니다.
그래서 오진주가 친구 둘과 달리 납치 당하지 않고 멀쩡한 겁니다.”
“미끼를 물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사건을 풀려면 … 그 미끼를 물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병아리 2 그놈이 판을 다 짜놨습니다. 그 판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놈을 잡으려면 증거가 필요하고 그래서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증거를 잡았을 때는 이미 늦습니다. 놈은 멀리 도망쳐서 휴양지에서 희희낙락하고 있을 겁니다.
미끼를 무는 건, 놈의 짠 계획대로 움직이는 일이지만, 어찌 보면 마지막 기회입니다.
놈의 방심을 이용해서 카운터블로를 날려야 합니다. 원창수 형사님처럼! 기회는 단 한 번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빨리 조사하겠습니다.”
하진석 형사가 씩씩하게 답하고 절도있게 경례를 붙였다.
유강인이 지시를 마쳤다. 그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오늘 60년 전 비극이 밝혀졌다. 그 비극의 중심에는 청기와집 주인 지인광과 하인 김덕길이 있었다.
둘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김덕길은 60년 전 딸과 함께 비참하게 죽었고 지인광은 생때같은 자식들을 하나둘씩 떠나보내며 슬픔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들의 악연은 60년이 지난 지금 끝나지 않았다. 후손들이 그 악연에 휩싸였다.
그 악연의 중심에 병아리 2가 걸쳐 있었다. 병아리 2는 두 집안과 관련됐다.
그는 김덕길의 후손 오진주의 남편이었고 지인광의 아들 지남철 박사에게 앙심을 품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지박사의 연구를 계승해서 기적의 약, 바이오클린을 만들었다. 이는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 일로 미루어 병아리 2는 연구자 같았다. 연구자로서 연구 욕망이 커 보였다.
병아리 2는 한마디로 종잡을 수 없는 자였다. 기적과 저주, 복수 속에서 종횡무진하며 꿀과 채찍을 들고 사람을 농락했다.
그는 교활하기 그지없었다.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자 같았다.
그래서 아내 오진주까지 철저히 이용하고 버릴 거 같았다.
오진주는 남편인 병아리 2의 뜻에 따랐다.
원수인 용궁 보살의 수제자가 되어 그 비법을 물려받고 남편에게 이를 전했다. 아울러 유강인을 낚을 미끼로 되어 그 존재가 드러났다.
이 추리가 사실이라면 오진주는 결국, 버리는 카드였다.
‘검은 피!’
유강인이 검은 피를 생각했다. 김덕길이 죽기 전 검은 피의 저주를 내렸다. 정황상 김덕길은 지씨 집안의 유전병을 아는 듯했다.
유강인이 생각했다.
‘그래! 김덕길이 죽기 전, 검은 피를 말한 건 우연이 아니야.
그는 지씨 집안의 유전병을 안 거야. 검은 피를 쏟고 죽는다는 걸 어디선가 들은 게 분명해.
그래서 그 말을 죽기 전에 남긴 거야. 무턱대고 한 말이 아니야. 검은 피는 저주가 아니라 현실이었어.
지인광은 머슴이었다가 대부호가 됐어. 소문이 발 없는 말처럼 멀리 퍼져나갔을 거야. 그 소문을 들은 먼 친척들이 청기와집을 찾았을 거야.
김덕길은 청기와집 하인이었어. 청기와집은 그의 일터야. 일하면서 우연히 뭔가를 들은 거야.
친척들이 부러움 속에서 말한 검은 피의 저주를 들은 거야.’
유강인이 손뼉을 짝 쳤다. 60년 전 벌어졌던 청기와집 사건은 그 진상을 명백히 밝혔다. 이제 남은 사건을 풀어야 했다.
남은 사건은 두 가지였다.
여러 사람을 죽이고 위험으로 몰아간 병아리 2의 정체와 만행을 밝히고 기적의 약, 바이오클린의 실체를 확인해야 했다.
유강인이 탐정단 밴으로 걸어갔다. 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동료들이 그 뒤를 따랐다.
‘명덕산 비밀연구소에 … 실험체 병아리 1, 2, 3, 4가 있었어. 병아리 3은 오진주고 병아리 4는 박동철이었어.
남은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 병아리 1과 이 판을 짠 병아리 2야.
병아리 넷은 모두 이 사건과 관련이 있어. 현재 병아리 1의 정체가 오리무중이야. 병아리 2는 29년 전 만났지만, 병아리 1은 본 적이 없어.’
유강인이 길을 걷다가 걸음을 멈췄다. 그가 생각을 이었다.
‘아니야! 병아리 1도 이 사건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거야. 그게 맞을 거야! 배후 조종자 병아리 2는 이 사건을 통해 나를 농락하고 있어. 그걸 즐기고 있어.
병아리 1이 코앞에 있는데도 내가 그걸 알아채지 못하는 걸 즐길 거야. 놈은 속이 뒤틀린 놈이야!
그렇다면 이번 사건에서 병아리 1에 가까운 사람은 … 둘이야. 바로 지단길 박사의 여동생들이야.
병아리 1이 지단길 박사의 여동생 중 한 명이라면, 아버지 지남철 박사가 친자식을 실험체로 이용했다는 말인데 … 그렇군, 친자식이 중요한 거였군. 친자식이!’
유강인이 이제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탐정단 밴에 다다랐을 때 핸드폰이 급하게 울렸다.
삐리릭!
유강인이 발신자를 확인했다. 서울청 정찬우 형사였다. 이에 서둘러 전화 받았다.
“정형사!”
“선배님, 용궁 보살, 최숙자 집 압수 수색 중 금고를 발견했습니다.”
“금고가 있다고? 어디에 있었는데?”
“작은 방 옷장을 열었는데 옷장 뒷벽에 금고가 있었습니다. 튼튼한 금고여서 해체 전문가를 불렀습니다.”
“알았어. 지금 갈 테니. 기다리고 있어.”
“지금 어디 계시죠?”
“강원도 진향리야.”
“알겠습니다. 금고문은 2시간 이내에 열 수 있습니다. 선배님이 오시기 전에 열 거 같습니다.”
“좋았어. 나이스!”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가 급히 동료들에게 말했다.
“용궁 보살의 집으로 가야 합니다.”
원창수의 형사가 급히 답했다.
“알겠습니다. 용궁 보살의 집은 김포시입니다.”
“그렇군요. 수지한테 주소를 가르쳐주세요.”
“네!”
잠시 후 탐정단 밴과 강력반 밴이 마을 회관 주차장에서 출발했다. 차가 곧장 김포시로 향했다.
유강인이 양 손바닥을 비볐다. 눈빛에 궁금증이 가득했다.
그가 생각했다.
‘용궁 보살 금고 안에 뭐가 있을까? 중요한 게 있을 거 같은데 … 혹 비법이 있을까? 약을 만드는 비법서가 있을 거 같아.’
“하하하!”
유강인이 크게 웃고 잘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 사건에서 용궁 보살의 약은 매우 중요했다. 그 약이 바로 기적의 약, 바이오클린의 시초였다.
탐정단 밴과 강력반 밴이 고속도로로 들어갔다. 다행히 차량 흐름이 수월했다. 늦은 오후면 김포시에 도달할 수 있었다.
“식사해야 하니, 휴게실에 주차하겠습니다.”
황수지가 핸들을 돌리며 말했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차 두대가 휴게실 주차장에 주차했다. 황정수가 배가 고픈 듯 서둘렀다. 휴게실 안으로 쑥 들어가더니 소떡소떡을 바라보며 군침을 뚝뚝 흘렸다.
유강인과 황수지, 원창수 형사, 하진석 형사도 휴게실 안으로 들어갔다.
원형사가 잠시 식당 메뉴판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 돈가스 먹고 가죠. 휴게실은 역시 돈가스죠! 두말하면 잔소리, 세말하면 무지 혼납니다.”
하진석 형사가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황정수가 환하게 웃으며 거들었다.
“그럼, 소떡소떡에다 치즈 돈가스 먹고 가요! 흐흐흐! 소떡소떡이 너무 맛있어 보여요.”
“그래, 그렇게 하자.”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빈자리를 찾았다.
잠시 후 식사가 나왔다.
수사팀이 돈가스와 소떡소떡을 즐겼다.
바삭바삭한 돈가스도 맛있었지만, 소떡소떡이 예술이었다. 떡과 소시지가 환상의 궁합이었다. 졸깃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소떡소떡을 번개처럼 해치운 황정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소떡소떡 네 꼬치를 더 시킬게요. 이번 기회에 소떡소떡을 배불리 먹어요. 흐흐흐!”
황정수가 급히 카운터로 걸어갔다.
유강인이 물잔을 들었다. 목을 축이며 남은 돈가스를 먹었다. 치즈 돈가스라 치즈가 남달랐다. 탄력 좋은 고무줄처럼 쭉쭉 늘어났다. 등심과 참 잘 어울렸다.
그가 커다란 돈가스 덩어리를 포크로 꼭 집고 입안에 쑥 넣었을 때
삐리릭!
유강인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가 발신자를 확인했다. 발신자는 박동철이었다.
“박동철!”
유강인이 발신자 이름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자기도 모르게 그 이름을 크게 외쳤다.
동료들도 그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랐다.
박동철은 인광 연구소 경비 팀장이었다. 배후 조종자 병아리 2의 하수인이기도 했다. 병아리 2의 뜻을 전하는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꼭두각시였다.
유강인이 서둘러 돈가스를 삼키고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강인아!”
“아, 동철아.”
“지금 어디에 있어?”
“지금 밖에 있어, 서울 근처야.”
“그렇구나. 혹 저녁에 약속 있어?”
“약속이라고?”
“응, 바이오클린이 대성공해서 수고한 연구원들을 포상하는 축하 파티가 있어. 포상한 다음, 다 같이 모여서 가볍게 술을 마실 거야. 장소는 인광 연구소 귀빈실이야.
소장님께서 너도 참석하며 좋을 거 같다고 하셔서 이렇게 연락하는 거야”
“나도 참석하라고? 나는 연구원이 아닌데?”
“천재 유전자 분석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며 … 그러면 우리와 한배를 탄 거잖아. 참석할 만하지.”
“그렇구나, 시간은 돼.”
“그러면 저녁 7시 전까지 인광 연구소 주차장으로 와. 내가 마중 나갈게.”
“알았어.”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동료들이 귀를 쫑긋하고 통화를 엿들었다. 그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탐정님을 왜 부르는 거죠?”
“파티 참석하라는 건가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바이오클린이 대성공했답니다. 수고한 연구원들을 포상하는 축하 파티가 있답니다. 저도 참석해달라는 요청입니다.”
“이건 좀 이상하네요. 탐정님은 연구원이 아닌데?”
황수지가 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유강인이 답했다.
“천재 유전자 분석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그래서 같은 배를 탔다고 부른 거야.”
“그렇군요.”
유강인이 미간을 모았다. 그의 눈빛이 칼처럼 빛났다. 그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앞서 말한 건 명분일 뿐입니다. 실은 병아리 2가 저를 부른 겁니다.”
“네에? 정말이요?”
동료들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침착한 목소리였다.
“병아리 2는 배후 조종자입니다. 연구소 소장인 지단길 박사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입니다.
그자가 축하 파티에 저를 부른 겁니다. 이 말은 즉, 인광 연구소 안에 병아리 2가 있다는 뜻입니다.”
황수지가 급히 말했다.
“오늘 저녁 모임에 병아리 2가 있다는 말이에요?”
“그렇지. 그럴 거야. 아니 확실해!”
황수지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면 위험할 수 있잖아요! 저번에 병아리 2를 체포하러 가건물에 들어갔다가 바닥에 꺼져버렸잖아요!”
유강인이 씩 웃고 답했다.
“그때는 그랬지,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거야. 이번은 축하 파티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래도 위험할 거 같습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원창수 형사가 걱정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있어요?”
황정수가 소떡소떡 네 꼬치를 들고 말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무슨 일이 있나 하는 표정이었다.
유강인이 씩 웃었다. 그가 말했다.
“보아하니 병아리 2가 전야제를 하는 거 같습니다. 바이오클린 성공이라는 대축제를 하기 전, 작은 전야제를 하는 겁니다.
그 모임에 병아리 2가 있을 겁니다. 병아리 1도 있을 거 같습니다. 두 병아리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정황상 병아리 2는 바이오클린을 개발한 연구원입니다. 병아리 1은 지단길 박사의 측근으로 보입니다.
가서 그들을 만나겠습니다. 병아리 둘은 보나 마나 자기 정체를 철저히 숨길 겁니다. 선량한 척하며 저를 조롱하겠죠.
이건 기다리던 조롱입니다. 그 조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사건을 풀 단서를 잡겠습니다.”
유강인이 한 손을 들었다. 그가 황정수에게 말했다.
“꼬치 하나 줘. 소떡소떡이 맛있네.”
“네.”
유강인이 소떡소떡을 건네받았다. 맛있게 먹으며 말했다.
“자, 이제 식사를 마무리하고 용궁 보살의 집으로 갑시다. 가서 금고에 뭐가 들어있는지 확인합시다. 그런 다음 인광 연구소 축하 파티에 가서 뻔뻔한 병아리 둘을 만나겠습니다.”
“탐정님,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황수지가 울상을 지었다.
유강인이 호랑이 굴 속으로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그 굴속에 교활한 병아리 두 마리가 숨어 있었다.
유강인이 소떡소떡을 맛있게 다 먹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