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형사 구나정 1편 <죽음의 게임, 술래>
“어서 말해! 어떻게 나가는 거야?”
소녀가 대답 대신 옆에 있는 휴게실을 바라봤다. 그녀가 말했다.
“목마르시죠. 저한테 물병이 있어요. 가시기 전에 물 마시고 가세요.”
“무, 물?”
물이라는 말에 구나정 형사의 두 눈이 커졌다.
구형사가 마른 침을 꿀컥 삼켰다. 무척 반가운 말이었다. 사실, 그녀는 갈증이 심했다. 저녁을 먹은 이후로 물을 단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소녀가 휴게실 문을 천천히 열었다. 끼익하면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두운 곳에서 들리는 소리에 무척 음산하고 꺼림칙했다.
문소리가 사라지자, 정적이 흘렀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흐르는 기분 나쁜 고요함이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소녀가 허리춤에서 물병을 꺼냈다. 그리고 말했다.
“선생님, 휴게실에서 좀 쉬세요. 여기에서 나가시면 냅다 뛰어야 해요. 물 마시고 좀 쉬었다가 나가세요.”
“알았어.”
구나정 형사가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소녀가 빙긋 웃고 휴게실 안으로 들어갔다.
구형사가 소녀를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휴게실 안을 조심스럽게 살피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깊은 어둠 속에서 뭔가가 보였다. 그건 커다란 소파였다.
소녀가 소파로 걸어갔다. 털썩 앉더니 물병을 들어 올렸다.
“물병!”
구나정 형사의 눈에 물병이 보였다. 어서 물을 마시고 싶었다. 이에 소파 앞으로 걸어가 소녀한테 물병을 건네받았다. 물병을 입에 대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차갑고 아주 달콤한 물이었다.
“참 좋다!”
구형사가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힘들 때 마시는 물은 언제나 꿀맛이었다.
그렇게 구형사가 생명수 같은 물을 마시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소녀의 말대로 좀 쉬어야 했다.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팠다.
구나정 형사가 옆에 앉은 소녀를 바라보며 몇 분 정도 휴식을 취했을 때
갑자기 삐거덕하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렸다.
“응?”
구형사가 귀를 쫑긋했다.
그 소리가 계속 들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계속 들리자, 구나정 형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소녀는 아무런 말 없이 앉아만 있었다.
구형사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뒤에서 들리는 소리 같은데 ….”
구나정 형사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고개를 뒤로 돌리려고 할 때
바로 그때! 휙 하며 바람 소리가 들렸다. 가느다란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구형사 뒤로 뱀처럼 긴 물체가 허공을 갈랐다.
그 물체가 구나정 형사의 목을 확 감쌌다. 노끈이었다. 뒤에서 누군가가 두꺼운 노끈으로 구형사의 목을 꽉 조르기 시작했다.
“헉!!”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숨이 콱 막히기 시작했다. 어서 노끈을 풀어야 했다. 목을 콱 조여오는 노끈을 구나정 형사가 두 손으로 꽉 잡았다.
그때! 소녀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품에서 뭔가를 급히 꺼냈다. 그건 고글에 부착하는 소형 무전기였다. 구형사 몰래 소형 무전기를 품에 숨기고 있었다.
소녀가 크게 외쳤다.
“관리실에 침입자가 있어요. 어서 오세요, 어서! … 도둑 주제에 자기가 경찰이라고 거짓말하고 있어요.”
거짓말을 했다는 말에 구나정 형사의 두 눈이 야구공처럼 커졌다, 당장 소녀에게 달려가 혼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그녀의 목을 꽉 조르고 있었다. 숨이 점점 막혀왔다. 시간이 없었다! 어서 목을 풀어야 했다.
“야아!”
구형사가 크게 고함을 질렀다. 목을 조여오는 노끈을 두 손으로 꽉 잡고 무릎을 재빨리 굽혔다. 동시에 상체를 앞으로 숙여 뒤에 있는 상대를 넘겨버렸다.
쿵! 하며 목을 조르던 자가 앞으로 나가떨어졌다. 그는 소녀와 함께 있던 2차 술래 7번이었다.
“아이고!”
2차 술래 7번이 두 손으로 허리를 부여잡았다. 그러다 이를 악물고 벌떡 일어났다. 그가 다시 덤벼들었다.
그의 두 눈에 구나정 형사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잡아야 할 사냥감에 불과했다. 상금을 탈 생각에 눈이 뒤집혀 졌다.
거친 손아귀가 구형사의 옷깃을 잡았다. 그러자 구형사가 다른 기술을 선보였다. 엎어치기 한 판으로 2차 술래 7번을 벽을 향해 내던져 버렸다. 쿵! 소리가 다시 크게 들렸다.
“악!”
커다란 비명이 들리며 2차 술래 7번이 벽을 타고 쭉 미끄러졌다.
상황이 정리되자, 구나정 형사가 소녀를 찾았다. 소녀가 놀란 나머지 몸을 파르르 떨었다.
구형사가 일갈했다.
“네, 네가 어떻게 이런 짓을!”
구나정 형사가 분을 참지 못하고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어머나!”
소녀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때 들고 있던 소형 무전기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떨어진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렸다.
“관리실로 모두 이동해서 침입자를 포위한다. 반드시 침입자를 잡아라!”
“헉!”
그 소리를 듣고 구나정 형사가 움찔했다. 이윽고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분노가 물 끓듯이 올라왔다.
소녀가 몸을 벌벌 떨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수정 같은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물방울이 계속 떨어지자, 구형사 머릿속에 한가지가 떠올랐다. 소녀가 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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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이 걸려 있어서, 상금을 받으면 어머니 병원비에 쓰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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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구나정 형사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분노를 내몰았다. 소녀의 배신은 어머니 병원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구형사가 등을 돌렸다. 어서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여기에서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구나정 형사가 서두를 때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척 슬픈 목소리였다.
“고, 고글이 떨어졌어요. 어서 쓰고 가세요. 눈을 다칠 수 있어요.”
소녀의 말에 구형사가 눈을 만졌다. 소녀의 말대로 고글이 없었다. 2차 술래 7번과 싸우다 고글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눈을 보호하려면 고글이 꼭 필요했다.
이에 구형사가 바닥에 떨어진 고글을 들어 올렸다. 고글을 다시 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휴게실 밖으로 나갔다.
이곳은 일반 게임장이 아니었다. 거액의 상금을 노리고 다른 사람을 사냥감으로 여기는 곳이었다.
인간성이 말살된 사냥터였다. 그래서 다리를 다쳤던 도둑도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
구나정 형사가 관리실 복도에서 사방을 살피다 복도 끝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옆문을 찾았지만, 옆문 같은 건 없었다.
소녀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공사 현장 밖으로 나가는 작은 문도 있을 턱이 없었다.
“젠장!”
이제 왔던 길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구형사가 들어왔던 출입문으로 내달렸다. 출입문은 열려 있었다. 출입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밖에 아무도 없었다. 아직 놈들이 오지 않은 거 같았다.
“잘 됐다.”
구나정 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걸음을 옮겼다. 아주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바로 그때! 빨간 LED가 보였다. 예광 BB탄을 쏘는 총구였다.
“헉!”
적이 근처에 있었다. 깊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젠장!!”
구형사가 달리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408동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타타타타!
총소리가 들렸다. 적들이 근처에 있었다.
“헉! 헉!”
구나정 형사가 정신없이 내달렸다. 408동 뒤편으로 들어갔다. 그때 뭔가가 번쩍였다. 헬멧에 단 조명이었다.
“헉!”
408동 뒤편에 최초 술래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형사가 급히 몸을 돌렸다. 앞에 있는 놀이터로 향했다.
놀이터에도 작은 조명들이 반짝였다.
타타타타!
펑! 펑!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 이런!”
구나정 형사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 놀이터 옆에 있는 약수터로 달려갔다. 약수터 근처에 남문이 있었다.
저 앞에 약수터가 보였다. 약수터 위에 간이지붕이 있었다.
지붕 아래로 빨간 불이 여러 개 보였다. 예광 BB탄을 쏘는 LED 총구였다.
“여, 여기도!”
순간, 구형사가 당황했다. 어디를 가든 적들이 숨어 있었다. 마치 그녀가 가는 곳을 미리 아는 거 같았다.
참가자처럼 위장하려고 헬멧, 마스크, 고글, 보호대를 찼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2차 술래 40번이 바로 구나정 형사라는 걸 적들이 알고 있는 듯했다.
“잡아!”
거친 함성이 들렸다. 사방에서 적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벌써 한 생명을 죽인 자들이었다. 살기가 느껴졌다.
약수터, 놀이터, 아파트 단지에서 적들이 몰려왔다. 피할 곳을 어서 찾아야 했다.
구나정 형사가 관리실로 방향을 잡았다. 허겁지겁 관리실 출입문 앞을 지나갈 때!
펑!
큰 소리가 들렸다. 누가 창문에서 소금탄을 쐈다.
“악!”
구형사가 비명을 지르고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가까운 거리에서 소금탄을 맞고 말았다.
창문 앞을 지날 때 소금탄이 날아왔다. 보호장비 덕분에 큰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고통은 상당했다.
“으으으!”
심한 고통을 참으며 구나정 형사가 몸을 일으켰다. 들고 있던 산탄총이 보이지 않았다. 나가떨어질 때 저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관리실에서 적 여러 명이 튀어나왔다.
어서 피할 곳을 찾아야 했다. 사방이 적이었다. 피할 곳을 서둘러 찾아야 했다.
“와아!”
커다란 함성이 다시 들리며 수십 명이 총을 들고 달려왔다.
“이를 어떡하지, 젠장!!”
구나정 형사가 당혹감과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을다. 그때! 그녀의 눈에 뭔가가 보였다. 그건 관리실 옆에 있는 커다란 굴뚝이었다.
4단지는 오래된 아파트라 중앙집중난방이었다. 굴뚝은 난방에 사용하는 굴뚝이었다. 높이가 20m가 넘었다. 굴뚝에는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었다. 10m쯤에 전망대 같은 게 있었다.
“굴뚝!”
구형사가 굴뚝으로 달려갔다. 관리실을 지나자, 굴뚝이 바로 앞에 보였다.
굴뚝에 사다리가 있었다. 이에 사다리를 잡고 위로 정신없이 올라갔다.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이 차가워지고 거세졌다. 단발머리가 요동쳤다. 그만큼 다급했다.
잠시 후 50명이 넘는 사람이 굴뚝을 에워쌌다. 최초 술래와 2차 술래, 게임 진행 요원, 감독관, 통제관들이 굴뚝 위를 올려다봤다.
구나정 형사가 높은 사다리를 신속하게 올라 전망대에 다다랐다. 전망대 위에서 사방을 살폈다.
이곳은 10m 높이였다. 사방을 훤히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는 도로와 남문, 북문이 보였다.
구형사가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가쁜 숨을 달랬다. 완벽히 포위된 상태였다. 굴뚝에서 내려가면 바로 잡힐 수밖에 없었다.
“확성기!”
감독관 1이 크게 말했다. 그러자 게임 진행 요원이 확성기를 갖고 왔다.
감독관 1이 얼음장 같은 입을 열었다. 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침입자, 그만 내려와라. 어차피 너는 도망갈 데가 없다.”
구나정 형사가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크게 소리쳤다.
“지금 너희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느냐? 사람이 죽었다. 너희가 사람을 죽였어!”
“무슨 헛소리야? 우리가 사람을 죽이다니, 우리는 게임 중인데 … 게임을 방해한 건 바로 너야! 어서 내려와! 강제로 끌어내리기 전에!”
강경한 목소리였다. 침입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구형사가 대답 대신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두컴컴한 하늘은 여전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라 가장 어두울 때였다.
도와달라고 소리를 질러도 그 소리를 들을 사람이 없었다. 이곳은 인적이 없는 재개발 예정지였다.
거센 바람만 계속 불어왔다. 구나정 형사가 낙담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다시 감독관 1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잔머리를 굴려서 참가자처럼 위장했지만, 고글에 위치 추적기가 있다. 네가 어디로 가든 우리 손바닥이야. 하하하!”
“고, 고글!”
고글이라는 말에 구형사가 깜짝 놀랐다. 고글은 2차 술래 7번과 싸우다 바닥에 떨어졌다.
그 고글을 다시 쓰라고 한 건 2차 술래 40번, 소녀였다. 소녀가 다시 한번 그녀를 배신했다.
“으으으~!”
구나정 형사가 분을 참지 못하고 고글을 벗어버렸다. 그리고 힘껏 내던졌다. 고글이 허공을 가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글이 굴뚝에서 떨어지자, 한 사람이 고개를 푹 숙였다. 바로 소녀였다. 소녀는 다른 참가자와 함께 굴뚝 근처에 있었다.
소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었어요. 상금을 받아야 했어요. 반드시!”
“그래! 좋다.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구형사가 크게 소리쳤다. 상금을 노리고 다른 사람을 배신하고 사냥하는 이곳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반드시 이곳에서 탈출해서 무도한 자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야 했다.
구나정 형사가 결연한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도망갈 길을 찾았다.
굴뚝에서 내려가 펜스를 넘기에는 무리였다. 펜스를 넘기 전에 놈들이 몰려올 게 뻔했다.
이에 출입문을 살폈다. 남문과 북문에 문이 있었다. 남문은 가까웠고 북문은 상당히 멀었다. 문마다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문을 지키는 사람은 총 다섯이었다.
북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두 명만 보였다. 문 앞에 조명이 있어 숫자를 헤아릴 수 있었다.
결국, 도망치려면 북문으로 가야 했다. 굴뚝에서 내려와 200m 이상을 내달려 했다.
“휴우~! 좋다.”
구형사가 크게 숨을 내쉬고 메고 있던 배낭을 내렸다. 안에서 갈고리 로프를 꺼냈다.
로프를 이용해서 단박에 내려갈 심산이었다. 잘못 내려가면 크게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현재 10m 높이 전망대에 있었다.
단 한 번에 안전하게 내려가 포위망을 뚫고 북문으로 내달려야 했다. 난관을 헤칠 커다란 용기가 어느 때보다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