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형사 구나정 1편 <죽음의 게임, 술래>
밤 2시 40분
65번 버스가 파출소 건너편에서 정차했다. 남자 둘이 차에서 내렸다. 뒤이어 한 사람이 더 내렸다. 구나정 형사였다. 그녀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버스 뒤를 살폈다.
지프 헤드라이트가 번쩍였다. 버스 바로 뒤에 지프가 있었다. 버스와 5m 거리였다.
“빨리 가야 합니다. 어서 뛰세요!”
“맞아요! 우리가 뒤를 막을게요.”
승객 둘이 크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구나정 형사가 서둘러 답을 하고 사방을 살폈다. 차도를 건너면 파출소였다. 대략 50m 거리였다. 우영 1동 파출소 간판이 환하게 밤을 밝혔다.
앞에 횡단보도가 있었다. 구형사가 승객 둘에게 말했다.
“그럼, 뒤를 부탁합니다.”
“어서 뛰세요!”
구나정 형사가 바람을 가르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다리가 무거워졌다. 천근만근이 아닌 백 만근처럼 무거워졌다.
50m 길이 횡단보도가 어느 때보다 멀어 보였다. 5,000m가 넘는 거 같았다.
결국, 구형사가 걷기 시작했다. 그것도 비틀거리며 걸었다. 그렇게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뛸 기력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린 승객 둘이 소매를 걷었을 때
지프, 차 문이 활짝 열렸다. 지프에서 남자 셋이 튀어나왔다. 모두 검은색 정장을 입었다. 건장한 체격이었다.
셋이 비틀거리며 걷는 구나정 형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막아!”
큰 소리가 들렸다. 버스에서 내린 승객 둘이 검은색 정장 입은 남자 셋을 가로막았다.
“비켜라!”
“이 나쁜 놈들아! 저 여자를 납치하려고!”
순식간에 난투극이 벌어졌다. 승객 둘과 검은색 정장 입은 남자 둘이 싸우기 시작했다.
2대 2 싸움이 벌어지자, 한 명이 재빨리 움직였다. 바로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였다. 남자가 구나정 형사를 향해 달려갔다.
“으으으~!”
신음이 들렸다. 다리가 풀린 구형사가 횡단보도 한가운데에서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이제는 걸을 수조차 없었다.
도로는 6차선이었다. 3차선이 남았다. 남은 3차선을 기어서라도 건너야 했다. 하지만 기어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구나정 형사가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기를 썼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
발소리가 들리자, 구형사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괴한이 점점 다가왔다. 검은 손가락이 곧 얼굴을 덮칠 것만 같았다.
“아, 안돼!”
큰 소리가 울렸다. 구나정 형사가 남은 힘을 자아내서 소리쳤다.
“이것이!”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오만상을 찡그렸다. 바로 앞에 파출소가 보였다. 빨리 여자를 납치해야 했다. 그가 서두를 때
파출소 문이 활짝 열렸다. 경찰 둘이 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파출소 앞에서 임시 정차한 65번 버스가 다시 출발할 때 승객 중 하나가 경찰에 신고했었다.
신고를 받은 통제 센터에서 우영 1동 파출소에 긴급 지시를 내렸다. 이에 경찰 둘이 밖으로 나왔다.
“저, 저기다! 저 여자가 위험해!”
경찰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파출소에서 경찰 둘이 나오자,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 셋이 깜짝 놀랐다. 서둘러 지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횡단보도 한가운데 한 여자가 기진맥진한 채 쓰러져 있었다.
경찰 하나가 그 여자한테 달려갔다. 그가 급히 말했다.
“괜찮으세요?”
구형사가 대답 대신 고개만 겨우 끄떡였다. 말할 기운조차 없었다.
밤 3시 10분
파출소에서 커피 냄새가 풍겼다. 구나정 형사가 파출소 구석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와 과자를 먹었다. 그렇게 기력을 보충했다.
“여기 크림빵도 있어요.”
여순경이 구형사에게 빵을 권했다. 크림빵이었다. 야근할 때 먹으려고 준비한 간식이었다.
“감, 감사합니다.”
구나정 형사가 크림빵을 받고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체력을 보충하려면 뭐든지 먹어야 했다.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갑자기 힘든 일을 겪자, 머릿속에 특전사 시절이 떠올랐다. 천리행군할 때 무척 힘들고 배고팠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힘들었다.
“이, 이제 살 거 같다.”
크림빵을 다 먹고 구형사가 숨을 돌렸다.
위기에서 탈출한 형사가 기력을 되찾자, 파출소 부소장이 말했다.
“화정경찰서에 연락했습니다. 강력반 반장님이 곧 오실 겁니다.”
“아! 그래요.”
한민국 반장이 온다는 말에 구나정 형사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얼굴이 편안해졌다.
5분 후
뭔가를 생각하던 구형사가 입을 열었다.
“저 경위님, 전화하고 싶어요.”
“핸드폰 빌려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부소장이 핸드폰을 빌려주자, 구나정 형사가 어딘가로 전화 걸었다.
지금은 깊은 밤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는 건 실례였다. 하지만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신호가 몇 번 가자, 전화 받는 소리가 들렸다.
구형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강인 탐정님! 구나정입니다.”
“네? 누구라고요?”
“구나정이요! 화정경찰서!!”
“아! 구형사님.”
“네, 맞아요.”
“그런데 이렇게 늦은 시각에 전화를 다 하시고 … 혹 무슨 일이 있어요?”
전화를 받은 사람은 탐정 유강인이었다. 유강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구나정 형사의 두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흑!”
“왜 그러세요? 우는 거예요? 지금 무슨 일이 있어요?”
“그, 그게 ….”
구형사가 힘들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말했다.
“사람이 죽은 게 확실합니까?”
“네, 확실해요.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어요. 혹 죽지 않았더라고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으니 살 수 없어요.”
“그렇군요. 재건축 현장에 그런 참담한 일이 있었군요. 일단 서울청에 사건을 신고하고 CCTV 통제 센터의 협조를 받겠습니다.
구형사님은 일단 푹 쉬어야 할 거 같아요. 너무 고생했어요.”
“흑!”
구나정 형사가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유강인의 말대로 그녀는 녹초였다.
유강인이 말을 이었다.
“CCTV로 차량을 추적하면 놈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체를 다른 데로 옮길 가능성이 큽니다.
먼저 시체를 확보해야 합니다. 서울청에서 일을 잘 처리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네. 알겠습니다.”
구형사가 한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
유강인이 질문을 이었다.
“범인의 얼굴을 보셨다고 하셨죠?”
“네.”
“그때 상황을 설명해주세요.”
“제가 아파트 근처 약수터에 숨어 있을 때 갑자기 비명이 들렸어요.
도둑이 5층에서 떨어졌어요. 옥상을 올려다봤는데 옥상에 한 명이 있었어요. 아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가슴에 2번 스티커가 붙어 있었어요.”
“그렇군요.”
“도둑의 상태를 살피려 약수터에서 뛰어나갔는데 한 명이 아파트 모퉁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왔어요. 가슴에 1번 스티커가 붙어 있었어요.
도둑이 옥상에서 떨어지자, 5층에서 황급히 내려온 거 같아요.”
“그럼, 1번의 얼굴을 보신 거군요.”
“네, 맞아요. 그자가 총을 겨눠서 얼굴을 때렸어요. 고글이 날아가자, 눈매가 보였어요.”
“눈매라고요?”
“네, 헬멧을 쓰고 마스크를 써서 눈매만 봤어요.”
“눈매라 …….”
눈매만 봤다는 구형사의 말에 유강인이 답답함을 느꼈다. 눈매만으로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에 잠겼을 때
구나정 형사가 급히 말했다.
“양쪽 눈 밑에 깨알 같은 검은 점들이 빼곡히 박혀있어요.”
“깨알 같은 검은 점들이라고요?”
“네, 양쪽 눈에 다 있었어요. 마치 누가 그린 거 같았어요.”
“그린 거 같다고요?”
“네, 그래요. 지금 생각해보니 점을 촘촘하게 찍은 거 같아요.”
“그렇다면 … 어떤 목적으로 그린 거네요.”
“어떤 목적이요?”
“네, 눈 밑에다 칠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야구 선수죠. 눈 밑에다 검은색을 두껍게 칠합니다. 그렇게 눈부심을 막아요. 군대 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군에서 위장할 때 점을 찍지는 않아요. 두꺼운 면이 아니라 깨알 같은 점이었어요.”
“그렇군요. 운동선수나 군대 위장이 아니라면 … 화장도 아닐 테고 그럼, 한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분장 같습니다. 고글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게임이니 분장을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분장을 지우지 않고 참가한 거 같습니다.”
“게임장에 급하게 오느라 … 분장을 지우지 못한 걸까요?”
“그럴 수 있죠. 분장한 채 공연했는데, 게임 시간이 촉박해서 분장한 상태로 참가한 거 같습니다.
일단 눈 밑을 깨알 같은 점으로 분장하는 사람들을 조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단서를 잡아서 침 다행이네요.”
“구형사님은 좀 쉬세요. 급한 일이 아니면 날이 밝은 후에 전화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구나정 형사가 전화를 끊었다. 탐정 유강인의 도움을 받자,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뻐했다.
밤 3시 30분
우영 1동 파출소 문이 활짝 열렸다.
한민국 반장과 신민재 형사가 황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둘이 서둘러 구나정 형사를 찾았다. 여순경이 말했다.
“화정경찰서에서 오셨죠? 구형사님은 안쪽에 계십니다.”
“알겠습니다.”
한반장과 신형사가 파출소 안쪽으로 들어갔다. 왼쪽 구석으로 가자, 한 여자가 무척 초췌한 표정을 앉아 있었다.
바로 구나정 형사였다. 평상시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피난민 같았다.
머리가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얼굴은 먼지투성이였다. 옷도 마찬가지였다. 재킷과 바지가 흙투성이였다. 여기저기 찢어진 곳도 있었다.
“구, 구형사! 어떻게 이런 일이!”
한민국 반장이 구형사의 몰골을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얼음이 되고 말았다.
낮에 임창규 형사가 칼에 맞더니 새벽에는 구형사가 처참한 몰골이었다.
한반장이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반장님.”
구나정 형사가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유강인과 통화할 때는 서러움에 복받쳐 울었지만, 지금은 울지 않았다. 약한 모습을 동료에게 보이기 싫었다.
밤 3시 50분
구나정 형사와 한민국 반장, 신민재 형사가 파출소에 나왔다. 파출소 부소장이 그들을 배웅했다.
한민국 반장이 공손하게 감사를 표했다.
“구형사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부소장님.”
“하하하! 해야 할 일을 한 거뿐입니다. 구형사님이 괜찮으셔서 다행이네요.”
부소장이 웃으며 답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내일 출근시각은 오후 1시였다. 오전까지 푹 쉬기로 했다.
셋이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밤바람에 옷깃을 여미던 신민재 형사가 구나정 형사에게 말했다.
“참, 다행이네요. 우리 구형사님이 이렇게 멀쩡해서 … 정말 다행이에요.”
구형사가 씩 웃으며 답했다.
“다, 65번 버스 기사님과 승객들 도움 때문이야. 그분들 아니었으면 벌써 납치돼서 차에 실려 갔을 거야.”
구나정 형사가 말을 마치고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안정을 되찾았고 체력도 회복했다.
“맞는 말이야. 그분들을 용감한 시민으로 추천해야겠어.”
한민국 반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엄청난 난관을 뚫고 탈출에 성공한 구형사를 무척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휴우~!”
구나정 형사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무도한 놈들을 잡아야 했다. 불법 게임을 하고 사람까지 죽인 놈들이었다.
셋이 저 앞에 주차한 차로 향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걸음을 멈췄을 때
야간 운행 버스가 도로를 달렸다.
구나정 형사가 탔던 65번 버스였다. 65번 버스가 보이자, 구형사 반가운 마음에 활짝 웃었다. 그녀를 살려준 고마운 버스였다.
삐리릭!
한민국 반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한반장이 급히 전화 받았다.
“네, 유강인 탐정님.”
“한반장님, 옆에 구형사님이 있나요?”
“네, 있습니다.”
“그럼, 바꿔주세요.”
“알겠습니다.”
한민국 반장이 구나정 형사한테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
“구형사, 유탐정님 전화야. 어서 받아.”
“네, 알겠습니다.”
구형사가 전화 받았다. 곧 유강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구형사님, 눈 밑의 깨알 같은 점으로 검색하자,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기사가 떴습니다.”
“뮤지컬이요?”
“네, 주인공이 눈 밑에 깨알 같은 검은 점을 찍고 출연합니다. 지금 사진을 보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구나정 형사가 전화를 끊었다. 심장이 마구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유강인이 확실한 단서를 잡을 거 같았다.
20초 후 사진이 도착했다. 사진을 열자, 한 남자가 유럽풍의 옷을 입고 얼굴에 조로가 쓰는 가면을 썼다.
가면의 눈구멍이 컸다. 눈 밑으로 깨알 같은 검은 점들이 있었다.
사진은 뮤지컬 ‘검은 가면 속 신사’의 주연 배우였다.
뮤지컬 ‘검은 가면 속 신사’는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활극이었다. 조로처럼 가면을 쓰고 의로운 일을 행하는 주인공 이야기였다.
깨알 같은 검은 점은 눈 밑의 흉터를 가리는 용도였다.
주인공은 왼쪽 눈 밑에 큰 흉터가 있었다. 그 흉터를 가리기 위해 눈 밑에 많은 검은 점을 찍었다.
깨알 같은 검은 점은 오른쪽 눈 밑에도 있었다. 정체를 철저히 감추기 위해 흉터가 없는 오른쪽 눈 밑에도 검은점을 찍었다.
구형사가 가면 속 두 눈을 유심히 봤다.
송아지처럼 큰 눈망울이었다. 양쪽 눈 아래에 작은 점들이 빼곡하게 박혀있었다. 마치 최초 술래 1의 눈매처럼 …….
“헉! 맞아! … 이거야!!”
구나정 형사가 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신민재 형사에게 말했다.
“이, 이 배우가 누구인지 어서 알아봐! … 아, 맞아, 키가 중요해. 키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봐! 어서!!”
“네? 아니 갑자기 ….”
“이자가 살인자 1번 같아. 1번 같다고!”
“아! 그래요.”
신민재 형사가 사진을 살폈다. 뮤지컬 이름을 숙지하고 해당 뮤지컬을 검색했다. 몇 분 후, 그가 말했다.
“검은 가면 속 신사 주인공은 김혁이라는 뮤지컬 배우입니다. 프로필상 172cm 키입니다.”
“김혁! 172cm.”
김혁이라는 말에 구형사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자가 최초 술래 1이 맞는다면 도둑을 죽인 자였다. 당시 아파트 옥상에 2번이 있었고 1번은 도둑을 향해 달려왔다.
1번 키가 구나정 형사와 비슷했다. 170cm 초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