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형사 구나정 1편 <죽음의 게임, 술래>
아침 6시 30분
둥그런 해가 꿈틀거리며 위로 올라갔다. 드디어 기나긴 어둠이 끝나고 아침이 밝아왔다.
밝은 빛이 세상에 퍼졌다. 이제 광명의 시간이었다. 진실을 밝힐 시간이기도 했다.
해가 뜨기 전 새벽 5시 30분, 서울경찰청과 화정경찰서에서 긴급 대책 회의가 열렸다.
서울청장과 화정경찰서장뿐만 아니라 유강인도 회의에 참여했다.
유강인이 수사 방향을 제시했다.
서울청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르기로 했다.
회의가 끝나자, 청장과 서장의 지시로 긴급 차량이 출동했다.
*
유강인이 제시한 작전은 투 트랙이었다. 두 개의 작전을 동시에 시작했다.
첫 번째 작전은 서울청에서 맡았다.
미래 경흥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떠난 차들을 추적했다.
CCTV 통제 센터의 지시를 받으며 외제 차와 지프, 전세 버스를 뒤쫓았다.
두 번째 작전은 화정경찰서에서 맡았다.
김혁 배우의 집과 뮤지컬 극장으로 향했다. 김혁 명의 핸드폰 신호는 뮤지컬 극장에서 잡혔다.
서울청은 도둑의 시신을 반드시 확보해야 했다.
유강인은 지프를 주목했다. 도둑의 시신은 전세 버스나 고급 외제 차보다는 지프에 있을 거라고 추리했다.
전세 버스에는 많은 사람이 탑승했다. 그래서 비밀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고급 외제 차는 서바이벌 게임을 주관하는 수뇌부의 차가 분명했다. 수뇌부들이 자기 차에 시신을 둘리 없었다.
이런 점에서 지프가 가장 유력했다. 지프 트렁크에 시신 있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유강인의 분석에 따라 서울청 에이스 형사들이 지프를 뒤쫓았다. 유강인의 후배이자 최고의 무술 고수인 정찬우 형사도 작전에 참여했다.
재건축 현장에서 떠난 지프는 두 대였다. 두 대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정형사가 쫓는 지프는 서울 외곽으로 달렸다. 다른 지프는 서울 강남으로 향했다.
서울 외곽으로 달리는 지프는 구나정 형사를 집요하게 뒤쫓았던 검은색 지프였다.
아침 6시 40분 무전이 날아왔다.
강남으로 이동하는 지프를 잡았다는 무전이었다.
차량을 긴급 수색한 결과, 별 이상이 없었다. 차를 탄 사람은 운전사와 의사, 간호사였다. 응급약 등이 있었다.
이제 정찬우 형사가 뒤쫓는 지프가 중요해졌다. 시신이 있다면 그 지프에 있을 거 같았다.
정형사가 운전하는 형사에게 말했다. 후배 형사였다.
“계속 따라가!”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쪽으로 가면 CCTV가 없답니다. 통제 센터에서 더는 추적할 수 없답니다.”
정찬우 형사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차를 추월해서 앞을 가로막아야지.
모두 단단히 준비해! 돌발 상황이 있을 수 있어. 만약에 대비해.
지원 차량은 곧 따라붙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차에 탑승한 형사들이 크게 외쳤다. 차는 흰색 밴이었다. 차 안에 형사 네 명이 타고 있었다.
지프가 큰 도로에서 작은 도로로 빠져나갔다. 2차선 도로였다. 서울에서 하남으로 빠지는 샛길이었다.
이곳은 하남에서 번화한 곳이 아니었다. 시골 동네였다. 저 앞에 있는 옛날 집을 따라가면 길이 좁아졌다. 1차선 도로에 불과했다.
“빨리 가서 앞을 가로막아! 놈들이 동네로 들어가기 전에!”
“네!”
흰색 밴에 속도가 붙었다. 지프처럼 샛길로 들어갔다. 2차선 도로를 따라서 거침없이 내달렸다. 속도를 높이자, 바로 앞에 지프가 있었다.
밴의 속도가 더욱 높아졌다.
밴이 중앙선을 넘어서 지프를 추월했다. 앞으로 쭉 나가자, 핸들을 급하게 꺾었다.
끼익! 하며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밴이 2차선 도로를 가로막고 급정지했다. 도로에 스키드마크가 찍혔다.
타이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허연 먼지가 일어났다.
차 문이 활짝 열렸다. 형사들이 뛰어나왔다.
앞에 길이 딱 막히자, 지프도 급정지했다. 뒤로 후진하기 시작했다.
그때! 클래슨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서 지원 차량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원 차량이 샛길로 들어왔다.
“왔다!”
지원 차량을 확인한 정찬우 형사가 어서 빨리 오라는 듯 두 손을 마구 흔들어댔다.
지원 차량이 지프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지프가 계속 후진하다가 다시 정지했다. 지원 차량이 길을 막아섰다.
정형사가 크게 외쳤다.
“모두 달려가서 포위해! 어서!!”
지시가 떨어지자, 후배 형사들이 재빨리 지프로 달려가 차를 포위했다.
지프가 꼼짝달싹도 못 했다. 차 두 대가 앞뒤를 막았고 형사 넷이 사방을 둘러쌌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지프가 더는 도망치지 못하자, 그 자리에서 쥐 죽은 듯 머물렀다.
검은색 지프는 유리창까지 검은색이었다. 선탠(suntan)을 짙게 해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정찬우 형사가 운적석으로 걸어갔다. 한 손으로 운전석 차창을 두드렸다.
똑똑! 소리가 들리자, 차창이 열렸다.
차창이 5cm 정도 열리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 목소리였다.
“누구시죠? 왜 길을 막나요?”
“우리는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입니다. 범죄 차량을 추적 중입니다.
타고 계신 지프는 경찰에서 추적하는 용의 차량입니다. 차 안을 확인하고자 합니다. 협조 부탁합니다.”
“범죄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협조해주시죠.”
“자, 잠시만요.”
차창이 다시 올라갔다.
정찬우 형사가 잠시 기다렸다. 시간이 점점 흘러갔다. 지프 안에서 무슨 모의를 하는 거 같았다.
차창이 꼭 닫혀 있어서 차 안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긴박한 1분이 지났다.
지프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정찬우 형사가 다시 차창을 두드렸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협조 부탁합니다!”
차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정형사의 인내심이 바닥이 났을 때
갑자기 차 문이 벌컥 열렸다. 셋이 튀어나왔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 둘과 여자 하나였다.
셋이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잡아!!”
정형사가 크게 소리쳤다.
“어림도 없다!”
후배 형사들이 움직였다. 차에서 튀어나온 셋을 향해 달려갔다. 순식간에 격투가 벌어졌다.
형사 세 명과 남자 둘이 주먹을 휘두르며 격렬하게 싸웠다.
남자 둘은 몸이 민첩했지만, 무술 고수인 형사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지프에서 나온 사람들은 게임 통제관들이었다.
통제관 2와 3이 형사들에게 제압당하자, 통제관 1이 어쩔 줄을 몰랐다.
통제관 1의 말총머리가 격하게 요동쳤다. 그녀가 절망한 나머지 비명을 마구 질러댔다. 도망칠 데가 없었다.
“우리 후배님들이 잘하고 있군. 좋았어.”
정찬우 형사가 만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피라미를 잡는데 경찰청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무술 고수가 나설 필요가 없다는 거 같았다.
정형사가 지프 앞에 서서 여유 있는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다가 차 안으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평범한 차 실내였다. 특별한 건 없어 보였다.
“응?”
정형사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냄새를 맡은 거 같았다. 그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이 냄새는?”
뒤에서 냄새가 나는 거 같았다. 뒷좌석 뒤에 트렁크가 있었다.
“비린내가 나는데 …, 혹 피 냄새인가?”
정찬우 형사가 긴장감을 느낀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차 안으로 들어가더니 뒷좌석 뒤를 살폈다.
“아!”
트렁크 바닥에 사람이 누워있었다.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였다. 죽은 듯 미동조차 없었다.
“있구나!”
찾았다. 정찬우 형사가 도둑의 시신을 찾았다.
아침 7시
서울시 강동구에 있는 뮤지컬 전문 극장 ‘마이 레이디’에 아침부터 불이 켜졌다. 5층 빌딩이었다.
빌딩 안에는 극장 두 개가 있었다. 대극장과 소극장이었다.
대극장은 1층에서 3층까지 2,500석 규모였다.
소극장은 지하 1층 200석 규모였다.
4층과 5층에는 사무실과 연습실, 아카데미가 있었다. 지하 1층에는 직원 휴게실이 있었다.
마이 레이디는 2015년에 개장했다. 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유명한 극장이었다.
여느 때와 달리 지하 1층 직원 휴게실에 사람들이모여 있었다. 지금은 출근하기에 이른 시간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 한 명과 20대 중반 여자, 20대 후반 남자 둘이었다. 그들이 무척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지프가 연락 두절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젊은 남자의 말에 나이가 지긋한 남자가 힘없이 답했다. 그는 술래 게임 감독관 2였다. 그의 정체는 마이 레이디 이사, 김덕홍이었다.
김덕홍 이사의 말에 젊은 여자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름다운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녀는 올리비아 핫세를 닮은 술래 게임 감독관 1이었다. 그녀의 정체는 떠오르는 영화배우 오여름이었다. 유명 정치가의 손녀였다.
오여름과 김이사 앞에 두 남자가 무척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최초 술래 1과 2였다.
최초 술래 1은 뮤지컬 배우 김혁이었다. 최초 술래 2는 그의 친구 이찬수였다.
김혁은 뮤지컬 배우이자, 대기업 손자였고 이찬수는 유망한 벤처기업 대표였다.
김혁은 20대 중반 청년이었다. 172cm 키에 마른 체형이었다. 배우답게 미남자였고 스타일이 좋았다.
특히 헤어스타일이 멋졌다. 심플하고 세련된 댄디컷이었다.
이마에서 내려온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눈썹까지 다다랐고 짙은 눈썹 아래에 큰 눈망울이 빛났다. 높은 콧날, 날렵한 입술이 아름다움을 더 했다.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김혁은 뮤지컬계를 선도하는 유명 남자 배우였다.
20대 초반에 데뷔해 많은 작품을 해오다가 요즘에 ‘검은 가면 속 신사’ 주인공 앙드레 역할을 맡아서 마이 레이디 극장에서 공연 중이었다.
그는 어젯밤 공연을 마치고 서둘러 게임장으로 가는 바람에 검은 가면 신사, 앙드레의 독특한 눈 분장을 지우지 못했다.
김혁 옆에 서 있는 이찬수는 20대 후반 나이였다. 170cm 중반 키에 단단한 체격이었다. 각진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네 사람이 당황한 표정으로 이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인터폰이 울렸다.
삐리릭!
다급한 벨 소리였다. 불길함을 느낀 듯 네 명의 얼굴이 굳어졌다.
급한 일이 아니면 벨이 울릴 리 없었다.
넷은 여기 들어오기 전 비서에게 지시했다. 급한 일이 아니면 방해하지 말라고 말했다.
김덕홍 이사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지금 … 무슨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짓던 오여름이 말했다.
“어서 통화 버튼을 누르세요.”
“알겠습니다.”
김이사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곧 여비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경찰이 건물을 에워쌌습니다. 김혁 배우님이 안에 있는 걸 알고 있다며 안으로 들어가겠답니다.”
“뭐라고?”
김덕홍 이사가 깜짝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순간, 잠시 정적이 흘렀다.
“휴우~!”
오여름이 크게 숨을 내쉬며 정적을 깼다. 서둘러 침을 꿀컥 삼키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도망친 여자가 경찰에 신고한 거예요. 시신을 나르던 지프도 경찰에 잡힌 거 고요.”
오여름의 말에 김혁이 오른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났다.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사악한 얼굴로 돌변했다. 승냥이의 얼굴같았다.
그가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젠장! 그 X을 반드시 잡았어야 했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잖아. … 이를 어떡하지?”
이찬수가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말했다.
오여름이 잠시 생각하다가 김덕홍 이사를 바라봤다.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녀가 말했다.
“아저씨!”
“네, 말씀하세요.”
오여름이 입술에 침을 묻히더니 간곡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저씨는 예전부터 혁이 오빠와 저를 예뻐해 주셨잖아요.”
“그랬죠.”
“아저씨가 남자를 죽였다고 증언해주세요.”
“네에?”
김이사가 깜짝 놀랐다. 머리에 커다란 쇠망치를 맞은 듯 머리가 띵해졌다.
김혁과 오여름은 김덕홍 이사와 인연이 깊었다.
김이사는 젊은 시절, 유명 정치가인 오여름 할아버지의 보좌관이었다. 보좌관 시절 후원자를 관리했는데 그중에 한 명이 김혁의 할아버지인 김회장이었다.
그 인연으로 김덕홍 이사는 오여름과 김혁을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있었다.
“…….”
김이사가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오여름과 김혁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살인죄를 뒤집어쓰면 큰 보상을 하겠다고 회유하는 거 같았다.
그렇게 직원 휴게실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을 때,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화정경찰서 강력반 형사 구나정입니다. 안에 김혁씨 계시죠. 지금 들어가겠습니다.”
“뭐라고?”
경찰이라는 말에 김혁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윽고 끼익하며 문이 열렸다.
운명의 시간은 어김없이 오기 마련이었다.
구나정 형사와 신민재 형사가 직원 휴게실로 들어갔다. 구형사의 눈에 네 사람이 보였다.
그중에서 아름다운 눈매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검은 마스크 위로 보였던 최초 술래 1의 눈매였다.
구나정 형사가 최초 술래 1, 김혁을 보고 씩 웃었다. 월척을 낚았다는 표정이었다.
“어?”
김혁이 갑자기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가 한 발 앞으로 나갔다. 구형사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구나정 형사가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김혁씨, 어디에서 내 얼굴을 본 거 같지 않나요? 도둑 시체 근처에서 본 거 같은데 … 아닌가요? 단발머리 기억하시죠?”
“뭐, 뭐라고 … 헉!!”
김혁이 깜짝 놀랐다. 여형사가 바로 침입자였다. 도둑 시체 옆에서 격투를 벌였던 여자였다.
그가 두 발 뒤로 물러서면 크게 외쳤다.
“너는 침입자?”
“그래, 내가 침입자다. 아니 사실은, 도둑을 잡으러 재건축 현장에 들어간 형사다. 너희가 나를 침입자로 간주하고 죽일 듯이 덤벼들었지.
잡혔으면 내 입을 막으려고 도둑처럼 죽이거나 아니면 돈으로 매수해서 비리 경찰로 만들었겠지.”
“헉!”
“어떻게 이런 일이!”
네 사람이 깜짝 놀랐다. 그들이 쫓아다닌 여자는 도둑이 아니었다. 형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