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형사 구나정 1편 <죽음의 게임, 술래>
구나정 형사가 떨리는 손을 들었다. 로프를 전망대 구조물에 묶기 시작했다. 구조물이 몸무게를 지탱해야 했다.
다행히 구조물이 튼튼해 보였다. 한 사람이 아래로 떨어져도 그 몸무게를 충분히 지탱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저게 미쳤구나!”
구형사가 아래로 내려오지 않자, 감독관 1이 화가 치미는지 미간을 찌푸리고 신경질을 냈다. 그녀가 주변에 외쳤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어서, 위로 올라가! 저 여자를 잡아!”
“그게 ….”
게임 진행 요원들이 머뭇거렸다. 굴뚝 위로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구나정 형사는 10m 높이 전망대에 있었다.
“선임 감독관님, 제가 올라가겠습니다.”
통제관 1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말총머리가 찰랑거렸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저는 특수 부대 출신입니다. 저 여자를 한 방에 제압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어서 올라가세요. 여자를 잡으면 합당한 보상을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제관 1이 만족한 표정을 짓고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굴뚝 앞에 다다랐을 때
구나정 형사가 구조물에 로프를 다 묶고 10m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찔한 높이지만, 그녀는 경험이 많았다. 군 시절 수도 없이 높은 곳에 올라가 뛰어내렸었다.
정지 비행하는 헬기에서 레펠을 했고 비행기와 기구에서는 낙하산을 메고 강하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떨린 적은 없었다. 아주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겹겹이 포위됐는데 구원해 줄 동료도 안전장치도 없었다.
이제 여기에서 뛰어내려야 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목숨이 위태로웠고 놈들에게 사로잡힐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 하늘에 맡기자! … 나는 할 수 있다!!”
구형사가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로프에 매듭을 묶었다. 매듭은 미끄럼 방지용이었다. 로프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꼭 필요했다.
“어서 내려와라!”
굴뚝 앞에서 선 통제관 1이 구나정 형사한테 외쳤다.
“개소리하지 마라!”
구나정 형사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응수했다.
그러자 통제관 1이 씩 웃었다. 가소롭다는 표정이었다. 사다리 손잡이를 꽉 잡았다.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위로 올라갔다. 등에 반짝거리는 물체가 있었다. 소금탄이 들어있는 산탄총이었다.
산탄총은 근접 사격용이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아주 위력적이었다.
“저, 저것이!”
구나정 형사가 통제관 1을 보고 치를 떨었다. 통제관 1이 점점 위로 올라왔다. 그렇게 구형사를 압박했다.
사람을 죽인 자들이 오히려 당당했다. 유일한 목격자인 구형사까지 잡으려 했다.
구나정 형사가 이를 악물었다.
저들에게 잡히면 무슨 꼴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경찰 신분을 밝혀도 꼼짝없이 당할 거 같았다.
현재 재건축 현장은 악의 소굴이었다.
구형사는 고립무원이었다. 믿을 건 자신밖에 없었다.
“휴우~!”
구나정 형사가 크게 심호흡하고 로프를 꽉 잡았다. 양손 밑에 매듭이 있었다. 이제 줄만 믿고 뛰어내려야 했다. 바닥으로 떨어질 때 낙법이 매우 중요했다.
“간다!”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구형사가 눈을 꼭 감았다. 두 발이 전망대 끝에 닿았다.
통제관 1이 계속 위로 올라왔다. 5m 정도 올랐을 때 크게 외쳤다.
“침입자! 어서 항복하고 내려와! 위험한 짓 하지 말고.”
통제관 1이 말을 마치고 한 손으로 등에 멘 산탄총을 잡았다. 그때 두 눈이 커졌다. 로프가 눈에 들어왔다. 긴 줄이었다. 그녀가 급히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 줄을 잡고 뛰어내리려고? 너 돌았나?”
구나정 형사가 침을 꿀컥 삼켰다. 이제 뛰어내려야 했다. 양손으로 로프를 꽉 잡더니 주저하지 않고 힘차게 도약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외쳤다.
“어어어~?”
“뭐, 뭐야? 뛰어내렸어?”
구형사가 세찬 바람을 가르며 전망대에서 떨어졌다. 오직 로프 하나에 모든 걸 걸고 10m 아래로 떨어졌다.
“으아아아!”
당찬 기합 소리가 들렸다. 구나정 형사가 기합을 넣으며 로프에 몸을 꼭 붙였다. 로프에 몸이 꼭 붙어있어야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거센 바람에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깃발처럼 펄럭였다.
몇 초 후, 탁! 하며 로프가 팽팽해졌다. 로프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팽팽해졌다.
“윽!”
구형사가 신음을 내뱉었다. 양손과 어깨에 큰 충격이 전해졌다. 하지만 견뎌야 했다. 다행히 로프에서 미끄러지지 않았다. 손 밑 매듭 덕분이었다.
구나정 형사의 몸이 마치 바이킹을 타듯 위로 올라갔다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발밑은 2m 아래였다. 줄이 시계추처럼 움직였다.
“와아!”
“대단하다!”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고 감탄사 내뱉었다. 무척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손뼉을 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 뭐들 하는 거야? 어서 저 여자를 잡아!!”
감독관 1이 크게 소리쳤다. 두 눈에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러자 게임 진행 요원들이 구형사를 향해 달려갔다.
“어림없다!”
구나정 형사가 크게 외치고 몸을 굽혔다. 몸의 중심을 최대한 앞으로 숙였다. 그러자 로프가 앞으로 쭉 나갔다. 마치 그네가 위로 올라가는 것과 같았다.
로프가 정점을 찍었을 때 구형사의 두 눈이 번쩍였다. 로프를 꽉 잡았던 두 손을 놨다. 발아래는 2m 50cm 높이였다.
“야아!”
구나정 형사가 다시 기합을 넣으며 저 멀리 아래로 떨어졌다. 멀리뛰기 하며 공중을 나는 거 같았다.
2m 50cm 높이에서는 낙법이 필요했다. 떨어질 때 등으로 굴러야 했다. 그래야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구형사가 허공을 가르며 아래로 떨어졌다.
쿵! 소리가 들렸다.
구나정 형사가 능숙한 낙법 솜씨를 발휘했다. 바닥에서 부드럽게 굴렀다. 그리고 그 힘으로 벌떡 일어났다.
이제 어서 도망쳐야 했다. 북문으로 달려야 했다.
“막아! 어서!!”
감독관 1의 큰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총을 든 술래들이 여기저기서 달려왔다.
여기는 남문 근처였다. 반대 방향인 북문으로 달려야 했다.
수많은 술래가 앞에서 몰려왔다!
구형사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른쪽에 단지를 관통하는 차도가 있었다. 차도 끝은 북문과 남문이었다. 저 멀리 있는 북문을 향해 질주해야 했다. 야생마처럼!
“야아!”
큰소리를 지르며 구나정 형사가 차도로 뛰어들었다. 차도를 따라서 북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술래들이 쫓았다.
그렇게 추격전이 시작됐을 때
차 소리가 들렸다. 굴뚝 근처에 있던 지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프가 구형사를 뒤쫓았다.
아무리 운동신경이 뛰어나도 차는 따돌릴 수 없었다.
차 소리가 크게 들리자, 구형사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죽기 살기로 달려야 했다.
“그만, 이제 그만!”
가녀린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한 사람이 인도에서 튀어나와 지프 앞을 가로막았다. 끼익! 하며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구나정 형사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한 사람이 두 팔을 쫙 벌리며 지프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구형사가 깜짝 놀랐다. 소녀였다. 자기를 두 번이나 배신한 소녀였다.
소녀가 울먹이며 크게 외쳤다.
“이제 그만해요! 제발!! … 저 사람을 놓아줘요.”
소녀의 울먹이는 소리에 구나정 형사가 힘을 냈다. 연달아 뒤통수를 쳤던 소녀가 이번에는 자기를 도와줬다.
소녀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을 두 번이나 감쪽같이 속였다는 사실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어머니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자신을 합리화했지만 무거운 마음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러다 구형사의 용기 있는 행동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궁지로 몰았던 사람이 높은 굴뚝에서 목숨을 걸고 뛰어내리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윽고 필사의 도주를 하자, 커다란 상금에 눈이 멀어 꼭꼭 숨겼던 양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한 사람을 괴롭히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술래 게임은 불법이었다. 소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비켜! 어서!!”
지프 운전사가 차창을 내리고 크게 소리쳤다. 소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운전사가 화를 벌컥 내고 클랙슨을 울렸다.
시끄러운 클래슨 소리가 울렸을 때
지프 뒤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그가 소녀를 거세게 밀쳐버렸다.
“악!”
비명이 들렸다. 소녀가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비명이 들리자, 구형사가 다시 고개를 뒤로 돌렸다.
소녀를 밀치고 한 사람이 뛰어오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소녀가 꼼짝도 못 했다.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바로 최초 술래 1이었다. 헬멧에서 흰색 글자 1이 선명하게 보였다.
다시 차 소리가 들렸다. 어서 도망쳐야 했다.
타타타타!
총소리가 들렸다. 최초 술래 1이 총을 난사하며 구나정 형사의 뒤를 쫓았다. 사거리가 짧아서 미치지는 못했다.
“헉! 헉!”
이제 미친 듯이 달려야 했다. 구형사가 죽을힘을 다해 뛰고 뛰었다. 200m 전력 질주였다. 뒤에서 차 소리가 크게 들렸다. 지프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아!”
보였다. 저 앞에 북문이 보였다. 북문 앞에 경비 둘이 두 팔을 벌리고 문을 가로막았다.
정면 돌파밖에 방법이 없었다. 앞에는 경비 둘, 뒤에는 차와 술래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야아!”
큰소리를 내지르며 구나정 형사가 도약했다. 수 미터를 날아서 문을 지키는 경비 가슴에 두 발을 내리꽂았다.
“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경비 하나가 나가떨어졌다. 그러자 다른 경비가 급히 달려왔다.
구형사가 다시 몸을 솟구쳤다. 오른발을 높이 쳐들었다. 장기인 찍어차기였다. 살쾡이 박은달의 인중을 노렸던 그 기술이었다.
퍽! 소리가 들리며 비명이 울렸다.
“악!”
칼날처럼 날카로운 찍어차기에 달려오던 경비마저 쓰러졌다. 이제 나가야 했다. 문 두 개가 앞에 있었다. 차량용 큰 문과 작은 문이었다. 둘 다 빗장으로 잠겨 있었다.
차가 코앞까지 따라왔다.
“으샤!”
구나정 형사가 작은 문으로 달려가 빗장을 반대쪽으로 당겼다. 그리고 힘껏 문을 밀었다. 드디어 문밖 바깥세상이 보였다.
구형사가 단지 밖으로 나갔다. 이제 바깥세상이었다.
밖의 공기는 단지 안 공기가 사뭇 달랐다. 재건축 현장의 살벌한 공기가 아니었다. 어서 빨리 도망쳐 지원을 요청해야 했다.
구나정 형사가 재빨리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2차선 도로와 인도가 보였다. 저 앞에 4차선 도로가 보였다. 삼거리였다. 100m 거리였다.
“저기다!”
구형사가 삼거리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체력이 바닥이 나 제대로 뛰기 힘들었다. 힘이 다 떨어져서 다리를 들기도 힘들었다.
이곳은 게임이 시작하기 전, 전세버스가 온 길이었다.
“헉! 헉!”
거친 숨을 내뱉으며 구나정 형사가 달렸다.
그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북문 큰 문이 열렸다. 지프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급하게 좌회전하더니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구형사를 쫓아서 미친 듯이 달렸다.
“헉!”
커다란 지프가 쫓아오자, 구나정 형사가 깜짝 놀랐다. 어서 빨리 번화가로 가야 했다. 지옥 같은 재건축 단지를 벗어나야 했다.
구형사가 100m를 겨우 달려 삼거리 4차선 도로 앞에 다다랐다. 차도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버스 한 대가 앞을 쓱 지나갔다.
65번 버스였다. 버스를 발견하자, 구형사의 두 눈이 커졌다. 그녀가 버스를 뒤쫓아갔다.
여기는 야간 통행 금지 구역처럼 행인이 없었다. 밤에는 버스만 다닐 뿐이었다.
지프가 삼거리에서 우회전했다. 4차선 도로에 진입했다. 구나정 형사를 따라잡는 건 시간문제였다.
“제, 제발!!”
4차선 도로를 내달리는 구형사가 두 손을 마구 흔들어댔다. 버스 기사가 자기를 제발 보기를 바라며 마지막 힘을 다했다.
끼익!
차가 갑자기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버스가 정차했다. 차 문이 칙! 하면 열렸다.
버스 기사가 차 밖으로 나왔다.
65번 버스 기사는 사이드미러로 정신없이 버스를 뒤쫓아오는 여자를 확인했다. 여자 뒤로 지프가 따라왔다. 이에 무슨 큰일이 난 걸 직감하고 서둘러 정차했다.
버스가 서자, 지프가 속도를 줄이더니 멈췄다.
구나정 형사가 마지막을 힘을 다해 버스로 달려갔다. 버스 기사가 외쳤다.
“혹 무슨 일이 있어요?”
“저를 태워주세요. 저를 납치하려고 해요.”
“납, 납치라고요?”
“아이고!”
결국, 구나정 형사가 힘이 다했는지 버스 기사 앞에서 풀썩 쓰러졌다. 이제 더 뛸 수 없었다.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딱딱한 돌덩이가 된 거 같았다.
“그럼, 어서 타세요.”
버스 기사가 구형사를 부축했다. 둘이 차에 올랐다.
지프는 가만히 있었다. 버스 뒤에서 이 상황을 조용히 지켜봤다.
버스 안에는 남녀 열 명이 타고 있었다. 새벽에 일을 마치고 귀가하거나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었다.
한 여자가 기진맥진한 상태로 버스 기사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오자, 승객들이 깜짝 놀랐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며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65번 버스가 다시 출발했다. 버스가 출발하자, 지프도 출발했다. 지프가 버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간신히 숨을 돌린 구나정 형사가 상황을 살폈다. 뒤창으로 지프가 보였다. 뒤따라오는 지프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가 버스 기사와 승객들에게 말했다.
“저는 화정경찰서 경찰입니다. 어떤 사람이 재건축 현장에서 죽었습니다. 제가 그걸 목격했습니다. 지금 범인이 저를 잡으려고 쫓아오고 있어요.”
“네? … 사람이 죽었고 누가 쫓아온다고요?”
“뒤에 지프가 따라오네요. … 그럼, 저 지프가?”
운전하던 버스 기사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급히 말했다.
“5분 정도 가면 파출소가 있습니다. 거기는 정류장이 아니지만, 긴급 정차하겠습니다. 승객 여러분 양해 바랍니다.”
그러자 승객들이 구나정 형사와 지프를 번갈아 쳐다봤다. 남자 손님 둘이 크게 외쳤다.
“우리도 같이 내리겠습니다. 경찰분이 버스에서 내리면 지프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납치할 거 같아요!”
“맞아요. 우리 둘이 경찰분을 보호하겠습니다.”
버스 기사가 잘 됐다는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파출소가 길 건너편이라 횡단보도를 50m 걸어가야 합니다. 남자 두 분이 경찰분을 보호하면 되겠네요.”
“저, 정말 감사합니다.”
구나정 형사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이제는 체력이 다 떨어져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