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여기는 JS 그룹 산하 재선 요양병원이다. 특급 병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병실 안에 한 사람이 누워있었다. 병약한 노인이었다. 눈을 꼭 감고 미동조차 못 했다.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휠체어 하나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중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괴한한테 납치되어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생매장당할 뻔한 박재영이었다.
박재영이 무척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에 생겼던 무수한 상처는 많이 아물어 원래 모습을 되찾아갔다.
휠체어 뒤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박재영의 부인 민주희였다. 민주희가 휠체어를 밀며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 저분이 아버님이죠?”
박재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휠체어가 침대 앞에서 멈췄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박재영이 50년 만에 아버지를 찾아왔다.
가습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릴 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부스럭거리기는 소리가 들렸다.
박재영이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켰다. 비틀거리며 50년 만에 만난 아버지를 향해 걸어갔다.
저 앞에 아버지가 누워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아버지였다.
그는 갓난아기일 때 버려졌다. 그래서 부모 없이 50년을 살아왔다. 너무나도 긴 세월이었다. 그 세월 동안 그에게 커다란 한이 맺혔다.
부모가 자기를 버렸다는 그 참담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그건 아니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무슨 사고가 있었을 거라고 … 그게 맞는다고 굳게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 끊임없는 번뇌 속에 마음속에 커다란 상처가 남고 말았다. 그게 낙인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오늘, 그 낙인이 말끔히 지워졌다. 아버지는 아들을 버리지 않았다. 아버지도 아들을 잃어버렸다. 50년 후 그 사실을 알고 아들을 찾았다. 간절히!
하지만 불행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의식불명 상태였다. 아들이 50년 만에 찾아왔는데도 반기지 못했다.
“아, 아버지!”
박재영이 크게 울부짖었다. 그러다 이를 악물었다. 커다란 고통을 느낀 듯, 한 손으로 가슴을 꽉 움켜잡았다. 그 모습을 보고 부인이 달려왔다.
“여보! 무리하면 안 돼요!”
“여보, 아버지 손을 잡고 싶어.”
남편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부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남편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간절했다.
민주희가 20여 년 전, 남편의 프로포즈를 떠올렸다. 그때도 박재영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떨렸고 간절했다. 남편한테는 가족이 절실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부인이 남편을 부축했다. 그렇게 둘이 천천히 송해성 회장을 향해 걸어갔다.
바로 앞에 아버지가 있었다.
박재영이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의 한 손을 꼭 잡았다. 따뜻한 손이었다. 그가 잡았던 손 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아늑했다. 박재영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눈물이 침대 시트를 푹 적셨다.
민주희가 시아버지 얼굴을 찬찬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여보, 아버님 얼굴에 당신 얼굴이 보여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네요.
여보, 정말 축하해요! 드디어 아버지를 찾았어요.”
“흑!”
박재영이 결국, 커다란 울음을 터트렸다. 천신만고 끝에 아버지를 찾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의식불명이었다. 50년 만에 찾아온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들이 서러운 눈물을 쏟아냈다. 제발 아버지가 깨어나기만을 바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박재영과 민주희가 서로 껴안고 기쁨과 슬픔을 공유했다.
흐느끼는 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웠을 때
발소리가 들렸다. 담당 의사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부부에게 말했다.
“저는 송해성 회장님 담당 의사입니다. 회장님 상태가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습니다. 조만간에 의식을 회복할 거 같습니다.”
“저, 정말이요?”
박재영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담당 의사가 고개를 끄떡였다. 얼굴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 모습을 보고 민주희가 밝은 목소리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님은 곧 깨어날 거에요. 당신도 죽다가 살아났잖아요. 아버님도 그럴 거예요. 당신처럼 아버님도 행운이 깃들 거예요.”
“그렇겠지. 아니 그래야만 해!”
박재영이 눈물을 훔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송해성 회장님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제가 왔어요. 어서 일어나세요. 박재영은 제 이름이 아니에요. 깨어나시면 제 이름을 지어주세요. 그리고 어머니가 누군지도 가르쳐주세요.”
아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렸지만, 송해성 회장은 여전히 꼼짝도 못 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평안해 보였다.
마치 50년 만에 찾아온 아들을 무척이나 반기는 거 같았다.
**
서울청으로 퀵이 도착했다. 백두성 자서전 1권 다섯 부를 강력범죄수사대에 배달했다.
1권을 받은 유강인이 책을 살피기 시작했다.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반드시 단서를 잡아야 했다.
조수 둘도 그 옆에서 1권을 살피기 시작했다.
유강인이 페이지를 천천히 넘겼다. 그때
삐리릭!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유강인의 전화였다. 발신자는 백정현 형사였다. 유강인이 전화 받았다. 백형사가 말했다.
“유탐정님, 박재영씨가 아버지 송해성 회장님을 찾아갔답니다.”
“아, 그래요. 잘됐네요.”
“담당 의사 말로는 회장님이 곧 의식을 회복할 거랍니다.”
“하하하! 정말 좋은 일입니다. 그래야죠. 50년 만에 아들을 찾았는데 아버지가 계속 누워만 있을 수는 없죠. 하늘이 그 애절함을 두고만 볼 리 없어요.”
“박재영씨가 유전자 검사 결과를 토대로 친자 확인 소송을 진행해서 친자로서의 모든 권리를 되찾겠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송해성 회장의 아들이 아니라 인간 송해성의 아들이 되는 게 제일 급선무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아들은 없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저도 아버지께 전화 드려야 할 거 같아요.”
“네, 그러세요.”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그도 아버지에게 전화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휴우~!”
유강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생전의 모습을 회상했다. 그렇게 그가 상념에 잡혀있을 때
황수지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크게 말했다.
“탐정님, 책 끝에 부록이 있어요!”
유강인이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말했다.
“부록이라고? 그게 뭔데?”
“수수께끼, 십자말풀이, 퍼즐이에요. 재미있게 즐기라고 적혀 있어요.”
“수수께끼라고?”
“네!”
유강인이 급히 자서전 1권의 끝을 살폈다. 황수지 말 그대로였다. 자서전이 끝나고 부록이 있었다.
유강인이 부록을 살폈다.
잠시 시간이 지났다.
조수 둘이 유강인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1분 후
유강인이 뭔가를 깨달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크게 외쳤다.
“그래! 보험이야!”
보험이라는 말에 조수 둘이 이게 뭔 소리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둘이 서로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난데없이 보험이라니?”
황정수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가 유강인에게 말했다.
“탐정님, 보험이라니요? 누가 보험을 들었나요? 생명 보험인가요? 자동차 보험인가요? 아니면 손해 보험인가요?”
유강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답했다.
“그런 보험이 아니야! 만약을 대비해 백회장님이 비밀을 숨긴 거야. 그 비밀을 부록 속에 감춘 거고.”
“네? 만약을 대비했다고요?”
“응! 놈들이 눈치를 채고 움직일 걸 대비해 비밀을 수수께끼, 퍼즐, 십자말풀이 속에 숨긴 거야. 수수께끼, 퍼즐, 십자말풀이를 풀면 비밀을 알 수 있어!”
“아! 그런 거예요.”
황수지가 이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녀가 말했다.
“백회장님이 만약을 대비해 그런 조치를 한 거군요. 그렇게 보험에 든 거군요.”
유강인이 자서전 1권을 꽉 쥐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비밀이 자서전 2권과 3권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어. 1권에도 비밀이 있었어. 그 비밀을 암호로 숨겼던 거야.
1권은 겉보기에 비밀이 없었어. 그래서 놈들이 1권에 신경을 쓰지 않았어. 그래서 1권이 무사히 출간된 거야.
백회장이 1권은 맛보기 불과하다고 한 건 페이크였어. 속임수야. 1권도 다른 책처럼 아주 중요했어.
백회장님이 그걸 노리고 1권에 비밀 코드를 몰래 심어놓은 거야. 그 코드를 풀면 비밀의 문을 열 수 있어.”
“아! 그렇군요. 일종의 안전장치네요.”
“백회장님이 죽기 전 간신히 유언을 남겼어. 마지막 말을 하려다 다 끝맺지 못하고 돌아가셨어.
그 말은 … ‘만약 없다면 수수’였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해 그 뜻을 알 수 없었는데 지금 분명히 알게 됐어.
2권과 3권에 문제가 생겨서 비밀이 없으면 1권 부록인 수수께끼 즉 코드를 풀라는 말이었어. 이제야 그 말뜻을 해독했어.”
황정수가 기쁜 나머지 손뼉을 짝 쳤다.
“아하! 그렇군요. 유언에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역시 백회장님은 대단한 분이세요. 죽어가면서도 그런 말을 남기다니 …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저 같으면 그냥 꼴까닥 하고 죽었을 텐데, 그렇게 만약을 대비했군요. 그럼, 어서 코드를 풀어요.”
“그래, 어서 같이 풀자!”
유강인이 자서전을 펼쳤다. 부록을 찾았다. 부록에 수수께끼, 십자말풀이, 퍼즐이 있었다.
황수지가 책 끝을 살폈다. 퍼즐에 답이 있나 살폈다. 퍼즐의 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유강인에게 말했다.
“탐정님, 답이 없는 거 같아요.”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말했다.
“일부러 답을 달지 않았겠지. 놈들이 눈치챌 수 있으니.”
“맞아요. 그런 거 같아요.”
첫 번째 문제는 수수께끼였다.
수수께끼는 두 개였다. 둘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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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씨가 입양한 미스터리는?
열 명 왕자 중에서 다 된 밥에 코 빠뜨린 재수 없는 왕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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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수수께끼를 다 읽은 유강인이 이게 뭔 소리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수수께끼 답에 무슨 단서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답을 도통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갔다.
황정수도 황수지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강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김복동씨가 입양한 미스터리라고?’
황정수와 황수지가 계속 고개를 갸우뚱했다.
유강인이 잠시 생각했다.
‘김복동는 사람 이름이 분명한데 입양한 미스터리라고? 무슨 미스터리한 사건이 있나?’
유강인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그러다 아! 하며 뭔가가 떠오른 듯 급히 말했다.
“백두성 회장님은 고령이야. 이 수수께끼는 그 나이대에 맞게 생각해야 해.”
“아, 맞아요. 백회장님은 90살에 돌아가셨어요.”
황정수가 고개를 끄떡이며 맞장구쳤다.
유강인이 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어머니에게 전화 걸었다. 그의 어머니는 70살이 넘었다. 백두성 회장과 나이 차이가 나지만, 동시대를 살았다.
“우리 아들!”
장승희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강인이 서둘러 말했다.
“어머니, 지금 수수께끼를 풀고 있는데 어디에서 들은 거 같아요. 한번 들어주실래요?”
“수수께끼? … 난 그런 거 잘 못 하는데.”
“그래도 한 번 들어보세요. 어디에서 들은 거 같아요.”
“알았어. 말해봐.”
“김복동씨가 입양한 미스터리는 뭐죠?”
“다시 말해봐, 천천히.”
“다시 말할게요. 김복동씨가 입양한 미스터리는 뭐죠?”
“… 아하! 하하하!”
장승희가 크게 웃었다. 그녀가 말했다.
“미스터리를 김복동씨가 입양했으니 미스터김이지.”
“미스터김이라고요?”
“응. 이씨를 김씨가 입양했으니 성이 바뀌잖아. 양자가 양아버지 성을 따르는 건 옛날에는 당연했어.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아! 그렇군요. 미스터리가 미스터리한 사건이 아니라 이씨라는 뜻이군요. 그럴듯하네요.”
유강인이 잠시 생각했다.
‘그러면 답은 미스터김이야. 미스터김이라고? 미스터김이 대체 누구지?’
유강인이 생각을 마치고 말을 이었다.
“잘 알겠습니다. 두 번째 수수께끼가 있어요.”
“또 있어?”
“네. 말할게요. 열 명 왕자 중에서 다 된 밥에 코 빠뜨린 재수 없는 왕자는 누구죠?”
“재수가 없다고? 열 명 왕자 중에서?”
“네, 그래요.”
“재수가 없어서 아홉 수에 걸렸나?”
“아홉수라고요?”
“응, 요즘도 쓰는 말이잖아. 아홉 수에 걸리면 조심하라고 다 된 밥에 코 빠뜨린다며 …. 아홉 수에 걸리면 재수가 없어. 그래서 이삿날에도 아홉수를 피해.”
“그러면 열 명 왕자 중에서 가장 재수가 없는 사람은 당연히 아홉 수에 걸린 구 왕자겠네요.”
“그렇지. 구 왕자가 가장 재수가 없겠지. 좀 쉬운 문제데. 엄마가 금방 풀었다. 엄마가 수수께끼에 소질이 있나 봐!”
“잘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어머니.”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럼, 수수께끼 답이 미스터김과 구 왕자라는 말인데 …. 이게 대체 뭘 뜻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