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8편 <검은 자서전과 악의 비밀>
정찬우 형사의 전화였다. 유강인이 급히 전화 받았다.
“선배님!”
“정형사, 무슨 일이야?”
“선배님, 대필작가 지인태가 차로 끌려가는 장면이 도로 CCTV에 잡혔습니다. 납치로 판단됩니다.”
“어디에서 납치됐는데?”
“집 근처 아파트 단지에서 납치됐습니다. 지인태 작가가 저항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몇 명이 납치했지?”
“세 명입니다. 검은색 밴에서 세 명이 튀어나와서 지인태 작가를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그렇군. 놈들이 매우 급한 모양이군. CCTV가 보는데도 사람을 대놓고 납치하다니.”
“놈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거 같습니다. 잡을 수 있으면 잡아보라는 식입니다.”
“다른 작가들은 어떻게 됐어?”
“최윤희 작가도 납치되는 장면이 CCTV에 찍혔습니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최작가가 물건을 사고 나왔을 때, 어떤 여성이 말을 걸었습니다.
둘이 말을 나누고 있을 때, 다른 자가 튀어나와서 최작가를 끌고 갔습니다.”
“마지막 작가는 어떻게 됐지?”
“남인태 작가는 행방이 묘연합니다. CCTV를 분석한 결과, 집에서 나온 남작가가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행방이 묘연합니다. CCTV가 없는 곳에서 납치된 거 같습니다.”
“알았어. 계속 대필작가들의 행방을 뒤쫓아.”
“알겠습니다.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바로 보고하겠습니다.”
“그래.”
“선배님, 자서전 원고에서 뭐라도 나왔나요?”
유강인이 고개를 흔들고 답했다.
“없어. 특별한 건 전혀 없어.”
“그래요? 일부가 누락이 됐다고 보고받았는데 … 그 부분에 비밀이 있는 모양이네요.”
“응, 그런 거 같아.”
“아, 이거 일이 좀 꼬이네요.”
“응, 일이 어렵게 돌아가고 있어. 대필작가 셋 다 납치되고 비밀도 보이지 않아.”
“그렇군요. … 아, 오늘 박재영씨와 송회장님 친자 검사 결과가 나옵니다. 결과가 나오면 백정현 형사가 보고할 겁니다.”
“오! 그래. 드디어 결과가 나왔군. 결과가 나오면 제일 먼저 박재영씨한테 알려. 결과가 무척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분명 일치로 나오겠죠?”
“그럴 거야. 그럴 가능성이 99.9999퍼센트지.”
“100퍼센트 아닌가요?”
“정형사, 항상 여지는 남겨둬야 해.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
“네, 알겠습니다. 충성!”
“응, 충성.”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가 생각에 잠겼다.
사건 해결이 난관에 봉착했다. 확보한 자서전 원고에 비밀이 없었고 대필작가 셋 다 납치됐다.
범인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철저하게 증인을 납치하고 증거를 인멸했다.
“음!”
유강인이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였다가 오른쪽으로 기울였다. 그렇게 머리를 풀가동했다. 사건을 해결하려면 어떻게든 작은 실마리라도 잡아야 했다.
그러다 좋은 수가 없는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래, 모든 걸 처음부터 생각하자. 혹 놓친 게 있을 수 있어.’
유강인의 여태까지 벌어진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캔하기 시작했다. 찌잉 움직이는 고성능 스캐너 같았다.
5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날이 완전히 밝았다. 11월이라 아침 기온이 낮았다. 영상 10도 밑이었다. 쌀쌀한 아침 공기가 사방을 적셨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뭔가가 떠오른 듯했다. 그가 핸드폰을 들었다. 황수지에게 전화했다.
신호가 가자, 황수지가 전화 받았다.
“네, 탐정님”
“수지, 백회장님 유언을 녹음했잖아. 그 파일을 보내줘.”
“아, 탐정님이 말한 백회장님 유언이요?”
“그렇지.”
“알겠습니다. 바로 보내겠습니다.”
유강인이 전화를 끊고 녹음 파일을 기다렸다. 1분 후 파일이 도착했다. 그가 파일을 재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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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이 움직였어. 모든 건 자서전에 있어. 만약 없다면 수수. … 녹음기 스톱하고 저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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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에서 유강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강인이 백두성의 유언을 기억해서 녹음한 파일이었다. 그가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백두성이 마지막 말이 계속해서 방안에서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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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이 움직였어. 모든 건 자서전에 있어. 만약 없다면 수수. … 녹음기 스톱하고 저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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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인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마지막 순간에 허튼소리를 할 리 없어. 분명 중요한 말을 했을 거야.”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리고 백두성의 말을 분석했다.
‘놈들이 움직였다는 말과 모든 건 자서전에 있다는 말은 이미 확인한 사실이야.
비밀을 지키려고 살인, 납치, 방화하는 놈들이 분명 있고 자서전에도 비밀이 있었어. 그러니 일부가 누락 됐겠지.
남은 건, 만약 없다면 수수야. 만약 없다는 말은 … 놈들이 증거나 증인을 제거한다는 말이야.
그래, 맞아! 놈들이 증거를 인멸하고 증인을 납치했어. SSD와 하드를 빼돌리고 원고에서 중요한 부분을 빼돌렸어. 관련자들을 납치 살해하고 있어.
마지막으로 남은 건 수수야. 수수가 뭐지? 대체 뭘 의미하는 건지?’
유강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다 고개를 끄떡였다. 핸드폰에서 국어사전을 찾았다. 수수를 검색하고 관련 단어를 찾았다.
수수(收受) : 거두어서 받음.
수수(授受) : 물품을 주고받음.
수수 : 볏과의 한해살이풀 ….
수수하다 : 사람의 성질 … 수월하고 무난하다.
수수방관(袖手傍觀) :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 …
수수잡기 : 수수께끼
수수팥떡
………
수수만년
수수개떡
수수경단
단어를 쭉 살피던 유강인의 두 눈이 커졌다. 그가 한 단어에 집중했다. 그건 수수잡기, 수수께끼였다.
그가 다시 백두성의 마지막 말을 재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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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이 움직였어. 모든 건 자서전에 있어. 만약 없다면 수수. … 녹음기 스톱하고 저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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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
유강인의 머릿속에 수수가 계속 맴돌았다.
30초 후
유강인이 윗니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네 글자를 천천히 말했다.
“수수께끼!”
그가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문맥상 … 수수께끼가 잘 어울려. 만약 없다면 수수께끼를 풀라고 하면 아주 자연스러워.
만약 없다면 수수방관하라는 말은 이상해.
만약 없다면 수수하다라는 말도 마찬가지야.
만약 없다면 수수만년도 그렇고.
결국, 사리에 맞는 말은 수수께끼야.
문제는 내가 들은 게 수수 두 글자인지 아니면 수자 한 글자인지 그게 중요해.
그때 백회장님은 죽어가는 순간이었어. 초집중해서 유언을 들었어. 내가 글자 수를 착각할 리 없어.
이 녹음은 백회장님 유언을 듣고 조금 뒤에 녹음한 거야. 기억이 또렷할 때 녹음했어.
그래! 수수 두 글자야. 이게 중요한 실마리야.’
유강인이 생각을 마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두 눈에 초점이 딱 맞춰졌다.
포커스!
유강인이 씩 웃었다. 실마리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자, 배가 갑자기 고프기 시작했다.
그가 방에서 나갔다. 거실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고 냉동실에서 과자 봉지 하나를 꺼내더니 활짝 웃었다. 사랑하는 초콜릿 과자였다. 차갑게 먹으려고 냉동실에 보관했다.
유강인이 과자 봉지를 북 뜯고 초콜릿 과자를 와그작 씹었다. 초콜릿의 달콤한 기운이 몸을 감싸자, 눈빛이 무섭게 빛나기 시작했다.
**
오전 9시 20분
유강인이 자리에 앉아서 자서전 원고를 살폈다. 여기는 서울청 강력범죄수사대 강력반 사무실이다.
옆에 앉은 조수들도 원고를 살폈다. 조수들의 원고는 복사본이었다.
셋이 찾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수수께끼였다.
유강인이 조수 둘에게 말했다. 수수께끼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수 둘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건을 진두지휘하는 탐정이 난데없이 수수께끼를 꺼냈다.
그들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탐정의 지시였다. 일단 수수께끼를 찾아야 했다.
유강인이 원고를 덮자, 조수 둘도 원고를 덮었다. 셋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황정수가 말했다.
“아무리 뒤져봐도 수수께끼 같은 건 없는데요.”
“맞아요. 넌센스 퀴즈나 퍼즐, 수수께끼 같은 건 보이지 않아요.”
유강인이 답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황정수가 말을 이었다.
“그럼, 허탕 친 거잖아요. 백회장님 유언에 수수라는 말이 있었다면서요? 그 수수가 다른 뜻 아닐까요? 수수에 뭘 받으라는 뜻이 있잖아요. 금품수수처럼 뭘 받으라는 뜻이 아닐까요?”
“그럴듯한 말이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황정수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황정수가 울상을 지었다. 그가 말했다.
“그런데 뭘 받으라는 건지 우리가 알 수 없잖아요.”
황수지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녀도 별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어떡하죠? 수수라는 단어가 별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아요. 수수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유강인이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단호함이 있었다.
“아직 1권이 남았어.”
“네? 1권이라고요? 자서전 1권을 말하는 건가요? 지금 다 봤잖아요. 그것도 셋이서 여러 번 봤어요.”
황수지의 말에 유강인이 고개를 가로젓고 말을 이었다. 더욱 단호한 목소리였다.
“아직 보지 않은 자서전 1권이 있어.”
“그게 뭐죠? 회사에 자서전 파일이 없잖아요. 다른 게 있나요?”
“출간한 자서전 1권이 있어. 그 책을 아직 보지 않았어.”
출간한 자서전 1권이라는 말에 조수 둘의 눈이 커졌다. 둘이 서로 쳐다봤다. 그러다 황정수가 급히 입을 열었다.
“출간한 책은 우리가 확보한 원고랑 내용이 같잖아요.”
유강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우리가 확보한 건 교정 교열용 원고일 뿐이야. 실제 출간한 책과는 달라. 그 책을 살펴보겠어. 혹시 알아? 그 책에 뭔가가 있을지.
어쩌면 이게 마지막 희망일 수 있어. 경찰이 회사 컴퓨터를 뒤지고 있지만, 파일을 찾는다는 보장은 없어.
출간한 자서전 1권을 반드시 확인해야 해. 출간한 책은 현재 5.000부나 있어. 출간한 자서전 1권은 백두성 회장님이 직접 확인한 책이야. 백회장이 OK 했다면 안에 뭔가가 있을 수 있어.”
“아, 그렇군요. 출간한 책과 교정 교열본은 다른 점이 있겠네요. 그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정수! 백정현 형사가 미라클 북스에 있어. 전화해서 출간한 자서전 1권, 다섯 부를 서울청으로 빨리 보내라고 해.”
“알겠습니다.”
황정수가 핸드폰을 들었다. 백정현 형사에게 전화 걸었다. 백형사가 자초지종을 듣고 답했다.
“잘 알겠습니다. 출간한 자서전 1권, 다섯 부를 퀵으로 서울청에 보내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선임 조수님, 탐정님을 바꿔주세요. 보고할 게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황정수가 핸드폰을 유강인에게 건넸다. 유강인이 핸드폰을 받고 말했다.
“네, 백형사님.”
백형사가 들뜬 목소리로 답했다.
“유탐정님,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강인의 두 눈이 커졌다. 백형사가 말을 이었다.
“검사 결과 송해성 회장님과 박재영씨는 99.99999999퍼센트로 친자 관계가 성립합니다. 정말 잘된 일입니다. 박재영씨가 50년 만에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하하하!”
유강인이 기쁜 소식을 듣고 크게 웃었다.
“그리고 김정태 배우 부검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 그래요. 어서 말하세요.”
“김정태 배우는 목이 졸려 죽은 게 맞습니다. 그리고 몸에서 마약 성분이 나왔습니다.”
“마약이요?”
“네, 심각한 중독 수준이랍니다.”
“그렇군요.”
“김정태 배우 금전 관계를 조사한 결과, 백두성 회장님한테 막대한 돈을 빚졌습니다.”
“둘이 채무 관계라는 말이군요, 채권자는 백두성 회장이고 채무자는 김정태 배우군요.”
“맞습니다.”
“알겠습니다.”
유강인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백두성과 김정태의 관계를 떠올렸다. 채무 관계였다. 막대한 빚을 졌다면 살해 동기가 되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