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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쥐와 햄스터 (1)

by 이삼오

8학년이 시작되고 난 우리 학교로 새로 오신 선생님의 반에 배정되었다.



한 학년에 많아야 두세 반이니, 8학년쯤 되니 학생 모두 서로 한 번쯤은 같은 반을 지낸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처음 같은 반이 된 친구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프랜시스, 경준이의 친한 친구다.



나랑 친하지는 않지만 얼굴을 보면 인사는 하는, 친구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말 그대로 '학교 친구'였다.



시끄럽지 않은, 점잔은 성격이지만 말을 조곤조곤 많이 하는 성향이다.



내 교실 책상 자리도 이 친구 옆에 앉게 되었다.




"얘들아, 두 달 뒤에 과학 프로젝트 발표가 있는 거 알고 있지? 파트너를 정해서 선생님에게 알려 줘. 그리고 다음 주까지 어떤 주제로 발표할 건지 정해야 해."



과학 프로젝트는 2인 1조가 되어 발표를 하게 되어있다. 간혹 어쩔 수 없이 혼자 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양하는 편이다.



옆자리에 있던 프랜시스가 한 숨을 푹 쉬더니 한 마디 한다.



"염병할 거... 드디어 시작이네. 야, 나랑 같이 할래?"



"그래."



바로 옆 자리에 앉은 이유도 있었겠지만 프랜시스는 이 반 아이들과 그다지 친해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경준이의 무리들은 이 친구 빼고 다 같은 반에 배정받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런 거 없단다. 그냥 무작위로 배정된 거다.



우리 둘은 무엇을 주제로 할지 고민했다. 우선 조건은, 거창한 거 말고, 쉽게 쉽게 할 수 있으면서 나름 재밌게 할 수 있는 무언가...



"야, 너 혹시 애완동물 키워? 우리 집에는 고양이를 키우는데 말이지."



"아니. 나도 강아지는 키워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이 건 좀 힘들 거 같고... 햄스터 같은 건 한 번 키워보고 싶긴 하다."



가만 보니 프랜시스 옷에는 항상 잔 털 같은 게 붙어 있었는데 고양이 털이었다. 테이프 롤러로 아무리 문질러도 완벽하게 제거는 안 된단다.



"나는, 들쥐를 키워보고 싶단 말이지..."



"야, 근데 너희 집에 고양이 키운다며? 쥐가 위험하지 않을까?"



"글쎄, 우리 집 고양이 쫄보에다가 야생성도 거의 없어서 괜찮을 걸?"



"그럼... 햄스터랑 쥐와 관련된 거 뭐 없을까?"



"아! 들쥐와 햄스터... 뭐가 더 똑똑할까? 어때?"



"오... 좋다 좋아!"



"그리고... 이미 끝난 게임이야. 들쥐가 더 똑똑한 게 사실이니.. 후후."



나와 프랜시스는 각자 햄스터와 들쥐를 키울 수 있는 명분을 만들게 되었다.





다음 날 우리는 쇼핑몰에 있는 한 애완숍에 들렀다.



아주 작은 애완동물이고, 공부의 목적(?)에다가 오롯이 내가 돌볼 것이고, 무엇보다 부담이 안 되는 가격이니 부모도 크게 개의치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그다지 탐탁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결벽증 비슷한 걸 지니고 있는 사람의 집에 동물을 데리고 온다? 그래도 마지못해 오케이가 떨어졌다.



여러 마리의 다른 종의 햄스터가 있었지만 유독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온몸이 흰색 털로 되어있고 빨간 눈을 가진 '알비노'를 택했다.



애완용 들쥐는 보통 흰색 계열에 검은색과 갈색 점박이를 한 것들이 대부분이었기에, 프랜시스는 이 중 가장 크고 똘똘해(?) 보이는 녀석을 택했다.



프랜시스는 자기 쥐를 '빌(Bill)'이라고 했다. 이유는? 딱히 없단다. 그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을 갖다 붙였다고 했다.



나는 '유리(Yuryi)'라고 지어줬다. 얼마 전 봤던 만화책에서 나온 러시아 과학자 이름인데 피부가 매우 하얘서, 이 캐릭터가 먼저 떠올랐다.



햄스터 케이지에 챗바퀴와 먹이통, 물 통을 설치하고 톱밥을 깔아줬다. 유리를 케이지 안에 놓아주었는데 처음이라 어색한지 별움직임이 없다가 마음이 편해졌는지 매우 활발하게 움직여 다녔다.



작다고 만만하게 봤지만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배설물이 쌓인 톱밥을 자주 갈아주지 않으면 피부질환 및 다른 질병을 유발할 수 도 있다. 비타민도 잘 챙겨 먹여야 했고 물도 자주 갈아 줘야 했다. 그냥 먹이 외에도 특식을 잘 챙겨줘야지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종종 치즈, 토마토 등을 챙겨주고 케이지도 일주일에 두 어번은 물로 깨끗하게 세척했다.



이래저래 귀찮기도 했지만 내 자식(?)이었기에 감당할 수 있었지만 하나가 정말 힘들었다.



나는 햄스터가 야행성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내가 잠이 들 때쯤이면 챗바퀴에 올라가서 달리지를 않나 철장을 쉴 새 없이 이빨질을 해대 지를 않나... 소음 공해가 생각보다 심했다. 거실에 내놔도 소음은 나을 듯하지는 않고, 그나마 내 방에서 지내야 다른 이들에게도 피해가 덜 가게 된다.




그렇게 얼마 간 새 보금자리에서 적응을 한 후, 유리와 빌의 공식적인 상견례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



프랜시스의 집은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된 전형적인 이 동네 주택이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살짝 아담한, 그렇다고 작다고 할 수 없는 붉은 벽돌로 된 주택이었다. 뒷마당은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답답해 보일 정도는 아니었으며 한편에는 창고가 있었다.



이 집을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은 정문 대신 뒷 문을 주로 이용했다. 딱히 이유는 없지만 집 구조상 뒷 문으로 들어오는 동선이 더 편하다고 했다.



프랜시스의 어머니는 짧은 금발머리(너무 밝은 금발이다 못해 하얘 보일 정도)에 매우 환하고 친절한 미소로 나를 반겨 주셨다. 뭐랄까, 진심 따뜻함이 느껴졌다고 해야 할 까... 너무 진심인 천사표 같은 친절함에 나는 살짝 당황했다.



프랜시스의 아버지는 매우 큰 덩치에 흰머리,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 계셨다. 목소리는 또렷했고 말수는 적지만 꽤나 달변가 이실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리고 얼마 후, 작은 누나와 큰 누나가 줄줄이 집으로 들어왔다.



작은 누나의 얼굴은 알고 있었다. 같은 학교를 다니다 졸업을 했고 성준이 형과 같은 반 친구이기도 했고, 하여튼 학교가 작다 보니 (한국 기준으로) 누가 누군지 파악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둘째 누나는 어머니와 비슷한 인상에 짙은 눈화장과 립스틱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큰 누나. 우리 보다 여섯 살 많은 큰 누나는, 프랜시스에 의하면 슈퍼 꼴통이란다. 고등학교를 일찌감치 자퇴하고 여기저기 알바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막상 둘이 사이는 괜찮아 보이지만 숱하게 싸우고 지지고 볶는다고 했다.



큰 누나, 작은 누나 둘 다 나를 반갑게 맞아 줬다.





이때만 해도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 집을 내 집만큼이나 들락날락할 줄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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