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실험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문구점에 갔다. 한국에 있는 작은 문방구 같은 곳이 아닌, 무슨 대형 마트처럼 되어있었다.
대형 과학 실험 전시 보드, 즉 사이언스 보드 하나, 미로를 만들 재료들을 카트에 담았다.
문구점이지만 컴퓨터를 포함한 각종 사무기기를 팔기도 했다. 한편에는 게임기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우리 둘은 한 참 동안 이곳을 서성이며 데모 게임을 신나게 해댔다.
일 대 일로 싸우는 게임이었는데 프랜시스는, 참 더럽게도 못했다. 그냥 조이스틱에 있는 방향키와 버튼들을 질서 없이 무작위로 두드리고 본다. 쯧쯧... 그래서 나 한 대라도 때리겠냐?
아닌가? 내가 잘하는 건가? 한국 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로 제대로 단련된 실력이 여전히 녹슬지 않았음을 느꼈다.
프랜시스 집으로 돌아와 미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골판지랑 두꺼운 도화지를 가위로 이리저리 자르기 시작했다. 프랜시스 어머니가 와서 도와주셨다. 가위질 좀 해보신 솜씨였다.
대형 미로를 완성했고 이제 빌과 유리의 지능 대결을 본격적으로 선보일 때다. 프랜시스는 빌이 미로를 먼저 빠져나올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빌을 먼저 미로 입구에 놔줬다.
오, 순식간에 반대편 출구로 나왔다. 기록은 6초. 그냥 대박이다.
다음은 유리 차례, 하아... 답이 없다. 출구는커녕 들어왔던 입구로 되돌아오질 않나, 다음 시도 때는 그냥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잠을 요청했다. 자기 야행성인 걸 고려해서 늦은 시간에 실험을 시작한 거였는데.
이런저런 시험 결과 빌이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이었다. 애당초 되는 게임이 아니었다. 우리는 순식간에 리포트를 마무리했고 이제 쉬운 작업인 보드 꾸미기만 남았다. 아직 마감 시한 까지는 시간이 제법 남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놀기로 했다.
프랜시스 방은 2층이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지하에서 보냈다. 지하에는 화장실을 비롯한 소파, 컴퓨터, 티브이 등, 프랜시스의 또 다른 방 같은 곳이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멋지게 생긴 빨간 이발소 의자가 있었다. 프랜시스는 소파 대신 주로 여기 앉아서 티브이를 본다고 했다. 앉아보니, 편하긴 편하다.
컴퓨터 책상 옆 서랍장에는 책 대신 음악 CD들이 가득했다. CD 몇 개를 꺼내 봤다.
Marilyn Manson, Nine Inch Nails, Korn, Ministry, Filter, Deftones, Nirvana...
아, Nirvana는 알겠다. 그런데... 다 첨 보는 것들이었다. 이름도 특이하고 앨범 커버만 봤을 때는 락이나 메탈 같은데...
(이 CD들이 내 인생에 향후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내가 CD들을 관심 있게 보자 프랜시스는 급 음악 평론가 모드로 진입했다. 밴드를 하나씩 소개하며 음악 스타일과 특징을 세세히 설명했다. 그러고는 CD 하나를 틀었다.
'아... 시끄러워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가사도 하나도 안 들리고... 그런데 기타 소린가? 이 건 좀 괜찮네.'
과학 프로젝트는 거의 완성되었다. 우리는 흡사 장인 정신까지 보일 정도로 세세히 보드를 꾸며갔다. 프로젝트 과정을 찍은 사진들을 인화해서 여기저기 붙였다. 웃긴 사진들도 좀 있었다. 붙일까 말까 고민하다가 붙이는 게 좋다고 생각됐다.
이 대형 보드는 프랜시스 어머니가 학교에 가져다주시기로 했다.
대망의 발표일, 발표의 3분의 2는 프랜시스가 도맡아서 했다. 아무래도 말을 잘하는 사람이 더 많이 하는 게 유리했다. 그래도 언제까지나 공동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나 또한 적극성을 보여야 했다.
며칠 뒤 결과가 나왔다.
87점. 생각보다 높은 점수가 나왔다. 반 최고 점수가 93점인 걸 감안했을 때 나쁘지 않은 점수였다. 나는 그냥 시큰둥하게 있었는데 프랜시스는 매우 만족해하면서 나에게 계속 하이파이브를 보냈다. 나는 큰 내색은 안 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오랜만에 학교에서 뭘 제대로 한 거 같았다.
2주 동안 거의 매일 보면서 우리는 부쩍 친해졌다. 주말을 포함해서 프랜시스 집에 매일같이 들락 거렸으니 나에게도 익숙해진 공간이 되었다.
이 집이 좋았다. 약간 어둑한 오렌지 빛 조명에 고풍스러운 와인색 카펫과 짙은 색깔의 나무 바닥,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따뜻한 집 안 창문을 바라보며 들어가고 싶다는 느낌을 주는 그런 집이었다.
무엇보다 이 집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큰 누나에게 고함을 지르든, 큰 누나가 다시 쌍욕으로 맞받아 치든, 프랜시스가 작은 누나에게 함부로 대들든, 작은 누나가 다시 프랜시스 뒤통수를 후려 갈기든, 그걸 본 어머니는 제발 그만하라며 닦달을 하든,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는 알 수 없는 따뜻함이 새어 나왔다.
싸워도 다시 친해질 것이란 믿음.
내가 혼나고, 잘못해도 버려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
몸과 마음이 아프면 보살핌을 받을 것이란 믿음.
이 믿음이란 단단한 사슬로 묶인 것처럼 보이는 가족이었다.
빌과 유리는 먹는 사료나 등이 같았기에 나와 프랜시스는 마치 아이를 키우는 부모 마냥 이것저것 같이 공유했다. 좋아 보이는 간식이나 영양제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빌은 (들쥐 기준으로) 장수하여 편안히 생을 마감했고 유리는 안타깝게도 질병에 걸려 그리 긴 생을 보내지는 못했다.
나와 프랜시스는 이후 파트너로 해야 하는 모든 과제들을 같이 하게 되었다.
내 캐나다 삶에 있어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 중 한 명인 이 친구는 (나와 마찬가지로) SNS를 생사여부의 도구로만 사용하는 편이라 서로 안부를 자주 주고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주 간혹 서로 주고받는 한마디는 어떤 긴 대화보다 큰 의미를 갖는 느낌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