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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시작, 그리고 또 이사

by 이삼오

주변을 둘러본다. 모두가 흰색 셔츠에 빨간 바탕에 검은색, 회색 줄무늬가 들어간 넥타이를 매고 있다. 왼쪽 가슴팍에 학교 로고가 새겨진 검은색 정장 재킷을 걸치고, 쥐색 바지에 검은색 구두... 아직 앳되어 보이는 아이들도 있고 삼촌뻘 까지 되어 보이는, 심하게 겉늙어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교복이 하나 같이 다 새것이다. 아직까지는, 깨끗하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죄다 남자들이다. 서른 명이 조금 안 되어 보인다. 이 중 아는 얼굴은 두 어명 정도, 그 외엔 다들 첨 보는 얼굴들이다.



책상과 의자는 전부 칠판 쪽을 향해 앞을 보고 있다.



콧수염을 한, 키가 작고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는, 슈퍼마리오가 무표정이라면 딱 인 수학 선생님이 우리의 담임이다. 말이 담임이지 그냥 수학 선생님이다. 다른 과목 수업 때는 반 아이들도 다 바뀔 것이다. 해당 과목 수업이 끝날 때마다 학생들은 바삐 다음 수업 교실로 이동해야 한다. 고로, 같은 반 친구들 같은 낭만은 딱히 없다.





선배들은 우리 햇병아리 같은 9학년을 보며 조롱 섞인 말을 해대며 휘파람을 연신 불어댔다. 캐나다에서는 딱히 선후배 개념이란 게 없지만 내가 오게 된 곳은 나름 전통과 역사가 있는 학교라 나름 특유의 문화라는 게 존재한다.



특유의 문화라... 바로 신입생 신고식이다.



크게 폭력적이거나 안전에 별 위협이 없다면 선생님들도 그냥 묵인하는 분위기였다. 많은 선생님들 또한 이 학교 출신이기에 신입생에게는 대선배 이기도 했다.



첫 한 달간은 환영인사(신고식)를 비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기간이었다.



팔 굽혀 펴기, 버스정류장까지 가방 들어주기, 핀볼(선배들이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서있고 그 중간에 학생이 들어간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밀어 댄다. 그럼 여리 튀고, 저리 튀고...)



기분 나쁠 때도 있었지만, 나중에 이들은 도움이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고는 했다. 물론,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새로 온 학교가 처음이라 낯설면서도, 한편으로는 편한 느낌도 있었다. 성당에서 아는 형들이 이곳에 많이 다니고 있었다. 대부분 나보다 두 살에서 네 살 많은 형들이다.



고작 이제 9학년인데... 졸업하려면 *5년을 더 다녀야 하기에 아직 까마득했다.



*이 당시 (모든) 학교에 OAC (Ontario Academic Credit), 13학년, 고 4가 있었다. 토론토가 속해 있는, 온타리오 주 내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려면 이 과정을 거쳐야 했다. 예산 문제와 이런저런 이슈로 내가 졸업한 이듬해에 폐지되었다.




스쿨버스가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거 외에는 적응에 크게 애먹지 않았다. 같은 학교 친구들도 많았고 성당 형들도 있었기에 크게 낯선 환경은 아니었다. 지각할까 봐, 아버지가 몇 번 태워 줄 때마다 잔소리 듣는 게 싫어서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대강 새로운 학교에 자리를 잡아갈 무렵,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냥, 눈치로 알았다. 굳이 궁금해하지도, 물어보지도 않았다.



"왜, 거기 있잖아. 쇼핑몰 근처 큰 길가에 있는 쌍둥이 아파트..."



아, 어딘지 잘 안다. 오며 가며 많이 봐서 익숙한 곳이다. DK가 여기 아파트 꼭대기 층에 살아서 종종 와본 곳이었다. 그런데 여기 상태가... 좀 더 (많이 더) 오래됐고 했지만 관리는 그럭저럭 잘 된 곳이었다.




이사 온 집은 그다지 넓진 않았지만 커다란 창문과 베란다가 있어서 탁 트인 느낌이 들었다. DK의 집과 층만 다를 뿐 같은 호수라 구조가 같았다. 새집이지만 나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바닥도 카펫이 아니라 마룻바닥이어서 청소하기에도 훨씬 수월 할 것 같다. 방은 세 개, 이제 동생 녀석도 방이 생기는 건가?



그건, 힘들게 됐다. 아버지가 사업을 (사무기기 및 용품 사업 실패) 정리하며 사무실에 있던 온갖 잡동사니를 집에 들였다. 고장 난 대형 복사기, 커다란 철제 캐비닛 두 개, 정체 모를 각종 서류들, 한국에서부터 보였던 자질구레한 물건들... 나도 정리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이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쓰잘데 없는 짐들 때문에 어머니와의 전투는 늘어갔다. 멀쩡한 방 하나를 쓰레기 모시는데 쓰냐 이거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집 안이, 왠지 허전했다. 중요한 그 무언가가 없는 거 같은데... 아, 세탁기가 안 보였다. 알고 보니 지하에 공용 세탁실이 있다고 했다. 동전을 넣어 사용하는 것이다.



별 거 아닌 듯했지만, 집이 재정적으로 점점 더 어려워 짐을 느꼈다. 이 전부터 넉넉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생각이 바로 코 앞에 놓인 현실이라는 게 와닿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도 이제 합법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나이다.



시끄러운 대로변의 소음이 문제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중앙난방(너무 더워지면 창문 살짝 열면 그만이다), 에어컨은 없고(다행히 토론토 여름은 선풍기로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대신 씰링 팬은 있었다.



집은 좀 오래되고 했어도 개인적으론 직전 집보다는 좋았다. 친구 집도 있었고 쇼핑몰도 바로 옆에 있었다. 학교도 부지런하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고 동네가 뭐랄까, 도시 다운 느낌이 강해서 좋았다. 자동차 소리, 시끄러운 대화 소리, 아이들이 뛰어다니면서 노는 소리... 소음으로 치부할 수 도 있겠다만 한편으론 좋은 에너지로 느껴져서 좋았다.



예전 집들이 정적인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훨씬 더 역동적인 분위기가 돌았다. 더 다양한 인종이 살았고 젊은 세대들이 더 많이 거주하는 거 같았다. 물론, 누구는 시끄러워서 싫다고 할 수 있지만 아직 어린 나로서는, 북적 거리는 환경이 좋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화려한 저택 같은 집은 아니더라도 프랜시스 집 같이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의 주택으로 이사를 가면 좋겠다는 마음이 한편에 항상 있었다. 봄, 여름엔 잔디를 깎아야 하고, 가을엔 낙엽을 치우고, 겨울엔 눈을 치워야 하고, 집 지붕 수리나 야생 동물에(특히 최악인 스컹크)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이왕 이 나라까지 온 거, 제대로 여기 스타일로 살아보면 좋지 않겠나?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 산 집이다.



막 이민 온 한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아파트였다. 주변의 좋은 인프라 대비 월세가 저렴했다.



나의 친한 친구 SK도 이사 왔고 또 SK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살고 계셨다. (안타깝게 SK가 이사 왔을 땐 DK는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관리인도 매우 친절해서 아파트 공터 잔디밭 한편에 깻잎, 상추, 고추를 재배해도 전혀 눈치를 주지 않았다.



가장 오래되고 낡은 집이었지만 내가 캐나다에서 마지막까지, 또 가장 오래 있었던 집이어서 아직도 이곳이 집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재건축 논의가 오고 가고 한다는데, 이 건 아직 확정된 게 아니란다.



역시 재개발이든 재건축이든, 한국이나 캐나다나 쉬운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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