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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디안 드림 (2)

by 이삼오

80년대 말, 90년대 초반에 이민 온 세대들을 두고 어떤 이들은 이민 2세대 혹은 3세대, 또 애매하게 2.5세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88 올림픽 전 후로 대한민국은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내 또래 아이들은 가난에 허덕여서 밥을 굶는 경우는 (적어도 내 주변에는) 없었다. 소시지나 계란 반찬을 학교 도시락에 싸가면 다 빼앗긴다는 말은 과거의 이야기와 추억일 뿐이었다.



나와 비슷하게 이민 온 세대는 한국에서 경제 성장의 혜택을 어느 정도 본 이 들이었다.



우리 아버지 세대가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산업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때였고 중동의 건설붐이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은행에만 돈을 넣어놔도 엄청 불어났던 시기였고 부동산 광풍이 미친 듯 불었을 때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넉넉해지고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여러 사회적인 문제와 정치 이슈들은 끊이지 않았다. (아마 이 둘은 영영 해결할 수 없는 숙제겠지만)



8,90년대는 이제 먹고사는 생존 문제보다는 어떻게 하면 나와 가족의 인생이 더 풍요로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 시기였다. 무엇보다 자녀들 교육이 이민에 상당 비중을 차지했고 여의치 않은 이 들은 자녀만 홀로 유학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민 온 부모들의 직종은 크게 변한 건 없었지만 업종 분야가 더 넓어졌다. 이전 세대가 은퇴를 앞두고 세탁소나 편의점을 그대로 물려받아서 하는 경우도 흔치 않았다. 한국 식당도 더 세분화되어서 영업을 했다. 감자탕 전문점이나 국밥 전문점 같은 것들이다. 한인 비중이 높아지면서 한국 식품점도 하나 둘 더 늘기 시작했다. 좀 더 나아가 한국식 문구점 및 서점도 생겼고 교회도 더 많이 생긴 거 같다.



앞 전 세대의 자녀들의 성공 모델은 의사 혹은 변호사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것이다. 내가 이민을 처음 간 90년대 초반엔 실제로 어릴 때 이민 왔거나 캐나다에서 태어난 2세들이 본격적으로 전문직종에 많이 보이는 시기였다. 이들은 대부분 아무것도 없이 이 땅에 와서 자식을 반듯하게 키운 부모의 자랑이자 성공의 척도였다.



나와 비슷하게 이민 온 친구들의 부모의 사정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른 모습이 많았다. 한국에서 잘 나가는 건설사를 다니다가 이민을 결정한 아버지부터, 형제들이 이미 캐나다에 정착했기 때문에 온 경우도 있다. 비슷한 점이라면 한국에서 회사원이었던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 과장, 부장, 혹은 사장 타이틀을 달았던 사람들이었다.



한국에서 크게 아쉬울 거 없었고 회사에서도 나름 인정받던 이들이 이민 왔을 때 어려움은 크게 두 가지인 거 같다. 하나는 언어적인 어려움과 또 하나는 과장님, 부장님, 간혹 사장님이란 타이틀에 익숙한 사람들의 자존심이다.



'영어, 까짓 거 그냥 공부하면 되지...'라고 생각하지만 이게... 어른들은 쉽지 않다. 아이들이야 학교에서 어떻게든 적응해서 배워나가겠지만 어른들은 따로 학원이나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서 죽어라고 하지 않는 이상 되질 않는다.



한국에서 김 과장, 이 부장, 성 차장, 박 사장은 캐나다에서는 그냥 영어 못하는 아저씨일 뿐이다. 물론 영어를 잘하는 아저씨들도 있었지만 적어도 내 주변엔 거의 없었다.



나름 잘 나갔던 한국에서의 생활, 미련과 자존심을 버리지 못해 적응에 애를 먹고 취업 및 사업 실패 때문에 가정이 파탄이 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모든 걸 내려놓고, 자존심 따윈 잠시 옆에 미뤄두고 밑바닥부터 생활에 적응해 나아가는 사람도 있다.





영문도 모른 채 부모를 따라서 이민 온 아이들도 저마다의 모습이 다 달랐다. 나처럼 초등학교, 그러니까 국민학교라고 불릴 때 이민온 친구들이 많았다.



토론토 같은 대도시이자 국제적인 도시에서는 인종차별이 심한 편은 아니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농담으로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고는 하지만 실제 심각한 차별을 당하거나 느낀 적은 없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해서 얼마 되지도 않아 금방 적응하고 말도 빨리 배운 친구들이 있는 반면 몇 년이 지나도 영어에 어려움을 겪으며 한국인 친구들과만 어울리는 경우도 있다.



부모가 바빠서 거의 모든 것을 본인 스스로가 챙기는 경우가 흔했다. 요리, 빨래, 청소 같은 집안일은 부모의 일이 아닌 모두의 몫이었다. 교육열이 대단해서, 아버지가 돈을 엄청 많이 버는 경우가 아닌 이상 모두가 맞벌이 가정이다.



어처구니없이, 선택의 여지도 없이 부모 따라 이민 온 아이들은 대부분 빨리 철이 드는 듯했다. 그래도 잘 살아보겠다고 밖에서 고생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짠한 마음을 갖게 된 게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도 똑같겠지만 아이들도 환경이 180도 바뀌었으니 모든 걸 바라보는 시선도 확 바뀌었을 것이다.



영어도 힘들고 처음엔 적응하느라 힘들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나름의 꿈과 희망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생활해 나아가려고 많이 노력했다.





90년대 이후의 캐나다 이민은 좀 더 다이내믹했던 거 같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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