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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디안 드림 (3)

by 이삼오

"야, 그 누나 요새 안 보이네? 어디 갔나?"



"아... 너 얘기 못 들었구나? 누나 아버지 회사가 안 좋아져서... 아니 망해서 한국 다시 들어갔데."



"한국이 지금 심각하긴 한가 보다..."



성당 친구와 나눴던 대화다.



90년대 후반 한국은 IMF 사태로 나라가 허덕이고 있을 때였다.



이때 알게 모르게 제법 많은 유학생들과 기러기 가족들이 한국으로 유턴을 하게 된다. 한국신문과 뉴스에서 상황이 많이 안 좋다는 정도만 인식했지, 나와는 먼 얘기인 것처럼 들렸다. 그런데 주변에서도 몇 명이 짐을 싸서 눈물을 머금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란 보장 없는 희망을 품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들어서는 다양한 부류가 캐나다로 왔다.



워홀러들과 유학생이 훨씬 더 늘어난 느낌이었고, 심지어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러서 도피를 해 온 이들도 있었다. 기러기 가족도 더 늘어난 거 같았다.



IMF 사태가 끔찍했지만, 살아남은 이 들은 굳이 한국에 있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영영 이주하겠다는 이 들이 현저히 줄어든 모습이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이민 온 세대는 대부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모두가 이상적으로 정착을 해서 살고 있었던 건 아니다.



아버지들이 무리한 사업을 강행해서 쓴 맛을 보는 경우도 있었으며 이는 곧 가정의 불화로 이어지며 또 마음이 급하여 무리해서 재기에 도전해 보지만 또 쓴 맛을 보게 되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면 과연 무엇을 위하여 이민을 온 것인지에 대한 현타가 세게 다가왔을 것이다.





어렸을 땐 잘 몰랐지만 어느 정도 컸을 때 느꼈던 점은 초창기 이민 세대의 독특한 성향이다.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캐나다에서 시작하셔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정서적으로 일반 한국 어른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알던 어른들은, 특히 아저씨들은 권위적이고 무뚝뚝한 느낌이 강했다면 캐나다에서는 나름 유쾌한 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한두 마디의 농담도 한국의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 분들은 이민 온 지 얼마 안 된 한국인들에게 상당한 도움을 주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론 철저히 거리 두기를 어느 정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즉, 도움은 주돼 자신들의 삶과 영역에 간섭받기를 극도록 꺼리는 듯했다.



물론 이는 지금은 어딜 가나 이렇겠지만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에선 우리 집이 이웃집이고 이웃집이 우리 집이었던 풍토(?)가 있어서인지, 같은 한국인이지만 거리감이 많이 느껴지는 듯했다.



나의 개인적인 삶이 지극히 중요하고 보장받아야 마땅한 캐나다 사회가 마냥 냉정하다, 차갑다 하고 불만을 가지는 한인들이 제법 많은 거 같았다. 그런데 정작 남의 눈과 간섭이 정말 싫어서 이민 온 경우도 적잖은 비중을 차지했다.





"캐나다라는 좋은 곳을 두고 왜 굳이 다시 왔어요?"



"뭐, 한국도 살기 괜찮죠. 안 그런가요?"



"에이, 그래도 캐나다가 훨씬 낫죠."



"캐나다 가보셨어요?"



"아니요. 그래도 자연환경도 좋고, 사람들도 여유 있고... 이래저래 다 괜찮을 거 같은데요?"



내가 한국으로 다시 왔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물론 캐나다는 장점이 많은 나라이긴 하다.



개개인의 삶이 우선시되고 보장되는 사회 시스템과 어느 정도 신뢰성 있는 교육제도, 그나마 상대적으로 덜 한 정치적, 사회적 갈등(지금은 잘 모르겠다), 남의 시선이 별로 신경 안 쓰이는 등, 괜찮은 점이 많다.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풍족하고 아무런 갈등 없이 잘 사는 곳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자주 듣는 말들도 있다.



"어휴, 캐나다는 겨울이 너무 긴 거 같아요. 추워서 별로예요."


"무슨 서류 하나 떼려면 너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비싸고.."


"거기 병원은 무료지만 엄청 기다려야 한다면서요? 무슨 MRI촬영하는데 몇 달이 걸린다고... 또 치과는 어마무시하게 비싸다고..."


"아직도 전화 잘 안 터지는 곳도 많다면서요? 답답하겠다."


"주택에 살면 성가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던데... 맨날 수리하고, 잔디 깎고, 눈 치우고..."



물론 일부는 좀 과장된 면도 있고 정확한 실체를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유독 한국사람만 한국을 너무 혹독한 기준을 두고 평가하는 거 같다. 막상 한국에서 누리던 혜택을 뒤로하고 미국이나, 캐나다 생활을 해보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아메리칸드림(캐나디안 드림) 같은 말이 한국에서는 무의미하다고 봐야 할 거 같다.

(물론, 한국의 교육제도에 관해서는 아직도 큰 물음표가 떠있는 건 맞다.)





이민 사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결국 '가족'으로 귀결된다고 본다.



교육 때문이라면 자녀를 위해서이고, 사회적 불평등과 기득권에 대한 권위적 행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 또한 나와 가족을 위한 것이고, 열심히 노력하면 그 거에 조금 더 맞게 대우받을 수 있는 환경도 결국 나와 가족을 위한 것이다.



어디에 살 든, 나와 가족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게 가장 근본적으로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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