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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딜레마 (2)

by 이삼오

"야! 너 완전히 망했네! 하필 걸려도... 국어(영어)에 미스터 에이블이 걸리냐? 진짜 재수 없는 놈이네... 운 좋으면 C 학점이네..."



고등학교 수험 신청 기간에 친구가 내 임시 시간표를 보고 한 말이다.



캐나다는 대학교처럼 고등학교도 학점제라서 수강 신청 기간에는 사뭇 긴장감이 형성된다.



보통 필수 과목/선택 과목 60%/40% 비율인데(지금은 잘 모르겠다) 캐나다는 국어 점수가 매우 중요하다.



수능(미국으로 치면 SAT)이 따로 없기에, 내신 성적이 중요하므로, 대학의 교수님들처럼 선생님이 누가 되느냐가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이 말은 즉슨, 대학처럼 선생님의 주관적인 부분이 점수에 많이 적용이 된다는 말이다.



수학이나 과학 같은 이공계열은 영향이 덜 하겠지만 그 외엔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학생들은 진즉에 선생님들의 성향을 파악해야 하는 눈치 게임에 익숙해져야 된다.



수강 신청은, 정말이지 고난도의 전략을 활용할 때도 있다. 어떻게든 점수 잘 안 주는 선생님을 피해 다니려고 하다가 낭패를 볼 때도 있다. 지뢰를 피하려다가 핵폭탄을 맞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표를 너무 자주 바꿔도 진로 선생님과 행정실에서 엄청난(?) 눈치를 주기에 적정한 선에서 시간표를 픽스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모두가 100% 만족할 만한 시간표를 받기는 어렵기 때문에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한다.



필수과목 중 F학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졸업을 못한다.



공부를 아예 안 해도, 수업 때 잠만 자도 학교에만 나오면 졸업시켜 주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사정이다.



필수과목에 F를 받은 경우 여름방학 때 '썸머스쿨'에 등록할 수 있다. 한 달간 한 과목만 집중적으로 수업을 받으면서 만회할 기회가 주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다음 학기에 다시 수강을 해야만 한다.



졸업할 때 까지도 학점 이수를 못한다면? 계속 다녀야 한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 당시에 만 21세까지 가능했고 이후 에는 야간학교를 가든지 검정고시를 치든지 해야 한다.





대부분 학생들은 고1쯤부터 진로를 정한다. 본인이 대학에서 전공하고자 하는 것에 맞춰 과목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도 전공에 따라 고등학교 때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들을 알려준다.



학생들이 대학을 정하는 기준은 학교의 네임 밸류보다는 무엇을 전공할 것인가가 영향을 많이 미친다.



합격 기준은 국어(영어) 점수, 전체 평균 점수, 해당 전공에 관련한 과목 점수, (경우에 따라) 면접, 논술, 추천서 등을 합산하여 충족 시 합격이다.





어떤 학교는 일찍 시작해서 일찍 마치고, 어떤 학교는 늦게 시작해서 늦게 마치기도 하지만 보통 9시에 시작해서 3시쯤 마치게 된다. 하루에 4교시, 점심시간을 포함하면 딱 맞아떨어지는 시간이다.



고2, 고3이 되면 시간표에 따라서 공강이 생기기도 한다. 필수과목을 괜찮은 성적으로 이수했고 졸업하는 데 있어서 무리가 없어 보이면 공강을 허락해 준다.



학교가 이렇게 일찍 마치면 무엇을 하느냐? 숙제도 하고, 따로 공부를 하기도 하고, 알바를 가기도 하고, 그 외 시간은 자유 시간이다. 운동을 하든, 악기를 연주 하든, 책을 읽든, TV를 보든, 뭘 하든지 간에 학생들 알아서 시간을 활용한다.



이렇게 자유로우면 마냥 좋은 거 아니냐고?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만약 학생이 자기 관리가 어느 정도 된다면 시간을 알차게 쓸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하는 거 없이 놀기밖에 더 하겠는가.



놀기만 하다가 시험이나 프로젝트 마감일이 다가올 때쯤 미친 듯이 벼락치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먹히는 전략이 아니다. 시스템 상 그렇다.



과목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점수 배분이 세분화되어 있다.



백분율로 했을 때, 예를 들어 역사 과목이 중간, 기말고사 30%, 쪽지 시험 10%, 수행 평가 20%, 숙제/과제 15%, 출석 5%, 수업 참여도 10%, 수업 태도 10%.



이런 식이면 한국에서 처럼 벼락치기해서 점수를 딸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한국 같으면 점수나 시험 문제 이슈로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칠 때도 있다고 하는데 캐나다에서는 거의(아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아주 드물 게, 문화 차이나 존중 따위는 저 멀리 치워 두고 학교 측에 항의하는 한국 부모도 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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