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학교가 학교 같지 않고 놀러 가는 거 같다더라. 매일매일이 어린이날 같다던데?"
"선생님이 학생한테 함부로 못 한다던데? 학생을 못 때리는 건 물론이고 막말도 못한데."
"숙제도 별로 없다던데... 아! 방학 숙제가 없데. 그리고 토요일에 학교 안 간데!"
이민 가기 전, 사촌 형, 누나들, 고모들로부터 들은 얘기들이다. 이 보다 훨씬 더 많았던 거 같지만 딱히 기억은 안 난다.
물론 어떤 건 맞는 말이고 어떤 건 아니다.
솔직히 두 나라의 학교, 교육 환경을 굳이 비교하자면, 비교 자체가 힘든 거 같다.
그냥 많이 다르다.
나는 초등학교라고 불리기 이전인 '국민학교'에 더 익숙하다. 급식이 없었으며 오전반, 오후반도 경험해 봤다. 한 반에 50명은 거뜬히 넘었다. 겨울엔 장작난로를 때는 게 익숙했고 토요일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학급회의를 했다.
3학년 때 악마 같던, 마귀할멈 같은 선생이 걸려서 거의 매일 같이 맞았던 기억이 제일 선명했다. (이 인간은 공부 아주 잘하는 몇 아이를 제외하곤 가릴 거 없이 공평하게, 악랄하게 쥐어 패고 다녔다. 완전 또라이+싸이코였다)
왼손으로 글씨 쓴다고 두드려 패, 누구한테 일방적으로 맞으면 병신 같이 맞고만 있었다고 두드려 패, 우유 당번이 실수로 우유 하나 떨어트렸다고 두드려 패, 일요일에 오락실 갔었다고 두드려 패, 운동장에 뒹굴고 있던 깡통 찼다고 두드려 패...
그래도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난 적도 있었지만, 나의 한국에서의 4년 남짓한 학교 생활은 그리 유쾌한 기억은 없었다. 잦은 이사로 4년간, 학교만 네 군데를 다녔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그러다가 캐나다 학교에 말 못 하는 벙어리 신세가 되어서 갔으니... 비교고 뭐고 충격 그 자체였다. 아니, 충격이라기보다 신선함이 맞겠다.
우선, 반에 학생수가 현저히 적었다. 스무 명 정도 됐으려나?
대부분 발표하는 것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선생님이 누구를 지목하기보다 알아서 손들고 얘기를 헸다. 주로 자기 의견이다. 선생님이 수업을 이끌지만 말의 절반 이상은 학생들 몫이다. 수학을 제외하면 선생님은 주로 질문을 많이 던져 주는 식이다.
한국에선 발표라 해봐야 선생님이 질문한 것에 맞는 답을 이야기하는 게 전부였다. 나는 도통 적응이 안 됐다. (물론, 영어가 되질 않았으니...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자 듣는 건 대충 가능했다)
솔직히 이런 방식의 수업이 처음엔 너무 불편했다. 무엇이든 정해진 답이 앞에 놓여있어야 대답하는 게 익숙했던 방식과는 많이 동 떨어져 있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라고? 내 생각이 곧 정답이 될 수 있다는 건가? 어린 나이의 나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스승의 말과 가르침을 절대적으로 믿고 배우고, 따르고 했던 우리의 교육과는 확연히 달랐다. 의견이 맞지 않으면 때론 충돌할 때도 있고, 따지고 들 때도 있었으니 한국 같았으면 버릇없다고 선생님이 한 대 쥐어박았을 텐데...
이런 방식의 수업 분위기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학교가 제일 좋았던 점은 실내화를 따로 챙기지 않는 거였다. 그냥 신던 신발 그대로 학교 어디든 돌아다녔으니, 그저 편했다.
점심시간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각자 교실에서 싸 온 도시락을 먹는다. 한국에서 처럼 친한 친구끼리 앉아서 먹는 경우도 있고 그냥 혼자 먹기도 했다.
다문화 국가이다 보니 점심 메뉴도 제각각이었다. 간단한 샌드위치를 비롯해 파스타, 볶음밥 아직도 뭔지 모를 음식들이 많았다.
점심 때는 항상 교역의 장이 열렸다. 메인 메뉴를 제외한 주스, 캔디 외 다른 간식거리들을 서로 흥정해서 교환하는 식이다. 어떤 아이는 자기 치즈를 초콜릿과 교환하기도 하고 또 어떤 아이는 자기 푸딩을 소시지와 바꾸기도 했다.
점심에 어떠한 음식을 가져와도 상관없지만 꼭 가져오면 안 되는 것들이 있었다.
땅콩버터 및 견과류였다.
한국에서는 견과류 알레르기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선 꼭 반에 한 명씩은 견과류 알레르기가 심한 아이가 있었다.
점심을 어느 정도 먹은 후에는 모든 학생이 교실 밖으로 나가서 놀든 밖에서 책을 읽든 한다.
학교 벽 활용을 잘하는 편이다. 벽에는 농구 골대도 설치되어 있었고 또 벽 한 편에는 과녁이 그려져 있고, 또 다른 한 편에는 작은 골대도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학교 건물 일층 창문은 두꺼운 이 중 철망 같은 걸로 유리를 보호했다. 공을 아무리 세게 던져도 공은 철망에 튕겨져 나갔다.
잔디에 누워서 낮잠을 한숨 자는 아이도 있고 그냥 러닝 트랙을 달리는 아이도 있었다. 그냥 노는 것만 봐서는 한국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하교 시간은 한국과 다르게 모든 요일이 항상 같은 시간, 3시 30분에 마쳤다. 집이 가까운 아이들은 그냥 걸어가고 먼 친구들은 스쿨버스를 이용했다. 한 겨울에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할 때쯤이면 벌써 밖은 어둑어둑해져 있다.
초등학교는 일반적으로 1학년부터 8학년 까지가 주를 이루었다. 경우에 따라 6학년까지 한 다음 7, 8학년 중등학교가 따로 있기도 했지만 매우 드물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다음 바로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이다.
고등학교는 9학년에서 12학년, 한국으로 치면 중3부터 고3까지다.
*내가 살았던 토론토(온타리오주)는 주 내에 있는 대학을 진학하려면 13학년인 OAC (Ontario Academic Credit) 과정을 마쳐야 했다. 이 제도는 내가 졸업한 이듬해에 폐지되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