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 되는 영어로) 성적표를 연신 흔들어 대며 학교 교무실을 떠들썩하게 어떤 한국 아주머니가 난리를 친다.
"우리 딸 성적이 이렇게 나왔을 리가 없다고요! 누구든 저한테 해명해줘 봐요."
교무실에 있던 직원들은 황당한 표정으로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선생님들의 교실이 보통 자신의 사무실이자 연구실이기에 교무실은 행정업무 혹은 교감, 교장실로 연결되어 있는 창구이다.
"엄마! 제발. 그냥 가자!"
딸은 울기 일보 직전이다. 본인의 성적표의 나와있는 성적은 누구의 실수와 잘못이 아닌, 학생의 결과물이 숫자와 각 과목 선생님의 한 줄 코멘트로 쓰여 있을 뿐이다.
"성적이 마음에 안 드시는 거 같은데... 황당하군요. 계속 소란을 피우신다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경찰? 부를 테면 불러봐! 내 딸한테 이런 사기 점수를 줘놓고 뭐가 어째고 저째?!"
"아!! 엄마, 제발!"
딸은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평소 교무실 직원과 친했던 딸은 행정 선생님이 달래줘서 진정이 됐고 어머니도 어찌어찌하여 더 이상 소란을 멈추고 학교를 나오게 되었다.
"와... 어느 학교에서 그랬데?"
"왜, 거기 있잖아. 영재 형이 다니는 학교."
"아... 거기."
다른 학교에 있었던 해프닝을 친구에게 전해 들었다. 한인과 관련된 소문은 쉽게 퍼진다.
한국에서,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특히 학력으로 알아주는 사립학교일 경우 성적이나 시험 문제 관련해서 항의 전화든 학부모가 직접 찾아와 항의하는 일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참으로 안타깝다. 과거에 학교에서 불공정함으로 불신에 가득 찬 학교를 경험한 이들이 부모가 되어 그럴 수도 있겠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믿음보다 의심의 눈을 항상 반쯤 뜨고 있어야 하니 얼마나 피곤한 일일까.
많은 학부모가 자식에 대한 객관화가 잘 안 되는 건 맞지만 유독 한국 부모들이 그런 거 같다.
내가 두 번째로 다녔던 고등학교에는 한국 학생들이 많았다.
부류도 다양했다. 나처럼 어릴 때 이민 온 교포부터 하여, 캐나다에서 태어난 2세, 아기 때 온 거의 2세(우린 이들을 1.8세라고 불렀다), 여권 스탬프가 아직 마르지도 않은, 갓 이민 온 학생, 유학생 등 다양했다.
특히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된 학생들은 확연하게 나뉘었다.
공부를 하는 부류, 아예 놔버린 부류.
공부를 성실히 하는 쪽은 한국에서도 열심히 하던 친구들이다. 반면 공부를 놔버린 경우는 달랐다. 원래 한국에서부터 그냥 공부랑 담을 쌓았거나 아니면 한국에서는 엄청 잘했는데 캐나다에 온 이후로 정신줄을 놔버린 경우다.
"아이고, 삼오야. 네가 한 살 어린 동생이지만, 우리 영희랑 친하니까 말 좀 잘해줘. 마음 좀 잡고 공부하라고. 한국에 있을 땐 맨날 전교권이던 애가 여기 오니까 갈수록 정신을 못 차리네..."
내가 뭐라도 되나, 내 말을 듣겠나.
"한국에 있을 땐 그냥 공부만 해야 하는 분위기였지. 선생님들도, 학원에서도, 집에서도 그냥 이래라 저래라가 익숙했어. 막상 여기 오니까 누가 뭐라 하지도 않고 다들 어디 박혀서 공부만 하는 거 같지도 않고, 학원도 없고, 영어는 안 되고... 그동안 답답하기만 했는데 이런 게 자유인가 싶기도 하고... 모든 게 좀 혼란스럽네."
학교 분위기는 자유롭다. 그러나 자유와 그냥 손 놓고 노는 거랑은 다른 문제다.
10학년 정도까지는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공부 좀 하라고 잔소리를 어느 정도 들었던 거 같다. 그러나 11학년쯤 되면 수업에 오든 말든, 공부를 하든 안 하든, 과제를 하든 안 하든, 시험을 망치든 말든 모든 책임은 학생에게 있는 것이다.
놀 거면 실컷 놀아라, 다만 나중에 성적 가지고 누구를 탓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봐주는 거 없다.
냉정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책임은 본인에게 있는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 정답은 없는 거 같기도 하다.
그 나라, 문화의 사정에 맞게 그럭저럭 잘 돌아가고 있다고 하면 그 또한 정답이겠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머리에 영어 단어와 온갖 공식들로만 가득 채워줄 게 아니라 학생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