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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디안 드림 (1)

by 이삼오

"캐나다에 오신 지 20년이요?! 와... 진짜 오래되셨네요..."



"허허. 여기 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됐네. 워낙 바쁘게 살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아저씨 친구들 중엔 더 오래된 분들도 계셔."



"그럼 70년대 초반, 60년대 후반쯤에 오신 건데... 너무 옛날인 거 같아요. 그런데, 캐나다에는 어떻게 오게 되신 거예요?"



"한국에선 대부분 가난하고 먹고살기 어려워서 왔지. 환경도 너무 안 좋았고. 항상 불안하게 사는 삶이었지. 마침 캐나다는 경기 호황이었고 알음알음해서 여기까지 왔지."



"처음에 안 힘드셨어요?"



"안 힘들긴, 허허. 말도 안 통하고, 겨울은 길고, 음식도 입에 안 맞고... 그래도 열심히 살면 돈도 벌고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지. 그렇게 하다 보니 지금 이런 집에도 살고, 애들도 잘 컸고... 그래도 이민오길 잘했다 싶지."



"저도... 잘 살 수 있을까요?"



"하하하. 너 몇 살이라고 했지? 열 살? 이제 걸음마를 겨우 뗀 앤 데... 걱정이 많구나. 당연히 잘 살 수 있지. 영어도 금방 늘 거야. 어느 순간 들리더라고."




이민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같은 한인 성당에 다니시는 한 어른댁에 초대를 받았다.



어찌어찌하다가 아저씨와 단 둘이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마치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었다. 원래 어려서부터 어른들과 이야기를 잘했던 나였기에 어색함은 없었고 궁금했던 이것저것을 여쭈었다.



60년대, 70년대에 이민을 오신 분들은, 저마다 사연이 다 있고 다르지만, 대부분 고국에서의 삶이 고달파서 오신 분들이었다. 나라가 역동적으로 변하고 정치적으로도 많이 혼란스러웠던 그때 친구도 가족도 없는 땅에 과감하게 발을 내디딘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은 캐나다 이민 1세대라고 보면 되는데 이 분들은 대부분 처음엔 막일을 하셨다고 했다. 말이 잘 안 통해도 어딜 가나 일손이 필요한 곳들이 있었으니 성실하기만 하면 굶을 일도 없고 돈도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한 두 푼 모으고 절약하며, 거의 수도승의 삶을 살듯이 몇 년이 흐르면 본인 업종을 갖게 된다. 모아둔 돈에 은행에서 빌린 돈을 합쳐 전재산을 가게 장만에 올인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업종은 편의점 (동네 슈퍼에 가깝다), 세탁소, 샌드위치 숍, 옷 가게 들이다.



내 기억으로도 90년대 중 후반 까지는 어떤 편의점을 가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던 것 같다. 세탁소에 가도 한국말이 통했고 조금 낙후된 동네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한국말로 주문하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분들의 표정은 피곤해 보였지만 생기가 돌았던 걸로 기억한다. 힘들지만 자리를 어느 정도 잡았고 하루하루가 희망차있는 앞을 바라볼 수 있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민 20년 차 이상 어른들의 집에 방문하면 전형적인 캐나다 중산층 느낌이 강했다.



차고지가 두 개 딸린 2층짜리 주택 앞에는 미니밴 한 대와 일반 세단이 한 대씩 주차가 되어있다. 뒷 뜰에는 바비큐 그릴이 있고 강아지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지하실에는 커다란 스테레오와 티브이가 있고 간혹 당구대나 탁구대가 있는 집도 있었다.



초대받은 집에서 한국음식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곳이 한국사람이 사는 집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긴, 태극기나 한국적인 소품을 장식해 놓지 않는 이상 어려울 것 같긴 하다. 간혹 백자, 청자로 장식을 한 집도 있었다.



이 들은 이민 온 지 얼마 안 된 가족을 초대하면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 이민 초기의 무용담이다. 말이 안 통해서 난감했던 일, 인종차별로 어려웠던 일, 가게에 강도가 들어서 봉변당할 뻔한 일, 그래도 끝에는 한국이 그립다는 말이 꼭 들어갔다.






초창기 이민 세대들의 자녀는 대부분 아기 때나 아주 어릴 때 부모의 손을 잡고 왔거나, 아니면 캐나다에서 태어난 2세들이다. 외모도 한국인, 집에서 먹는 음식도 주로 한식이지만 사고방식은 현지에 더 맞춰져 있다.



뭐, 당연한 얘기다. 이 들의 사고방식이 때로는 의도치 않게 갈등을 빚을 때도 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온 1세대들과 간혹 부딪칠 때가 있다. 내가 봐온 1세대 형들, 누나들(어쩌면 나도 포함)은 한국의 똥군기에 익숙한 세대이다. 생긴 건 한국사람이 말과 행동은 완전 캐나다 현지인의 습성을 보이는 2세대들이 못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런 수직적이고 통제적인 한국의 쓸데없는 문화가 싫어서 이민을 선택한 이 들도 있을 텐데 애먼 나라에 와서 되지도 않는 대장질을 하려고 하니 갈등이 안 생길 수 있으랴. 굳이 따지자면 2세들도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땅에서 현지인의 사고 대로 살고 있는 것뿐인데 뭔가 큰 잘못인 것 마냥 프레임을 씌워서 버릇없다, 예의 없다를 주장하는 1세대들이 못 마땅 한 건 마찬가지다.



물론 2세 중에서도 극히 한국적인 이 들도 있다. 주로 부모님이 매우 엄격하셔서 어려서부터 한국어 공부와 예의범절을 배워온 사람들이다. 실제로 한국어로 말하고, 읽고, 쓰고를 굉장히 잘하는 이 들도 적지 않게 있다.





이민 1세대들의 이민은 가난하고, 먹고살기가 막막한 대한민국에서의 삶을 벗어나고자 과감한 걸 넘어서 어찌 보면 무모했다고도 볼 수 있다.



다음 이민 세대들은, 세대가 변한 만큼 이민의 성격이 조금(많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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