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반도체 전쟁에서 승자가 될 것인가?
반도체는 수십 년간 과학자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이례적인 물질이다. 반도체는 구리처럼 전기를 전도하거나, 유리처럼 전기를 차단하지 않는다. 한동안 이 물질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과학자들은 반도체를 일종의 스위치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위치 역할로 쓰인 첫 번째 경우는 트랜지스터였다. 트랜지스터는 1947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월터 브래튼Walter Brattain과 존바딘John Bardeen이 고안했는데, 이들은 벨 연구소의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 밑에서 일하는 물리학자들이었다. 최초의 트랜지스터는 오늘날 다시 보면 납땜 실험에 실패한 흉물처럼 생겼다(복제품이 워싱턴 DC 스미스소미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아크릴 수지인 퍼스펙스Perspex 덩어리에 매달린 형태인데, 뒤엉킨 와이어들을 쐐기 모양의 플라스틱 조각에 연결한 뒤 지저분한 검은 금속(게르마늄) 위에 모두 얹었다.
최초의 솔리드 스테이트 스위치 solid state switch는 혁명이었다. 각각 0 혹은 1이라는 2진 코드를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스위치들을 잘 결합하면 자그마한 실리콘 조각으로 컴퓨터를 만들 수 있었다. 이때 실리콘 조각은 둥그런 웨이퍼에서 잘라냈기에chipped 'chip'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최초의 혁신은 1959년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에서 일하던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에 의해 실리콘에 새겨졌다. 스위치 그 자체부터 집적회로까지 비약적 혁신이 일어났으며, 이는 컴퓨터 시대의 물리적 기반을 이루었다.
스위치 혁명
더 나은 "스위치 switch"가 나온다면 그것은 반도체라고 하는 물질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윌리엄 쇼클리 William Shockley가 오래도록 품고 있던 생각이었다." 전 세계를 누비는 광산 엔지니어의 아들로 태어난 쇼클리는 런던 태생이었으나 캘리포니아의 팰로앨토라는 따분한 마을에서 과일나무에 둘러싸인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외동이었던 쇼클리는 자기 주변의 그 누구보다 본인이 뛰어나다는 확신을 품었고, 다른 모든 사람에게 그걸 알리고자 했다. 남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캘리포니아공과대학에 진학한 그는 MIT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후과정을 마친 후 당시 세계의 과학과 공학을 선도하던 곳, 뉴저지의 연구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모든 동료가 쇼클리를 불쾌하게 여겼지만 쇼클리가 뛰어난 이론물리학자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직관력이 너무도 정확해서 쇼클리의 동료 중 한 명은 전자가 금속을 가로지르거나 원자가 결합할 때 그가 실제로 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쇼클리의 전문 분야인 반도체는 특별한 종류의 물질이었다. 대부분의 물질은 (마치 구리선처럼) 전류가 자유롭게 흐르거나, (마치 유리처럼) 전류를 차단한다. 반도체는 다르다. 실리콘이나 게르마늄 같은 반도체는 제3의 유형으로 유리처럼 그 어떤 전류도 흐르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어떤 물질이 추가되면 전기장electric field을 띠고 전류가 흐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리콘이나 게르마늄 같은 반도체에 인이나 안티몬을 추가하면 음전류negativecurrent가 흐른다.
어떤 물질에 다른 물질을 마치 약물을 투입하듯 “도핑 dopping'하면 반도체가 된다는 사실은 새로운 유형의 장치를 만들 수 있는 기회로 보였다. 전기 흐름을 발생시키고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실리콘이나 게르마늄 같은 반도체성 물질에서 전자의 흐름을 제어하는 것은 여전히 머나먼 꿈이었다. 반도체의 전기적 성질이 규명되지 않은 신비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고의 두뇌가 모두 모인 벨연구소에서도 1940년대 말까지 그 누구도 반도체성 물질이 왜 이토록 알쏭달쏭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1945년, 쇼클리는 반도체 현상을 최초로 이론화하면서 “고체상태 밸브solid state valve "'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연구 노트에는 실리콘 조각에 90볼트 배터리가 연결된 모습이 스케치로 남아 있다. 쇼클리의 가설에 따르면 실리콘 같은 반도체 물질을 전기장이 있는 곳에 두면, 내부에 저장되어 있는 "자유 전자"를 반도체의 경계선 인근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전기장에 의해 충분히 많은 전자가 유도되면 반도체의 경계선은 마치 언제나 다수의 자유 전자를 지니고 있는 금속처럼 작용한다. 도체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전에는 전혀 전류를 띠고 있지 않은 물질에 전기가 통하도록 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쇼클리는 곧 실리콘 조각에 전기장을 적용하고 제거하는 장치를 만들어 보았다. 그럼으로써 마치 밸브를 열고 닫듯이 실리콘에 전자가 흐르거나 멈추게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실험을 통해 가시적 성과를 얻을 수는 없었다. 쇼클리는 이렇게 기록했다. "측정값은 없다. 퍽이상한 일." 실제로는 1940년대의 장비 수준이 너무도 투박한 나머지 실리콘 위 전류 흐름을 감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2년 후, 벨연구소에서 일하는 쇼클리의 동료 두 사람이 다른 유형의 소자를 대상으로 유사한 실험에 착수했다. 거만하고 불쾌한 성격이었던 쇼클리와 달리 그의 동료들은 그렇지 않았다. 워싱턴주 교외 젖소 목장 출신의 명민한 실험 물리학자 월터 브래튼 Walter Brattain과, 프린스턴대학교에서 훈련된 과학자로 훗날 노벨물리학상 2회 수상이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운 존 바딘John Bardeen은 겸손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갖춘 인물들이었다. 쇼클리의 이론에 영감을 받아 브래튼과 바딘은 금으로 된 두 개의 필라멘트를 준비하고, 그 각각에 전선을 이어 하나는 전력원에, 다른 하나는 어떤 금속 조각에 붙여서 그 필라멘트를 게르마늄 블록과 1밀리미터도 안 되는 거리만큼 떨어져 있도록 설치했다. 1947년 12월 16일 오후 벨연구소 본부, 그 장치에 전원을 올린 바딘과 브래튼은 게르마늄에 전류가 흐르도록" 통제할 수 있었다. 반도체 물질에 대한 쇼클리의 이론이 올바른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벨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던 AT&T는 전화 회사였지 컴퓨터 회사가 아니었으므로, 훗날 "트랜지스터"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되는 그 소자의 용도를 오늘날의 우리와는 다르게 파악했다. 광대한 전화선의 네트워크 속에서 신호를 증폭시킬 수 있는 기능에 우선 주목했던 것이다. 트랜지스터는 전류를 증폭시킬 수 있으므로 보청기나 라디오 같은 장치를 만드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이 곧 밝혀졌다. 이는 마찬가지로 신호 증폭에 쓰이고 있지만 훨씬 신뢰도가 낮은 진공관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었다. 벨연구소는 즉각 이 새로운 소자의 특허 출원에 나섰다.
동료들이 실험을 통해 자신의 이론을 검증했다는 것을 알게 된 쇼클리는 격분하여, 동료들을 앞지르는 성과를 내야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그는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시카고의 한 호텔에 방을 잡고 2주간 틀어박힌 채 반도체 물리학에 대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다른 형태의 트랜지스터 모델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1948년 1월, 쇼클리는 세 덩어리의 반도체성 물질로 이루어진 새로운 형태의 트랜지스터 개념을 창안해 냈다. 바깥쪽의 두 덩어리는 전자가 남는 물질이어야 하고, 가운데 끼어 있는 덩어리는 전자가 부족한 물질이어야 한다. 가운데 끼어있는 층에 작은 전류가 가해진다면 전체 소자에는 훨씬 큰 전류가 흐르게 된다. 이렇듯 작은 전류를 큰 전류로 변환하는 것은 브래튼과 바딘이 제시한 트랜지스터를 통해 이미 구현된 바와 동일했다. 하지만 쇼클리는 본인이 기존에 이론화했던 "고체 상태 밸브"의 흐름을 따라 트랜지스터의 다른 용도를 파악했다. 이 트랜지스터는 가운데 낀 부분에 작은 전류를 주입함으로써 소자 전체의 큰 전류를 끄고 켤 수 있었던 것이다. 켰다 껐다 켰다 껐다. 쇼클리는 반도체로 스위치를 설계해 냈다.”
벨연구소는 1948년 기자회견을 통해 과학자들이 트랜지스터를 발명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전선이 연결된 게르마늄 덩어리가 왜 특별 발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뉴욕타임스》는 그 소식을 46면에 처박아 버렸다. <타임> 지는 그나마 좀 나아서 트랜지스터의 발명에 "작은 뇌세포”라는 제목을 붙여 보도했다. 엄청나게 작은 크기의 트랜지스터가 수천, 수백만, 수십억 개씩 모여서 인간 두뇌가 수행하던 계산 업무를 대체하는" 미래가 머지않아 닥쳐올 것이라는 점만큼은, 본인의 중요성을 결코 과소평가하는 일이 없었던 쇼클리마저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면직물 직조 혁명을 일으킨 존 케이John Kay의 발명품 플라잉셔틀Aying shuttle은 왜 수천 년 전에는 만들어지지 못하고 1733년에 탄생했을까? 역사가 앤턴 하우스 Anton Howes는 그에 대해 본질적인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종종 아이디어가 실현되려면 수십년, 혹은 수 세기에 걸친 물질적 진보가 필요하다. 에이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와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는 트랜지스터의 발명보다 한 세기 전에 컴퓨터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헬리콥터 스케치처럼, 컴퓨터라는 아이디어도 물질이 따라잡기까지 물리적 현실이 될 수 없었다. 스위치 역할을 하는 유리 진공관을 가진 컴퓨터들이 1940년대부터 존재했지만, 솔리드 스테이트 스위치는 과학자들의 오랜 염원이었다. 훨씬 효율적이고, 훨씬 믿을만하고, 훨씬 작고, 스위치를 통과하여 조용히 흐르는 전자들을 제외하고는 움직이는 부품들도 없는 트랜지스터는 현대라는 시대를 탄생시킨 물질적 진보였다. 최신 스마트폰과 기기들, 최신 자동차와 냉장고는 모두 작고 가느다란 실리콘 조각에 의존한다. 이 실리콘 조각은 다양한 물질과 융합하고, 미세한 트랜지스터 세트로 식각되어 있다."
1947년에 나온 최초의 기기는 어린아이의 손바닥만 한 크기였으나 핵심 부품인 트랜지스터 자체는 약 1센티미터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1971년 최초의 현대식 컴퓨터 칩인 인텔 4004가 나왔다. 1센티미터의 칩에 약 2,000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가 있었는데, 트랜지스터 하나하나가 적혈구 크기였다. 2020년대 초반, 스마트폰 프로세서에는 1제곱센티미터보다 더 작은 공간에 약 120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갔다.
1960년대 인텔의 공동 창업자인 고든 무어 Gordon Moore는 집적회로의 성능이 일정한 속도로 두 배씩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컴퓨터 칩의 이러한 집약적인 발전은 현대의 경이로움 중 하나이다. 트랜지스터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성능은 더 좋아진다. 더 빨리, 더 적은 전력으로 켰다 껐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랜지스터 하나하나가 결국은 전기 스위치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컴퓨터 칩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된다. 그중 가장 간단한 기능은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켰다 껐다 하는 스위치 역할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이 '파워' 실리콘 칩들에 둘러싸여 생활하고 있다. 헤어드라이어부터 진공청소기, 전화선까지 현대의 전자 제품에는 모두 반도체가 들어간다. 어디에나 있다. 스마트폰 속 반도체는 카메라 센서 기능을 하고 가족사진을 저장하는 등 다양한 쓰임이 있다. 그렇지만 가장 흥미진진한 용도는 각종 기기의 두뇌 역할을 할 때이다. 트랜지스터가 더 많이 들어갈수록 연산이 더 빨라지고 컴퓨터의 성능이 향상된다. 최신 반도체 칩은 이 책에 나오는 마침표 크기에 약 1500만 개의 트랜지스터를 장착하고 있다. 오늘날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들은 적혈구보다 1,000배 더 작고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도 작다. 코로나19바이러스 하나에 트랜지스터 4개가 들어갈 정도인데, 각각의 트랜지스터는 바이러스의 중심에서 내뻗은 막대기 모양의 덩굴손인 스파이크 단백질과 비슷한 크기이다.
유럽 최대의 실리콘 제조사 중 하나인 엘켐Elkem의 이사 호바르드모에 Havard Moe는 이렇게 말한다. "실리콘을 제조하기 시작한 지 100년이 지났지만, 화학반응 중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너무 복잡한 과정이거든요. 많은 화학 작용이 매우 강력한 전기장 내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습니다. 이를 수학적 모델로 정리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용광로에서 일어난 화학반응의 결과, 석영암에서 산소를 제거하여 용해된 실리콘이 용광로 바닥에 가라앉고 작은 주둥이를 통해 밑으로 빠져나온다. 석영, 석탄, 우드칩 등의 원료를 6톤 넣을 때마다 1톤의 실리콘메탈이 생긴다. 이러한 과정은 어째서 모래알이 반도체의 원료로 부적절한지 설명해준다. 모래알의 화학 성분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저 크기가 잘못일 뿐이다
전 세계에서 오직 소수의 학자만이 이러한 공급망의 복잡한 원리를 알고 있는데, 그중 독일 학자 라이너 하우스 RRiner Haus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들은 대형 용광로이고, 그 안에는 부글부글 끓는 이산화탄소 대류가 일어납니다. 만약 모래를 사용하면 필터를 통해 빠져나가기 때문에 용해될 수가 없겠죠. 그러므로 주먹 크기의 석영 덩어리가 필요한 "겁니다."
실리콘메탈이 향하는 다음 목적지는,
지멘스 공정Siemens process이라 불리는 작업이다. 순수 실리콘메탈을 아주 작은 조각으로 부순 뒤 완전히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공정이다. 실리콘메탈은 가루로 갈리고, 순수 염화수소와 혼합되어 진공 용기 안에서 섭씨 1,150도까지 가열된다. 공정이 끝나면 오래된 주전자 안의 전열선 같은 기다란 가지가 남는데, 이것은 물때가 아니라 초순수 실리콘이다.
이 공정에서는 원자들을 떼어내서 재구성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에너지 집약적인 활동이다. 과학자 바츨라프 스밀 Vaclav Smil에 따르면, 초순수 실리콘의 에너지 비용은 시멘트에 비해 3,000배, 철을 강철로 바꾸는 것에 비해 1,000배 더 많이 든다. 온전한 양은 더 적지만, 그래도 까다롭고 고비용에 빈번히 지저분하기까지 한 공정이다. 그 끝에 순도가 매우 높은 실리콘이 나온다. 지구상의 어떤 물질보다도 높은 순도를 자랑하는 이 실리콘이 바로 폴리실리콘이다. 증류된 정도에 따라서 다양한 등급의 실리콘을 얻을 수 있는데, 순도에 숫자 9가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명칭이 달라진다.
순도 99.999999퍼센트의 실리콘은 숫자 9가 여덟 개 들어가는데, 이는 다결정 태양광발전 등급의 폴리실리콘이다. 9가 아홉 개인 순도 99.9999999퍼센트의 실리콘은 단결정 태양광발전 등급의 폴리실리콘이다. 실제로 어마어마한 폴리실리콘이 태양광 패널로 쓰이는데 대다수가 중국에서 생산된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중국이 아직도 실리콘세계의 마지막 관문인 반도체 등급의 폴리실리콘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반도체 등급의 폴리실리콘은 순도가 99.999999999퍼센트에 달하는데 순수 실리콘 원자 1000억 개 중 불순물 원자가 딱 하나인 수준이다.
암벽을 폭파하여 바윗덩어리를 얻고, 용광로에서 녹이고, 흔적도 없이 깨부수고, 갈아서 용해하여 용액으로 만들고, 고온에서 증류하고, 산산조각이 난 뒤에도 우리의 실리콘은 아직도 반도체가 될 준비가 덜 되었다. 이제 겨우 여정의 중간 지점을 지났을 뿐이다.
순수한 실리콘 매트릭스에 불량 원자가 단 하나라도 들어가면 트랜지스터 내 전류에 이상이 생긴다. 시멘트의 장점은 제조과정에서 규정을 살짝 벗어나도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인데, 실리콘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실리콘 제조에서는 순도만큼이나 구조도 중요하다. 실리콘의 원자 구조가 완벽할수록 전자들은 그만큼 자유롭고 빠르게 그 안을 돌아다닌다. 결함, 이른바 '결정 입계grain boundary'가 클수록 전류는 방해를 받고 그리하여 반도체는 고장 나버린다. 계란이 뒤죽박죽 놓이지 않고 상자 안에 가지런히 포장된 모습을 상상해보라.
다음으로 가는 곳은 웨이퍼 공정이다.
신에츠信越는 일본의 세계적인 웨이퍼 제조사이다. 우리는 컬럼비아강의 강둑에서 21세기 미국 실리콘 산업의 진원지를 만난다. 컬럼비아강은 로키산맥부터 시작하여 태평양 방향으로 흐르는 도중에 수력발전 댐을 14개나 거느린 큰 강인데, 우리가 이 강의 강둑에 서게 된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폴리실리콘 웨이퍼로 탈바꿈하는 상당히 에너지 집약적인 과정 때문이다. 웨이퍼는 반도체 파운드리에 보내지기 전 갖춰져야 하는 순수 결정 조직이다.
이곳의 공기는 신선하지만, 실리콘은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먼지가 가득한 외부 세계와 작별을 고해야 했다. 이제 실리콘은 굉장히 순수한 상태이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방진 상태의 초청정 공장에 들어가서 보호 밀봉들 밑에서 안전하게 보관되다가 당신의 집 앞으로 배달된다.
신에츠 엔지니어들은 초크랄스키법Czochralski technique, 이른바 CZ법의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신에츠 미국 지사 SEH의 닐 위버Neil Weaver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줄여서 CZ라고 부릅니다. CZ의 전체 이름을 쓰려면 저도 철자를 찾아봐야 해요."
물질 세계에는 괴상하고 경이로운 제조 기술이 잔뜩 있는데, 초크랄스키법도 그중 하나이다. 폴리실리콘은 석영을 녹인 도가니로 들어가 섭씨 1,500도에서 가열된다. 이 과정에서 실리콘에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도가니도 매우 깨끗해야 한다. 연필 크기의 실리콘 막대기인 시드 크리스털seed crystal을 석영을 녹인 쇳물에 담갔다가 천천히 위로 잡아당기면서 가볍게 회전시킨다. 완벽한 고체 잉곳ingot 혹은 공 boule이 쇳물에서 나와 서서히 형태를 잡기 시작한다. *3)
초크랄스키법을 이해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솜사탕 장수가 막대기에 솜사탕을 묻혀가며 굴리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다.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로 우글거리는 공원이 아니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초크랄스키법은 아르곤 가스로 가득한 방 안에서 이루어진다. 잉곳이 천천히 돌면서 서서히 올라오다가 마침내 도가니 위로 완전히 나와서 모습을 드러낸다. 반짝거리며 길고 어두운색의 금속 원통이 몇 밀리미터 두께의실에 매달린 모습이다. 이렇게 얻은 실리콘 소시지를 검사하기 위해서 엑스선 회절법을 사용하면 굉장히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실리콘 원자들이 완벽한 결정 상태로 배열된 것이다.
중국은 실리콘메탈과 태양광 폴리실리콘의 글로벌 공급망을 상당 부분 장악한 상태다. 그러나 가장 최고급 실리콘 칩용 웨이퍼는 아직 만들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바커가 만드는 폴리실리콘은 원소 10억 개당 불순물이 1개 정도인데, 아직 그 수준의 제조는 어려운 것이다. 중국도 열심히 애쓰고 있지만 신에츠의 도가니에서 끄집어내는 완벽한 수준의 웨이퍼는 만들지 못한다. 이런 사정들때문에 이 성스러운 클린룸에 사람들의 출입이 통제되는 것이다. 산업스파이를 적극적으로 경계하지 않으면 그 기밀이 도난되어 신장 공장에서 복제될 수도 있다.
중국이 이 부문을 완벽히 지배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 문제는 모래, 그중에서도 특정한 유형의 모래와 연관이 있다. 신에츠의 도가니에서 완벽한 실리콘 잉곳을 꺼내어 얇게 썰어 웨이퍼를 만들려면 앞 공정에서 초순수 실리콘을 녹여야 한다. 이때 특정한 유형의 석영암이 필요한데,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세상에서 한 군데뿐이다.
이토록 중요한 물질을 전 세계 단 한 곳에서만 공급한다니 처음 접하는 사례일 것이다. 실리콘 웨이퍼를 만드는 도가니에 들어갈 정도로 순도가 높은 석영암을 얻으려면 스프루스파인 Spruce Pine을 찾아가야 한다. 스프루스파인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블루리지산맥의 급경사면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다. 이곳의 광산은 세계에서 유일한 고순도 석영 공급처인데, 기밀 유지에 극도로 신경 쓰는 벨기에 회사 시벨코Sibelco가 오랫동안 운영해왔다. 시벨코가 보안에 얼마나 철저한지 확인하겠다고 스프루스파인을 오래 돌아다닐 필요조차 없다. 광산은 물론이고, 웨이퍼 용광로에 들어갈 고순도 제품을 만들어내는 공장 시설까지 출입은 엄격히 통제된다.
시벨코의 거래 업체에서 일하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시벨코 본사에 들어가는 일은 미국 최고의 요새인 육군 기지 포트 녹스에 들어가는 수준과 비슷하다고 한다. 시벨코 본사는 약 7.6미터 높이의 담장과 가시철망으로 둘러싸인 단지인데, 보안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순찰도 빈번하다. 또 다른 내부자는 이렇게 말한다. "공장 시설을 보수하기 위해 외부 업체에서 출입할 때는 정비할 기계가 있는 곳까지 안내에 따라 두 눈을 가린 채 걷습니다. 마치 뮤지컬 영화 <윌리 웡카>의 한 장면 같죠."
우리의 실리콘은 갈리시아 지방의 산등성이에서 생애를 시작하여 고체-액체-고체증기-고체-액체-고체로 여러 차례 변신을 겪었다. 이제 실리콘은 금속 용기에 밀봉된 채 세상의 반대편으로 향한다. 지금 우리는 대만의 옛 수도인 타이난 교외에 와 있다. 도시의 북쪽으로 차를 달려 사무실 단지와 주택가를 지나면 사탕수수밭과 양배추밭이 나온다. 끈적이는 대기 탓인지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달려가는 느낌도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컴퓨터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우주의 중심이다.
들판 앞쪽으로 우뚝 솟은 초소가 보이고, 그 뒤에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건물들의 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정식 명칭은 대만남부과학단지이지만, 이곳에 위치한 회사의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건물 외관에 TSMC라는 이름이 붉은색으로 쓰여 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최첨단의 공장 Fab 18이다.
Fab 18이 이 지역에 들어선 것은 전적으로 모리스 창Morris Chang의 공로이다 그는 1987년에 TSMC를 세운 인물이다. TSMC는 다른 회사들을 위해 칩을 만드는 '파운드리 foundry'의 길을 가고자 했다. TSMC의 유일한 목표는 애플이나 테슬라, 그리고엔비디아NVIDIA나 퀄컴(Qualcomm 처럼 '팹리스Fabless' 칩 회사들이 구상한 프로세서를 제작해 주는 것이다. 여기서 팹Fab은 제조 공장fabricationplant의 줄임말이다. TSMC는 컴퓨터 업계 바깥의 사람들에게 생소할 수도 있는 이름이지만, 물리학의 경계를 넓히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고 중요한 회사 중 하나이다. 이런 우월한 지위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2021년부터 3년간 TSMC는 135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인데, 이는 선진국이 같은 기간 지출하는 것보다 더 큰 액수이며 미국의 제럴드 R. 포드급 항공 모함Gerald R. Ford class aircraft carrier 열 척을 살 수 있는 금액이기도 하다.
클린룸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이제 클린룸 아래로 가보자. '서브팹sub-fab'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층이 있는데 여기서는 웨이퍼를 세척하고 처리하는 데 사용된 화학 혼합물이 철벅거리면서 그 위에서 대기 중인 기계들로 올라간다. 화학물질이 없는 반도체 공장은 본질적으로 쓸모가 없다. 화학물질 없이는 트랜지스터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서브팹 아래에는 지구에서 가장 정교한 댐퍼damper가 있다. 그 말은 Fab 18 공장 건물이 대지에서 완전히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댐퍼는 진동을 줄여주는 구조물인데, 대만은 화산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므로 이러한 예방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이 보통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더라도 지표면의 움직임은 Fab 18 기계의 작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반도체 제조 공장은 공항이나 고속도로 근처에 짓지 않는다.
반도체 공장에는 사람 손이 있을 필요가 없다.
실리콘 웨이퍼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은 지저분한 손톱, 피부 조각, 오염된 숨결을 통해 불순물을 실어 나르는 운반자이다. 반도체 공장을 망하게 하고 싶다면 엉뚱한 원자 하나를 반입해서 수천 달러어치의 트랜지스터 속에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1950년대에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는 영화 카메라용 16밀리미터 중고 렌즈를 사서 처음으로 칩을 만들었다. 실리콘밸리 초창기의 반도체 설계자들은 글자 그대로 초기 설계를 트랜지스터 단위로 칠판 크기의 필름 위에 그린 뒤에 렌즈가 마법을 발휘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오늘날의 반도체 설계는 매우 복잡해서 인텔의 컴퓨터칩 하나를 가지고 이와 동일한 작업을 수행하려면 세계 최고 고층빌딩인 부르즈 할리파 정도의 높이에 1킬로미터 이상의 너비를 지닌 칠판이 있어야 한다. 초창기 반도체 설계자들이 설계도를 그려 넣었던 칠판 크기의 필름 역할을 하는 것이 포토마스크photomask인데, 이는 모래에서 나온 용융실리카로 만들어진다. 모래 위에 모래, 그 위에 또 모래인 셈이다."
어떻게 겨우 몇 센티미터 크기의 칩에다가 그런 복잡한 세부 사항을 레이저 빔으로 새길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기계를 이용하면 가능하다. 수억 달러가 나가는 TWINSCAN NXE:3600D가 그 주인공으로 한때 필립스 Philips 산하에 있던 회사인 네덜란드의 ASML이 만들었다. 이 기계가 하는 일이라곤 상자 주위에 광선을 쏘는 정도인데 왜 이리 고가란 말인가? TWINSCAN NXE:3600D가 쏘는 것은 평범한 광선이 아니고, 상자 역시 평범한 상자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TSMC가 만드는 초소형 트렌지스터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크기이므로 통상적 파장의 레이저와 렌즈로는 작업을 할 수 없다. 최상의 해상도를 얻으려면 가장 짧은 파장을 가진 광원이 필요한데, 이 경우에는 극자외선(xtreme ultraviolet, EUy을 의미한다
TWINSCAN NXE:3600D 내부의 진공 챔버 vacuum chamber에서 주석이 액체 상태가 될 때까지 녹인다. 용융주석은 이어지는 물살을 타고 챔버로 떨어진다.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중간 길목에서 주석방울들은 진동 레이저로 두 번 강타당한다. 진동 레이저는 독일 회사 트럼프의 제품인데, 금속을 관통할 정도로 강력한 기계다. 강력한 타격 덕분에 주석이 100만 도까지 가열되면 일종의 플라스마가 형성되면서 극자외선이 터져 나온다. 분자의 타격은 정확히 초당 5만 회씩 일어나는데, 너무 빨라서 주석 방울들의 흐름인지 레이저의 폭발인지 구별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극자외선의 흐름을 생성하기 위해서인데, 아직 진짜 역할은 나오지 않았다. 곧이어 극자외선은 대기 중인 웨이퍼를 향해 달려간다.
사실 극자외선을 광선이라고 부르는 일은 오해를 사기 쉽다. 극자외선은 약간 엑스선 같기도 하고, 일종의 방사선 같기도 하다. 엑스선과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렌즈를 포함하여 단단한 물질에 흡수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여기서 모래가 다시 깜짝 출연한다. ASML은 웨이퍼에 극자외선을 쏘기 위해 실리콘과 몰리브데넘으로 만든 특별한 거울인 브래그 반사경 Bragg reflector을 제작해달라고 자이스에 요청했다.
브래그 반사경을 만드는 법은 업계 비밀로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자이스의 설명에 따르면 이 거울은 50킬로그램의 실리콘 덩어리를 갈아서 만들어지는데, 로봇이 이온 빔ion beam을 쏘아서 거울 표면을 광내고 조정한다. 한 ASML 엔지니어는 브래그 반사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든 것 중에 가장 매끄러운 구조물일 겁니다." 거울을 미국 국토 크기로 확대하더라도 가장 많이 튀어나온 요철의 높이는 0.5밀리미터도 되지 않을 것이다. 다층 거울에 반사된 13.5나노미터 극자외선의 파장을 이용해 웨이퍼에 복잡한 설계 회로를 새긴다. 놀랍도록 완벽한 실리콘 웨이퍼가 기막히게 평평한 유리에 조각되는 이 모든 과정은 그야말로 SF소설에 나올 법한 일이지만, 판타지적 요소는 찾아볼 수 없다. 여기 실리콘 공급망의 중심에는 1차 세계대전 동안 영국의 고무를 얻기 위해 독일이 어쩔 수 없이 내주었던 쌍안경용 유리를 제조한 바로 그 회사 자이스가 있다.
현재 ASML은 세상에서 이런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회사이다. TSMC와 삼성전자는 이 기술을 활용하여 반도체 칩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단 두 곳이다. 반도체 업계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인텔은 지금은 적어도 한 세대 정도 뒤떨어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초창기부터 극자외선 연구에 박차를 가했으나 장비를 개발하여 반도체 칩을 대량생산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리고 중국이 있다. 중국의 반도체 제조사인 SMIC는 미국의 제재로 이 기계를 구매하지 못하고 있다.
이론상으로는 미국의 수출 금지 조치가 대만과 한국을 따라잡으려는 중국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반도체 업계의 고위 인사들에 따르면, 이들 사이의 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더욱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10년 전에 SMIC의 기술은 TSMC에 비하여 10~12년 정도 뒤떨어진 것으로 평가받았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금이 투입되었는데도 그만큼이나 격차가 있었다. 중국의 각 성은 몇 년 전만 해도 가장 큰 다리, 가장 빠른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경쟁했지만 지금은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열심이다. 문제는 이 공장들을 제대로 운영할 기술자가 없다는 것이다.
왜 중국은 실패했는데 대만은 성공했을까?
그 이유를 설명하는 흥미로운 관점이 하나 있다. 대만이 기가 막히게 타이밍을 잘 잡았다는것이다. 1960~1970년대 대만은 수많은 대졸자를 미국 대학으로 보냈고, 유학생들은 엔지니어링을 전공해서 인텔이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같은 회사에 취업했다. 이들은 미국에서 습득한 기술과 지식을 그대로 대만으로 가져왔다.
중국이 1990~2000년대에 개방 정책을 실시하며 대졸자들을 미국에 유학 보낼 무렵 미국의 기술 산업 판도는 크게 바뀌어 있었다. 이때 부상한 곳들은 마이크로소프트 Microsoft, 아마존 Amazon, 구글 같은 소프트웨어 회사였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중국으로 돌아와 하드웨어 산업을 구축하는 대신 미국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을 창업했다. 알리바바 Alibaba, 위챗WeChat의 모회사 텐센트Tencent, 틱톡Tik Tok의 모회사 바이트댄스ByteDance가 대표적이다.
강철 생산, 시멘트, 제조업, 유통업, 심지어 소셜미디어에서까지 중국은 다른 국가들을 따라잡거나 능가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반도체 분야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복잡도와 가치가 낮은 저급 실리콘 칩에서는 두각을 드러냈지만, 반도체 설계에서는 아직 선두를 뒤쫓는 처지다. 정부에서 엄청나게 많은 돈과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대만과 중국을 갈라놓는 것은 해협만이 아니라 기술의 심연이기도 하다. 이 격차가 양쪽의 관계를 더욱 긴장시킨다. 2019년 모리스 창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더는 평화롭지 않기 때문에 TSMC는 전략 지정학적 관점에서 극도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반도체 의존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오늘날 중국은 석유를 수입하는 것보다 컴퓨터 칩을 수입하는 데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실리콘 칩의 역사에 관한 책 《칩 워 Chip War》를 쓴 크리스 밀러 Chris Miller에 따르면, 2017년을 기준으로 중국의 반도체 수입 비용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수출로 번 총수익보다 더 컸다. 전 세계 항공기 산업의 무역 총액보다도 더 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국제 무역에서 반도체만큼 핵심 위치를 차지하는 제품은 없습니다.")
트랜지스터들이 급증하면서 평균적인 칩이 반도체 공장을 거쳐 가는 동안 증착되는 화학물질의 수도 증가했다. 오늘날 반도체는 대략 60개의 성분으로 구성되는데, 1990년대에는 15개, 1980년대에는 11개였던 것에 비하면 대폭 늘어났다. 디스플레이와 배터리를 갖춘 전형적인 스마트폰에는 성분이 70개까지도 들어가므로 스마트폰을 가리켜 역사상 가장 선진적인 화학 구현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결국 실리콘으로 귀결될 것이다. 차세대 컴퓨터인 퀀텀 프로세서 quantum processor가 여전히 실리콘 웨이퍼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절대 영도(섭씨 영하 273도) 직전까지 과냉각이 필요한 퀀텀 프로세서는 알루미늄과 니오븀niobium 으로 된 회로를 갖출 수도 있지만 아직은 실리콘에 의존 10)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도달한 기술 수준에서 보면, 아직 몇 세대(10여 년 정도)에 걸친 극소화 단계가 남아 있다. 그 경지에 도달하면 무엇을 할까? 한 가지 선택지는, 땅덩어리가 바닥나자 건물을 위로 쌓아 올리기 시작한 도시들을 따라 하는 것이다. IBM이 내놓을 미래의 칩을 예로 들어보자. IBM은 과거에 컴퓨터를 주로 생산했으나 오늘날에는 반도체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 연구 결과를 인텔 같은 회사들이 채택한다. IBM은 트랜지스터 게이트 길이가 12나노미터인 프토로타입 칩을 만들었으나 칩 제조업자들의 비논리적 명명 관행 때문에 2나노미터로 분류되었다. 이 칩은 손톱만 한 공간에다가 500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어넣을 수 있다.
반도체 업계 종사자 중에서 실리콘 칩이 나아가는 여행의 거리와 복잡도, 연관된 공정 숫자, 부품을 담당한 회사들의 숫자 등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언론에서는 자주 애플에 대해서, 이따금 폭스콘에 대해서 언급한다. 외부 전문가가 TSMC나 ASML 같은 회사에 대해 글을 쓰는 경우도 아주 간혹 있긴 하다. 그들은 대만과 네덜란드가 반도체 공급망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고 논평한다. 하지만 모두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하나의 반도체 칩이 완성되기까지 참여사 수백 개가 관여하는데, 이들의 도움이 없다면 반도체 공급망에서 가장 눈에 띄는 회사들조차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초크랄스키법을 위한 도가니, 그리고 볼을 얇게 자르는 다이아몬드 톱을 만드는 린턴 크리스털 Linton Crystal이 없다면 어떨까? 포토레지스트 기술 분야의 선두주자인 JSR이 없다면 어떨까? 각각 웨이퍼 접합과 포토마스크 생산을 맡은 오스트리아 회사들인 EV 그룹과 IMS 나노패브리케이션 IMS Nanofabrication이 없다면? 비코Veeco, 도쿄일렉트론Tokyo Electron, 램리서치 Lam Research,
ASM 퍼시픽 ASM Pacific,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에드워드Edwards 등반도체 공장에 들어가는 주요 기계를 만들어내는 암호 같은 신비한 이름의 회사들이 없다면? 여기서 한두 곳만 사라져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만들 수 없다.
이 문제는 더 생각해볼 만하다. 세계를 이끄는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공급망의 본국 회귀, 즉 리쇼어링 reshoring을 점점 더 소리 높여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은 반도체 산업에 투자를 촉진하는 법안을 입법하면서 반도체 제조사들의 미국 복귀를 꾀하고 있다. 시진핑은 '중국제조 2025 Made in China 2025'라는 정책을 수립하여 복잡한 기계부터 반도체까지 제조업 전반에서 중국이 우위를 점하고 자급자족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반도체의 기나긴 여정이 단 하나의 국가 안에서 모두 이루어진다는 게 정말 가능할까? 다른 국가들의 회사나 수입품에 의존하지 않은 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심지어 중국이 대만을 침략하고, TSMC의 반도체 공장들이 그 공격에서 살아남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혹자들은 TSMC가 건물기초에 폭약을 설치해 둬서 외부 침략을 받으면 자동 폭발한다고 주장한다. 육군이 후퇴하면서 교량들을 파괴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Fab 18은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반도체가 만들어지는 곳이지만, 대부분은 대만 이외의 지역, 주로 미국에서 디자인된다. 그 지식 재산권은 영국 케임브리지에 본사를 둔 회사 ARM에 있다.
TSMC의 반도체 공장들은 네덜란드와 일본의 공작 기계, 독일의 화학물질, 전 세계에서 수입한 각종 부품이 없으면 가동되지 못한다. 완벽한 실리콘 웨이퍼를 만들 수 있는 소수의 회사는 미국이나 중국에 본사를 두지 않는다. 웨이퍼가 결정화되는 도가니에 들어갈 규사를 생산하는 국가는 전 세계에 딱 한 군데밖에 없다. 정치가들은 한가하게 리쇼어링을 운운하지만, 그것은 물질의 세계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는 반증일 뿐이다.
더 깊이 파고들수록 이러한 공급망은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우리는 사슬이 아니라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석영을 실리콘메탈로 바꾸어주는 석탄 용광로가 없다면 실리콘도 없다. 실리콘을 용해하여 지멘스 공정을 시작하는 염화수소가 없다면 폴리실리콘도 없다. 아래층의 서브팹에서 클린룸으로 화학물질과 가스를 펌프로 올려보내
지 않으면 반도체도 없다. 이토록 많은 화학물질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걸까. 그 대답은 당신의 식탁 위에 있을지도 모른다.
팹리스 혁명과 파운드리
엔비디아는 3차원 그래픽을 다루는 데 필요한 그래픽 처리 장치graphics processor units, GPUs라 불리는 프로세서를 개발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3차원 그래픽과 관련된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실감 나는 그래픽을 만들기 위해서는 '쉐이더shader'라 불리는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한다. 이미지속 개별적인 모든 픽셀이 주어진 광량에 따라 빛과 그림자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계산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쉐이더라 할 수 있다. 쉐이더는 이미지 속 각각의 픽셀이 지니는 음영 값을 계산하는데, 이는 상당히 단순한 계산이지만 계산의 대상이 되는 픽셀이 수천에서 수백만 개에 이른다. 엔비디아의 GPU는 바로 이런 단순 계산을 엄청나게 많이 병렬 처리할 수 있었기에 이미지를 빠르게 렌더링 rendering 할 수 있었다. 인텔이나 다른 회사가 만드는 마이크로프로세서 혹은 범용 CPU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2006년, 엔비디아는 고속 병렬 계산이 컴퓨터 그래픽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놓은 소프트웨어가 CUDA였다. 표준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해, 그래픽과는 전혀 무관한 방향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GPU를 활용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엔비디아가 최고 성능의 그래픽 칩을 찍어 내고 있는 와중에 황은 CUDA라는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다. 2017년 한 회사의 추산에 따르면 그때 투입된 돈은 최소 100억 달러였는데, 이렇게 만든 프로그램은 그래픽 전문가뿐 아니라 엔비디아의 칩을 보유한 어떤 프로그래머건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었다. 황이 CUDA를 무료로 공개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소프트웨어는 엔비디아 칩에서만 작동했다. 그래픽 업계 밖에서도 쓸 수 있는 칩을 만드는 것은 엔비디아에게 엄청나게 큰 새로운 시장을 열어 주었다. 계산화학 computational chemistry부터 기상 예측에 이르기까지 병렬 처리를 원하는 수요를 발굴해낸 것이다." 그 무렵 황은 어렴풋하게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병렬 처리의 가장 큰 수요처가 될 수 있는 무언가가 떠오르고 있었다. 바로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Al이었다.
오늘날 엔비디아의 칩은 최신 데이터센터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그 칩은 대부분 TSMC에서 만든다. 엔비디아가 자체 팹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AI 시대의 반도체
AI 반도체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설계된 반도체 소자를 말한다. 전통적인 반도체와의 차이점은 AI 연산에 최적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대량의 데이터 처리와 병렬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AI 반도체는 특히 머신러닝 및 딥러닝 애플리케이션에 필수적이며, CPU, GPU와 같은 일반 프로세서와는 달리 특정 연산에 최적화된 하드웨어를 통해 처리 성능을 극대화한다.
AI 반도체는 크게 ASIC(주문형 집적회로), FPGA(현장 프로그래머블 게이트 어레이), 그리고 고성능 GPU로 나눌 수 있다. ASIC은 특정 알고리즘을 수행하기 위해 설계된 반도체로, 높은 성능과 낮은 전력 소모를 특징으로 한다. FPGA는 사용자에 의해 프로그램 가능한 하드웨어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GPU는 대량의 병렬 처리를 수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AI 훈련 및 추론에 널리 사용된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요 AI 반도체 생산 업체로 자리 잡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최근 AI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AI 칩을 통한 데이터 센터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NVIDIA, Intel, Google, AMD 등이 대표적인 AI 반도체 제조업체로, NVIDIA는 특히 GPU를 통해 AI 연산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반도체는 최근 급속히 진전하는 사회경제의 디지털화를 지지하는 기반 제품이며, 경제 안보의 관점에서도 이미 중요한 전략물자가 되고 있다.
최근 들어, 반도체는 공업제품의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모든 산업의 비즈니스 활동에 필수불가결한 기반 제품으로서의 의미를 갖게 되었으며, 반도체 업계의 동향이 모든 산업 비즈니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되었다.
급속도로 사회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데이터를 처리하고 축적하는 역할을 하는 반도체의 중요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으며, 데이터 자원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데이터 시대라고도 불리고 있다.
이러한 배경의 하나에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고 하는 기술의 급속한 진화가 있으며, 특히 생성형 AI(Generative AI)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전 세계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22년에 공개된 문장 생성형 AI, ChatGPT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전 세계적인 생성형 AI 붐이 시작되었다. AI가 만들어내는 정확도 높은 문장이나 일러스트는 놀라울 정도로 진화되었다.
생성형 AI가 주목받음과 동시에 수요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AI 반도체”다.
“AI 반도체(Artificial Intelligence Semiconductor)”는 인공지능(AI) 기술에서 기계학습(Machine Learning)과 딥 러닝(Deep Learning) 등의 계산처리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특화된 반도체 칩(Chip)을 말한다. 이러한 반도체는 AI 알고리즘 계산에 필요한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기존 범용 프로세서보다 특정 처리를 더 빠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 및 컨설팅 회사인 Gartner가 공개한 AI(인공지능) 반도체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AI 반도체 매출액은 전년대비 33% 성장해 710억 달러(약 98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AI 반도체 시장은 2028년까지 2자릿수 성장을 계속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2022년 이후 침체가 계속되다 2023년에 바닥을 찍고, 이후 본격적인 회복세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회복의 배경에는 생성형 AI를 활용한 서비스의 본격화나 데이터 센터, 모빌리티(EV나 자율주행 등) 전용 요소 기술로서의 수요 확대가 견인하고 있다.
특히, ChatGPT의 등장을 계기로 빠르게 보급되고 있는 생성형 AI는 시장규모가 2030년까지 연평균성장률 48%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반도체 산업의 고성장을 촉진하는 최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 조사 기관들은 2028년까지 AI 반도체 시장이 1000억 달러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AI 기술은 점점 더 그 중요성을 더해가는 가운데, AI 반도체에 대한 니즈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Samsung, 리더십 변경후 벌어진 일들
2024년 3분기 기준으로 이 회사의 영업이익이 급감했다는 소식은 주변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고 말았다. 경악의 수준이다. 주가가 반토막나고 거의 4만원 이하로 떨어지기도 했다. 위기라는 말들이 웅성거린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대만의 TSMC는 여전히 확고하게 잘 나가고 있고 엔비디아도 여전히 창창하다.
드디어 하이닉스가 삼성 반도체 부분의 영업이익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들은 풍월을 중심으로 몇가지 주섬거려 본다.
우선 재무 중심의 리더십이 문제가 있어 보인다.
예를 들면 협력사 단가 깎아라 라든지, 물량이 부족할 때에는 신용 보다도 돈 더 준다면 서슴없이 다른 업체로 물량을 몰아 주어 버린다. 비싼걸 누가 산다고 개발 하느냐고 해서 HBM 개발팀을 없앤 사례가 대표적이다. 쳇CBT 등 AI 프로그램이 대박을 치면서 HBM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데 앞서 개발 중이던 삼성은 이를 포기하고 하이닉스는 반대로 꾸준히 개발을 지속하면서 대박 행렬에 영예롭게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삼성으로서는 땅을 치고 후회할 노릇이다.
무릇 개발이란 안 될것 같은 걸 하는 것임을 잊은 것이다.
두번 째, 반도체 특유의 협력 시스템을 가볍게 여긴다. 가끔 협력하자는 제안을 거절하기 일수다. 또 외부 제품 파트너십 이용하자고 내부 결재를 올리면 자체 개발 하라고 거부당한다. 반도체 산업은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글로벌 벨류 체인이 그 특징이다. 독불장군은 통하지 않는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들어 갈 수 조차 없이 비밀의 담장이 높이 쳐 있는 기업에 우군이 생길 리 없을 것이다.
엔비디아는 CUDA를 일반에게 OPEN 했다.이공계 학생들을 중심으로 100만 추종자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 힘이 오늘날 엔비디아 열풍으로 나타난 에너지가 되었을 것이다.
기업문화의 관료화이다.
우스개 소리로 “실패해도 혼나, 성공해도 혼나” 란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실패하면 당연히 질책이 떨어질 테지만 상공했는데 왜 혼나냐고? 그 동안 뭐했냐고,왜 이제 성공했느냐고 혼난다는 것이다.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감추고 핑계대는 관료 문화가 판을 치는 기업은 미래가 없다. 그동안 일등 이었으니까 우리는 언제나 일등을 거니까 하는 빗나간 우열감은 언제나 스스로를 망칠 수밖에 없다.
다르게 때로는 엉뚱하게 해 보려는 인재들의 달리는 다리를 잡아 당기게 되고 인재는 결국 떠나고 말 것이다.
업종 특유의 방식에서 벗어 나야 한다.
TSMC 는 일찍부터 파운드리 부문에 특화된 길을 걷고 있다 따라서 고객 입맛에 맞추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영업 사원 뿐 아니라 기술 사원 모두가 고객 지향적 태도를 몸에 체화하고 있다. 이런 태도가 아니면 ODM 주문자 맞춤 개발 방식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 반면 삼성은 그 동안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제품이 아니라 범용제품 중심이다 보니 고객에 대한 절박한 심정이 부족한 듯하다. 인텔을 보라. 망한 이유가 “인텔 Inside” 범용형 제품에서 찾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기술만 가지고는 안된다. 주문형 메모리가 대세인 지금 더욱 고객지향적이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한다.
파운드리 사업을 위한 절대적 조건
범용제품인 디램에서 사업을 파운드리쪽으로 다각화하려고 하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고객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다. 파운드리는 주문자 맞춤 생산 방식이기 때문이다. 팹리스 업체가 자신만의 반도체 칩을 설계해서 생산해 주는 방식이 파운드리이다. 이 부문에서 절대 강자가 TSMC이다.
그런데 삼성이 파운드리를 하려고 할때 부딪히는 문제는 바로 고객사의 사업 부문과 겹치는 분야이다. 고객사로부터 얻은 제품 정보를 삼성이 자신의 사업에 활용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해소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다. 말로는 아무리 전용하지 않겠다고 해 보아야 고객이 잘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ODM 생산에서 중요한 원칙이 바로 1사1처방, 그리고 고객 정보 비밀 유지이다. 다른 용도로 절대 유출해서는 안된다. 화장품 부문에서 ODM 사업을 하는 한국콜마나 코스맥스는 아모레 퍼시픽, LG 생활건강 제품을 개발 생산하면서도 절대 화장품 유통 사업을 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삼성은 예를 들어 애플과는 스마트폰 사업, 다른 업체와는 각종 전자장비 사업에서 겹치기 때문에, 고객사 정보가 전용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조치가 필수이다. 일부에서 반도체 부문의 분사화를 요청하는 이유가 바로 이 것이다. 그런데 리더는 분사화 절대 불가를 언론에서 천명해 버렸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고객사의 불안을 해소할 것인지 대책이 모호하기만 하다. 화장품 ODM 업체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 몹씨 걱정이 된다.
리더십 문제를 마지막으로 거론하고자 한다.
선대회장 시절에도 오너가 직접 개발이나 생산에 참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장을 진두지휘할 인재를 때맞추어 모셔왔던 덕분에 승승장구 할 수 있었다. 무조건 최고 대우의 파격적인 지원을 보장해 주었다. 이름만 대면 잘 알 수 있는 영웅이 그렇게 해서 탄생했던 것이다. 오너는 이런 역할이면 충분했다. 삼성라이온즈 야구단을 보면 금방 드러난다. 최고대우 해주는 곳에 인재는 모여들기 마련이다. 오너의 역할은, 알맞은 타임에 조직에 자극을 부여하고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자, 7시 출근하고 4시 퇴근하자 등) 새로운 사업에는 감각적으로 신속하게 의사결정하는 일이다. 긴 시간 회의나 하고,, 회의 결과 1안 2안 3안 검토하는 일이 리더가 할 일은 아닌 것이다. 이런 일은 실무자가 하는 일이다.
삼성에게는 초격차를 지켜야 하는 절대졸명의 순간이 급습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