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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딸을 위한 장모님의 조금은 특별한 부탁

by 감동글 Jan 02. 2025

여자친구 어머니가 위독하다고 연락이 왔다 


연애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쌩날라리 같던 나를 아버지는 탐탁지 않아 하셨지만 어머니는 반대로 이뻐해 주셨다 


그 뒤로 몇 번의 만남이 더 있었고 연락받기 며칠 전 뵈었을 때 안색이 안 좋긴 하셨어도 갑자기 쓰러질 정도의 질병이 있거나 연세가 있는 건 아니셨는데 이러한 경험이 없던 나는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고 당황했지만 일단 계신 곳에 가봐야겠다는 생각부터 들더라 


일하던 직장 상사에게 사실 그대로 얘기하고 일찍 퇴근하고 싶다 말하니 한숨을 내쉰다 

하긴 종종 핑계 대고 결근 한 적 있고 결혼할 사이도 아닌 여자친구 어머니 병문안이 어이없게 들렸을지도,


조퇴를 하고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허나 내 생각과 달리 더 위급한 상황이라 모두 만나보지 못했고 여자친구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남겨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여자친구는 본가에 짐을 챙기러 나왔다가 내 자취방에 잠시 들렀다 

매우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론 담담해 보였다 

그리고 인사도 위로도 채 하지 못하고 곧장 집을 나갔다 


자정쯤 되었을까? 여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는데 받자마자 울먹이던 목소리가 먼저 짐작케 했지만 어머니가 이날 돌아가셨다고 한다 

집을 나서면서도 꿈인가 생시인가 했는데 낮에 갔던 병원 입구에는 이미 운구차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고 모든 식구들이 타지 못해 여자친구는 나만 오길 기다렸다가 같이 택시 타고 장례식장으로 이동하는 순간이 되어서야 사실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막 도착한 장례식장의 풍경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런 죽음에 원통함이 넘칠 알았지만 모두 덤덤해 보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애써 감정을 모두 숨기느라 그랬을지 모르겠다 


밤을 꼴딱 새우고 집에 돌아와 씻고 바로 직장 출근했다 

그리고 마치자마자 또 장례식장 달려와 이것저것 일손을 도왔고 처음 보는 가족친지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그들에겐 시정잡배 같은 모습의 더군다나 남자친구 명분으로 참석한 나를 모두 반가워하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했다 

그게 고인을 위한 일이고 또 여자친구를 위하는 일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손님이 뜸하던 새벽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고 피곤한 나머지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근데 이내 곧 누군가가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려 깼는데 간혹 친구들이 술 먹고 들이닥치는 경우가 많아 잠결이지만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문을 열었다


하지만 현관 앞에 있던 이는 친구가 아닌 처음 보는 사람이 서있었고 초면이지만 어딘지 낯이 익는 모습이었는데 정체를 알아차리기까지 몇 초나 걸렸을까, 

확신이 들자마자 깜짝 놀란 나는 문을 닫으려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막무가내 우리 집 안으로 들어오겠다며 잡고 버티기 시작하는데 일단 무조건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대치하기 시작했다 

근데 며칠 새 잠도 부족했고 술도 먹었겠다 아무리 20대 청년이래도 힘이 남아 있나, 체력의 한계를 느끼자 마자 곧바로 대화를 시작했다 


"일단 말로 하자, 왜 왔는데?"


"너거 여자친구 데리고 갈라고 왔지"


이 말 듣자마자 놀랄 새도 눈물 흘릴 새도 없이 곧바로 무릎 꿇고 빌기 시작했다 


"안됩니다. 제발 가주세요.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제발요"


"그럼 뭐 줄 수 있는데 내한테?"


왠지 이 사람이 원하는 건 음식이나 옷이 아닌 돈이란 생각이 들어서 바로 집 안을 둘러봤다 

하지만 며칠 전 지갑을 잃어버려 현금이고 카드고 하나도 없었고 자취방 안에는 그 흔한 돼지저금통도 없었다 

일단은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리고 온갖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하다가 오늘 입고 벗어둔 양복 주머니 안에 동전 세 개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찾아도 이거밖에 없어요. 일단 이거라도 받아주세요"


그 사람은 내가 준 동전 세 개를 받자마자 곧장 사라졌고 꿈이란 인지한 순간, 여자친구 어머니 장례식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근데 나는 분명 아까 집으로 돌아왔는데 왜 여기일까 생각이 들자마자 진짜 잠에서 깬 나는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현실이 아닐까봐 바로 여자친구에게 전활 걸었다 

슬픔에 잠긴 목소리였지만 여자친구가 맞았다 

왜 전화했냐는 말에 잠도 좀 자고 밥도 좀 먹으라고 곧 동이 트는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고 끊었고 그렇게 그다음 날 장례 마지막까지 큰 탈 없이 무사히 잘 치렀다 


여자친구 어머니 장례식 이후로도 꿈에 나왔던 그 사람은 자주 나타났다 

그때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항상 무표정한 모습으로 무언의 메시지를 내게 보냈고 몇 년이 더 지나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나서 더 이상 그 사람은 내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는 배우자가 된 여자친구의 어머니, 즉 나의 장모님에 대한 기억은 여기까지다 


남들보다 많은 추억을 쌓은 것도 없고 오히려 특별한 존재로 나타나 무서운 기억밖에 없지만 어쩌면 우리가 연애 시절 헤어짐을 고할 때 멀리서나마 다른 방법으로 화해 시켜주신 건 아닐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철부지 딸이 느닷없이 데려온 20대 청년이 당신의 마음 속으론 꽤나 괜찮게 들었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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