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육아를 하시던 시절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엄마는 한 명 키우는 것도 버거워하셨고, 더 이상 자녀를 원하지 않으셨다.
힘들어하던 엄마를 덜 힘들게 하는 것이 남편의 역할이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않았고, 엄마의 불편한 감정이 터지는 순간을 늘 경계하며 자랐다.
“지금 상황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 같아.”
남편은 그렇게 내게 털어놓았다.
나는 시골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농번기 늦게 돌아온 아버지는 집이 지저분하거나 저녁이 늦게 나오면 큰소리로 우리들에게 화를 내셨다.
나는 십대 때부터 아버지와 직접적으로 맞섰고, 내 방식대로 반항했다.
시댁 가족들은 완전히 달랐다.
사랑이 많고 늘 따뜻하게 환영해주셨지만, 불편한 문제는 직접 언급하지 않으셨다.
모른 척하거나, 그냥 넘어가는 편을 택하셨다.
영국으로 남편과 함께 이주한 뒤, 나는 그 차이를 몸으로 느꼈다.
우리 가족이 영국으로 온 이후, 어머니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내 눈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남편은 엄마의 기분을 먼저 살피고, 말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저 물어보면 될 일을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은 집에 있는 것이 불편했다. 내 집이지만 내 집 같지 않았다.
계속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고,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엄마가 힘들어하는 이유는, 내가 영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인 것 같아.
한국에서 부모님이 너무 그리워하시니까 결국 돌아왔는데, 잘못된 선택이었어.”
그날 아침, 주방은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남편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움직였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하지만 결국 폭발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날카로웠다.
나는 숨을 고르고, 단호하게 말했다.
“눈치 보지 말고 얘기해봐.
지금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남편은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얼굴이 굳어졌다.
그의 눈빛 속에는 오랫동안 쌓아둔 억울함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집 안 공기는 숨조차 막힐 듯 무겁게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