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한 번도 부모님의 사랑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적어도, 영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그는 외동아들이었다.
부모님의 기대 속에서 자랐고, 큰 문제를 만들지 않는 아들이었다.
그의 유쾌함은 집 안의 분위기를 늘 가볍게 만들었다.
남편은 대학교 졸업 후,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되는 은행에 취직했지만
그곳을 그만두고 2006년 여름, 한국으로 왔다.
부모님께는 1년만 다녀오겠다고 했다.
잠깐의 모험이라고.
남편은 경북의 작은 마을에 도착한 첫날.
배가 고파 동네 치킨집에 들어가서 첫 끼니를 먹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던 그는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고,
주인 아주머니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후라이드 치킨 두 마리를 튀겨 내주셨다고 했다.
양념인지, 후라이드인지 묻는 말도 없었고
그 역시 설명할 수 없었다고 했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치킨은 나왔다고.
그가 정말 두 마리를 다 먹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낯설고 더웠던 첫날,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졌던 그곳,
한국에서의 그 1년은 17년이 되었다.
한국에서 그는 나를 만나 가정을 이루었고, 딸 아이를 품에 안았고,
자기 삶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늘 부모님께 미안해했다.
외동아들이니까.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님을 두고 타국에서 사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영국으로 돌아가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거라 믿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부모님께 쌓아둔 빚을 한꺼번에 갚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주방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들어와
머그잔에 얼그레이를 타셨다. 그리고 나선 짧게 한숨을 쉬고 주방을 나가셨다.
그날 이후 남편은 엄마의 얼굴을 먼저 살폈고,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한 박자 멈추는 습관도 생겼다.
그의 유쾌함은 여전했지만 어딘가 조심스러워 보였다.
나는 그가 엄마를 웃게 하려고
조금 더 애쓰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애씀은 예전처럼 가볍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