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의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남편은, 어느 날 갑자기 가장이 되었다.
한국에서의 안정된 생활과 자유로움은 사라졌다.
이제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부모님까지 챙겨야 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영국에서 신규 교사로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경력을 내려놓고 바닥에서 출발한다는 의미였다.
수업 방식도 낯설었고,학교 규칙도 달랐고, 행정 서류는 더 복잡했다.
남편은 새벽에 학교로 나가 어둑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현관문이 열릴 때면 이미 그의 어깨는 무너져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두 팔 벌려 맞았다.
따뜻한 밥상을 차려 함께 앉아 저녁을 먹으며,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가 가족을 위해 힘들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말을 해야 풀리는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그 이야기를 온전히 내가 들었다.
하지만 영국으로 돌아오면서 한 사람이 더 생겼다.
학교 교사였던 시아버님.
이제 남편은 집에 오면 나와 아버님,
두 사람에게 번갈아 가며 하루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 시간은 늘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퀴즈쇼를 보거나 신문의 퍼즐을 풀고 계셨다.
남편이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해도 어머니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눈은 화면을 향하고,귀만 이쪽으로 기울어 있는 듯한 모습.
처음에는 나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그 장면이 반복되면서,
남편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운함이었다.
마흔의 나이지만,
엄마 앞에서는 사랑받고 싶은 아이가 되는 걸까.
그의 서운함은 어느 순간 과거를 끌어올렸다.
“엄마는… 다른 사람들이랑 있을 때 더 행복해 보여.”
그가 낮게 말했다.
어릴 적, 엄마는 집에서 육아를 힘들어했고
밖에서 일할 때 더 생기가 있었다고 했다.
“나는 엄마한테 늘 부담이었어.
힘들게 만드는 존재.”
그 말속에는 수십 년 동안 눌러 담아둔 감정이 섞여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랑 한번 얘기해 볼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안 바뀌어.
그리고… 내 감정 들으면 감당 못 하실 거야.”
그는 여전히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원했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 옆에 있는 것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어머니와 한 공간에 오래 머물지 않으려 했다.
주말이면 늘 지쳐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탈진한 사람처럼.
학교에서의 긴장,
가장의 책임,
그리고 엄마 앞에서의 서운함.
그 모든 것이 뒤섞여
보이지 않는 응어리가 되어 남편을 조금씩 잠식하고 있었다.
나는 그 그림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건 단순한 서운함이 아니다.
이건 오래된 상처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