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영숙 Oct 05. 2024

25년의 벽

  한국이 변했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단순히 건물이 올라가고, 길이 넓어지고, 각 도시로 이어지는 도로가 많아지고, 교량이 많아지고 넓어지고, 터널의 숫자가 늘어나고, 해저 터널이 몇 개가 생기고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부유해 졌는지, 각 지방자치제에서 지역주민들에게 베풀어주는 혜택이 얼마나 많아졌는가 하는 문제도 아니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시골도 시골이 아니다. 예를 들어, 내 고향은 시골이었는데 바다를 메우고, 산을 깎고 개발하여 관광지가 됐다. 그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 때문에 차가 밀려 그 지역주민들이 주말에는 차를 몰고 어디를 가는 것이 힘들 정도가 되었다. 도로도 그렇다. 내가 사는 울산의 이 시골 마을 앞으로 큰 도로 세 개가 있다. 고속도로, 자동차 전용도로, 국도. 모두 이곳저곳을 이어주는 편리한 길들이다. 그러고도 여전히 도로공사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25년이라는 세월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변화이다. 

  내가 적응하기 힘든 변화는 따로 있다. 사람이 변했다. 어쩌면 그 또한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난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데 사람이라고 변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 변화에 적응하는 게 힘이 든다. 이삼 년 전에 한국 왔을 때 친구가 “요즘 자녀들은 명절이 되면 여자는 친정으로, 남자는 자기 본가로 간다. 옛날처럼 함께 시댁에 갔다가 친정에 가고 그러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때는 설마 그럴까. 그건 한두 사람의 이야기겠지. 그렇게 치부했다. 한국에서 살고 난 다음 그런 말이 많은 부분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는 사람들이 철저하게 개인주의가 됐다. 나, 혹은 내 자녀만이 가족이다. 그 이상은 가족으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사촌까지는 한집에서 살며 자라서 한 가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촌은커녕, 이모, 고모, 삼촌도 결코 가족이 아니다. 그저 이웃집 아주머니 아저씨쯤이나 되려나? 어쩌면 그보다 못할 수도……. 이곳에 와서 언니 오빠가 있으니까 미국 있을 때와 달리 명절이 되면 외롭지 않으리라는 나의 착각은 보기 좋게 퇴짜 맞았다. 언니 오빠도 자기들의 가족이 함께 있는 한 나는 철저하게 이방인이다.

  이웃 간도 그렇다. 이사 왔으니 당연히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옛날에 떡을 돌리던 것처럼.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 한 통로에 20층이나 되니 양쪽으로 40호의 가구를 다 인사할 수는 없어도 앞집과 바로 위아래는 인사해야 할 것 같아 조그마한 화분을 준비하여 초인종을 눌렀다. 낮에는 일하러 가고 없을 수도 있어서, 그리고 너무 늦은 시간은 실례이니, 퇴근 후 저녁 7시경에 찾아갔다. 아무도 문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아직 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하고 그다음 토요일 낮에 초인종을 다시 눌렀다. 역시 대답이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예약된 방문자가 아니면 누구에게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단다. 결코 위험한 지역이 아니다. 참으로 안전한 곳이다. 그저 그들은 초대받지 않은 이의 방문 자체가 싫은 게다. 돈도 싫고, 선물도 싫고, 오직 자신의 프라이버시 지키는 것만이 최우선인 듯하다. 이 얼마나 삭막하고 인간미 없는 사회인가. 한국이 언제 이랬단 말인가. 원래는 ‘정’이란 단어가 너무 잘 어울리는 곳이 아니었던가. 빠르게,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88서울올림픽 때 표어 공모 중에 “세계의 10년, 한국의 1년”이라는 글이 가작(?)인가로 당선된 거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때 아주 신선한 문구라고 깊이 새겨졌다. 참 좋은 말이라 생각했었다. 그만큼 빨리 발전해 가는 한국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 기대가 틀리지는 않은 것 같기는 하다. 내가 간과한 것은 때로 좋은 것이 올 때는 나쁜 것을 동반한다는 사실이다. 

  떠나 있는 25년의 격차가 나에겐 너무나 크다. 내 생각과 의식은 아직 25년 전에 머물러 있지만, 이곳은 이미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개인주의 적이며, 철저하게 자기중심적 사회가 됐다. 이웃도, 친척도 없는 듯하다. 오직 자신만 있을 뿐이다.

  이방인인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얼마의 시간을 요구할지, 이곳을 알아가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이 노력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세월이 흐르면 조금씩 익숙해지겠지, 막연하게나마 기다리려 한다. 

  변화란 좋은 것도 있지만 아쉬운 것도 많다. 그래도 좋은 면만 바라보고, 내가 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뿐이라고 나 자신을 다독인다.      

10/1/2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