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비가 없다. 최소한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4월 초에 이사 와서 지금까지 살면서 비다운 비가 온 적이 없다. 일기 예보에 비가 올 것이라 해도 거의 오지 않고, 어쩌다 비가 오는가 싶으면 3~5분 정도 뿌리고는 바로 멈춘다. 비를 즐길 겨를이 전혀 없다. 원래 눈이 없는 곳이라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비가 적은 곳인 줄은 와서야 알았다. 로스앤젤레스의 그 삭막한(?) 곳에서는 눈은 아예 없고, 비도 가끔, 조금 내리는 게 전부이니, 나는 언제나 비에 굶주려 있었다. 한국에 온 이유 중 하나가 눈과 비를 즐기자는 것이었는데, 이럴 거면 내가 왜 여기에 있나 싶을 정도다.
어제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진짜 비가 온다. 쏟아지는 비는 아니라 하더라도 꾸준히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반가운 마음이다. 밤에 잠을 잘 때, 거실 창이며 베란다 창을 모두 열어놓았다. 빗소리를 들으며 자는 것은 숙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비로 인해 우리를 괴롭히던 그 무더위도 모처럼 물러갈 것이라 하니 더욱 반갑다. 아침까지 빗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아파트 베란다 바로 앞 태화강의 물결이 맑고 조용하던 평소와는 다르게 누런 흙탕물이 되어 넘실거리며 흐른다.
나는 비가 오면 음악을 틀지 않는다. 나에게 빗소리만 한 음악은 없다. 그 소리는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하긴 신이 내린 음악이 어찌 인간이 만든 음악과 비교될 수 있으랴. 하이든의 “천지창조”도, 비발디의 “사계”도,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도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다.
오늘은 종일 음악은 끄고 빗소리를 틀어 놓을 것이다. 커피도 한잔하고, 아름다운 비 오는 모습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오늘이 토요일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아니면 복지관에서 공부하느라 이 모습을 보지 못하고 놓치고 말았으리라.
이 비를 뚫고 유유히 날고 있는 저 백로들도 오늘이 토요일이어서 좋은가보다. 날갯짓에서 여유로움이 묻어나온다. 나와 함께 빗소리를 들으며 비 오는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아마 오늘은 계속 비가 내릴 모양이다. 일기 예보가 맞아떨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