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투쟁이라 했던가. 25년의 길고 긴 시간을 온 맘과 몸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다. 하긴, 어디 미국 생활의 25년뿐이겠는가. 온통 전쟁처럼, 투쟁처럼, 열정으로 뭉쳐져 치열하게 살아온 삶이었지 않은가. “사람이 어찌 밥으로만 살 것인가” 하여,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나에게 있어야 했고, 더 성장해야 했고, 언제나 발전하는 모습을 가지고 싶어서 날마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살아왔다.
Santa Monica College에서 7년을 넘게 음악 이론, 성악, 그림, 영어 등을 열심히 공부했다.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뛰었다. 기독교 교육학 석사, 음악 석사는 장롱 밑 깊은 곳에 쟁여두고, 학위가 필요해서가 아닌, 사람은 늘 배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온몸과 마음을 다해 열정적으로 공부했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오면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주로 12시, 다음날은 어김없이 5시 이전에 일어나야 한다. 그래도 피곤하지 않았다. 오늘도 무언가 보람 있는 하루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 긴 시간을 열심히 뛰었지만, 지나고 나니 뭐가 남았는가. 어릴 때 배운 것들은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잊어버렸고, 지금은 열심히 읽었어도 한 페이지만 넘기면 바로 앞 페이지에서 뭘 읽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나이 들어 가물가물한 그림자만 내 주위를 맴돌고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도, 글을 써야 했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나는 매일을 초 단위로 쪼개며 살아왔다.
딸을 위해서도 열심히 살며, 언제나 최선을 다해 키우려 애썼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야 딸도 그럴 것이고, 바르게 살아가는 모습이 거울이 되어 내 아이에게 적용되리라 생각했다. 내가 아닌 하나님께서 키워주셔야 하는 것을 잊었다. 내가, 내가 키운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호해야 하고, 내가 곁에서 지켜줘야 하고 내가 바르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는 아니다. 이제부터 나는 나를 위해 살 것이다. 이제부터는 놀기만 할 것이다. 그냥 즐길 것이다. 열심, 열정이라는 단어는 나에게서 멀리멀리,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저 멀리 쫓아낼 것이다. 게으르게, 멍청하게, 나태하게, 머리를 텅 비워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자고, 놀 것이다. 쉬고 싶을 때 모든 걸 놓고 멍청히 먼 산을 바라보며 앉아 있을 것이고, 힘들면 누워서 뒹굴고 낮잠도 즐길 줄 아는 삶을 살고 싶다. 낮잠 자는 것은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인 양 절레절레 머리 흔들지 않고, 보람 있는 무엇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고 나면 잠자리에 들어 후회하며 자신을 꾸짖는 그런 모습이 더는 아니고 싶다.
얼굴 근육이 굳도록 고상하고 우아한 미소 지어야 하는 타국을 떠나, 파안대소해도 흉이 되지 않을 내 고국으로 돌아간다. 어차피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명품 가방 탐하지 않고, 누더기 옷이라도 개울물에 깨끗이 빨아 단정히 기워 입고 속 깊은 평안을 누리며 살 것이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 추억 속으로 들어간다. 거실에서 보이는 자연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산과 강이 아파트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어, 사계절을 다 보고 느낄 수 있는 그러한 곳이다. 기대된다. 노랑, 빨강, 분홍으로 화려한 한국의 아름다운 봄을 느끼고 싶다. 진달래 꽃잎을 따서 먹어보고, 개나리는 얼마나 흩뿌려졌는지 볼 것이다. 달콤한 5월의 아카시아꽃 향기 맡으며 그렇게 시작되는 짙푸른 초록의 여름을 체험할 것이다. 그 “초록에 지쳐 단풍든” 오색찬란한 가을을 만지며, 단풍잎을 모아모아 책 속에 고이 펴 넣을 것이다. 눈이 시리도록 하이얀 눈꽃을 피운 아름다운 겨울 산을 이 두 눈으로 확인하며 눈밭에 뒹굴어도 좋겠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창가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눈 내리는 날엔 강아지처럼 팔짝팔짝 뛰며 눈을 맞고 눈사람도 만들 것이다.
고향이 거기 있고, 그 산천이 나를 품어주니 이에 더하여 무엇하리.
다 내려놓고, 홀연히, 훌쩍 떠나 평범한 시골 아낙의 모습이 될 것이다.